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시대의 마지막 영웅, 고 정은임 아나운서.
추억
2007/03/18 22:53
http://blog.naver.com/pustith/60035545071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신대철 시인은 이미 20년 전에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무죄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의 시에서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 땅 어느곳에서는 그것이 유죄라고 합니다.
저희 청취자 한 분이 그 심정을 노래하셨네요.
들어보시겠어요?
시를 쓰고 싶은 날, 비 내리는 철거촌에서 전 수편의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도시 빈민이었던 우리 집은 막내인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제가 어느 날 간 철거민 대회에 많은 동네 분들이 오셨더랬습니다.
금호동, 전농동, 봉천동.
하나같이 제가 식구들의 입을 통해 듣던 추억의 동네였습니다.
그 금호동 폐허의 마을에서, 더 이상 끝닿을 데 없는 하늘 밑 마을에서, 제 오빠들의 유년을 보았습니다.
쓸려져 나간 꿈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힘없는 강아지가, 높게 쌓여진 철탑이, 타이어로 엉성하게 버티고 있는 그들의 바리케이트가,
때맞춰 내리는 비가,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이, 유린당한 그들의 삶이 저에게 시를 쓰고 싶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를 쓸 수 없는 날 전 차라리 싸우고 싶습니다.
신청하신 곡은 영화 <파업전야> 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오늘 첫 곡이었습니다.
천리안으로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리셨네요.
요즘은 신문에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국내 뿐 아니라 세계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슬퍼요.
하지만 우리 늦기 전에 시작합시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이루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 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꽃 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구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시구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 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
이제 마지막 인사를 정말 드려야겠네요.
이 FM 영화음악은 제가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그 전에 TV를 임시로 맡은 것도 있었지만
정식으로 맡은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 FM 영화음악이 처음이었어요.
그 때가 1992년 11월 2일이었는데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래서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든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 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했을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막 숨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
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2년 반 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구요.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3년 10월 2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복귀 첫 방송 오프닝 멘트
"관계자 외 출입금지", "만차"
어떠세요?
이런 문구를 보면요.
어쩐지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으세요?
이런 것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밀어내는 게 하지만 있습니다.
바로 분위기죠.
누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길 가에 커다란 문을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화려한 백화점이나 호텔, 갤러리의 입구는 어쩐지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그런 곳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위기 자체가 출입금지 푯말이죠.
하지만요, 골목 안 어느 곳엔가 숨어있어서 간판도 잘 안보이고 입구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작은 칼국수집, 선술집에는 언제나, 누구나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습니다.
새벽 3시에요.
아직은 어둡고 쌀쌀하죠.
이 가을 골목길 누구나 쭈뼛거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작지만 아주 편안한 문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조그맣지만 따뜻한 간판 등도 켜놓고 있겠습니다.
2004년 4월 26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 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 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 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입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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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아나운서를 알게 된 건 우연하게도 1995년 4월 1일 새벽, 정영음 마지막 방송을 통해서였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 늦게까지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노래를 듣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땐 그저 '이렇게 목소리 좋은 DJ의 방송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막방이라니..'라는 안타까운 생각 뿐이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들.
방송을 통해 4.3 제주항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멘트를 내보낸 DJ.
볼셰비키가 부르던 ‘인터내셔널가’와 시위현장에서나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영화음악이라고 틀어주던 DJ.
MBC가 방송민주화를 내걸고 한창 파업 중이던 1992년,
입사 동기 중 유일하게 방송사 간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파업에 참여한 '강성' 노동자.
그게 바로 정은임 아나운서였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정영음>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때 팬들은 정은임 복귀 추진 위원회를 결성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꽤나 신선한 것이었다.
그 때 당시 정은임 아나운서를 향한 팬들의 그리움은 정은임이라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다.
단 한 번 방송을 들었을 뿐이었던 나조차도 다시 한 번 방송을 통해 <정영음>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니
자칭타칭 <정영음 마니아>임을 자처하던 <정영음>의 팬들은 오죽했으랴.
정은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놓고 배유정씨가 진행하는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영화, 그리고 영화음악에 한참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영화, 영화음악은 공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였던 셈이다.
그렇게 라디오를 들으면서 영화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쌓아가며 즐거워했지만, 한편으론 뭔가 아쉬웠다.
단 한 번이었지만, 마지막 방송 때 들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 이야기를 전해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름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시절이어서였을까?
마지막 방송에서 흐느낌을 참아가며 겨우겨우 마지막 멘트를 이어가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잊기가 참으로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작 2003년에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바라던대로
정은임 아나운서가 <정영음>에 복귀했지만
라디오와 멀어져 버려 복귀 후에 제대로 방송을 청취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깨어 라디오를 챙겨듣기엔 내 열정이 너무나 부족한 시기였으니까...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정은임의 영화음악'
비록 일순간이었지만 동시대에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정은임 아나운서가 우리 곁을 떠나가버린 지금,
더 이상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만은 참 안타깝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의 목소리가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