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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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읽는 것의 즐거움

  다시 김애란이다. 그리고 역시 김애란이다. 한국 문학이 읽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점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면서 지레짐작 당해버린 한국문학들은 어디 항변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꾸준히 쓰고 있다. 아무리 베스트셀러 순위에 일본 소설들이 오르내린다 하더라도, 한국문학은 사라지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열심히 쓴 것을 보답 받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톡톡 튀는 일본 소설들만큼이나 상큼 발랄하면서 꽉 찬 한국 소설들이 얼마든지 있다. 서점에 가보라. 신간 코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한국 소설들을 들쳐보라. 곧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꽂혀 있을 『침이 고인다』를 주목해 보자.
  김애란. 김애란은 대산문화에서 주최한 대산대학문학상 제1회 수상자이다. 내가 처음 김애란을 접한 계기도 마찬가지였다. 막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이 관심이 갔었다. 누가 과연 첫 회 수상의 영광을 가져갔는지 궁금했었다. 도서관에 있는 정기간행물실에서 나는 김애란의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을 복사해왔다.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아, 이 작가 정말 잘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얄미울 정도로.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김애란을 잊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애란은 꾸준히 쓰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어느 날,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김애란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을 때, 놀람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첫 작품부터 이럴 줄 알아봤다구!’ 라며 괜스레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애란의 첫 소설집이 나오자마자 내가 구입했음은 당연할 따름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김애란의 첫 소설집은 훌륭했다. 발랄한 상상력, 깔끔하고 세련된 문체, 평범한 일상을 흥미롭게 묘사하는 힘.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좀 더, 다른 이야기,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기다렸던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됐다. 『침이 고인다』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덟 편이라. 딱 적당한 숫자처럼 보였다. 2년 동안 계절마다 한 편씩 발표한다면 딱 맞는 숫자가 아닌가? 이 정도면 개근상은 줄만한 성적이랄까. 첫 번째 실린 단편의 제목은 「도도한 생활」이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입안에 달라붙는 듯한 말이다. 도도한 생활. 아, 도도하게 살고 싶어라. 내가 편집자라면 『침이 고인다』가 아니라 『도도한 생활』로 제목을 정했을 듯싶다. 뭐, 「침이 고인다」가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단편이기도 하고, 더 눈에 띄는 제목일지도 모르겠지만.
  “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을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 번째 음이니까, 첫 번째 손가락으로 내가 도, 내가 건반을 누르자, 도는 겨우 도― 하고 울었다.”(p.9)라고 시작하는 「도도한 생활」은 내용은 물론이고 제목까지 재치 있는 단편이었다. 바로 피아노 건반의 ‘도’와 ‘도도함’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의 중의적 표현이 아닌가. 이 글에서 초반부에 가장 인상적인 문
장은 이것이었다.
  “이 방에서, 이 거리에서, 이 시장과 저 공장에서, 이 골목과 저 복도에서, 그늘에서, 창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 도― 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까닭 없이 낼 수 있는 음 하나 정도는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p.19)
  과연 사람들이 까닭 없이 낼 수 있는 저마다의 음은 무엇일까?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까닭 없이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나만의 소리가 터져 나올 때 그것이 내가 갖고 태어난 울음소리일까. 소설이 때로 위안이 된다면, 읽고 있는 이에게 당신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줄 때이다.
  초반에 장황하게 묘사된 피아노는 현실을 거쳐 지하방으로 옮겨진다. 피아노는 유년기의 꿈, 삶의 잃어버린 무엇처럼 읽힌다. 지하방에서 피아노는 칠 수 없다. 소리 낼 수 없는 피아노는 없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결국 피아노를 치게 된다. 어차피 빗소리에 주인집은 듣지 못할 것을 알기에. 또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타박하려 내려온다면, 도와달라고 간청할 수 있을 것이기에. 비가 와 방이 잠기고 인사불성인 언니의 예전 애인까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상황. 아무도 듣지 못하는 때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지만, 주위에 들어줄 사람은 없다. 비는 계속 내려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그처럼 막막하여 구원을 바라고 있다. 그 삶 속에서 우리는 눅눅한 피아노로 어떤 연주를 할 수 있을까. 피아노를 배우던 이야기의 시작이 피아노를 치면서 마무리 된다. 작가의 세련된 문체가 빛나고,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빛나는 문장들도 제법 보이고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가 있다. 누구는 커다란 서사가 없다고 소품에 가깝다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단편이니까, 오히려 충분한 것이 아닐까. 기다렸던 만큼 보답을 해 준 첫 번째 단편이었다. 문득 피아노가 치고 싶을 정도로.

  두 번째 단편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침이 고인다」였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단편이기는 하나, 미처 읽어보지 못한 단편이라 여기에서 처음 읽었다. 앞의 단편이 약간은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꾸며져 있다면, 이번에는 조금 건조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고 할까? 3인칭에다가 현재형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문체는 기존의 작품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거기다 박민규 작가가 『핑퐁』 텍스트의 폰트를 줄인 것처럼 이 단편에는 ‘굵게’와 ‘이텔릭체’의 기울임이 혼합된 텍스트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글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고 강조해주는 등 그냥 밋밋한 텍스트보다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좋았다.
  또한, 이런 단편들의 장점은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세대와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아무리 좋은 명곡들이 있어도 신곡 발표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어도 또 새로운 소설을 찾아 기웃거린다. 읽고자 하는 욕망은 끝이 없고, 특히 지금 자신들의 이야기를 원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것은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이 보여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에 태어나 같이 살아온 자만이 공통으로 경험한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친숙함과 반가움이 교차된 상황들이 즐거움과 재미를 준다.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침이 고인다」는 사정이 있는 후배와 한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이 단편에서도 커다란 서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밀하게 꽉 짜여 있는 문장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리고 공감 가는 대목들이 많다. 타인과 함께 살게 되면서 상대방이 싫어지는 감정. 타인에게 갖게 되는 사소한 불만거리들. 혼자 있고 싶은 느낌. 오로지 혼자서 모든 걸 누리고 싶다는 욕망.   소재와 이야기 모두 지금 우리를 담고 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자취나 기숙사 때의 경험들이 떠오르고 공감이 갔다. 이 단편이 그런 경험들 탓에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멋진 단편 중에 하나였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성탄 특선」은 제목만큼이나 기대를 한 작품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이 단편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단편이라는 점은 왠지 모르게 재미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충분히 재미있었고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크리스마스날 방을 구하기 위해 방황하는 연인이라니!
  때론 대사 하나가 기억에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빤한가…….”(p.84)라는 대사 역시 그렇다. 초반에 등장하는 사내의 대사인데, 단 한 마디인데도 왠지 내가 자조하는 듯한 읊조림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되묻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빤한지. 나 역시 너무 빤하다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다고. 이유를 알 도리가 없다고.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날 방 하나를 구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사실 그 본질은 읽는 이의 가슴을 숙연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난 있잖아. 천만 원이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줄 알았어.”   동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바람이 불자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들이 일제히 팔랑거렸다. 방 있습니다. 전/월세. 풀 옵션. 바람에 나부끼는 전화번호들. 주인 없는 숫자들이 도시 위로 풀씨처럼 날아갔다. 동생은 꽤 비싼 가격이 적혀 있는 전단지를 내밀며 장난치듯 말했다.
  “우리 이 집 한번 가볼까? 계약 안 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이 정도 가격의 집은 어떤지 구경해보자.”(p.103)
  “그들은 고만고만한 보증금과 월세에 맞춰 자주 인사를 다녔다.”(p.102)는 문장들부터 위의 문단까지 이 삭막한 도시에 자신이 눕고 기댈 수 있는 공간 하나가 얼마나 절실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방이란 개인에게 있어 하나의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희생해야 한다. 잔잔한 미소를 띄며  읽게 되는 단편이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기분도 들었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 처음에는 낯선 제목이라 생각했는데, 작품을 읽고 나서 다시 음미해보니 참으로 공감이 가는 제목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자오선을 지나갔고, 또 지나가는 중인 것이다. 언젠간 완전히 지나쳐버릴 수 있는 걸까?
  지하철 노선표를 보며 주인공은 도시의 역을 잇는 선들이 별자리처럼 어렵고 낯설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모르는 별자리. 서울의 손금.”(p.117) 주인공은 서울, 63빌딩, 노량진, 재수로 시작되는 과거를 회상한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던 소설이다. 비록 내가 재수를 경험한 것도, 노량진에서 생활한 것도 아니지만. 내 선배나 후배 그리고 친구들 중에서도 노량진 학원에서 재수를 한 경우는 많았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재수를 하고 있는 학생들은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앞두고 남은 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 것은, 역시 같은 세대의 작가들이 아닐까. 이 시대의 십 대, 이십대의 이야기가 다루어져야 더욱 십 대, 이십대들이 친숙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수 생활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고, 묘한 정서가 흐르고 있어서 즐거웠다.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쓰고 또 읽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에 위안까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우리가 아직도 지나가고 있다, 라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칼자국」. 김애란이 쓴 어머니에 대한 소설. 첫 번째 소설집은 표제작의 제목부터 ‘아비’를 다루고 있었다. 수록된 소설들도 실종된 아비를 다룬 작품 등 아버지가 중심 소재로 등장한 소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단편집은 어머니가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소설이 많은 느낌이었다. 이 단편은 올해 세계의 문학 여름호를 사보면서 책이 나오기 전에 먼저 읽었는데 내심 감탄하며 읽었던 글이다. 가장 최근에 쓰인 글인 터라 완숙미가 엿보였고 흡인력도 뛰어났다. 작가가 직접 밝힌 바로는 이 단편집에서 이 소설이 가장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자전적인 소설인 탓일까? 굉장히 몰입감이 뛰어났다. 디테일도 잘 살아있고 작가가 자신 있게 쓴 이유에선지 시원시원하게 읽히면서도 가슴 찐하게 만드는 감동까지 있었다.
  “엄마 된장찌개 어떻게 끓이는 거야?”
  어머니는 진지하게 답해줬다.
  “응 된장 넣고 그냥 끓이면 돼.”
  “…….”
  나는 '그렇게 중요한 정보 알려 줘서 진짜 고맙다'는 식으로 건방지게 대꾸했다.
  “김치찌개는 김치 넣고 끓이고, 미역국은 미역 넣고 끓이고?”
  어머니는 깔깔대며 그제야 상세한 조리법을 알려 줬다. 나는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응석을 부렸다. 어머니는 내게 질문 받는 걸 좋아했다. 나는 마늘을 다지고, 두부를 자르고, 김치를 썰며 이따금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마트에서 사 준 칼을 쥐고서였다.(p.173)
  ‘내’가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묘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는데 회고조로 이야기하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간간히 들어간 유머들이 글을 더욱 빛내주었다. 왠지 정다운 느낌이 드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나만 이렇게 느낀 건가 싶었는데, 다른 서평들을 봐도 이 단편이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후에 황순원문학상 수상후보에도 들어간 것을 보고 역시 좋은 작품은 여러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느꼈다. 이 책에 실린 가장 최근의 단편 중 하나이므로 앞으로 발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또한 기대가 되었다.

  「기도」는 신림동을 묘사하고 있다. 언니가 묶고 있는 고시촌이 배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자오선을 지나갈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태소설이랄까, 우리가 사는 시대의 풍경을 묘사하는 듯한 느낌. 지금 이 시대의 이십대들은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해 골방에 처박혀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또다시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파트 2라고 할까?
  “노량진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네?”
  “그렇지?”
  “응, 연령대가 달라서 그런가 차분한 느낌도 나고.”
  언니가 덧붙인다.
  “노량진에 아침마다 교인들에게 밥 주는 교회가 있었거든? 거기로 그냥 밥 먹으로 가는 고시생도 꽤 있었어.”(p.196)
   「기도」는 약간 아쉬운 느낌도 많이 드는 단편이었다. 너무 주위 배경 묘사에만 치중한 나머지 작품의 내적 재미를 얻는 데 실패한 느낌도 들었다. 설문조사를 하는 사내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느낌이 아니라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네모난 자리들」은 작년 문학동네 겨울호에서 읽었었다. 그 때 이 단편에는 김애란의 ‘자전소설’이라는 머리말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던 듯하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들은 바로는 작가 자신은 「칼자국」이 더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이 「네모난 자리들」 역시 자전소설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사실 기대한 것보다는 실망이 앞섰다. ‘자전소설’이라는 청탁을 받고 오히려 움츠린 느낌이랄까? 자신을 더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는 듯한 인상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와 선배의 이야기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이음새 부분들이 아쉬웠다. 구성의 아쉬움이랄까.
  “한여름,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에 지하철 안에 들어가면 말이야.”
  “네.”
  선배는 막대를 입에 문 채 부끄러운 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때의 너무나 사실적인 쾌적함이 좋아.”
  “그 바람도.”
  나는 말했다.
  “몸에 나쁜 바람인데.”(p.228)
  그래도 선배와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읽었다. 별 것 아닌 반복된 대사인데도 위의 인용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었다.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마지막 결말도 인상적이었지만, 앞에서 선배가 먼저 말하고 나중에 ‘내’가 다시 말하는 이 대사가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는 예전에 제목만 읽고는 어떤 소설일지 참으로 궁금했던 글이었다. 제목이 워낙 독특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제목의 독특한 만큼이나 작품 역시 독특했다. 국적이나 지리적 배경을 드러내지 않아 환상적인 공간을 설정한 것부터가 여태껏 앞에 나온 소설들과 전혀 달랐다. 앞에서는 오히려 ‘인천’, ‘회기동’, ‘노량진’, ‘신림동’ 등 구체적인 지명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현재 지구상에는 없을 것만 같은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 불리는 섬을 배경으로 쓴 것이다. 이런 환상적인 배경을 설정하고 풍자 같은 어리숙한 인물들을 보노라면, 성석제나 박민규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그만큼 기존 김애란 작가의 글과는 색깔이 다른 작품이라고 느낀 터였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추락한 비행기의 블랙박스를 보며 엄마라고 가리키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였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 또 다른 색깔을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런 것도 쓸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읽기를 마치고

  기다림은 때론 즐겁다. 『달려라, 아비』를 읽고 나서 김애란의 다음 소설을 고대해왔다. 물론 그 다음 작품집이 엄청난 변화가 있는 대작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작가는 그저 꾸준히 이어서 작품을 발표해 왔을 뿐이니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것도 있겠지만, 긴 텀이 있던 것도 아닌 만큼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있을 리도 없었다. 그저 『달려라, 아비』에서 내딛었던 걸음으로 얼마만큼 걸어 나갔는지 그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한 결과는 어땠을까? 때론 피아노를 치며 도도한 생활을 영위해나가기도 하고, 소설 속에 나타는 방들을 통해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주제의식을 내보이기도 했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는 기묘한 섬을 소개하기도 하고,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네모난 부재들을 보여줬다. 작가가 동시대를 바라보는 시선, 우리 세대의 이야기들, 취업난, 칸막이, 방. 그리고 어머니.
  나이 때문에 문단에서 주목받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나이는 어떤 매리트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작가도 더 이상 어리지만은 않다. 그런 작품의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작품의 내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동안 한국문학을 잠시 읽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김애란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문학은 충분히 재미있고 또한 멋진 작가들도 열심히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 권의 소설집을 보고 나니 이제 김애란의 장편 소설이 기다려진다. 다시 또 즐거운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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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11-0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서평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작가 사진 잘 나왔다' ㅋㅋㅋ

twinpix 2007-11-19 13: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문학과지성사가 사진을 잘 찍는 듯해요. 윤이형 작가의 단편집도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는데 사진이 좋더라고요.

GoldSoul 2007-11-2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은 얼마전부터 제 한RSS에 추가해 놓고 twinpix님의 글을 살짝씩 훔쳐보곤 했었어요. 오늘은 갑자기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댓글 남기고 갑니다. 이번에 조경란 작가님의 <혀>도 읽었는데, 문학과 지성사 표지도 색다르고 작가님들 사진들도 이쁜 거 같애요. 낭독회같은 행사도 자주 열어주어서 독자 입장으로는 너무 감사하구요. :)

twinpix 2007-11-28 16:54   좋아요 0 | URL
와, 리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GoldSoul님 블로그 덕분에 낭독회를 가지 못해도 작가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블로그 글들 정말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제 블로그에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자주 놀러갈게요. 다음에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