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서... 만델라의 법정 모두진술. 앞부분에서 만델라는 자신과 ANC 지도부가 생각했던 '폭력전'의 형태를 네 가지(사보타주/게릴라전/테러리즘/공개 혁명)로 요약하고, 첫번째 사보타주 단계에 들어간 배경을 설명했다.

뒤이은 부분에서는 공산당과의 연합에 대한 ANC의 공식 입장, 그리고 맑스주의에 대한 만델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 만델라가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과 오랜 세월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만델라와 카다피의 관계를 비난했을 때, 만델라는 이렇게 응수했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밑에서 힘겨운 투쟁을 벌일 때 우리를 도와준 것은 미국보다는 리비아였다"고. 

물론 만델라 할아버지는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연설문에서 보이듯, 만델라는 사회주의자/공산당과의 연합을 어디까지나 전술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고, 통일전선을 벗어난 사상적 일체감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만델라의 시선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그 애정의 바탕은 카다피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드러냈던 것과 같은 '동지적 친밀감' 혹은 '연대감' 같은 것이다.

특기할 점은, 이는 남아공 백인정권의 '반공적' 성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국내에서는 흑백 차별로 악명높은 정권이었지만, 냉전 체제 내에서 보자면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불어닥친 사회주의적 흑인 민족주의 바람에 맞서 미국을 대신해 '반공주의의 보루'로도 기능했었다(미국-남아공-이스라엘의 삼각 협력구도). 백인정권은 반공을 내걸고 보안기구들을 강화해 흑인 민족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일쑤였고, 따라서 공산당과 흑인 운동가들의 이해관계는 '정권에 의해'서도 일치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

정부가 제기한 주장 중 또 하나는 ANC와 공산당의 지향과 목적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점과 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정부측은 틀림없이 내가 ANC에 맑스주의를 도입하려 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은 거짓입니다. ANC의 이념적 신조는 예전부터 늘 그래왔듯이, 아프리카 민족주의입니다. 그것은 "백인을 바다 속에 처넣어라!"라는 절규에 표현된 극단적 개념이 아닙니다. ANC가 대변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모든 이들의 자기실현과 자유이며,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의 청사진이 아닌 우리의 자유헌장에 소중히 담겨 있는 그대로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토지의 재분배를 요구할 뿐 국유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국유화의 대상은 광산, 은행, 독점기업입니다. 이는 현재 한 인종이 거대 독점기업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까닭에 정치권력이 분산된다 하더라도 이 기업들의 국유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종적 지배가 영구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내가 그들의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맑스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의 건설을 표방합니다. 공산당은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문제들을 해결할 단기적 처방으로서 자유헌장을 위해 일할 태세가 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유헌장을 자기 강령의 시작으로 여길 뿐 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ANC의 주요 목적은 아프리카 동포가 완전한 정치적 권리와 단결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반면, 공산당의 주된 목표는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그들을 대체하여 노동자 계급의 정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계급간의 차이를 강조하려 했지만, ANC는 계급간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이 점이 특히 중대한 차이점입니다.

ANC와 공산당이 종종 서로 긴밀히 협력했던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협력은 공동의 목적-이 경우에는 백인 우월주의의 철폐-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뿐, 이해관계가 같은 완전한 공동체였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세계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예들은 수도 없습니다. 그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히틀러에 맞서 함께 싸웠던 영국, 미국, 그리고 소련간의 협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누구도 그러한 협력에 대해, 처칠 혹은 루스벨트가 공산주의자라거나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어버렸다거나, 영국과 미국이 세계 공산화를 앞당기려고 노력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협력의 또다른 예를 바로 '국민의 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창'이 창설된 직후 나는 일부 조직원들로부터 공산당이 우리 조직을 지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곧 사실로 나타났고, 시간이 더 흐른 단계에서는 공개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식민지 국가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언제나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믿습니다. 이는 공산주의의 단기적 목표들이 자유운동의 장기적 목표들과 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공산주의자들은 말레이 반도, 알제리,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나라들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들 중 어느 나라도 지금 공산주의 국가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공산주의의 가장 지독한 적 중 한 명이라 할 장제스조차도 지배계급에 맞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싸웠고, 그 투쟁으로 인해 1930년대에 중국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비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협력 양식은 남아프리카의 민족해방 운동에서도 되풀이되었습니다. 공산당이 보안관찰 처분을 당하기 전에는 공산당과 ANC가 모두 참가한 공동 운동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프리카 공산주의자들은 ANC의 회원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되었으며 일부는 민족위원회, 지방위원회,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민족위원회 간부로 활동한 이들로는 공산당 서기를 지낸 아버트 은줄라, 마찬가지로 서기를 지낸 모지스 코타네, 그리고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던 J.B. 막스가 있습니다.

내가 ANC에 가담한 것은 1944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ANC가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실행하고 특정 이슈들에 대해 이따금 공산당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결국 남아프리카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희석시키고 말 거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ANC 청년연맹의 일운으로서 ANC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축출하자고 제안한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 제안은 압도적 반대로 거부당했는데, 반대표를 던졌던 이들 중에는 가장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를 지닌 분파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존의 정책을 옹호한 이유는, ANC가 애당초 같은 경향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단일 분파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수용하면서도 민족해방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아프리카인의 의회로 건설되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결국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뼛속 깊이 편견을 지니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백인들로서는 경험이 풍부한 아프리카 정치인들이 대체 왜 그리도 기꺼이 공산주의자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지를 아마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억압에 대항해 투쟁하는 이들 사이의 이론적 차이란 구입하기 부담스러운 사치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자들만이 지난 수십년간 남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들을 인간 대접하고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즉 우리와 함게 앉아서 먹고,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와 함께 살고, 우리와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정치 집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몫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 정치집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남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유와 공산주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믿음을 고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민주 정부와 아프리카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버리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그들 중 상당수를 공산주의버으로 탄압하여 보안관찰 처분을 내리는 입법부입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우리의 대의를 지지하는 이들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만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보아도 공산 국가들은 늘 우리를 도와왔습니다. 유엔과 그외 국제조직에서 공산권은 식민주의에 대항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투쟁을 지지해 왔고, 일부 서구 강국들보다 우리의 어려운 처지에 더 공감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전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를 비난합니다만, 공산권은 대부분의 백인 국가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솔직하게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고 잇습니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적이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1949년의 나처럼 경솔하고 성급한 정치가 뿐일 것입니다.

이제 제 입장에 관한 애기로 방향을 돌려보겠습니다. 나는 그간 내가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은 내 정치적 신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아프리카 애국주의자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사회의 매력은 부분적으로는 맑스주의 서적을 읽은 경험에서, 또 부분적으로는 이 나라에 있던 초기 아프리카 공동체들의 구조와 조직을 향한 내 존경심에서 솟아난 것입니다. 그때는 주요 생산수단인 토지가 부족의 소유였습니다. 부자와 빈자가 따로 없었고 착취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맑스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간디, 네루, 은크루마, 나세르등 다른 지도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약간의 사회주의적 형태를 통해 우리 국민이 세계의 선진국들을 따라잡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극단적 빈곤을 극복할 필요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거나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는 공산당이 우리의 특수한 현 정치투쟁 단계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 자유헌장을 토대로 민주적 권리들을 획득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공산당이 그 과제를 촉진하는 한, 나는 그들의 도움을 환영합니다. 나는 모든 인종을 우리의 투쟁에 나서게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공산당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문헌을 읽고 맑스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바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서양의 의회체제를 비민주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반대로 그러한 체제를 옹호하느 사람입니다.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그리고 권리장전 등은 전세계 민주주의자들이 숭상하는 문헌들입니다. 나는 영국의 정치제도와 그나라의 사법체계를 대단히 존경합니다. 나는 영국 의회를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제도로 여기고 있으며, 내게 그 나라 사법체계의 불편부당함과 독립성은 언제나 존경의 대상입니다. 미국 의회나 그 나라의 권력분립 원칙,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도 역시 내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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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1-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을 퍼갔으니 2도 퍼가야지, 암 ...

딸기 2005-01-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내게 묻는다면, 만델라 할아버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미래형이냐면 아직 내게 그렇게 물어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데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이 책이 중간중간 '슬플' 것임을 알고 있다. 다 읽고 나면 슬픔의 과정은 기쁨의 결말로 바뀔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어떤 측면에서 비코의 이야기는 희망이 예정돼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선 '슬픔의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 흑인, '검둥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언한, 젊은 나이에 숨져간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의 압도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를 위협하고 있단 말이다. 강력하고 흥분되는, 좀 들뜨게 만드는 위협이다.

책 중에 할아버지의 연설문(최호정 번역)이 나온다. 1964년 4월20일자 법정진술. 할아버지는 1962년 구속돼 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으며, 이듬해 반역죄 등으로 재차 소추됐다. 할아버지와 동료들에 대한 반역죄 재판이 이른바 '리보니아' 재판이며, 이 재판에서 할아버지는 종신형을 언도받고 로벤 섬 교도소에 투옥돼 1990년까지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 연설(법정진술)은 28년에 걸친 수감생활을 앞두고 만델라가 남아공 국민들을 상대로 했던 사실상 마지막 발언이었다. 진술 첫머리에서 만델라는 ANC의 '폭력노선'에 대해 설명한다. (만델라가 처음 ANC를 주도할 당시에는 폭력투쟁을 선호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1960년 샤프빌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백인정권의 흑인 학살사건을 계기로 비폭력 노선을 포기하고 무장투쟁 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나는 학사학위를 땄고 요하네스버그에서 올리버 탐보와 동업하여 여러 해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허가없이 이 나라를 떠났다는 죄목과 1961년 5월 말에 사람들에게 파업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5년형을 살고 있는 기결수입니다.

모두(冒頭) 발언을 통해, 나는 재판 개정 초반에 정부측이, 남아프리카의 투쟁에 외국인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다고 시사한 내용은 전적으로 틀렸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포의 지도자로서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남아프리카에서의 내 경험과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내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지 어떤 제3자가 말해준 것 때문이 아닙니다. 트란스케이에서 보낸 젊은 시절에 나는 나이드신 분들이 옛날 우리 부족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새겨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선조의 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담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우리 동포에게 봉사하고 자유를 향한 그들의 투쟁에 나 자신을 바칠 기회가 내 삶에 주어지기를 희망했습니다. 내가 이 재판에서 받은 모든 혐의와 관련하여 내가 한 행동은 모두 그러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야겠습니다. 지금껏 법정에 전해진 것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사보타주를 계획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계획한 것은 경솔한 판단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폭력을 좋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백인들이 우리 동포에 대해 독재를 행하고,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수많은 시간 동안 발생했던 정치적 상황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평가한 결과 그 사보타주를 계획한 것입니다.

나는 내가 '국민의 창'(ANC의 무장조직)의 창설에 조력한 이들 중 하나이며 1962년 8월에 체포되기까지 그 조직의 사업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점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나 그리고 그 조직을 시작했던 이들이 그같은 일을 했던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아프리카 동포의 폭력은 정부 정책의 결과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책임있는 지도부가 우리 동포의 정서를 조절하고 인도하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테러리즘이 일어나 이 나라 여러 인종들 사이에 지금까지의 전쟁에 의해서도 생기지 않았던 극렬한 적대감과 비참한 감정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폭력이 없이는 아프리카 동포들이 백인 우월주의 원칙에 항거하는 투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 원칙에 반대를 표명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들은 모두 법률에 의해 폐지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열등한 상태를 영구히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정부에 맞서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법에 맞서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법을 위반하였습니다. 그 방식을 처벌하는 법률이 생기고 정부가 자신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무력을 과시하는 것에 의지하자, 그때서야 우리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폭력은 테러리즘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의 창'을 조직한 우리는 모두 ANC의 일원이었고, 우리의 뒤에는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비폭력과 협상을 사용한다는 ANC의 전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가 어느 한 집단이 아니라 백인이건 흑인이건 그 안에 사는 사람 모두의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최후의 순간까지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사실은 50년간의 비폭력이 아프리카 동포들에게 가져다 준 것이라곤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가는 법과 점점 더 줄어드는 권리 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네 가지 형태의 폭력 즉 사보타주, 게릴라전, 테러리즘, 공개혁명이 고려되었습니다. 우리는 첫번째 방법을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그 방법을 더이상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다른 어떤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최초의 게획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주의깊게 분석한 바에 기초했습니다.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외국 자본과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발전소들을 계획적으로 파괴하고 철도와 전화 통신에 장애를 초래하면, 겁먹은 자본이 이 나라에서 빠져나가려 할 것이고, 상품들은 산지에서 항구로 일정에 맞춰 도착하기가 더 어려워져, 결국에는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누수 현상이 생기게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의 유권자들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재고해보지 않을수 없게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경제 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은 정부 건물들 및 다른 인종분리정책의 상징들에 대한 사보타주로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한 공격들은 우리 동포들을 고무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공격들은 폭력적 수단의 채택을 촉구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출구를 제공할 것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이전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채택하여 정부의 폭력에 맞대응하여 투쟁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중적 행동이 성공적으로 조직되고 그래서 그에 대해 대량 보복이 가해진다면 다른 나라들도 우리 대의에 공감하기 시작할 것이고, 남아프리카 정부는 크나큰 압력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계획이었습니다. '국민의 창'은 사보타주를 실행하기에 앞서 성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작전의 계획 혹은 수행 중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폭동이 일어난다면 정부가 우리 동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남아프리카 땅이 이미 무고한 아프리카인들의 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무력에 대항하여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력 사용을 장기적 과제로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만일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우리 동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하에서 그 싸움이 진행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측에 가장 큰 승산을, 그리고 양측에 가장 적은 인명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 싸움은 게릴라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우리가 하게 될지도 모를 게릴라전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군사교육을 받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아무런 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릴라전이 시작될 경우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훈련받은 핵심 인물들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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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1-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이미 했고 퍼가는 일만 남았군요.^^

딸기 2005-01-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팍팍 퍼가셔요 ^^
 

올해는 내겐 '문학의 해'라고, 맘 속으로 정했다. 계획은 단순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것. 세계문학전집,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세계, 문학, 전집... '전집'류를 읽은지 얼마나 됐을까? 어릴적 계몽사 동화집과 에이브, 세계역사 어쩌구 하는 10권짜리 책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집에 있었을 시퍼런 을유문화사 문학전집, 그보다 조금 커서 읽었던 사루비아문고와 삼중당문고 몇권, 대학교 때 끼고다녔던 창비시선 몇권, 그리고는 끝이었나.

생각해보면 내 머릿 속 추억의 책꽂이는 그때 그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추억의 책꽂이 제일 윗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시절 누구나 한질 갖고 있었을 계몽사 50권짜리 주홍빛 동화집의 책들이다. 세계 여러나라의 민담들, 엘리너 파아전을 거기서 만났다.
책꽂이 제일 윗편 맨 왼쪽 자리는 아마도 슈토름의 '호수'가 되지 않을까. (실은 이 서재질을 시작하면서 '내머릿속 책꽂이' 따위의 카테고리를 만든 것은 추억의 책들을 더듬어보기 위해서였는데 계속 미루고만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호수'는 '인형놀음장이 폴레'하고 같이 묶여 있었던 것 같다. 라인하르트, 엘리자베스, 이국적이고 멋진 이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그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첫사랑 따위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을 것이다. 을유문화사의 시퍼런 두꺼운 문학전집에도 '호수'가 있었던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만 가물가물한 것이 아니라, '첫사랑' 이런 말들이 던져주는 두근두근, 그런 것들도 가물가물하다. 늙지 않은 나이에 마음이 늙어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문학이 내게서 멀어져간 것'과 이유가 같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늙지 않은 나이에 마음이 늙어가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해 올해에는 소설을 읽기로 했다.

민음사 문학전집을 검색해보니깐... 실은, 어릴적 읽었던 책들은, 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들도 상당하다. 아무튼 대략 읽고 싶은/읽기로 마음 먹은 책들은.

4권 변신.시골의사
6권 허클베리 핀의 모험
7권 암흑의 핵심
8권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
11권 인간의 굴레에서 1
12권 인간의 굴레에서 2
13권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8권 고리오 영감
19권 파리대왕
21권 파우스트 1
22권 파우스트 2
25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6권 이피게니에/스텔라
27권 다섯째 아이
29권 농담
31권 아메리칸
32권 양철북 1
33권 양철북 2
36권 마담 보바리
37권 거미여인의 키스
40권 독일어 시간 1
41권 독일어 시간 2
42권 감옥에서 보낸 편지
43권 고도를 기다리며
45권 젊은 예술가의 초상
46권 카탈로니아 찬가
47권 호밀밭의 파수꾼
48권 파르마의 수도원 1
49권 파르마의 수도원 2
51권 황제를 위하여 1
52권 황제를 위하여 2
54권 조서
55권 모래의 여자
56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57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2
59권 아들과 연인 1
60권 아들과 연인 2
61권 설국
62권 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63권 넙치 1
64권 넙치 2
65권 소망 없는 불행
67권 황야의 이리
68권 뻬쩨르부르그의 이야기
69권 밤으로의 긴 여로
70권 체호프 단편선
71권 버스 정류장
73권 대머리 여가수
75권 위대한 개츠비
76권 푸른 꽃
78권 영혼의 집 1
79권 영혼의 집 2
81권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82권 런던 스케치
83권 팡세
84권 질투
85권 채털리 부인의 연인 1
86권 채털리 부인의 연인 2
87권 그 후
88권 오만과 편견
89권 부활 1
90권 부활 2
92권 미겔 스트리트
93권 뻬드로 빠라모
94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95권 적과 흑 1
96권 적과 흑 2
97권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98권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흑흑 색칠하기도 힘들다. 뭘 알아야 색칠을 하지 -_-;;

아무튼 올해는! 나는 문학으로 거듭나련다! 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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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5-01-0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가 민음사판으로 읽은 녀석들은 아메리칸(강력 추천. 킥킥대고 읽어 헨리 제임스의 페이퍼백까지 구해다놓고 먼지 쌓여가는중-_-), 감옥에서 보낸 편지, 카탈로니아 찬가(르포. 라는게 더 맞을듯), 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건 글자를 눈에 넣었다 뺐다는 표현이 맞을듯요) 정도네요. 요즘은 위대한 개츠비에 필 꽃혀서 하루에 한 챕터씩 읽고 있습니다. 꽤 재밌는걸요. 간혹 수업하다 애들이 지긋지긋해 하면 펴들고 매너가 밑줄 그은 문장 쓰고 해석 같이 해 보는것도 잼나더군요. =)

하이드 2005-01-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권 마담 보봐리,48,49 파르마의 수도원,56,57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81권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혹시 생각 없으세요? 이중에서 36권 마담보봐리라도.

urblue 2005-01-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의 여자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도 좋은데요.

딸기 2005-01-0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추천작들이 마구마구 들어오는군요.

매너님, 헨리 제임스하고는 여지껏 인연이 없었어요. 책을 거의 줍다시피 한 적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안 땡겼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매너님 추천이니, 시도해봐야 되겠군요. 카탈로냐 찬가하고 짜라투스트라는 꼭 읽어볼 생각이고요. 하이드님 & 유어블루님, 마담 보봐리하고 모래의 여자 색깔 바꿔놨습니다. 읽어보지요!

딸기 2005-01-0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가만, 이 멍청이가요, 지금 보니깐... 문지 외국문학선 쪽이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고 있지 뭡니까. 그쪽이 책이 더 얇은 것 같애요!

마냐 2005-01-04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스트롱베리틱함다. 고전의 바다로 용감하게 다시 나가시다니....잊고 살고, 버리고 살고, 왠지 찔리면서 무시하고 있는 그 고전들!!!

딸기 2005-01-0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고전의 바다로 '다시' 나가는게 아니고, 처음으로...

물장구라도 한번 해볼까 하는 건데. ^^

갈대 2005-01-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학이라는 장르를 잘 읽지 않는데,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명쾌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명쾌하게, 숨김업이,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지요. 어쩌면 이건 게으름을 가리기 위한 변명일 수도 있겠네요. 숨겨진 의미를 파내는 것보다는 한 눈에 들어오는 의미를 잡아내는 것이 훨씬 편할 테니까요.
 

안그래도 알라딘 플래티넘(맞나 -.-a) 회원이신 딸기님.  

흑흑 내년엔 이래저래 돈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 괜히 서재질 시작해서, 보관함엔 책들이 가득한 판에. (어케된 인간이, 보관해둔 책은 기어이 사고야 만다;;)  연말연시 일본 가요프로그램 후벼파다가 급기야 알라딘의 '음반' 분야에까지 검색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필 꽂힐 기미가 보이는 그룹들이 꽤 생겨났으니...책값만 해도 장난이 아닌데, 이젠 음반 값까지 들이게 생겼다.

Dreams Come True와 Orange Range, 히라이 켄, Glay, MISIA의 씨디 몇장을 '일단' 보관함에 넣어놨다.
하지만 모리야마 료코와 포르노그라피티의 음반은 알라딘에 없으니 일본에서 사가야 할 듯. 처음 일본 왔을 때 버닝 기미를 느끼게 만들었던 Husking Bee의 음반도 구입 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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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0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새해를 맞이하야 폴더의 색깔이 변했네요. ^^

저도 안그래도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인 미스하이드. -_-a 내년엔 책 그만 살라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딸기 2005-01-03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걸 폴더라고 부르나보죠?

하이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내년엔.. 글쎄요, 책 그만 사실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요. :)

숨은아이 2005-01-0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역 확장을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전 영역 확장도 못하고, 잘 읽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질러대는지... 흑흑.

딸기 2005-01-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오늘 질러버렸어요. ^^;; 여기 CD값이 장난이 아니라서요.

싱글 음반은 겨우 한두곡 들어있으면서 기본이 만원 넘어가고요

모리야마 료코 베스트음반, 포르노그라피티 음반 2장, 허스킹 비 1장, 애기 동요집 1장, 남편이 고른 '기지단'(캡 웃김) DVD 1개... 이렇게 해서 18만원 정도 나왔어요. 나머지 것들은 알라딘에서 찾아보니깐 베스트음반이 대략 1만3000원 정도인 것 같던데. 서울 가서 사려고요.
숨은아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91년부터 독서카드를 정리해왔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여지껏 연말결산은 해본 적이 없다. 책을 '결산'한다는 웃기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여지껏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연말결산을 해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재질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연말 독서결산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난 좋아보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따라해본다. 그래서 지금 연말결산을 따라해보기로 했다.


지금 나의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올해 읽은 것들 중엔 일본에 대한 책들이 많았던 듯 싶다.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정신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과 일본의 근대' 그리고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도쿄이야기', 박지향 '일그러진 근대', 후지따 쇼오조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코모리 요우이치 외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가와무라 신지 '후쿠자와 유키치',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 아사오 나오히로 '새로쓴 일본사', 비즐리 '일본근현대사'를 읽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 내지는 감동적이었던 것을 꼽자면, 역시나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이 될 것이다. 어째서 마루야마가 일본 학계의 '텐노(천황)'라 불렸는지를 알게 해주는 저작, 1940년대 말 일본에는 이미 이런 수준의 '전후 분석'이 나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으로 와닿았던 책.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은 '일본을 알자'라는 맥락에서 읽은 책은 아니고, 일본을 소개하는 책도 아니지만 끊임없이 비판하고 회의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채찍같은' 책이었다. '도쿄이야기'와 '화려한 군주'는 각각 '근대 도쿄', '일본 근대의례의 발명'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밀도깊게 다뤄서 맘에 들었던 책들이었다. 이밖에 (일본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책들 몇권, '화려한 군주'에서 가지를 뻗쳐 에릭 홉스봄 등의 '만들어진 전통'도 펼쳐봤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도 올초에 읽은 몇권의 책 중 하나다.

굳이 구분하자면 '사회과학'이 되려나? 인문학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런 분야에서 좋았던 책들을 꼽자면 안토니오 네그리 '제국'이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하버마스-데리다 '테러시대의 철학'도 괜찮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엮은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도 누구에게든 추천하고픈 책이었다. 반다나 시바의 책 두 권(물전쟁/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은 그것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장하준의 책들(개혁의 덫/사다리 걷어차기)도 제법 재미있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들뢰즈 '의미의 논리', 윌리엄 모리스 '에코토피아 뉴스'는 빚독촉 받는 심정으로 읽었다고 할까. 군주론은 재미있었고, 나머지는 재미없었다. (좋은 책들의 가치를 '재미'라는 기준으로 잘라버리기가 뭣하긴 하지만 어쨌든 기준은 '나'이니까)

반면에 중동-이슬람에 대한 책들은 아무래도 업무를 떠나있다 보니 많이 읽지를 못했다. 그대신 그동안 통 안 읽었던 역사책들에는 재미가 좀 붙었는지, 조너선 스펜스의 책 왕창, 그리고 중국에 대한 책을 몇권 읽었다. 또하나의 수확이라면 프란츠 파농의 책들을 읽은 것.

과학분야도 좀 소홀히 했었는데;; 재밌었던 책이라면-- 단연 '엘레건트 유니버스'. 매트 리들리 '본성과 양육',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QED강의', 그리고 올해의 책으로 꼽은 '총,균,쇠'가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노는! 만큼, 평소 안 읽던 책들을 좀 읽어보자 하는 생각에서 손을 댔던 것들도 꽤 있다. 조셉 캠벨 '신화의 힘'은 단순한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노학자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올해 나의 독서행태를 되돌아볼때 또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 단편집 몇권을 읽었지만 아주 재미있는 것은 없었고, 기억에 남는 소설이 있다면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너무 마음에 들어서 서평을 못 올리고 있다 ^^;;

앗차차, 까먹을뻔 했다. 소설 분야에서는-- '반지제왕' 다 읽었다. 어언 몇년 만이냐... (폼을 한껏 잡고, 옆구리에 한손 올리고) "영어로 읽었또요~"

올해의 마지막 책은 아마도 '반투 스티브 비코' 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년의 첫 책도 그 둘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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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2-30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나두 결산 따라해야지, 했는데...역시..흐흐. 91년부터 쌓아온 독서카드는 정말 대단해...2000년이었던가? 덕분에 독후감 정리하는 습성을 배운거, 많이 많이 고맙게 생각해.

딸기 2004-12-3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바람구두님이나 마냐님은 책을 많이 읽으니깐 결산하면 폼이 나는데 나는 별로 읽지도 않아놓고선 결산을 해놨더니 폼이 안 나... 적자야 적자... ㅠ.ㅠ

바람구두 2004-12-3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마왕.... 짱! 동방박사는 지금은 구하지 못할 듯 싶은데요. 음, 딸기님의 연말 결산 책들 가운데 뜨끔해지는 몇몇 대목들이 있어서 물론 엘리건트 유니버스 같은 책은 제가 아직 못 봤고, 딸기님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역시 (그거 과학책이지?). 후쿠자와 유키치 말인데... 저는 지식산업사 것으로 예전에 읽었는데, 조금 아쉬워서 그런데 가와무라 신지는 어땠는지... 궁금궁금... 가라타니 고진부터 마루야마 마사오 부분에 이르는 대목은 거의 겹치고, 도쿄 이야기, 화려한 군주에 대한 평가는 저랑 흡사한 듯... 화려한 군주는 만들어진 전통이랑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 듯 싶더군요. 상상의 공동체는 읽어 보려고 보관함에 넣어놓았는데... 그래서 뜨끔하다는 말인데, 읽었거나 읽어보려고 하는 책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 하여간 소설 읽는다니 어째 두렵소. 흐흐.

urblue 2004-12-3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자 아니에요. 폼도 많이 나요. 어려운 책들이 많아서...^^;;

딸기 2004-12-3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뭔가 안내가 되었다니 기쁘네요. 운빈현님 '마왕'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다른 곳에서도 들었는데, 꼭 읽어봐야겠네요.

구두님, 엘레건트 유니버스는, 과학 분야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만하지만 '누구에게든 강추' 뭐 이런 책은 사실 아닙니다. 과학책 읽다보면 의외로 재미가 있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라는 것 뿐이지요.

후쿠자와 유키치, 굳이 평가를 내리자면-- '기업 사외보' 같은 느낌. 후쿠자와의 영향력을 좀 부풀려 놓은 점(칭찬 일색 위인전의 특징), 하지만 그래도 후쿠자와라는 인물이 일본 근대의 일단을 담고 있긴 하니깐. 아무튼 추천할만한 책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만들어진 전통'보다 '화려한 군주'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어요. 구두님 결산글에도 '만들어진 전통'이 들어가있는 거 봤어요. 근데 만들어진 전통, 그렇게 밀도 있는 책은 아니었거든요. 홉스봄의 '총론'과 전체적인 주제는 맘에 드는데 각론 하나하나가 역시나 '영국식'이어서요. '상상의 공동체'는, 구두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근데 내가 소설 읽는다는데 왜 두려워요. 흐흐.

딸기 2004-12-3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새 유어블루님이 오셨다!

블루님, 저도 폼 나나요? 아이 좋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