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바다로 가득 찬 책』

  이번에 "힘내라! 한국문학!" 알라딘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시집입니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기에 기대를 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역시 좋네요. 지금 제대로 정독한 것은 아니고 읽고 있는 중이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시집이란 다 이해가 안 가고 어려운 것들만 읽다가, 왠지 읽기가 편한 시를 읽으니 반가운 마음마저 들더군요.(사실 어떤 시들은 너무 가볍고 쉽게만 쓰여진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시들도 보였습니다만, 좋은 시들도 많은 것 같네요.)

아무튼, 제대로 정독 하고 리뷰를 써야겠습니다. 일단, 소개하는 의미에서 몇 편을 옮겨봅니다.

 

봄날의 도서관


이곳엔 새 책뿐이야
책장을 열면 글자가 사라지지

'새'를 뽑아 들 자
짝짓기하던 한 쌍 나란히 날아오르고
'내'를 펼치자
혀 풀린 벙어리처럼 소리 내며 흐르는 여울
'결'을 찾아보자
어디선가 다가와
돌결, 살결, 숨결, 소릿결, 나뭇결, 물결……
의 주름을 펴는 저 명지바람
'흙'은 부풀 대로 부풀어 하늘과의 경계를 지우고 있어
아지랑이 지우개로

늙을수록 지평선 커지는 어느 봄날의 도서관
반백 살의 어린아이가
수없이 보아 온 책들의 낯섦 앞에서
캄캄하게 환한 갈피 사이에서
홀로 돌아 나오는 길을 잃네
침묵의 지진계
그 미세한 떨림도 모르는 채

 

연애


네가 목도리였으면 좋겠어
양말이라도 좋아
아니, 도마뱀이어도 좋아
아침마다 먹는 사과
혹은 진공 청소기
안경도 멋있을 거야

네 눈으로 내가 보는 거
널 칭칭 감고 다니는 거
하루 종일 널 신고 사뿐사뿐
내 목을 은근히 조르기
내 마음대로 키우는 거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너지만
먼지처럼 무게 없이
네 속에 웅크리는 거

아무래도 좋아
어디나 넌데
무어든 난데
그런데
연애할 시간이
없네

 

얼굴 작동 부호화 시스템*


눈둘레근을 움직여 주십시오
당신의 가짜 웃음이 드러나기 전에
눈썹은 내리고
윗눈꺼풀은 올리고
입술을 밀착시키십시오
깊은 슬픔과 고뇌
매력적인 표정이지요
윗입술콧방울올림근일랑
조심해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혐오가 들켜 버리니까요
이마근 내측부와 외측부
입술을 잡아 늘이는 입꼬리당김근도
가끔 써 줄 필요가 있습니다
공포에 찬 그대 얼굴은
보호 본능을 자극한답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지어내는 표정은
당신마저 감쪽같이 속여
어수룩한 심장을 박동수 12~14회로 올리고
손도 따뜻이 데울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퉁거리던
당신의 이목구비
이제
때와 장소를 맞춰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 비언어 의사 소통 전문가 폴 에크먼은 『얼굴의 심리학』에서 얼굴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묘사한 얼굴 지도와 1978년 '얼굴 움직 해독법(Facial Action Coding System)'이라는 이론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FBI, CIA 같은 기관이나 '웃음 치료법' 등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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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보는 시인데도 입에 착착 붙네요.

twinpix 2007-07-11 20:53   좋아요 0 | URL
말을 거는 것처럼, '~해야지. ~일 거야.' 이런 어투의 시들도 많아서 잘 읽히는 듯해요. 아무튼 최근 산문시 경향의 난해하고 어려운 시들과는 달리 부담없는 시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알맹이 2007-07-1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 너무 좋네요.. 제 서재에 퍼가도 될까요? ^^

twinpix 2007-07-15 23:53   좋아요 0 | URL
네, 그러세요.^^ 저는 연애는 하고픈데 왠지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시라 옮겨 봤답니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