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다. 이 인간은 벌써 열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아직도 살아있다. 쌀 좀 먹어봤으면 좋겠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에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일본 특유의 폐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풍토와 경직된 사회보장제도로 인해 해마다 아사자(餓死者)가 나오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紙)는 12일 지난 여름 발견된 `아사자의 일기'를 보도하면서 일본 사회의 가리워진 그늘을 조명했다.

니시야마 히로키라는 52세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지난 여름. 니시야마는 일본 남서부 큐슈섬 북쪽에 있는 낡은 판잣집에서 `반쯤은 미라가 된 모습으로'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배고픔을 절절히 묘사한 공책이 있었다. 트리뷴은 "일기의 내용으로 봤을 때엔 굶어죽은 것이 확실해보인다"며 "아사자의 일기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리뷴은 1면에 생전의 니시야마가 집 안에 앉아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의 판잣집을 밖에서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집은 허름하지만, 안에는 전자렌지가 있고 그릇과 조미료가 가지런히 정리된 주방이 보인다. `굶어죽을' 정도의 형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타큐슈에서는 3년새 매년 한명씩, 니시야마를 포함해 벌써 세번이나 아사자가 나왔다. 모두 50∼60대 남성이었고 자기 집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세 사람은 모두 연금이나 복지후생 보조비 등의 지원이 끊겨 식료품을 살 돈이 없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니시야마는 집에 틀어박히기 전 이웃사람들에게 "관청에 복지수당 지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말을 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숨진채 발견됐을 때 그는 평소보다 몸무게가 3분의1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트리뷴은 일본의 야박한 복지제도와 사회보장 실패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복지수당 수령자들을 `세금 도둑'으로 보고 2003년 이래 계속 복지수당 지급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공적 부조를 대신해줄 민간 사회안전망은 더욱 부실하다. 신문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종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구호시설이 거의 없다"며 "몇 안되는 빈민 구호시설도 한국에서 온 기독교 선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10-12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어느나라의 미래를 보는듯 하는군요...

딸기 2007-10-16 07:40   좋아요 0 | URL
우리는 빈부갈등, 양극화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도 양극화 문제('갭') 요즘 사회적 화두인 것 같더군요.

마늘빵 2007-10-1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일본의 십년 전은 한국의 현실이죠. -_- 간격은 더 좁혀져가고.

딸기 2007-10-16 07:40   좋아요 0 | URL
과거엔 '십년전'이었는데 지금은 '2~3년전' 혹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니깐...
그런데 저는, 사실 굶어죽은 것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가 더 이상해요.
너무나 일본적이랄까...

비로그인 2007-10-1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전 오늘 어느 프로그램에서 잔디에 물주는 것을 보고 지구에서 어느나라에선 물부족일텐데..했는데. 뭐 딴나라 걱정할 정도로 여유로운건 아니군요.

딸기 2007-10-16 07:43   좋아요 0 | URL
이스라엘넘들, 팔레스타인인들 우물도 못 뚫게 군인 동원해 막으면서
잔디밭에 물 주고 산다더군요.
너구리님 말씀대로, 우리 모습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흔히 보르네오라 부르는 동남아시아의 거대한 섬에는 세 나라가 존재한다. 이 섬의 북부는 말레이시아 영토이고, 말레이시아로 둘러싸인 해안에 점처럼 박힌 소국 브루나이가 있다. 그 밖에 남부 대부분 지역은 인도네시아 땅이다. 이곳을 가리켜 깔리만탄이라고 부른다. 아마존과 함께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열대우림이 있는 곳이다.
밀림을 찾아 깔리만탄 남쪽 작은 도시 빵깔람분으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다.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자와(자바)섬 중부 스마랑에 내려 덜덜거리는 작은 비행기를 이용해 해협을 건넜다. 비행기 안에서 혹시나 깔리만탄의 밀림을 내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보았지만, 빵깔란분 공항에 내리는 순간 기대는 사그라들었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남부 빵깔란분 일대에서는 화전과 목재채취, 플랜테이션에 밀려 숲이 베어져나간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무를 불태워 없애고 팜오일(야자유) 농장을 만들어 묘목을 심어놓은 모습.


>> 접힌 부분 펼치기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7-10-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상가상이군요. 어떡해...;;;

딸기 2007-10-16 07:4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사실 우리는 저런 환경파괴 덕에 먹고 살아왔으니깐...
이제부터라도 지구에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말야.

누에 2007-10-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기 2007-10-16 07:45   좋아요 0 | URL
처참하죠?

보르네오의 원시림은, 20년전 거기 돌아다니셨다는 어느 분 말씀으로는,
정말 감동적이었대요. 아름드리 큰 나무 쫙쫙 하늘 향해 뻗어있는 거 보면 그 기분을 말로 못할 정도였대요. 그런데 지금은 없다고 하니깐...
 

히바에서 찍은 사진들, 두번째로 모아 올린다.




~~펼쳐보시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홍수맘 2007-10-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다녀오셨군요.
"우즈베키스탄"이라~. 사실 감이 잘 안와요.
그래도 사진을 통해서나마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게 되네요.
아기엄아여서일까요?
아이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네요.

딸기 2007-10-11 07:0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무엇보다 아이들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요. :)

프레이야 2007-10-1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해맑은 표정이 하늘빛만큼 투명해 보여요. 사진들이 다 너무나 멋있어요.^^
언제 한 번 가볼까나요.. 알고리즘, 들어만 본 용어에요 ^^ 중세수학자 알 호라즈에서 따온
이름이었군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딸기 2007-10-11 07:09   좋아요 0 | URL
웬만해선 가보실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우즈벡 다녀와서, 주변사람들에게 "거기 가봐라"라고 말해주진 못했거든요.
가기 힘들고, 가서도 힘들고...

한국에서 우즈벡 관광가는 사람들, 대개 골프 아니면 매춘관광이라더군요.
하지만 거기에 패키지 관광(~스탄 붙은 나라들)을 와서 유적들 알차게 구경하고 가시는
자랑스런 한국의 아줌마 아저씨들도 분명 계시더라고요! ^^

마노아 2007-10-1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레트도, 문도, 노점상도, 아이들도... 모두 너무 아름다워요. ^^

딸기 2007-10-11 08:11   좋아요 0 | URL
맞아맞아. ^^

비로그인 2007-10-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그림 찾기. 사진 속에 딸기님이 보인다 ㅎㅎ

딸기 2007-10-11 10:36   좋아요 0 | URL
ㅋ 맞아요, 저 있어요. ^^

야야야 2009-11-1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사진 정말 이뻐요~~ㅋ
 
보스니아 역사 - 무슬림을 중심으로
김철민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스니아 역사에 대해 충실히, 교과서적으로 중세부터 최근(2005년)까지를 설명하고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됐다.

발칸을 비롯한 동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사실 옛 유고연방의 내전은 참 ‘이해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그 지역 상황이 비상식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기본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그렇게 민족적, 종교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나, 어째서 그들은 티토 치하 수십년간의 한 나라 경험에도 불구하고 냉전 끝나자마자 갈라졌나, 어째서 그들은 한때 한 나라 국민이었는데 그렇게 격렬하고 잔혹한 내전과 인종청소를 자행하게 되었나. 의문은 많았지만 그들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어 답답했다. 그들의 내전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은 너무나 끔찍했고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 문제는 복잡하기 그지없어서 웬만해서는 해석을 내리기도 힘든데, 정작 구체적인 과정과 전사(前史)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참고서다. ‘보스니아 역사- 무슬림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보스니아 무슬림에 국한하지 않고 옛 유고연방 지역의 전반적인 역사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험난한 산악지형 때문에 중세 가톨릭이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데다 비잔틴마저 강력한 성직자-종교통치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오스만제국이 밀고 들어오자 믿음이 약했던 보스니아 지도층은 쉽사리 이익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오스만 하에서 지배층 자리를 유지했던 무슬림들은 19세기 오스만의 국력이 떨어지고 발칸에 민족주의 바람이 몰아치자 정교 계통(세르비아계) 민중들의 반발에 부딪쳤다는 것,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20세기에까지 파장을 미쳤다는 것.
사건들을 좀 빡세다 싶게 많이 나열하면서도 그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와 이후 영향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민족국가’를 만드는 동력이 됐던 서유럽 민족주의와 달리 독립국가를 형성해 잘나가본 경험이 적은 동유럽 민족주의는 유달리 신화적(고대지향적, 영웅중심) 색채를 띠었다는 분석도 재미있다. ‘국가’라는 틀과 무관하게 흘러간 남슬라브의 이런 문화적 민족주의는 종교를 중심으로 민족들간 차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20세기 역사는 사건들이 많아 아주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티토 치하 유고슬라비아와 러시아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만 유고에 대한 미국의 지원 부분은 처음 듣는 것이라 재미있었다. 보스니아 내전과 그 뒤처리 과정도 사건들 중심으로 컴팩트하게 정리돼있고, 파장과 문제점 등에 대한 설명이 충실한 것도 좋았다.

다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잘 설명해놓고는 있지만 문장이 좀 꼬여있다는 것. ~를 제공했다, ~를 부여했다는 식의 중언부언이 많고 ‘정당성’ ‘인종청소’ 등의 용어를 남발하고 있다. 인종청소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뒷날 누구누구의 인종청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식의 표현은 백번 가감하고 들어도 용납하기 힘들다. 심지어 ‘인종청소라는 미명하에’ 라는 문구도 보았는데, 세상 어떤 가해자들도 자기네가 인종청소 하고 있다고 내세우진 않는다. 인종청소는 어떤 경우에도 ‘미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995년의 데이튼 합의안이 효력을 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각 민족계파들이 자행한 인종청소를 통해 민족들간 분포양상이 비교적 정리됨으로써 수월한 분리 기반이 마련되게 되었다”고 써놨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는지는 몰라도 ‘인종청소의 효과’를 저렇게 서술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인종청소에 찬성할리는 없겠지만 좀 무신경한 표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은 특징이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저자가 대개 한국외대 교수 혹은 강사들이기 때문에, 문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설가가 아닌 학자들이니, 그들에게서 ‘지식’을 넘어선 유려한 문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정말 편집이 끝내준다는 것이다. 서울대출판부, 이대출판부에서 나온 책들도 얼핏 보니 비슷비슷하던데, 디자인 개념을 철저히 무시한 단순무식한 편집이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세 번째 특징은, 오히려 그래서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알짜배기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는 점. 이 책이 그렇다. 디자인이 검소하고 조악한 대신 쓸데없이 하드커버에 줄 간격 글자크기 펑펑 키워 비싸게 받아먹는 책들보다 훨씬 소박하고 알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0-0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인 저자 책 오랜만에 읽으셨네요 딸기님^^

딸기 2007-10-09 07:00   좋아요 0 | URL
ㅋㅋ 맞아요. 사실은 한국인의 이름이 들어있는 장자 책을
아주 오랜 시간 -_- 에 걸쳐 읽고 있긴 하지만요
 
기로에 선 미국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유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번 여름에 몇 권의 굵직한 책들을 읽었다. 두께나 분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용의 무거움 측면에서 읽은 보람이 있다 싶어 뿌듯한 그런 책들이다. 그 중 가장 탁월했던 것은 파리드 자카리아의 ‘자유의 미래’였고 나머지는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브레진스키 ‘제국의 미래’, 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그리고 이 책, 후쿠야마의 ‘기로에 선 미국’이었다. 모두 무게가 적잖은 것들인데, 읽고 나서 정리를 제때 제때 하지 않은 탓에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두통을 안겨줬던 책들이다.

후쿠야마는 설명할 필요 없이 ‘역사의 종언’의 그 사람이다. 세상엔 그 책을 욕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 말을 인용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그 말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역사의 종언’을 (후쿠야마가 이미 역사가 끝났다고 말한지 15년이나 지나서) 몇 달 전에야 읽었는데, 왜들 그렇게 후쿠야마 욕을 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됐었다. 15년전에 그 책을 읽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욕을 했으려나? ‘역사의 종언’은 헤겔 칸트 어쩌구 하는 철학적이고 학술적인 책이지, 곧이곧대로,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을 끌어다가 비판하면서 “역사가 뭐 끝났다 그래” 이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할 성질의 텍스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어쩌면 후쿠야마를 욕했던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역사의 한 패러다임이 진짜로 끝나는 줄 믿었던, “안 끝나!” 하면서 고집만 부렸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후쿠야마의 책이 나오고 15년이 지나 읽은 내 눈에, 그 책의 표현들은 좀 예스럽지만 개념들은 오히려 현재진행형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그 책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고, 다 알아먹지는 못했지만 ‘똑똑한 학자의 똑똑하고 어려운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후쿠야마가 새 책을 내놨다고 해서 두말 않고 주문하려고 보니 번역자는 국제문제와 관련해 주로 ‘진보적인’ 책들을 솜씨 있게 번역해왔던 유강은씨다. 이 저자에 이 출판사에 이 번역자는 참 조화로우면서도 안 어울린다 싶었는데,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책은 훌륭했다. 책은 후쿠야마가 본 미국의 현실, 네오컨에 휘둘리다 ‘막 나가버린’ 미국을 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의 주인공은 네오컨이다. 네오컨은 부시 행정부 들어서고 나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 뿌리는 오래됐다. 책은 네오컨이라는 집단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해서 세력을 잡았는지, 그러다가 어떻게 막나가서 요모양 요꼴이 됐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나도 한때는 네오컨이 괜찮을 줄 알고 솔깃했는데 지금 보니 너희들 대체 왜그러니. 그렇게 하면 미국 망하고 세계도 망한다니까.” 요지는 이렇다.


후쿠야마는 책에서 네오컨의 뿌리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거명해가며 누구는 진짜 네오컨이지만 누구는 사상으로 봐서 어정쩡하다, 누구는 첨엔 아니었지만 나중엔 주위 사람들 말에 솔깃해져서 네오컨이 됐다 등등으로 좀 거칠게 설명한다. 문체는 다소 공격적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네오컨들은 선악을 판단기준으로 삼던 가치 중심의 옛 좌파들(이 점에서 네오컨은 브레진스키나 키신저같은 정통 보수파와는 태생부터 다르다)이다. 그런 면에서 레이건은 네오컨이었고, 부시는 나중에 네오컨이 된 부류에 속한다. 람보 식의 대결주의, 부시 식의 ‘악의 축’ 운운하는 복음주의 비슷한 공격 성향은 이렇게 해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들의 관심사는 원래부터 ‘유리하냐 불리하냐’ 하는 전략전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선이냐 악이냐’ 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였던 것이다. 


부시와 그 떨거지들이 너무나, 너무나 ‘확신범’처럼 보였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라크전쟁 전에 네오컨이 아닌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 쪽에서 레이건주의자들로 구성된 현 부시 행정부에 딴지를 걸었다는 분석과도 맥락이 맞아 떨어진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 선악의 판단이 끝났다며 역사의 종말까지 선언했던 후쿠야마가 네오컨들에게서 돌아선 데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그 뒤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널리 알려진 대로, 새뮤얼 헌팅턴이나 크리스토퍼 히첸스가 이라크전에 쌍수 들어 환영한 것과 달리 후쿠야마는 처음부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네오컨들은 이라크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한 정권, 미국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을 세워 세상을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요즘 막나가버린 짜가 네오컨들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미국 군사기술의 성공은 군사 개입이 언제나 걸프 전쟁이나 코소보 전쟁처럼 깔끔하고 값싸게 진행될 수 있다는 환상을 낳았다. 이라크 전쟁은 이런 형태의 가볍고 기동력이 있는 전쟁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재래식 군사력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반란에 맞서 싸우는 데에는 특별한 이점이 전혀 없는 것이다. 통합정밀직격탄과 TV 유도형 대전차 미사일은 반란자와 비전투원을 구별하지 못하며 병사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치지도 못한다.”(58쪽)


그래서 럼즈펠드 류가 이끄는 이라크 전쟁은 실패했다. 더불어 네오컨의 ‘체제 변경’(레짐 체인지) 전략도 실패했다. 백악관을 자기네편으로 끌어들인 네오컨이 너무 오만해져서 상황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네오컨의 대부인) 스트라우스식으로 이해된 정치 체제는 공식적인 제도나 권력 구조만을 의지하지 않는다. 정치 체제는 그것의 토대가 되는 사회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50쪽). “스트라우스도 고대의 정치철학자들도, 민주주의가 기본적인 정치 체제여서 일단 독재를 제거하면 사회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51쪽).


그런데 네오컨들은 무식하게도, 후세인을 없애면 이라크가 ‘민주화’ 될 줄 알았다. 왜 그랬을까? 세상 사람들 다 ‘불가능하다’ ‘쉽지 않을 것이다’ 했는데 왜 백악관의 그 자들은 착각의 늪에 빠졌던 것일까? 후쿠야마의 시각에 따르면, 네오컨들은 과거부터 ‘소수파’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과 정말 비슷하다.


“냉전 기간 신보수주의자들은 멸시받는 소수 집단의 지위에 익숙해졌다. 그들은 인습적인 지식에 도전하면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해결책을 추구하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공산주의의 갑작스런 붕괴는 이런 생각들의 정당성을 많은 부분 입증했으며, 1989년 이후에 이런 생각은 분명한 주류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감 속에 ‘우리 대 그들’이라는 유대감을 강화했다. 2001년 권력의 자리에 돌아온 국방부와 부통령실의 전쟁 주창자들은 자신들과 견해를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불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끼리끼리 소수파로 뭉쳐 세상에 맞섰던 선(善)의 수호자(누구 맘대로;;)들은 자신들만이 옳다며 배타주의를 더욱 고수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세계 최강 미국의 권력을 손에 쥐고 남의 나라에 폭탄을 퍼부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손에 망치만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인다는 말처럼” 그들은 단단한 힘만을 생각하다가 부드러운 힘은 아예 잊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원칙적으로 부드러운 힘의 사용에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88쪽)


남의 나라 아수라장 만들어 수만명 죽음으로 내몬 자들에 대한 평가 치고는, 후쿠야마의 평은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분석은 잘하는데 나쁜 놈이 나쁜 이유는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고 좋은 일을 제대로 잘 못해서라고 하는 꼴이다.


뒷부분 ‘그래서 미국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쪽은 대략 민주당 주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찌 됐든 책은 재미있었고, 미국 네오컨들에 대해 알려주는 점이 많았고, 구구절절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각론 측면에서)과 못돼먹은 생각(전체적으로)이 잘도 섞여 있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7-10-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는 어려운 책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리뷰를 써주세요. 그리고 적절한 비유로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요. 리뷰가 맛있었어요^^

딸기 2007-10-05 17:21   좋아요 0 | URL
마노아 혹시 내일(토요일)도 일하니?
나 우리 딸 데리고 시내에서 놀 것 같은데, 마노아랑 만나볼까 해서.
너무 늦게 말했나... ^^;;

마노아 2007-10-05 19:07   좋아요 0 | URL
아앗, 이럴 수가! 내일 일이 있어요. 흑흑...
멀리 진주에서 지인이 올라와서 같이 뮤지컬 보기로 했거든요. 우웅.. 아쉬워요(>_<)
아가도 볼 수 있는 기회인데..ㅠ.ㅠ

icaru 2007-10-05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읽었습니다. ^^

딸기 2007-10-05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카루님. ^^

딸기 2007-10-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역시나 내가 너무 늦게 즉흥적으로 얘기를 했구나. :)
시간은 많으니깐, 10월 가기 전에 꼭 만나자.

마립간 2007-10-1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를 저의 서재 페이퍼에 올립니다.

딸기 2007-10-19 17:41   좋아요 0 | URL
넵. :)

maynard 2014-02-14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오콘이 노무현정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린 첨 들어본다.
노무현정권이 남의 나라 침략해서 그 나라를 반식민지 비슷하게 만들려했나?
아니면 누구처럼 국민을 기만해서 나라돈을 도적질을 했나?
네오콘들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뉴라이트와 유사하다고 할 수있지 않나?
그 이름과 근원도 유사하다.네오콘은 신보수,뉴라이트는 신우익인데 그들의근본이 얼치기 좌파라는 점까지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은 사실 좌파 우파를 떠나 오로지인간의 이기심과 물질숭배,힘(군사력,경제력)만이 유일한 가치판단의 척도가되는 천박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고 더우기 미국의 네오콘과는 달리 한국의 이익보다는 외세의 이익(엄밀히 말한다면 외세에 기생하는 자신들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매국적 집단이니 더더욱 한심하다.
위 서평이 오른 시점이 2007년. 아직 뉴라이트가 발톱을 드러낸 시기가 아니라 서평자가 잘 인식을 못했겠지만 지금 다시 서평을 쓴다면 그 내용이 달라질까?

남성일 2023-05-09 22:2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동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