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득, 어서 일어나서 중계하러 가야지. 그러니 힘을 내.”

그가 숨을 거두기 두 시간 전쯤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해본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착시였을까. 그의 가쁜 숨 속에 맥박이 잠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임종을 지켜보는 부인의 말처럼 의사 선생님이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믿고(실제 그렇지 않겠지만) 절절한 대화는 몇 마디 더 이어졌다.

“여보. 허위원님 말씀대로 중계하러 가게 일어나세요.”

그러는 동안 그의 혈압은 점점 떨어졌다. 마지막 호흡기를 떼어버리는 순간은 나에겐 가장 슬프고 긴 시간이었다. 어찌 나이 많은 나보다, 옆에서 흐느끼는 그의 노모보다, 연신 “아빠 미안해. 사랑해요”로 흐느끼는 예쁜 외동딸을 두고 그렇게 쉽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이 못난 친구야’, 싶어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엔 속으로 얼마나 나무랐는지 모른다. 그토록 건강 챙기라고 했건만 말도 잘 듣지 않고….

그래도 마지막 그의 몸을 만져 봐야만 그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차가운 오른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쥐는 순간,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꼼꼼하게 선수들의 경력, 경기기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고 또 적던 그 손가락 움직임은 나를 감동시킨 손가락들이 아닌가. 몇 가지 칼라 펜으로 부문별로 나누어 기록하던 그의 손놀림을 이젠 영영 볼 수 없다니….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한 그와의 만남은 숱한 중계, 지방과 해외출장 등을 통해 표정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그래 맥주한잔 하러 가자’고 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아나운서 수습 때부터 최고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는 내가 본 최고의 스포츠 캐스터 중의 한 명이자 최고의 야구 캐스터 중의 한 명이었다. 철저한 자료준비, 절제된 표현, 뛰어난 순발력과 애드립, 그리고 상대를 존중해주면서 죽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학처럼 살다간 인물이다. 야구 캐스터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자리인가.

‘형님 살짝 한 대만 필게요’라며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월드시리즈 중계 때 중계 방송석 아래로 몸을 잠시 감추며 그 짧은 광고시간을 활용하는 모습에 정말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놀려주고 싶어 “이 곳 야구장에선 금연인 것 알지, 방금 담배 연기가 올라가 카메라에 잡혔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정말이냐며 눈이 휘둥그래지던 얼굴이 지금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그와의 마지막 중계방송은 금년 4월7일 잠실구장서의 LG-기아전이었다. 전날 양궁중계를 마치고 또 마이크를 잡은 그는 가뭄에 콩 나 듯하는 지상파 야구 중계로 인해 “형님 정말 오랜만에 하니까 선수들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쉽지않네요” 라며 불만족스런 방송 내용에 대해 자책했다. 그 모습이 나와의 마지막 중계였다.

“중계방송엔 퍼펙트가 없잖아”란 위로 말에 “그래도 그렇죠”란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야구는 물론 아나운서의 꿈인 올림픽 개회식, 폐회식 중계뿐만 아니라 최근엔 스포츠 전문위원으로 스포츠 중계의 장인 반열에 올랐던 그가 적어도 15년은 더 활동 할 수 있었기에 그의 타계는 MBC 스포츠 중계팀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자주 그에게 해준 말이 있다.

“송 아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계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진짜야”, “당신이 예순살 넘어서 야구 중계를 할 때, 아 저 홈런은 1982년 개막전 때 이종도의 홈런을 생각나게 하네요 라든지, 저 투수는 마치 최동원, 선동렬을 보는 듯 하는데요 라며 머릿속에 많은 걸 담겨둔 방송이 진짜 값어치 있고 좋은 스포츠 중계방송이 아닐까?” 라며 스포츠 전문 캐스터를 꿈꾸도록 부추기기도 했으니 그의 죽음엔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그 많은 경험, 해박한 방송 지식을 뒤로하고 간 그는 스포츠팬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지워질지 모르지만 그는 물과 물고기처럼 끊어 놓을 수 없는 사이, 수어지교(水漁之交)로 야구팬과 스포츠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빈소를 찾은 두산 김경문 감독의 “선수생활 때 인터뷰 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수 있냐”는 말처럼 그의 죽음은 충격적 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중계방송을 해야 하는데’ 라는 마지막 말을 가족에게 남긴 그는 야구를, 스포츠를 정말로 좋아하고 아끼며 최선을 다해 중계방송을 했던 캐스터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잘가게 송인득.”

하늘나라에서도 요즘 한창 재미난 국내야구를 지켜볼 자네 아닌가. 잘 지켜보면서 정리를 해 두었다가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날 멋진 야구중계를 해보자고. 그 때엔 쫓길 것도, 눈치 볼 것도,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하늘나라에선 광고방송이 없으면 막간을 이용한 흡연은 언제 하지? 오늘 그대가 한줌의 재로 변하는 것을 보고난 후 내가 이승엽 중계방송을 해야만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방송 만큼은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힘을 좀 불어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송국장! 이제 마지막 인사를 팬들께 하고 떠날 시간이구나. ‘야구팬 여러분,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송인득 이었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5월25일 아침,

영원한 야구캐스터 고 송인득 아나운서를 떠나보내면서

MBC-TV 야구해설위원 허구연이 삼가 올립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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