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젊은 소설
김미월 외 지음 / 문학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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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빛낼 젊은 작가와의 만남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 『2007 올해의 문제소설』 등 매년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작가들의 좋은 단편을 뽑아 작품집이 나온다. 위의 두 권은 꽤 유명한 책들이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 권의 책이 또 있다. 바로 『2007 젊은 소설』. 문학평론가가 뽑은 당선 3년차 젊은 소설가들의 소설들을 선정해서 묶은 책이다. 위의 작품집과 다른 점은 신인으로 기준을 한정했기 때문에 그 해의 새로운 신인들만 살펴보고 싶을 때 유용하다는 것이다. 올해 새로 두각을 드러낸 작가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이 발표한 문제작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들을 전부 해결해 줄 한 권의 책이 『2007 젊은 소설』이다. 자, 그럼 작년 한해 젊은 작가들의 활약을 살펴보자.

  유통기한|김미월 
  「유통기한」은 선배의 부탁으로 정신대 할머니들의 계시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경수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기억은 유통기한이 있을 수 없다. 단지, 우리는 의식적으로 유통기한이 있는 척할 뿐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는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경수와 그리고 교차되는 소년의 이야기,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봉사, 선배. 각자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상처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일까? 서로 곁에 있음으로 소통하는 것. 그것이 유통기한이 없는 인간들의 해답일까? 
  백야|김애현 
  몸이 빛나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갔고 금세 유명세를 탔다.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고 팬카페가 만들어지고, TV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왠지 요즘 많이 보는 익숙한 풍경 같다. 하루에도 검색어 순위는 수십 번씩 바뀌며 새로운 화제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고 사람들은 또 금세 잊어버린다. 몸이 빛난다는 상징은 쉽게 읽히지만 그만큼 선명하다. 
  환상통|김이설 
  처연하다. 소설은 암 투병을 겪은 여자와 여자의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환상통’이란 단어가 소설 내에 직접 언급되지 않고 묘사만 되는 게 좋았다. 사람들은 결국 이별을 겪고 기억이 끄집어내는 아릿한 아픔을 수시로 불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투병 과정이 생생하게 잘 묘사되었고, 가슴 속에 묵직한 느낌을 주는 단편이었다. 부재의 통증을 예리하게 그리는 작가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엄마가 나 때문에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나 때문에 죽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엄마의 암을 먼저 알게 되었더라면. 나는 결코 그 가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남편이 나를 쳐다봤다. 너, 너무 이기적이야. 
  “그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이런 개새끼!” 
  갑자기 앞으로 끼어든 차 때문에 급정차를 했다. 순간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하마터면 추돌할 뻔했다. 뒤 차선에서 요란한 경적 소리가 났다. 남편도 경적을 눌러대며 전조등을 번쩍였다.(p77) 
  중력은 고마워|김태용 
  제목은 가볍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다. 사실 최근 발표한 「편백나무 숲 밖으로」같은 단편을 생각할 때 오히려 엄청 난해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사뭇 두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작품은 읽기 곤욕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서사가 있고 해석되는 메시지가 있었다. 일상 대화체가 아닌 대화 부분도 유쾌한 느낌을 주었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 올 여름만 해도 문예지 두 권에다 단편을 게재하는 등 활발한 발표를 한 작가이니만큼, 곧 만날 단편집도 기대가 된다.(허나, 대부분 읽은 작품일지도.) 
  그는 강아지가 참 강아지답게 생겼고, 자신도 한번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도 괜찮냐고 물었다. 물론이오, 하지만 공에 맞아 지금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당신의 손을 물을지도 몰라. 조신스럽게 시추의 머리를 매만졌다. 시추는 숨이 끊긴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 노인이 그의 발밑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농구공은 당신 것이오. 그는 잠시 동안 생각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내 것처럼만 느껴지는 나의 소유물 입니다.(p110) 
  치통, 락소년, 꽃나무|박상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이었던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의 하드락」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가다. 독특한 비유를 대사에 넣으면서 글 전체가 묘한 분위기를 띠던 기억이 난다.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습작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여기서도 그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졌다. 작가의 독특한 문체인 것일까? 아직은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느낌이다. 다른 단편들도 더 읽어보고 싶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잔의 소주처럼 이가 영롱하던 때가 있었어.” 
  나는 의사에게 간신히 툴툴거렸다. 의사는 동그란 해파리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다가, 나를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내 얼굴 위에 똑똑 떨어뜨렸다.

  "깨진 술잔 같은 비유까지?“ 
  의사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치의예과에 진학했던 것을 만족하는 듯한 인상을 짓더니 갑자기 마스크를 썼다. 순간 간절히 소주가 마시고 싶었다.(p119~120) 
  춤추는 핀업걸|염승숙 
  무척 환상적인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올해의 문제소설』 같은 책에 어울리는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자유롭게 달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 상상력이 멋있었다. 머릿속에 영상으로 상상이 잘 되었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그림 속에 있는 인물들이 떠올랐다. 박민규 작가의 유쾌한 상상력 같은 부분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즐겁게 읽었다. 물론 전부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순 없다. 한쪽만 늙어가는 조로증에 걸린 우울증이라는 것은 약간 작위적이지 않은가 싶은 느낌도 들었다. 
  아빠는 으레 그랬듯 귓불까지 술이 차오른 채로 또 다른 선술집에 들어갔다. “아줌마, 여기 술!” 하고 소리치는 동시에 벽에 걸린 달력에서 엄마가 싱긋 웃었다. 아빠는 고장난 스프링처럼 의자에서 튕겨 올라왔으나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맙소사, 저년이 내 마누라라니!” 
  엄마는 짙은 풀빛의 탱크 위에 앉아 있었다. 까무잡잡한 허벅지에 총구를 겨누고 도도히 턱을 치켜든 채였다. 엄마가 아빠를 향해 혹은 술집의 모든 남자들을 향해 눈꺼풀을 찡긋거렸을 때 아빠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p166) 
  셋을 위한 왈츠|윤이형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인 「검은 불가사리」를 재미있게 보아서 기대하고 읽은 글이었다. 글의 스타일은 그대로였지만, 자극적인 소재 때문이었을까? 공감하며 읽기에는 내용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낯설었다. 잘 읽히는 편이었고 인상적인 단편이기는 했다. 다른 소재를 다룬 작가의 글을 보고 싶달까. 
  보이지 않는 털을 하얗게 날리며 온 방안에 부산을 떨면서. 쇼팽 왈츠 6번 D장조 작품번호 64-1. ‘강아지 왈츠’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곡의 러닝타임은 1분 45초에 불과하다. 음악치료사가 말한 대로, 세 박자로 이뤄진 왈츠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 정신이 없다. 그저 털이 부숭부숭한 다리로 책상과 의자와 마루와 욕실 문 앞의 러그를 쉴 새 없이 헤집고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가 그려질 뿐이다. 아주 자세히 들어 보니 강아지의 다리는 세 개인 것 같다. 강약약 강약약 강약약 강약약.(p201) 
  우리는 진화하거나 소멸한다|조영아 
  초반부터 강렬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고 전체적으로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 디지몬을 연계시켜 글 속에 상징과 이미지로 발현되는 모습은 정말 감탄이 나왔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 유폐된 상황. 힘을 기르는 모습. 마지막의 진화를 꿈꾸는 결말까지. 처음에 목차에서 제목을 보고는 기대가 적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한겨레 문학상 당선작인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뒤집힌 개미가 버둥댄다. 발끝과 손끝이 저릿저릿해온다. 나는 이 느낌이 좋다. 너는 결코 죽는 게 아니야. 내 힘의 원천으로 새로 태어나는 거라고. 다시 말하면 너는 진화하는 거지. 파워풀한 변신이야. 나는 한 발로 방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개미 움직임이 차츰 무뎌진다. 내 발장단도 느려진다.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며 노린내가 진동한다. 몸에 힘이 솟는다. 내가 살아 있음을 가장 절절하게 느끼는 순간,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p219~220) 
  아냐|허혜란 
  처음에 제목을 보고 “아니야”의 줄임말인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냐’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스물한 살의 고려인 처녀 ‘신 아냐’. 이 소설은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낯선 나라를 무대로 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준다. 배경이나 구성이 잘 짜여져 있어서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작가가 많은 조사를 했음을 알 수 있는 소설이었다.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조선인. 그들은 모국어를 잃고 살아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깔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하루 빨리 모셔 와야 해.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그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 어딘지 초조해 보였다. 과녁을 찌를 수 없는 분노의 막대기들이 그의 속을 사정없이 휘저었다. 그 모든 것에 맹렬한 부아가 났다. 그녀를 데리고 갈 후산인지 핫산인지 하는 나이든 남자에게도. 아무것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망나니 같은 동생들에게도. 오래전에 우크라이나로 농사지으러 떠난, 지금은 여권도 없고 돈도 없는데다가 병까지 깊어 오도 가도 못하고 난민촌에 방치되어 있다는 소문만 들려오는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아무 도움도 못 되는 분노밖에는 가진 게 없는 자기 자신에게도.(p265) 
  문|황정은 
  이 단편은 『2007 올해의 문제소설』에도 실려 있었다. 이 단편도 앞의 「춤추는 핀업걸」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인과성 너머에 있는 판타지를 끌어들인 작품. 그래서 역시나 마음에 들었다. 「춤추는 핀업걸」이 재치나 유쾌함이 좋은 작용을 하는 단편이었다면, 이 단편은 차분하고 담담한 느낌이다. 감정이 결핍된 것처럼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그리고 무의욕적인 삶을 사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소녀의 등 뒤로 죽음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할머니가 나오거나 지하철에서 자살한 남자가 나오기도 한다. 음울한 설정이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왠지 희망을 주는 안도를 주는 느낌이기도 하다. 
  할머니에겐 손수 갈아서 내린 커피 같은 것. 두리안에겐 말(言) 같은 것. 그리고 그 밖의 것들. 
  m은 생각에 잠겼다가 거의 다 사라져가는 두리안을 향해 말했다. 
  두리안. 
  응. 
  결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는 건 나쁜 걸까. 
  그렇지 않아. 두리안이 말했다. 그대로도 좋아. 
  그건 그거대로 좋아. 왜냐하면. 
  두리안의 목소리는 이제 너무 흐릿해서,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p299)

  책 읽기를 마치며 
  작년에 이 책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 때는 구입하지 않았다. 올해 처음으로 이 단편집을 구해 읽어본 것이다. 색다른 느낌이었다. 젊은 작가들의 글이란 느낌이 팍팍 느껴진다고 할까? 신인 작가들이 어떤 결과물들을 내고 있는지, 기대해볼만한 작가들은 누가 있는지 파악해보기에 더없이 좋은 책 같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어쩌면 『2008 젊은 작가』를 손에 들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는 또다시 새로운 얼굴들이, 혹은 이번에 만난 얼굴이 다시 표지를 장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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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답글도 원글만큼 좋네요..잘 읽었습니다.. 저도 책 읽고 싶어지네요.. 읽어야 할것 같아요..

twinpix 2007-07-23 12:56   좋아요 0 | URL
네, 시간 되시면 읽으세요. 들려주시고 리플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요.

뽀송이 2007-07-2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윈픽스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들러주셔서 저도 서재 구경왔어요!
님의 취향과 정성이 구석구석 느껴지는대요?!
한번씩 놀러와도 되죠? 후훗...^^
젊은 작가들의 신선함이 가득할 것 같은 이런책 저도 무척 땡깁니다.^^
찾아서 읽어볼게요.^^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twinpix 2007-07-23 12:56   좋아요 0 | URL
네, 언제든 놀러오세요!^^ 주말 잘 보내셨는지? 새로운 한 주 잘 보내시길! 저도 자주 뽀송이님 서재에 놀러갈게요~!!!

Hani 2007-07-2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을 좋아하는데, 여기에서 좋은 글들 두고두고 읽고 갈께요.
최근에는 단편들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2007 젊은 소설> 읽고 싶어지네요.

twinpix 2007-07-23 12:57   좋아요 0 | URL
와, 안녕하세요? 리플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좋은 소설 있으면 추천도 해주세요.^^

비로그인 2007-07-2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가들의 글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책이군요. 한권의 책으로 여러가지 재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단편집의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오늘 좋은 책 한권 알아가네요.^^

twinpix 2007-07-23 18:28   좋아요 0 | URL
단편집은 정말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ㅁ'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봄으로써 마음에 드는 작가도 찾을 수 있고요. 이 단편집은 최근 등단한 3년차 신인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와주셔서 리플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

2007-07-25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5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