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 - 45년 자유 투쟁의 역사
버틸 린트너 지음, 이희영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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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버마의 역사와 반식민 투쟁,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 등을 읽기 쉽게 정리한 책 정도로 보면 되겠다.
아웅산 수찌라는 인물의 ‘신화’에 도전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쓴 것 같은데, 딱히 수찌가 ‘이래서 문제다’ 라고 할만한 부분은 안 보인다. 수찌가 오랫동안 정치활동이 금지된 채 집 안에만 갇혀 있다보니 정치적 역량을 키울 기회를 못 가진 데다 외돌토리처럼 개인 수양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걸 수찌가 모자라기 때문 혹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보긴 힘들 것 같다. 말 그대로 상황이 그러한 걸 어떡하란 말인가. 그것은 수찌의 잘못이 아니라 군부 정권의 잘못이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아무튼 수찌가 자칫 버마 민주화 운동의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벽’ 정도?)가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버마에 한번 가보지도 않은 나는, 그렇다고 수찌가 없는 편이 나은지, 지금이 수찌를 비판해야 할 시점인지를 잘 모르겠다.
버마 민주화운동가 마웅저씨 만났을 때에도 ‘수찌라는 인물의 한계’에 대해 물어봤는데, 버마 사람들도 그런 것은 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수찌가 수퍼우먼이 되어 버마의 ‘민주화 이후’까지 책임져줄 거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거는 이들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저 수찌는 민주화를 상징하는 ‘구심점’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구심점이 있는 편이 물론 없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아직은 버마에서 ‘민주화 이후’를 생각하기엔 이른 것 같다. 버마인들이 얘기하는 8888항쟁도 올해로 20주년이 되었지만 탄슈웨 독재정권은 끄떡 없어 보인다. 사이클론 나르기스 때문에 그 난리를 치고 100만명이 죽었네 이재민이 되었네 하지만 여전히 버마가 자랑하는 ‘블러디 루비’는 팔려나간다니. 미국과 서방처럼 ‘중국 탓’을 해야 하려나?

세상 어떤 독재도 ‘끝’이 없을 정도로 강고하진 않다. 피노체트도, 박정희도, 사담 후세인도, 모두 ‘끝장’을 봤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낙관론을 가지고서 ‘버마에도 민주주의의 꽃이 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비록 겉보기엔 균열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작년 양곤에서 벌어진 승려들의 항쟁과 나르기스로 인한 타격 등을 거치면서 버마 군정이 온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수찌가 아니라 버마 민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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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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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이나 <언어본능>처럼, 지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책.

진화심리학을 바탕에 깔고 언어학과 심리학, 생물학, 철학 등을 종횡무진하며 인간의 <마음>이라는 복잡한 실체를 파헤쳐나간다. 늘 그렇듯 두껍고, 그래픽도 많고, 설명이 구구절절하다.
마음이 왜 생겨났는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인간의 마음들은 왜 이렇게 요상하게 굴러가는지. 너무나 거창하고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인 주제라서, 한번에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시각/청각 같은 인간의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해 들어가면서, 우리가 추상적으로만 느끼는 마음이란 것도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모듈들의 집합임을 보여준다.
결혼, 사랑, 유머, 분노, 종교 같은 마음의 양상들은 우리 신체(혹은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더 잘 적응하고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생겨났기 때문에, 그것이 발생하는 과정을 ‘역설계’하다보면 그 작동 메커니즘을 알게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성차별, 개독교, 심리지상주의 반대! 이런 책이 더 많이 팔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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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9-1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지루하다는 풍설을 날려버리시네요.^^

딸기 2008-09-13 23:18   좋아요 0 | URL
좀 지루한 측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재미있었어요, 저는. ^^

군자란 2008-09-3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빈서판,언어본능,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시리즈는 한번은 넘어야할 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오늘 새벽에 언어본능을 읽다가 역시 영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각 장마다 최소 2번이상은 봐야 이해가 쬐금 오는것 같고 하지만 핑커책은 읽는만큼 보람도 있을것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쫌 힘드네요(언제 끝날지?????)...갑자기 생각이 나는 분이 있네요 이네파벨님의 리뷰가 그리워 집니다.......

딸기 2008-09-30 14: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런 분야는 이네파벨님이 짱인데... ㅠ.ㅠ
미국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
 
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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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책을 본지는 너무 오래 되어서... 일본에 머물던 4년 전에 집중적으로 한국-일본 관계된 책을 읽었고, 그 뒤로는 아예 손을 놨었다. 집에 책이 있기에 집어 들고 딸아이 책 읽는 옆에서 슬렁슬렁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딱히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 저 부분이 신기했다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역사를 ‘담담한 교과서’처럼 서술한 자체가 신선했다고 할까.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이 하도 극단적이다 보니 대개의 논자들은 꼴통 우파 아니면 무지랭이 좌파로 갈리는 것 같다. 둘 다 싫어요, 나는 제3의 길이 좋아요~ 하는 척하면서 나왔던 서울대 이영훈교수 류(<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몇 년 안돼 조선일보와 손 맞잡고 역사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며 더 극악한 혹세무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정말로 ‘중간에서 대충’ 역사를 줄줄이 설명한다. 독재정권 시절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국사를 배웠던 나같은 사람들이 “곰곰 생각해보니 그건 사실 이러저러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역사적 사실들을 짚어주는게 맘에 들었다. 뭐 그렇다고 아주 대단히 칭찬하고픈 정도는 아니고, 그렇다고 영 시비를 걸만한 것도 아니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이라 해도 되겠고, 이 정도라면 한국사를 훑어보기엔 썩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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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2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이 밖에서 본 한국사란게 관심을 갖게 했는데 말이죠. 제목으로는 우리속에서 매몰되어있음으로 해서 보지 못하는 우리 역사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짚어주지 않을까 해서요. 사기전에 일단 도서관 가서 대충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딸기 2008-08-25 02:18   좋아요 0 | URL
저 책에서 좀 아쉬운게, 제목과는 따로 논다는 점입니다 ^^;;
저도 사실은 그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밖에서 본 관점'은 거의 없어요.
그냥, 저자가 중국에 오래 체류했다는 것 뿐...

마노아 2008-08-2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궁금했는데 제목만 거창했던 게 아닐가 좀 걱정이 되었어요. 저는 그럼 바람돌이님의 반응이 나오면 거기에 묻어갈래요^^ㅎㅎㅎㅎ

블루베리 2008-08-2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을 흥미있게 읽었던 사람인데요, 책제목에 관한 설명은 이렇다고 합니다. 우연히 프레시안에서 그분의 연재를 보게 되었는데,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하나는 민족주의에 과도하게 얽매여 온 편협한 관점을 보완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사를 국외사와의 관련에서 바라보며 시각을 넓히도록 제안한 것이다."

딸기 2008-08-28 10:45   좋아요 0 | URL
민족주의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도록 좀더 넓은 시각에서 신경써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맞아요.
그게 이 책의 최대 장점인 듯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국외사와의 관련에서 바라보도록 애쓴 것도 맞고...
제가 트집잡은 것은, 다만 '밖에서 본 관점'이라고 하니 '국외에서' 혹은 '국외자가 바라본' 같은 느낌이 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거지요. ^^
 
Second Chance: Three Presidents and the Crisis of American Superpower (Paperback) - Three Presidents and the Crisis of American Superpower
Brzezinski, Zbigniew / Basic Books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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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이 미국의 세계전략을 포괄적으로 다룬 것들임에 반해 이 책은 포인트를 좀 달리하고 있다. 조지 H 부시-빌 클린턴-조지 W 부시라는 세 명의 ‘냉전 이후 미국 지도자’들을 꼭꼭 씹으면서 대상으로 공과를 평가하고, 앞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어디에 중점을 둬야할지를 짚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책은 작년에 출간됐는데,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읽을 만 하다. 브레진스키 특유의 ‘큰 틀’에다가, 제법 재미난 인물평까지 담겨 있으니. 저자는 부시1과 클린턴과 부시2를 각각 ‘글로벌 리더 1, 2, 3’이라고 부르는데, 뭐 거부감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 냉전 끝난 뒤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인 것은 분명하니까.

재미난 것은 부시1에 대한 높은 평가였다. 하와이 동서센터에 있는 모씨와 얘기하다가 의외로 부시1의 외교적 소양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고 놀랐었는데(이 사람은 오바마 골수 지지자다), 미국 외교가에선 이것이 중평인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외교안보 원로인 브레진스키도 부시1을 높게 치는 것을 보면.
는, 부시1은 냉전 끝난 뒤 복잡다단한 세상에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자 노릇을 충실히 잘 했다는 것이다. 책에는 부시1 시절 일어났던 국제정치의 주요 사건들이 쭉 나열돼 있는데, 이 목록들만 봐도 정말 어질어질하다. 시대가 하수상했던지라.

나는 부시1 이라고 하면 걸프전 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 부시1은 걸프전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주인임을 각인시켰다, 라고 브레진스키는 말한다. 그게 사실인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 부시1은 미국이 제멋대로 깡패라는 사실도 세계에 각인시켰다). 부시1은 과도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잘 해냈지만, 그에겐 비전이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클린턴은 집권 1기 때에는 외교에 아무 관심이 없었고, 2기 때에는 ‘세계화’라는 말로 다 해 먹었다. 신문쟁이들 표현을 빌자면 ‘제목 장사’에서는 클린턴을 따라갈 자가 없었던 셈이다. 이것은 대단한 정치감각이다! 그러나 또한 공허하다. 글로벌리더3, 부시2의 경우는- 별로 요약·정리할 필요도 없겠다. 이자가 왜 십자군의 사도가 되어 지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는지가 불가사의할 뿐이다.


세 명의 지도자 밑에서 백악관 외교안보 정책 결정과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한 부분은 아주 재미있었다. 요약하면 부시1은 워낙 외교 전문가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외교안보라인에 좌~악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 국방장관은 주로 대통령 뜻에 따랐다. 반면 클린턴은 외교엔 무지했기 때문에 수하들에게 맡겼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백악관 외교안보회의를 들여다봤으면 누가 대통령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클린턴 때에는 외교안보라인의 목소리가 컸었다.

부시2는 집권 이듬해에 9·11이 일어나자 머리가 확 돌아버렸는지(물론 이것은 브레진스키의 표현은 아니다) 갑자기 도덕주의(지랄염병) 확신범이 되어 내치보다 외치에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부시2 집권 기간 외교정책 주도권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능구렁이 체니와 럼즈펠드는 목소리가 컸고, 파월과 라이스는 제 몫을 못 했다.

“글로벌리더1은 경험 많고 능숙한 외교관이었지만, 역사의 전환기를 맞아 과감히 비전을 보여주지를 못했다. 글로벌리더2는 명민하고 미래지향적이었으나 미국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전략적 일관성이 부족했다. 글로벌리더3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강력한 본능(strong gut instincts)을 갖고 있었지만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몰랐고 쉽게 도그마에 빠졌다.”


그리하여, 브레진스키가 매긴 세 지도자 최종 성적표는:



(부시2, 너는 F학점이라구!)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미국이 무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겠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파워를 영원무궁토록 유지하기 위해(물론 이런 표현은 안 쓴다, 왜냐하면 이 자는 현실주의자이니까) 다음번 대통령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충고를 잊지 않는다. 미국을 위해서, 라고 하지만 들을만한 충고다. 미국이 하는 짓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니 남의 일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당장 이라크 정책에서(뒤에 보론 격으로 이라크 정책 관련 제언이 실려 있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이른 시일 안에 철군할 것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며칠 전 미국과 이라크 정부 간 ‘철군 협상’이 타결됐다. 구체적인 시일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2011년까지는 나가도록 한 것 같다. 두 번째, 이라크 철군을 비롯한 결정은 이라크 지도부와 합의하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만방에 알려야 한다는 것. 브레진스키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을 얼마나 큰 불신에 빠뜨렸는지를 아는 것 같다.

위기를 잘 헤쳐,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으로 지구 지배를 다시 굳힐 수 있게 할 ‘두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글로벌리더 4’가 버락 오바마가 될지, 존 매케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들 중 누가 되든, 군림할 기회 말고 공존할 기회를 찾아줬으면 하는 것이 62억명의 바램인데... 미국 넘들도 그걸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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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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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달동네는 사라졌나?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달동네를 지나쳐본지 오래된 것을 보면, 이젠 달동네는 서울의 풍경에서 거의 지워진 것 같다. 그 많던 달동네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두 ‘개발’되고 ‘발전’ 해서 중산층이 되어 아파트로 이사 갔을까.

이렇게 쓰고 나니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이뤄진 달동네 제거작전, 서초동 꽃동네 비닐하우스촌을, 시대의 변화를 무색케 하던 봉천동 달동네, 봉천동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대학 후배의 얼굴(1970년대가 아니고 1990년대였다), 취재 차 찾아갔던 가리봉동의 쪽방들(세기의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인왕산 능선 밑 어지럽게 빨래가 널려있던 판잣집들(사라진 줄 알았던 이곳의 판잣집 동네를 다시 본 것은 2005년이었다).

사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의 달동네들은 그나마 양호하다. 난민들의 거주가 수십년 단위로 길어지면서 사실상 거대한 슬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 아프리카의 난민촌들에 가본 적 있다. 나는 케냐 나이로비 주변의 악명 높은 슬럼가 시장(그 유명한 키베라 슬럼은 가보지 못했지만)에도 가보았다. 민병대들의 저항의 무대가 된 바그다드의 사드르 시티에서는 골목 초입을 기웃거리다가 ‘무서워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경험도 있다.

풍경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후배가 보여준 사진들 속 방글라데시의 판잣집들과 내 머리 속 어릴 적 우리 동네, 보르네오섬의 강변 마을과 외신 사진에서 본 뭄바이의 다라비 슬럼 같은 곳들은 거개는 비슷한 이미지다. 도시와 가난의 결합, 슬럼.

저자는 오늘날 제3세계 도시들의 ‘전형적 풍경’이 돼버리다시피 한 대규모 슬럼들이 “전 지구적 정치 위기, 즉 1970년대 후반의 채무위기와 뒤이은 1980년대 국제통화기금 IMF 주도의 제3세계 경제 구조조정의 유산”이라고 지적한다. 산업이 성장하면서 농촌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들어 노동자가 되고 도시 슬럼을 형성하는 방식의 ‘선진국형 슬럼화’ 현상과는 분명히 다른 현상이라는 것. 오늘날 제3세계 슬럼의 주민들은 농촌에서 얻지 못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도시로 온 것이라기보다는, 농촌에서의 삶의 기반을 잃은 탓에 등떼밀려 도시로 나오게 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슬럼의 확대는 필연적이며, 세계의 도시들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는 것과 슬럼의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 된다. 아니, 메가시티의 출현은 그 자체로 슬럼의 확대 덕에 가능한 것이다. 지난 2월 “올해 전세계 인구 중 도시 거주자가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유엔은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도시 거주민들의 과반수는 슬럼에 사는 빈민들일 것이다.

“미래의 도시는 이전 세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 등으로 지어진 도시다. 21세기의 도시 세계는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싸여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 도시일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살고 있는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생활 여명기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정착촌 차탈회위크의 튼튼한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볼 것이다.” (33쪽)

어긋난 약속들, 도둑맞은 꿈들. 무단점유(스쿼팅)와 게이티드 커뮤니티. 이 둘은 글로벌 경제에 통합된 지구촌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주거형태의 두 극단으로 나타난다. 보르네오의 판잣집과 자카르타의 주상복합 아파트들,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거대한 빈민촌과 철조망 처진 블록들. 요즘 한국에서도 ‘타운하우스’가 유행한다던데. 지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장 먼저 읽었던 <조류독감>의 경우 그다지 ‘일류 저술’은 아니었음에도, 아무튼 시각과 소재가 재미나고 요즘 시류에 맞을뿐더러 (시류를 다루는 일을 하는) 나의 관심사와도 당연히 맞아떨어지는 탓에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을 자꾸 읽게 된다. 굳이 같은 저자의 여러 책을 놓고 품평을 하자면, <조류독감>과 <빈곤의 역사><슬럼> 중에서는 역시 <조류독감>이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던 듯. <빈곤의 역사>는 역사학자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관된 사건을 밀도 있게 추적한 것이었다. <슬럼>은 중언부언이 좀 있고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슬럼이라는 테마에 맞춰 도시 빈곤/주거 문제/정책적 대안/신자유주의 기구들의 훼방 등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있다. 글로벌화 시대의 빈곤문제를 핵심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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