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그러니까 외출을 하면 이 미로의 고통을 내가 육체적으로도 극복하는 셈인데 더러 내 자신이 만들어낸 구조물 가운데서 내 스스로가 잠깐 동안씩 길을 잃을라치면, 말하자면 이 작품이 이미 오래전부터 판단을 굳히고 있는 나에게 아직도 그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는 듯이 보일 때면, 그것이 내게는 노여우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는 자주 내쳐 그대로 두는 이끼 덮게 아래에서 ― 그렇게 오래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혀 꼼짝을 않는다 ― 나는 나머지 숲 지면과 한 살이 되어 이제는 몸을 한번만 꿈틀하면 단박에 다른 곳에 가 있다. 이 작은 움직임조차도 나는 오래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오늘 내가 그걸 버려두고 떠나도 분명 다시 돌아오게 될 텐데 그러면 다시는 입구 미로를 극복하지 못하지나 않을까 싶어서이다. 다시는 입구 미로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오늘 거길 떠났다가 꼭 다시 되돌아오겠는가. 어떻게? 너의 집은 보호되어, 차단되어 있다. 너는 평화롭게, 따뜻하게, 잘 먹으며 살고 있다. 주인으로, 많은 통로와 광장의 둘도 없는 주인으로,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싶지야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내주려는가, 다시 딴다는 보장이야 있다지만 많은 돈을 건, 너무도 많은 돈을 건 도박을 시작하려는가? 그럴 만한 합당한 근거라도 있는가? 아니다, 그런 일에는 합당한 근거라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도 나는 조심스럽게 벼락닫이문을 올려 열고 밖으로 나와서 그 문을 조심스럽게 내려닫고는 내달린다, 한껏 빨리, 배반적인 장소를 떠나.

――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 「굴」, 민음사, 전영애 옮김, 130쪽


  세계문학전집 4번 째인 『변신·시골의사』를 읽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느꼈다. 번역 평이 그리 좋지 않은 듯하던데, 실제로 읽기에 버거운 글이었다. 딱 봐도 번역이 원문에 충실한 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다. 의미를 왜곡하거나 혹은 삭제된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너무 곧이 곧대로 번역하면 한글로는 도무지 읽기 힘든 글이 나오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의 의역은 필수가 아닐까? 우리 말 표기법에 기본적으로 맞추고,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문장 구조의 수정 등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번역은 아무리 원문에 충실했다고 해도 더 많은 독자의 편의를 위한 부드러운 번역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해한 문체에 적응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작품해설에서 "그런데 이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장이 때로 쉼표로, 세미콜론으로 길게 이어지고,2) 「시골의사」, 「굴」등의 우리 말 표기법에 어긋나는 쉼표는 예시로 그냥 둔 것이다."(p245) 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이 아예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도 있고, 그만큼 어려운 것이겠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번역판이었다. 그래서 「굴」을 끝으로 읽기를 중단하고 말았다. 원래 어떤 책이든 끝까지 읽는 것을 거의 신념처럼 갖고 있었지만, 이런 번역의 문제에서는 나한테 맞는 다른 번역본을 찾아봐야겠다. 솔 출판사에서 나온 카프카 전집을 염두에 두고 있다. 괜찮을는지.

p.s 번역 때문에 검색을 해본 결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범우사가 평이 좋은 듯하다. 집에 있는 건 홍신문화사 것인데, 전문 번역자가 아니라고 하니 범우사 판을 구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번역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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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신은 제가 참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어렵지만 저에게 변신은 이거야말로 소설! 이라는 느낌을 준 명작이죠.

twinpix 2007-07-15 12:44   좋아요 0 | URL
저도 「변신」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다른 글들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어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