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비 새는 집 ― 1979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못질을 했다
  장마철 앞 임시로 덮어씌운 비닐을 벗기고
  새 슬레이트에 탕 탕 못을 박았다
  못을 박는 동안은 아버지에게도 못이 박히고 있었겠지
  사람들과의 악수를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그 손아귀에도 못이 박혀들고 있었겠지
  비가 새면 누이들과 함께 나는
  세숫대야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모아
  못물을 만들었다
  녹슨 빗방울 파고들던 방이
  맑은 못이 될 때까지
  망치질 소리를 견디고 있었다
  얘야, 지붕에 오를 땐 못자국을 밟거라
  못이 없는 자리는 십중팔구가 허방
  못 박힌 곳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지지대가 있던 자리,
  지지대 가슴을 파고든 못 끝을 아프게 물고 있던 자리
  어디를 디뎌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내게도 비가 새고 있었다
  새는 빗소리 뾰족한 끝이 탕 탕 박혀들고 있었다

 

  자전거의 연애학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수 있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 아울러 이 모든 일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이 아니더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것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 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 서규정 『직녀에게』, 빛남출판사 1999.


 

  내 목구멍 속에 걸린 영산강

  두엄자리에서 지렁이가 운다, 지렁이 울면 낭창한 대하나 꺾고 낚시를 가시던 할아버지.

  그날 붕어조림을 삼키면서 나는 붕어가 삼킨 지렁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는데

  지렁이가 할아버지를 삼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삼킨 붕어와 붕어가 삼킨 지렁이 잘디잔 흙알갱이가 되어 지렁이 주둥이 속으로 빨려들 줄은 몰랐다.

  비 내린 뒤의 영산강변 할아버지 무덤가에 지렁이가 기어간다. 그래 지구상의 모든 흙은 한번쯤 지렁이의 몸을 통과했다.*

  머잖아 저 몸속에서 붕어를 삼킨 할아버지와 내가 머리 딱 부딪치며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 치는 시간 있겠구나.

  주물럭주물럭 시간대를 마구 뒤섞는 장운동, 저 몸속으로 산맥 하나가 통째로 빨려들어가고 말랑말랑한 반죽물 밭이랑 논이랑이 되어 꿈틀꿈틀 빠져나올 수도 있겠구나.

  강 주둥이에 아침부터 누가 철근을 박고 있다.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멘트를 퍼붓고 있다. 컥컥 헛구역질을 하며 강이 움찔거린다.

  * 다윈의 말.

 

  손택수 시인의 『목련 전차』를 읽고 있습니다. 좋은 시들이 많네요. 서정적이고 가슴에 남는 글귀도 많습니다. 차분하고 정겹고 읽는 맛이 있습니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시들을 옮겨 적어봅니다. 첫 번째 시집도 언제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26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서는 시가 좋은 줄 몰랐는데 이렇게 좋아지는군요.
좋은 시간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twinpix 2007-07-26 22:37   좋아요 0 | URL
음, 아직 많이 시를 접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저도 조금씩 알아가고만 있어요. 'ㅁ' 확실히 시가 무어다, 정말 좋다, 이런 건 아직 모르겠어요. ㅇ_ㅇ 조금씩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매력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