아버지의 백 드롭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북스피어에서 출간한 『아버지의 백 드롭』은 일단 판형부터 눈에 띈다. 일반적인 직사각형의 모습이 아니고, 정사각형의 작은 책. 분량도 얇아서 151페이지 밖에 안 된다. 그만큼 가격도 저렴하다. 5,5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가볍게 집어 들어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긴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인 나카지마 라모는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이력을 보면 인상적이다. 1952년 효고 현 아마가사키 시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소설가, 에세이스트, 연극 각본가, 연극배우, 록 밴드의 보컬, 광고 카피라이터 등으로 활동했다. 아이큐가 185에 태어난지 9개월 때 일을 기억한다고 하니, 정말 천재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종교와 주술, 또 방대한 오컬트 지식이 망라된 『가다라의 돼지』가 있다. 역시 북스피어에서 출판한 작품으로 상당한 두께를 자랑한다. 이 『아버지의 백 드롭』과는 분량이나 내용의 진지함이나 어두운 면 등에서 정반대에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다라의 돼지』는 제47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장편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나오키 상 후보에 오른『인체 모형의 밤』도 국내에 역시 북스피어에서 번역해서 내놓았다.

  이 책에는 총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상당히 짧은 이야기들로, 모두 ‘아버지’가 소재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엉뚱한 아버지와 불화를 가지고 있는 자식의 시점에서 아버지를 그리다가 해피엔딩을 맞게 되는 구조가 대부분 비슷하다. 읽으면서 마치 MBC 베스트극장에 방영될 만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소설이 아니라, ‘아버지’를 다룬 훈훈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딱 제격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백 드롭」은 아버지가 프로레슬러인 사실을 숨기는 친구를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 친구인 가즈오의 아버지는 프로레슬러이지만, 다케루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가즈오는 자신의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가즈오의 아버지는 악역 레슬러로 ‘금발의 승냥이’로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즈오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마흔세살이나 되어서 초록색 물을 뿜꺼나 쇠사슬 달린 낫을 휘두르는 아빠를 존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갈등이 이 단편의 핵심을 이룬다. 이야기는 처음에 등장했던 세계 가라테 챔피언 곰 잡는 카먼에게 가즈오의 아버지가 도전을 하면서 급박하게 진행된다. 27살의 젊은 나이에 세계 가라테 선수권 대회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한 밥 카먼에게 일본인 프로레슬러, 그것도 악역만 맡은 43세의 중년이 도전한다고 하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독자는 어떤 결말이 있어도 놀라지 않을 각오를 하고, 가즈오의 심정 변화를 따라가면서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 끝에는 따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의 갓파 만담」 역시 사회적으로 약자에 있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바로 인기 없는 만담가이다. 히토시의 아버지는 인기 없는 개그맨인 것이다. 이야기는 아들과 아버지의 불화보다는 아버지와 스승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이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렇게 다양한 직업군을 등장시키고, 또 색다른 상황 속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애완동물 전쟁」은 두 아이의 유치한 애완동물 대결이 아버지들까지 도우면서 이야기가 점점 확장된다. 「아버지의 로큰롤」은 「아버지의 갓파 만담」에서 등장한 아버지처럼 우스꽝스럽고 유머가 넘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항상 장난기가 넘쳐서 매사가 장난 투성이다. 이런 독특한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가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소소한 아버지에 얽힌 일화들이 모여 있는 책이지만, 소품이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요소가 있다. 책에서 무언가를 꼭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쉬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가벼운 이야기들을 찾는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다섯명의 아버지들을 만나면 좋을 것이다. 이 아버지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엄숙한 어른들이 아니다. 그야말로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엉뚱하다. 여기에 아들은, 또 딸은 당황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아버지를 인정한다. 저자는 후기에서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아버지를 네 사람 모아서 써보았다고 한다. 한 작가가 쓴 만큼 직업이 각각 다르지만, 어쩐지 비슷한 면모가 많다. 아이 같은 컨셉이 겹치기 때문일까. 저자는 여러분의 아버지에게도 분명 그런 괴상한 면,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그런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이 소설에 나온 자식들처럼 그런 면에 당황하고 싫어하는 기색을 띠면서도 어쩐지 내 아버지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게 되는 면인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깨달음을, 이렇게 얇은 책 한권으로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지, 무심코 지나친 일면 중 새삼 아버지의 동심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은 그런 생각들을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읽는 독자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다른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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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8-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네요.재미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