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Paperback)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원서
마크 해던 지음 / Vintage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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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글이 아니라는, 제 2외국어로서의 그 불리한 입장과 불편함 -예를 들자면, 불청객 처럼 찾아오는 맥을 끊고마는 알수없는 단어의 끝없는 출현으로 인한 사전을 구비해 둬야 하는 번거로움 이라든가 심지어 단어의 뜻을 찾아봤는데도 이해되지 않는 낭패로 인한 지적 좌절감- 을 감안해야 하기에 영문 소설은 우리글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신중을 기해야 실패(?) 하지 않는 법이다. 

   이름을 날리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수세기를 거쳐 명작으로 회자되는 클래식을 영문으로 읽어 줘야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지적욕구에대한 부응으로, 또는 영화화 된 스토리에 감동한 나머지 덥석 구매 버튼을 클릭하게 된다면 설레임과 기대로 과감하게 시작한 reading이 유종의 미는 고사하고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마계의 칠흙 어둠보다 더 농후해질 수 있다.  

   외서를, 특히 영문 원서의 팬시함을 즐겨보고 싶은 소망으로 수많은 영어책을 구매한 전력이 있는 당신이라면 -당연 그러하기에 류마티스 관절염처럼 뻣뻣하게 생긴 이 후기에 당신의 영롱한 눈동자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찬찬히 책꽂이에 걸려있는 책들을 살펴보시라. 의지와 신념으로 무장한 채, 겨우 몇십 페이지의 전선을 거듭 넘지 못한채 "다음 기회"를 운운하며 덮어둔 채로 한자리를 수 년째 혹은 그 이상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몇 권의 책들과 지난날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터득한 영문 소설을 고를 때의 기준 중의 하나가 "타이틀"이다. 창해일속,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한 톨을 찾는 마음으로 우리는 수많은 책들을 답사, 제목에서 암시하는 함축적인 의미에 대한 신뢰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취향이나 성향에 좌우 된다. 책과의 만남도 사람과 사람의 그것처럼, 일종의 느낌, 소위 말하는 "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책을 펴고 싶은 흥미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야 수많은 난관을 거쳐내며 끝까지 읽겠다는 의지를 유지할 수 있는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런 면에서 Mark Haddon의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은 나의 동공 확대를 야기했다. "한밤" 중에 "흥미로운" 그것도 "개"에 관한 "사건" 이라니, 어찌 이끌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책 제목이 마음을 이끈다면 직접 서점에가서 훑어 봐야 하는 과정만이 남아 있다. 대략 읽어도 좋고 집에서 읽을 때처럼 천천히 정독을 해도 좋다. 다만 여기에서 몇가지 사항을 숙지하며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중 첫 번째는 모르는 단어, 뜻을 모르는 단어가 한 페이지에 10단어 이상이면 필시 읽는 동안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지만 페이지당 10단어 이상을 모르면 짜증이 밀려 오기 시작한다. 다만 모르는 단어를 만나도 계속 문맥을 이어갈 수 있다면 단어의 뜻에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문장과 문맥에서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는 것이 단어장을 달달히 외우는 것보다 학습효과가 훨씬 높다. 

   책의 두께(페이지 수)나 활자의 크기 등도 확인해봄직 하다. 이 책의 경우 우선 굵기가 얇아서 좋았다. 우리나라 서적과 달리, 활자가 좀 작은 편이었지만 재활용지의 가벼움과 한손에 딱맞게 들어오는 책의 크기와 굵기가 휴대성을 증폭시켜주었으며 비교적 편리하게 짧은 시간동안 책을 섭렵하는데 한 몫을 했다.   

   Mark Haddon이 영국 작가임에도 미국식 영어에 그나마 기생하고 있는 나의 영어 실력으로 도전해 볼 만한 이해하기 쉬운 간결하고 명료한 표현과 대화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통양상에서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상반된 양상을 보이는 주인공의 자폐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일기가 아님에도 평이한 문장과 그림과 수학공식, 표, 도식, 지도들로 꾸며진 소년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소년이 직면한 일상의 단면들과 익숙하게 마주한다. 

   정형적인 반복적 활동에 흥미를 보이며 나름의 논리와 원칙이 존재하는 자신만의 세계속에 있던 소년이 외부세계와 조우하는 열린 접점을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더 이상 애처롭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행복을 맛볼 것이다. 소설속의 여느 캐릭터들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원처럼 익숙하고,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고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한 우리의 Christopher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목으로 일궈진 씨앗이 탄탄하게 내린 뿌리 생장점 -"개 사건의 미스터리" 프로젝트 해결- 이후에도 독자들에게 15살짜리 주인공 Christopher에게 닥쳐오는 모험의 줄기, 잎과 꽃을 피우는 과정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재미를 즐기게 될 것이다. 

  

 

* 덧붙임  

1. 이 책을 읽은 후, Mark Haddon의 『Spot of Bother』를 읽었는데, 여전히 재밌었습니다.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리 더딘 것인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 최신작 『Boom!』이 2010년 5월 11일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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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여전한 박민규의 유효한 선동

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영화화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영화화 된다고 한다. 감독은 수백편의 CF를 제작한 오민호 감독이고 영화 제작사 아이디어 팩토리에서 제작을 한다고 밝혔다. (기사보기 클릭)  

   좀 더 기사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겉모습으로 비교되고 경쟁하며,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 사회의 여성 98%에게 바치는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시나리오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캐스팅 작업을 거쳐 2010년 상반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가 이 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설에 나오는 "그녀-못생긴 여자"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이건 실패를 담보한 기획이다. 

 

1. 다빈치 코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로버트 랭던을 도와주는 소피 느뷔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이다. 이 사실은 소설의 중후반에서 밝혀지지만, 읽는 데 감상에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이미지에 그녀의 모습을 대충 맞춰서 상상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설정이 영화로 옮겨가면 골치가 아파진다.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그리고 소피 느뷔로 분한 오드리 토투 

 

   소설에서 제시한 이미지는 우리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된다.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예수의 이미지와 각자가 생각하는 소피 느뷔의 이미지가 겹쳐 예수를 닮은 각자의 '소피 느뷔'가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눈에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담보한다. 아무리 오드리 토투가 예수를 닮았다고 우겨봤자, 모든 관객이 그 객관성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의 캐릭터를 영상화하는 것은 각자의 주관성을 객관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성을 담보로 한다.  

 

2. 아름답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이 영화는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그간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조연출을 맡은 전재홍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을 간직한 여인은 배우 차수연이 맡았다.  

   차수연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이 영화의 설정은 '세상 모든 남자들이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홀리는' 여인을 그린 영화다. 아마 시나리오 상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설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의 주관성을 어떻게 객관화 시킬 것인가. 각자의 아름다움은 각자의 기준에 적용된다. 배우 차수연이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지만, 모든 남자를 굴복시킬 그 절대적 아름다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미적 주관성은 객관화 시키기 어려운 법이다. 

 

 

3. 박민규 작가의 다른 작품 영상화를 꿈꾸며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이렇게 밝혔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추한 것은 똑같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한 번 쳐다보면 세상이 얼어붙은 듯이 숨이 턱 막히는 그런 '추함'을 어떻게 형상화 할것인가. 예쁜 여배우를 못생기게 분장을 시키든, 진짜로 못생긴 여배우를 캐스팅하든,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를 수긍케하는 '그녀'를 탄생시킬지는 모르겠다. 혹여나 '못생긴 여자'가 아닌 '흉측한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못생긴 척 하는 예쁜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박민규 작가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각색한 <낙타씨의 행방불명>

 

   박민규 작가의 서사가 영상화에 잘 맞아떨어질까? 예전에 TV문학관에서 방영했었던 <카스테라>는 그저 그랬다. 오히려 예전에 드라마시티에서 방영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각색한 <낙타씨의 행방불명>이 훨씬 더 박민규 작가의 감수성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기력한 아버지 역할의 기주봉 씨의 연기는 단연 압권. 소설에서 묘사한 절망적인 멍한 눈빛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허탈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과 비교해보면 활자가 영상화 되었을 때의 화학반응이 얼마나 짜릿한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무리수를 둔 작품보다는 차라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영화화 하는 게 어떨까? 최근 프로야구 인기도 절정인데. <슈퍼스타 감사용>개봉한지도 꽤 되었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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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현 2011-07-1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감독.. 저질러 놓고 뒷감당 못하는 작태는 여전하구만..
 
[수입] 너바나 : 언플러그드 인 뉴욕 - 2013 유니버설 DVD / Blu-Ray 앨범 가격 할인 캠페인
Nirvana (너바나) / 유니버설뮤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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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4월 5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NEVERMIND』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본의 아니게 그 자리에 올랐던 너바나, 그리고 그룹의 리더 커트 코베인.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 공연은 그가 죽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언플러그드 공연"이다. 항상 무대에서 기타를 때려부시거나 마음에 안차면 도중에 연주를 중단한 기행 그룹이 TV, 그것도 언플러그드 공연이라니. 당시엔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물론 그 화젯거리도 커트의 죽음으로 묻히긴 했지만. 

   DVD에는 MTV 방영 버전과 공연을 통째로 촬영한 버전이 같이 들어있다. 지금까지는 MTV 방영 버전만 접할 수 있었는데, CD의 순서와 같은 공연 모습은 처음이었다. 

   음질은 CD보다 베이스 음량이 좀 더 크지만, 감상을 방해할 수준은 아니다. 화질 또한 요즘의 HD에 비할 바 아니지만,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준수한 편이다. 부가영상으로 공연 전 리허설 장면과 뉴스 클립이 있다.

   공연은 차분하게 진행된다. 언플러그드라서 그런지, 맹렬한 분노를 머금은 노래들이 관조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무대를 장식한 백합과 촛불의 분위기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All Apologies」와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이다. 전자는 정규앨범에 있는 것보다 더 원래의 의도대로 곡이 진행되어지는 느낌이 들어서고, 후자는 곡이 끝날 때 마지막으로 잠깐 카메라를 바라보고 짧게 한숨을 쉬는 커트의 모습에 울컥한 마음이 들어서다. 

   어쨌든, 그는 죽고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산되는 관련 물품을 사며 그를 추억하고 있다. 커트는 이런 모습을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추억거리도 필요한 법이다.  

 

 

Kurt Donald Cobain
1967.2.20 ~ 199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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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2009-11-27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들어 더욱 그립다는...상업음악의 홍수속에...

Tomek 2009-11-27 09:30   좋아요 0 | URL
벌써 15년이 흘렀다는 사실에 아득해지곤 합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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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섯살인 어린애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그 아이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난 바스콘셀러스의 원작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았다. 언젠간 꼭 원작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지만 당분간은 없다. 왜냐하면 이희재가 그린 이 만화의 감흥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재의 만화는 항상 시대의 비루한 면을 그려왔다.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간판스타』는 물론이고, 명랑만화인 『악동이』조차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그의 만화는 다른 만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도피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지금 우리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것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제제는 대책없는 말성꾸러기일 뿐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집안 구성원 그 누구보다도 사려깊은 존재다. 그저 어린애이기에 특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난질이 좀 심할 뿐이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툭하면 손찌검이다. 그것은 가난으로 비롯되는 집안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제제의 식구들은 가족들간의 사랑이 거세되어 있다. 그들은 가족이라기 보다는 동거인에 가깝다. 

   그런 제제에게 두 명의 친구가 있다. 하나는 집 뒤뜰에 있는 라임오렌지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뽀루뚜까 아저씨'다. 사랑을 받아야 할 가족들에게 폭력과 야유와 멸시를 받아 '죽음'을 생각하는 제제. 그런 가족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라임오렌지나무와 뽀루뚜까는 제제가 계속 살아갈 힘이 된다. 제제만의 상상속 친구와 실재 친구인 그 둘이 있어, 제제는 이 지옥같은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지만, 그 둘은 제제에게서 떠나간다. 

   뽀루뚜까의 죽음과 라임오렌지나무와의 (꿈속에서의) 작별로 제제의 유년기는 끝난다. 제제가 친구들과의 작별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은 사랑이 가득찬 세상과 작별을 하고 비루한 현실로 들어온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참혹한 성장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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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잘 다녀왔습니다.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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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공무도하』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의 처녀작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의 대구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으로 시작하고 『공무도하』에서는 장마전선이 형성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람과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물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 존재는 알고 있으나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다. 마치 우륵의 음률이나 타이웨이 교수의 저작처럼. 혹은 매번 돌아오는 끼니나 종묘와 사직처럼. 김훈은 이번 작 『공무도하』에서도 실재하는 관념 혹은 관념적인 실재를 다룬다.

   소설의 한 축은 신문기자 문정수가 취재하는 '물'과 관련된 사건이고, 다른 한축은 편집자 노목희가 진행하는 타이웨이 교수의 저작 '『시간 너머로』'와 관련된 일이다. 이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기자는 사건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 관찰할 뿐이다. 편집자는 저작물을 창작하지 않는다. 저작물을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문정수와 노목희는 그저 바라볼 뿐, 개입하지는 않는다. 

   노동운동가였지만 변절한 장철수, 훌륭한 소방수였지만 화재현장에서 장물을 훔친 박옥출, 아들이 개에게 물려죽도록 방치한 오금자, 공사현장에서 무한궤도에 깔려죽은 방미호, 그 아버지 방기남, 그리고 베트남에서 '팔려'왔다 도망친 후에. 이들의 이야기가 신문기사처럼 감정없이 나열되다가 해망이란 지역에서 이들이 모이게 된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나가야 한다. 바다밑에 깔린 포탄 고철을 건져서라도, 아이가 죽어서 받은 성금/합의금을 받아서라도.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고 슬픈 일인지...  

   김훈은 이상을 꿈꾸지 않는다. 그는 이 현실이,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오염한 곳이다. 이 오염한 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강을 건너는 것. "시간 너머"의 세계, 죽음이다. 죽음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죽음만이 인간을 해방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김훈은 "다 같이 죽자"고 선동하지 않는다. 그는 강을 건너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 제안한다. 문정수가 장난식으로 타이웨이 교수에게 해망에 와서 해망에 관한 글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노목희가 무섭게 쳐다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차이.

   이 모든 사건을 취재한 문정수는 이 세계에 남았다. 반면 "시간 너머"의 세계에 친착한 노목희는 떠난다. 문정수는 오늘도 인간세계의 던적스러움을 취재할 것이다. 公無渡河. 김훈이 '물을 건너지 말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자는 것이 아닐까. 김훈의 『공무도하』는 '시간 너머'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강을 건너지 못한, 아니 건넌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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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무도하』장철수의 모습에서 다산의 치욕을 보다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4 09:18 
       요즘들어 김훈의 책을 '과하다'싶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면 좀 그 양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어찌된 게 더 늘어났다. 10대 초반에는 이문열(이게 다 『삼국지』 때문이다), 중반에는 이현세, 10대에서 20대를 관통하는 조정래. 20대 초중반의 하루끼. 20대 말의 이토 준지와 고우영 그리고 30대에 만난 박민규, 성석제. 그 외에는 이렇게 전작을 파고든 작가는 없는 것
 
 
톨트 2009-11-1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책을 참 부지런하게 읽으시는군요. 공무도하에 관련된 페이퍼들을 찾아 읽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Tomek 2009-11-12 12:25   좋아요 0 | URL
허섭한 글을 좋은 글이라고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