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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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맞이한 무자년 새해

지난해 연말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신세를 지는바람에

연말이 어찌 지나갔는지 새해가 어찌 다가오는지 느낄 겨를도 없었다.

 

현상은 가벼웠는데 증세는 간단치만은 않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덕분에 소란스러웠을 연말연시를 조용히

안락하게 보낸듯도 하다. 

 

연두의 짧은 방학을 맞아 시골서 엄마아빠가 대전으로 오셔서

나와 연두와 연두부를 모두 건사해주시고 오늘 내려가셨다.

ㅎㅎ 연두부의 표현대로 연두네집의 좋은 날은 이제 끝났다~ ^^

 

간만에 오래 머무르시면서 전해들은  엄마,아빠의 일상이

한편 감동이고 한편 마음이 저리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큰길 양옆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자가용들..

좁은 시장통 길목도 오가는 차들로 어느새 북새통이된지 오래이니

아빠의 일터인 작은 자전거포는 찾는 사람도 오가는 사람도 뜸할수 밖에..

 

그 자전거포 가게 옆 빈 창고공간에

언제부터인가 빈병이 차곡차곡 쌓였더랜다.

일거리는 없지만 익히 부지런이 몸에 밴 아빠는

어쩌면 그걸로 소일거리라도 하고자 했을지 모를 아빠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빈병을 모아 창고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새 1000여개가 넘었단다....

그래서 받은 돈이 5만원... 

 

아빠는 그돈 5만원을 엄마에게  쥐어주며..

절대.. 다른데 쓰지말고..

꼭 꼭.. 당신 바지 하나 사입으라고 하셨단다....

그돈 5만원은 의미있게 쓰고싶으셨다던가...ㅠㅠ

 

또 그돈을 받아든 엄마는 ..  그 5만원을 차마 못쓰고..

내내 쥐고 있다..아빠의 계속되는 추궁에..

동네 가게에서 3만 5천원짜리 바지 하나를 사 입으셨단다..

 

ㅎㅎ 각 집집의 사정에 훤한 시골동네 젊은 아줌마들은

"아줌마.. 시집하나는 정말 잘온줄 알아요~"  라며 호들갑이었단

얘기도 전해듣는다.

 

굳이 그런 호들갑이 아니더라도..

아빠는 엄마와는 달리 낯가림도 심하고, 과묵하기만한 전형적인(!) 충청도 시골양반이시지만. 엄마에게만은 곰살맞기도 하고,

설겆이부터 아침밥까지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에겐 다정하기만한 남편이다.

 

나이들수록 더 금실좋아지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마음 푸근한 한편으로,  변변한 노후대책 없이 나이들어가시는 걸 또한 지켜보는건

마음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소소한 감동과 배려로 행복한 일상을 꾸려가고 계시니

공연한 걱정인가도 싶지만..

 

빈병 1000개와 5만원, 겨울바지 한벌...을 되네이는

내마음 한켠은 여전히 아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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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8-01-0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왜 이리 맘이 짠~ 한지요. ㅠ.ㅠ
님의 장인,장모님 처럼 서로 위하면서 늙어가는 복이 젤 큰 복이지 싶어요. --- 제가 넘 주제넘은 생각을... ^^;;; ----
에궁, 진짜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셨구나.
2008년을 더 잘 보내기 위한 액땜이라 생각하심 어떨까요?
힘냅써!!!

연두부 2008-01-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얘기를 마눌에게 듣고 이런 저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문득 드는 생각중의 하나는 "그 동안 내 숫자감각이 부풀어 있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온갖 언론을 도배하다시피하는 '몇 억, 몇십억'에 너무 무감각해져 현실감각도 따라서 무감각해진거 같았어요...빈병1,000개와 5만원이 너무 크게 다가와 새삼 장인어른께 감사했습니다.
 

 

한때 웹상에서 초등학생들의 엽기 시험답안이 널리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개미를 삼등분하면’의 답란에 머리, 가슴, 배가 아닌 ‘죽는다’라든지, 이를테면, ‘찐 달걀을 먹을 때는’에 소금이 아닌 ‘가슴을 치며 먹어야 한다’는 둥의 그렇고 그런, 기타 등등.

엽기에 가슴 설렐 나이도 아닐뿐더러, 펀(Fun)하지 않으면 뻔할 뿐인 그 바닥의 정서에 이미 익숙한 터라, 나는 하릴없이 답안들의 전모를 이리저리 넘겨보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그 기타 등등 속에서-마치 기타줄이 끊어지는 느낌으로 나의 대뇌에 울림을 준 답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문) 부모님들은 왜 우리를 사랑하는 걸까요




답)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이냔, 말이냔, 말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아니, 간단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지금 한국 사회에 주어진 가장 뻔하고도 펀한 명제이자 화두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자식 내가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울컥, 하지 마라. 나 역시 가슴을 치며 찐 달걀을 삼키는 기분이다. 글쎄 나도 자식을 기르는 인간이라니까.




우선 묻겠는데, 당신은 왜 돈을 버는가 당신은 왜 재테크를 하며, 그럴 돈만 주어진다면 부동산을 사들일 생각부터 하는 것인가 당신은 왜 당신의 사업체를 상장시키고자 노력하며, 당신의 사업체를 법인으로 전환시킨 후에도 51%의 주식을 끝끝내 손에 쥐려 하는가. 당신은 왜 그토록 굽실거리며, 왜 꼬리를 내렸으며, 또 그토록 비굴했는가 아니, 당신이 횡령을 한 까닭은 무엇인가 당신은 왜 수수를 했으며, 혹은 사기를, 또는 축재를 숱한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하고 있는가 아니 그런 건 뉴스에나 날 법한 일이라 치부하고, 그래도 당신은 왜 기러기가 되어 이 땅에 홀로 남았나 혹은 당신이 다섯 군데, 여섯 군데의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며, 선생에게 봉투를 건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왜 당신은 서울에, 강남의 학군에 목을 매며, 또 당신은 로또를 구입하고 타워팰리스를 꿈꾸는가 다 좋은데, 이 좁은 국토에서 끝끝내 묏자리를 봐두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저런저런, 아파도 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믿습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얼씨구, 형이상학적이긴 해도-당신이, 당신의 꿈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기 혹시,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혹 당신에게 자녀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또 당신의 자녀에게 뭔가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저기 그러니까… 당신의 자녀를 매우, 몹시도, 무궁무진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까 사랑! 아아, 우리들의 터질 것 같은-맑고 깨끗한, 할 만큼 한, 하해와도 견줄 수 있다 일컬어지는! 그러니까 어버이 사랑!




그래도 자식뿐이고, 기댈 건 자식뿐이란 생각은 이제 그만 정리하자.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요는 이 땅의 자식사랑이 ‘독립’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습’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있다.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사회악이다. 자식은 더 이상 보험이 아니다. 자식은 통장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당신의 세습을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우리 아이는 다르다고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저런저런, 당신은 맹모(孟母)인가 아니다, 당신은 맹모(盲母)이다.




곧 가정의 달이 돌아온다. 우리들의, 이 끝없고 대책없는 어버이 사랑을 또 어찌해야 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어쩌면 당신의 사랑에 당신의 아이조차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게, 말이다.




박민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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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7-10-1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봤던 글인데 우연히 다시 발견해서 올렸다...3년전의 글인데 세상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연두는 이제 일곱살이 코앞이고..쩝

여울 2007-10-1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개 말입니다. ㅎㅎ

홍수맘 2007-10-1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2.
 

[한겨레프리즘] 명승부 / 송호진
한겨레프리즘
 
 
한겨레 송호진 기자
 




 

» 송호진/스포츠부문 기자
 
열여덟에 때 집을 뛰쳐나왔다. 9남매 중 다섯째. 영세민 집안에 입 하나 더는 것도 효도라면 효도라고 여겼다. 양말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권투체육관 문을 두드렸다. “세계챔피언이 돼 집도 일으키고, 우리 어머니 불편한 다리도 고쳐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는 ‘두 평짜리 체육관 옥탑방이면 또 어떠랴!’ 스스로를 토닥였다. 한국챔피언이 됐을 때 그는 며칠 동안 벨트를 껴안고 잤다. “눈물은 왜 그렇게 나던지.” 아버지는 돈이 없어 펼침막도 걸지 못했다. 아들이 챔피언 됐다고 쓴 종이를 동네에 붙이는 게 가난한 아버지의 사랑표현이었다.

이제 그가 ‘도전자 정재광’으로 링에 섰다. 동양챔피언 벨트를 앞세워 챔피언 김지훈(20)이 등장했다. 저 벨트. 1년 전 정재광(30)의 것이었다. 그는 김지훈과의 방어전이 다섯차례나 연기되자 돌연 벨트를 내놓고 링을 떠났다. 빚이 불어났고, 더는 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글러브를 꼈다. 그 놈의 꿈. 그 놈의 미련. 아들의 열성팬 아버지는 오지 못했다. 지난해 겨울 쓰러진 아버지는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아버지가 늘 응원하던 자리. 한 살 연상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체육관 건물 경리였다. 그는 아내 사무실 형광등을 갈아주던 날 쭈뼛쭈뼛 첫 데이트를 청한 쑥맥이었다. 아내 눈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박스(Box)! 심판이 소리치자 ‘땡’ 종이 울렸다. 챔피언 김지훈은 8케이오(KO), 11승을 거둔 독종이었다. 정재광도 맞으면서 들어가는 탱크였다. 7월 초 열린 동양챔피언 페더급 타이틀매치. 권투계는 모처럼 보는 최고 라이벌전이라며 흥분했다. 승자에게는 세계챔피언 도전의 길도 뚫린다. 모두 승리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서글픈 경기.

둘은 1라운드부터 피하지 않았다. 키(163㎝)가 작은 정재광의 왼쪽눈가가 2라운드에 찢어졌다. 3라운드엔 입술도 터졌다. “이쯤되면 재광이형이 쓰러져야 하는데 버티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맞받아치면 지훈이가 움찔해야 하는데 그런게 전혀 ….”

심판은 6라운드 중반 ‘스톱’을 외쳤다. 정재광 눈가가 피로 뒤덮였다. 그는 “싸우겠다”고 했다. 그러곤 둘은 승부를 내겠다는 듯 퍽 퍽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함성이 최고가 된 순간, 누군가 무릎을 바닥에 찍으며 무너졌다. 정재광이었다. 오른 주먹에 턱이 걸려들었다. 아마추어 경력을 포함해 50여차례 싸우는 동안 첫 다운. 1, 2 …. 심판이 보챘다. 그는 다리를 부르르 떨며 몸을 세우려 했다. “일어나고 싶었는데,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는 체중 10㎏을 빼며 이날을 준비했다. “훈련하다 죽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죠.” … 8, 9, 10. 모든 게 끝났다. 그는 부축을 받고서야 일어섰다. 아내는 울음을 삼키며 링쪽으로 다가갔다. 마지막이라던 도전. 그는 처참한 패자가 됐나?

챔피언이 뛰어왔다. “형, 수고하셨어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도 한걸음 나가 힘빠진 두 팔로 후배를 꼬옥 안았다. 그들 위로 그날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도전자는 흔들거리며 링에서 나와 바닥에 누웠다. 입술과 눈가를 수십 바늘 꿰맸다.

그러더니 퉁퉁 부은 눈으로 후배를 또 찾았다. “꼭 세계챔피언이 돼야 한다.” “형님 몫까지 짊어지고 챔피언이 될게요.” 두 주먹이 금방 하나로 섞였다.


정재광은 말했다. “그러고도 왜 행복하냐고요? 내 꿈을 좇아 다시 도전을 해봤잖아요. 후회 없어요.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 깨끗이 받아들여야죠. 그것도 좋은 후배한테 졌으니까.” 링의 승자가 답했다. “형한테 배운 게 많아요. 지고도 형이 날 끌어안는데 정말 가슴이 찡했죠.” 삶에서 승부는 그저 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냉혹한 세계일 뿐인가? 이날의 명승부는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흔든다.

송호진/스포츠부문 기자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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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7-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짠하군요. 스포츠기자이리 마음에 아리게 기사를 쓰는군요. 눈여겨보고싶군요.
 


[목요세평]시내버스 준공영제 탓하기 (중도일보)
 

올해 초 수업교재로 쓰려고 집어든 책에서 접한 유머다. 어떤 사람(갑)이 가로등 아래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을)이 “무엇을 잃어버렸느냐”고 하자, 갑은 “열쇠를 잃어버려 찾는 중”이라고 답했다. 을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둘이서 한참을 찾아도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을이 “당신이 열쇠를 잃어버린 곳이 여기 맞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갑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내가 열쇠를 잃어버린 곳은 이 가로등 밑이 아니라 저쪽 캄캄한 곳이오.” 을이 다시 물었다. “아니, 열쇠를 잃어버린 데가 저 캄캄한 곳이면 거기서 열쇠를 찾아야지 왜 이 가로등 아래에서 찾습니까?” 갑이 대답했다. “여기가 밝으니까요.”

저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한 근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유머를 끌어들였다.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쥐가 들끓는 곳에 고양이가 나타나니 고양이를 없애자고 나서는 식의 ‘본말전도`다.

최근 대전에서 벌어진 시내버스 파업을 보자. 시민들의 ‘발`이 운행을 중지했기에 이들이 겪어야 할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때마침 장맛비도 내리기 시작해 시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여느 경우처럼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의 임금 인상 폭을 둘러싼 힘겨루기에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형국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시행 2년도 채 되지 않은 ‘준공영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마치 문제의 핵심이 이 제도인 것처럼 거론되고 있다. 그럼 시내버스 준공영제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시민의 발을 붙들어 매는 파업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준공영제는 정상적 운영으로 적정한 수익을 거두기 힘든 시내버스 사업을 시민의 세금, 즉 공적 자금으로 보전해주는 것이다. 이는 운송비용 절감 식의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 경제적 약자의 교통권 보호를 위한 서비스 공급의 안정성에 무게를 둔 제도다. 이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차원에서 개선이나 폐기를 논해야지 파업 시점에 준공영제를 타깃으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준공영제 실시 이후 사실상 사용자가 된 대전시가 파업의 책임을 제도의 문제로 돌리고 노동조합을 압박해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는 불순한 의도마저 읽힌다.

언론도 준공영제가 사태의 원흉인양 여론을 한쪽 방향으로 몰고 나갔다. 누가 보면 대전시와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준공영제의 폐단에 대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현상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사회의 ‘목탁` 구실도,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 역할도 포기했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서 읽은 칼럼니스트 김규항의 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개는 오랫동안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거길 그만두고 어떤 가난한 동네의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으로 옮기고는 퇴근만 하면 우울해하고 술이라도 걸치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연유를 물으니 그러더란다. “아이들이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여기 학교 아이들은 한 반에서 다섯 명 정도를 빼곤 지난번 학교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축에 껴. 거기에다 왜 여기 아이들은 키도 덩치도 작고, 또 왜 이리 아픈 아이들도 많은지….”

이 아이들과 파업에 참여한 시내버스 조합원들의 처지가 자꾸 겹쳐서 머리에 떠오른다. 이들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이들이 손가락질 받도록 하지는 마라. 게다가 준공영제 운운은 열쇠를 잃어버린 곳이 아니라 그저 밝기만 한 가로등 아래일 뿐이다.   (충남대 신문방송학과 김재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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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7-07-0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전은 시내버스 파업으로 열흘 넘게 시내버스가 파업중이다...매번 무슨 파업이든 파업이 일어났다 하면 노동자 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언론의 행태가 이번에도 점입가경을 보이고 있다. 비록 외부 필진이지만 김재영교수의 문제제기가 구구절절히 옳아 보이기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