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맞이한 무자년 새해

지난해 연말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신세를 지는바람에

연말이 어찌 지나갔는지 새해가 어찌 다가오는지 느낄 겨를도 없었다.

 

현상은 가벼웠는데 증세는 간단치만은 않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덕분에 소란스러웠을 연말연시를 조용히

안락하게 보낸듯도 하다. 

 

연두의 짧은 방학을 맞아 시골서 엄마아빠가 대전으로 오셔서

나와 연두와 연두부를 모두 건사해주시고 오늘 내려가셨다.

ㅎㅎ 연두부의 표현대로 연두네집의 좋은 날은 이제 끝났다~ ^^

 

간만에 오래 머무르시면서 전해들은  엄마,아빠의 일상이

한편 감동이고 한편 마음이 저리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큰길 양옆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자가용들..

좁은 시장통 길목도 오가는 차들로 어느새 북새통이된지 오래이니

아빠의 일터인 작은 자전거포는 찾는 사람도 오가는 사람도 뜸할수 밖에..

 

그 자전거포 가게 옆 빈 창고공간에

언제부터인가 빈병이 차곡차곡 쌓였더랜다.

일거리는 없지만 익히 부지런이 몸에 밴 아빠는

어쩌면 그걸로 소일거리라도 하고자 했을지 모를 아빠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빈병을 모아 창고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새 1000여개가 넘었단다....

그래서 받은 돈이 5만원... 

 

아빠는 그돈 5만원을 엄마에게  쥐어주며..

절대.. 다른데 쓰지말고..

꼭 꼭.. 당신 바지 하나 사입으라고 하셨단다....

그돈 5만원은 의미있게 쓰고싶으셨다던가...ㅠㅠ

 

또 그돈을 받아든 엄마는 ..  그 5만원을 차마 못쓰고..

내내 쥐고 있다..아빠의 계속되는 추궁에..

동네 가게에서 3만 5천원짜리 바지 하나를 사 입으셨단다..

 

ㅎㅎ 각 집집의 사정에 훤한 시골동네 젊은 아줌마들은

"아줌마.. 시집하나는 정말 잘온줄 알아요~"  라며 호들갑이었단

얘기도 전해듣는다.

 

굳이 그런 호들갑이 아니더라도..

아빠는 엄마와는 달리 낯가림도 심하고, 과묵하기만한 전형적인(!) 충청도 시골양반이시지만. 엄마에게만은 곰살맞기도 하고,

설겆이부터 아침밥까지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에겐 다정하기만한 남편이다.

 

나이들수록 더 금실좋아지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마음 푸근한 한편으로,  변변한 노후대책 없이 나이들어가시는 걸 또한 지켜보는건

마음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소소한 감동과 배려로 행복한 일상을 꾸려가고 계시니

공연한 걱정인가도 싶지만..

 

빈병 1000개와 5만원, 겨울바지 한벌...을 되네이는

내마음 한켠은 여전히 아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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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8-01-0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왜 이리 맘이 짠~ 한지요. ㅠ.ㅠ
님의 장인,장모님 처럼 서로 위하면서 늙어가는 복이 젤 큰 복이지 싶어요. --- 제가 넘 주제넘은 생각을... ^^;;; ----
에궁, 진짜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셨구나.
2008년을 더 잘 보내기 위한 액땜이라 생각하심 어떨까요?
힘냅써!!!

연두부 2008-01-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얘기를 마눌에게 듣고 이런 저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문득 드는 생각중의 하나는 "그 동안 내 숫자감각이 부풀어 있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온갖 언론을 도배하다시피하는 '몇 억, 몇십억'에 너무 무감각해져 현실감각도 따라서 무감각해진거 같았어요...빈병1,000개와 5만원이 너무 크게 다가와 새삼 장인어른께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