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스릴 넘치는 계곡 피서.

  - 스릴 넘치는 여름 계곡 피서법을 소개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새내기라 불리던 시절. 답답한 고등학교 시절을 벗어난 것이 마냥 좋았던 시절. 그 해 여름은 그저 무더웠다. 자유로웠지만, 그 자유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던 것 같다. 집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날들.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느닷없이 계곡으로 놀러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텐트를 치고 2박 3일 신나게 놀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가겠다고 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가면 가는 거지. 뭐.

  그렇게 해서 여섯 남자의 계곡 피서가 결정되었다. 회비는 6만원. 그 중 90% 가까이가 먹는 것에 투자되었다. 먹고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략 당시의 대화를 떠올려 보자면.

  “자, 이것도 넣어.” “이건 뭐지?”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골든 키위’다!” “우와아! 이름만 들어본 그 전설의 과일!” “난 여태껏 그냥 키위조차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어!” “우오오! 진짜 신난다!” “앗, 이건! 카~프리!” “계곡 물에 넣어놓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이건 100% 오렌지 주스다.” “고기, 소화 잘 되는 고기.”

  다시 말하지만, 먹고 죽자는 건 아니었다. 호화롭게 먹고 마시고 신나게 놀자! 라는 것이었지.

  맑고 화창한 날씨. 인적 드믄 계곡 속으로 출발했다. 먹거리를 잔뜩 싸들고서 말이다.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치고 과일이나 음료수, 맥주 등은 차가운 계곡물 속에 넣어놓았다. 왠지 가족과 간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친구들끼리 이것저것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신나게 물장구도 치고 카드놀이도 하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계곡물은 참으로 맑고 시원하고. 모든 게 신선했으며 즐거웠다. 그야말로 피서였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고작 첫 날일 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무리하지 않고 비교적 일찍 잠에 들었다. 텐트는 넓었고 여섯 명이 자기에도 충분했다. 매일 똑같은 방안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그것도 텐트 안에서 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낮에 신나게 물속에서 논 탓인지 금세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밤중에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대략 새벽 3시쯤 되었을까? 아니면 4시? 정확한 시간은 떠올릴 수 없다. 당시 그 때의 급박했던 순간만이 뇌리에 남아있다. 누군가 날 깨웠다. 음……냐아. 뭐야? 왜? 졸린 눈을 비비며 내가 뭉그적거리며 일어났다. 야, 소리 안 들려? 응? 무슨 소리?

  막 잠에서 깨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무언가 텐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투둑. 투두둑. 무심하고 투박한 빗소리.

  비오는 거야?

  응, 그것도 많이. 텐트 밑까지 찼어.

  내가 누워있던 자리는 축축했다. 텐트 밑은 이미 침식당한지 오래였다. 난 물침대 위에서 잔 것마냥 물이 찬 바닥 위에서 자고 있었다. 위, 위험하잖아. 다들 깨우자. 급하게 애들을 깨웠다. 아움, 졸려. 왜? 지금 비가 엄청 오고 있어. 위험하다고. 부랴부랴 모두 잠에서 깼다. 텐트를 열어 밖을 쳐다보았다. 물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시야 속에 온통 물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까 잠깐 잠에서 깼을 때 비가 조금씩 오긴 하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많이 올 줄이야.

  얼른 나가자. 누군가 말했다. 텐트를 그대로 버릴 수도 없고 비는 세차게 내리는 중이라 텐트를 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린 텐트를 위로 쳐든 채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텐트를 칠 때까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때 당시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 누군가 주위에서 보고 있었다면 참 이상한 모습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남자 여섯이 팬티 차림으로 텐트를 쳐들고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는 것이다. 영차! 영차! 으윽. 미끄러지니까, 조심해. 서로 격려하면서 가까스로 텐트를 위에다 올렸다.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다시 텐트 속에 들어갔다. 비는 징하게 내렸다. 원망스런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해가 뜨면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우린 우리가 있던 장소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이미 물 천지였다. 그대로 있었다간 격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자고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버렸을 것이다. 계곡에 피서를 갔다가 갑작스런 비 때문에 죽은 사람 이야기를 그 전에도 들어봤지만,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죽을 뻔 했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가슴에 와 닿지는 않은 것이다. 아무튼 그때 우리는 적절한 타이밍에 알아차리고 무사히 위험을 피했기 때문에. 그때 누군가가 오줌이 마려워서 잠에서 깨었기 망정이지 아니라면 지금 이 글을 적지 못하고 있을 게다. 생리현상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우린 다 같이 세차게 흐르는 검붉은 흙탕물을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까운 골든 키위!’ ‘아껴둔다고 뜯지도 않았는데!’ ‘치즈 떡볶이!’ ‘프리야! 카프리야!’

  아무튼 누군가는 그래도 남은 거라도 먹고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그 와중에도 고기를 구웠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 가까스로 살아남은 상태에서 배고프다고 고기는 또 잘도 집어 먹었다. 고기와 소금 밖에 없었지만 참 맛있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식량도 없기에 철수를 해야 했다. 이미 계곡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렇게 2박 3일 계곡 여행은 죽음의 위기로 뒤바뀌며 끝을 맺게 되었다. 아마 내 생애 가장 죽음과 맞닿아 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워낙 외진 곳이라 핸드폰이 터지지도 않았다. 한 명이 핸드폰이 터지는 곳까지 내려갔다 오겠노라고 했다. 아니면, 전화가 있는 곳이라도 찾아서 전화를 쓰고 오겠노라고. 우리는 그러라고 하고 또 기다렸다. 뭔가 참 허망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갑자기 조난당해 구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생은 그 의미를 가진다고 하지만,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아, 이게 뭐지. 어찌해야 할까.

  그때 기적처럼 봉고차 한 대가 나타났다. 바로 한 친구의 가족이었다. 어제 비가 세차게 내린 것을 보고 아침부터 달려온 것이었다. 정말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막막한 상황에서 너무 완벽하게 구원팀이 나타난 바람에 이것 역시 신기하면서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는 기분도 들었다. 무슨 각본에 짜 맞춰진 것인양.

  아무튼 우리를 태워줄 차량까지 도착해서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친구들은 무모한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카프리를 구해야 해.

  음, 저기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위험할 것 같은데. 물살이 세.

  내 목소리는 묻혔고 애들은 서로 손을 잡아 그 강한 물살 속에서 서로를 지탱했다. 그리고 바닥을 휘젓기 시작했다. 난 이미 다 쓸려 버렸을 거라고 포기한 상태였다. 아마 밑에 사람들은 둥둥 떠다니는 과일이나 카프리를 보지 않았을까. 한 십 분을 그렇게 물속에 손을 넣고 찾았을까. 한 친구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심봤다!” 친구의 두 손에는 음료수 패트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 100% 천연 오렌지 주스.

  더 찾겠다는 친구를 만류하고 차를 타고 우리는 귀환했다. 집으로 바로 간 게 아니라 고생한 몸을 쉬게 하기 위하여 찜질방으로 갔다. 난생 처음 가본 찜질방이었다. 피곤한 몸을 씻고 찜질방에 누우니까, 천국이 따로 없었다. 우와, 찜질방 최고! 내가 가진 찜질방의 첫인상은 정말 극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를 불가하지 않을까 싶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찜질방에 아늑함을 느끼는 순간, 정말 만사가 다 편했다. 행복한 기분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친구들이 모두 공통된 의견을 말했다. 계곡가지 말고 그냥 여기 올걸 그랬어. 좋은데.

  그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그때 죽을 뻔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를 다녀왔고, 한 친구는 올해 군대에 들어갔다. 그때 그 시기, 그 해 여름이었기 때문에 그런 피서가 계획 될 수 있었을 거다. 이제 다시는 그런 피서 계획을 잡자고 느닷없이 말하는 사람도 없겠지. 우린 더 나이를 먹어갈 테고 각자 더 살기 위해서 바빠질 테니까. 막간이었다고 할까? 자유가 자유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모른 그 잠깐의 시기. 모든 게 맞아떨어진 순간에 우린 계곡으로 피서를 갔었고, 귀중한 식량들을 모두 잃고 찜질방에서 위로를 받아야했다. 그래도 좋은 추억 하나는 남았으니, 이 추억 하나는 앞으로도 계속 될 테니 다행이랄까. 아직도 골든 키위를 보면 혹은 카프리를 보면 그때 그 순간들이 생각난다. 골든 키위나 카프리의 맛 따위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못 먹고 못 마셨으니 당연한가?) 그 비가 세차게 내리는 새까만 밤중에 팬티 차림으로 텐트를 이고 올라간 의외로 담담했던 순간. 다음 날 기적같이 나타난 봉고차. 처음으로 가본 찜질방의 그 상쾌하고 즐겁고 평안한 공간의 느낌.

  글을 쓰니 문득 골든 키위와 카프리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그때 목숨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하다. 잘들 살고 있겠지. 만나서 오랜만에 그때 이야기를 하면 또 다양한 웃음들이 터져 나올 게다. 야, 너 그날 아침에 무슨 잠자리를 보았다고 잠자리, 잠자리 외치면서 막 달려 나가지 않았냐? 그때 정말 내가 안 일어났으면 큰 일 날 뻔 했지. 너 그때 물속에 들어가서 음료수 두 개 찾은 거 정말 걸작이었어,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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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당시 제가 카메라를 갖고 가서 사진도 꽤 찍었지만 여긴 기숙사라서 올릴 수가 없네요. 하하. 어디 찾아보면 있을 텐데.^^ 그 날의 포토제닉상은 역시 세찬 흙탕물 속에서 심봤다를 외치며 음료수 패트병 두 개를 들고 포효하는 제 친구를 찍은 것. 당시 찍은 사진들 중에서 그 사진만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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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08-16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정말 짜릿한데요. 물론 무사히 살아돌아왔으니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이겟지만...^^ 아 남자들은 좋겠다. 계곡에서 텐트치고 잘 수도 있고 ^^

twinpix 2007-08-18 09:3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살아돌아와서 다행이에요.^^/~~ 'ㅁ' 긴 글 읽어주시고 리플 달아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