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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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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거의 읽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커서 좋아하게 된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읽고 싶어도 없어서 못 읽었던 시절이 아니고서야, 아마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주위를 둘러봐도 책 깨나 읽는다는 사람들 얘기는 하나같이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데, 심한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심지어 책을 몰래 읽다가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 정도라니 얼마나 읽는게 재미있고 좋았으면 그랬을까, 그 기질이 심히 부럽기만 하다. 아니몰래 볼 게 따로 있지!

 

 

지금은 그런대로 읽는 걸 좋아하게 된 나는 어릴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아이였다. 학창 시절 내내 주로 독서부에 가입했던 경력으로서 미루어서 의아한 구석이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대학에 가서야 자진해서 책을 읽게 되었고 어릴 때 습관이 이어진 경우는 분명 아닌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히 책을 싫어하던 건 아니었는데 왜 그 지경까지 책과 담을 쌓고 살았나 싶다. 은근히 부모 탓으로 돌리는 말을 시작할 것 같아서 뭣하지만, 역시 환경 탓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 부모가 보기에 내가 너무 공부에 관심이 없어 보여서 그랬던지 아니면 사는데 여유가 없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여느 집에나 꽂혀 있던 그 흔한 소년 문고 시리즈 하나 없었던 게 담 쌓고 산 이유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진단해본다. 집에 있던 책이라고는 고작 이웃이나 친척들이 물려준 곰팡이 그득한 세로쓰기 책들이었으니 손이 갈 리가 없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동네 도서관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교실에 학급문고 몇 권 정도가 고작이었던 시절을 산 나는 읽기보다는 차라리 모래무덤이나 만들며 노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내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대관절 내성적인 애가 책도 안 읽고 뭐하고 살았나 싶지만 안 읽은 것 보다는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억지 핑계라도 대고 싶어지는 것이다. 만약 그 시절 책이라도 많이 읽었다면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더 밝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 <책으로 가는 문>을 읽으면서 당연하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서재에는 양질의 책이 그득했기 때문에 뭐라도 됐구나 싶었다. 결국 방 안의 책은 그 사람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문학을 아끼는 만큼이나 솎아 낸 몇 편의 소개가 더욱 반가운 것은 이와 같은 환경적 토대를 덩달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이 책들을 읽고 어린 시절을 보낼 수많은 어린이들의 그득한 미소가 덩달아 떠올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으로 가는 문> 1부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책에 대한 단상 정도가 담겨 있다. 물론 어린이를 겨냥해서 쓴 소개가 맞지만 어른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을 기대감으로 설명한다. 짧지만 핵심적인 주제와 하야오만의 감상이 지루하지 않게 버무려져서 간결하게 소개되고 있다. 오십 편으로 간추리면서 그만의 특색 있는 기준을 엿보게 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읽지 못한 동화는 메모를 해두었다가 찾아보고 싶어지고 그림으로 보는 이야기의 서사도 궁금해진다.

2부에서는 주로 그의 작품 세계의 원작이 되었던 동화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시대을 살아온 역사적인 맥락들, 그의 작품들의 원천이 되는 사상과 철학 등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얼마 전 은퇴 선언을 한 배경을 짐작할 때 그가 어떤 세계관, 역사관을 가지고 있나 진지하게 살펴봐야겠다 싶었는데 어릴 때 아버지와 논쟁한 대목만 읽어봐도 그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책에 언급된 바와 같이 그의 작품세계는 굉장히 명확한 세계관으로 그려진 이야기들이다. 어린이만을 위한 쉬운 만화를 그린 것도 아니고, 교훈적이거나, 마냥 밝고 즐거운 삶을 그려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의 애니메이션들은 오히려 기괴하고, 말이 적고, 이상한 세상, 기묘한 분위기일 때 훨씬 더 매력적이다. 판타지 그득한 세상에 놓이게 되지만 결코 현실의 고리와, 역사성을 바닥 깔지 않고는 그의 만화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가 태어난 시절의 상황, 어쩔 수 없이 노스탤지어로서의 전쟁이 그려지는 논란이 맞물려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실제로 그의 만화 안에 존재한다. 2부에서 다뤄지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주는 메시지들은 결국 소중한 책 한권으로 정립되는 한 사람의 세계관이라는 것일 테다. 그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책들은 그의 직업 특성상 아주 많은 책들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었다지만, 어떤 이에게 그것은 단 한권의 책일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마음에 꽂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야오는 결국 인생이라는 레일 위를 달릴 때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작은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그 힘은 어릴 때 책에서 본 작은 재생의 힘이 모여 크고 작은 난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삶의 자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책으로 가는 여러 문을 아주 많은 어린이들이 부지런히 드나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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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게 노래>라는 신작을 펴낸 소설가 김중혁을 생각하니 그 주제가 '노래'라는 것에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여 지며 '낼 것을 내는군' 하는 마음이 생긴다. 여러 에세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인가 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엉뚱한 발명가다운 생각들을 읽고 웃음이 터질 때가 많은 그이지만, 음악 이야기를 할 때 드러나는 깊은 이해와 조예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면모로서 기억되는 점이었다. 

이 책에는 본인이 즐겨 들었던 추억의 팝송부터 요즘 아이돌 노래에 이르는 그야말로 나만의 리스트들의 총합이 담겨 있다. 사계를 구분하고 어울리는 계절의 면면을 이야기로서 풀어보는, 새삼 노래에 얽힌 삶을 돌아볼 만한 풍부한 눈과 귀의 떨림이 기대되는 신작이다.

 

 

 

 

 

 

<미학 오디세이>에서 학문적으로 접근한 미학 이야기 외에 진중권 자신의 생각이 좀 더 실렸을 <미학 에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중세 현대의 디지털 예술에 이르는 방대한 예술의 미학의 이모저모를 담았다. 사회와 문화 시대가 주는 예술 그 속의 미학은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 작가는 특히 어떤 점을 눈여겨 보고 일상의 어떤 접합 지점과 교류되어 이야기 될지 궁금해진다. 그만의 유쾌한 미학적 통찰과 사유가 흥미롭게 펼쳐질 책이다.

 

 

 

 

 

 

 

 

'덜어 낼수록 충만해 지는 것들, 정돈된 삶이 가져다 주는 깊이와 기쁨,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 파트별 주제들만 모아 놓고도 이 책이 말하는 '지극히 적게'인 삶이란 어떤 것일지 조금은 가늠이 되는 것 같다. 과연 내 삶은 주제에서 말하는 삶의 조건 속에 어떤 불필요 혹은 나태함으로 자꾸 제동이 걸리는 노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노릇이다. 삶의 방편으로서의 제언들이 지극히 적당한 거리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진지한 책인 것 같다.

 

 

 

 

 

 

 


삶의 중심에 '음식'이 있다고 믿는 저자 몰리의 삶과 음식에 대한 에세이 <홈메이드 라이프>. 음식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또 유별날 게 있을까 싶어지지만, 삶의 중심까지 들먹여 진다면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사람이니까 매일 먹고 살아야 함은 물론이고, 나름의 방식대로 영유해 나갈 노릇이지만 몰리 집안의 유별남은 어떤 연유에서 시작되었을까? 집밥에 대한 예찬과 이들이 함께 벌여 나가는 삶의 이야기는 음식과 어떻게 맞물려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노년을 아직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젊은 나이라고 해서 노년을 걱정해 보지 않은 적은 정작 별로 없는 것 같다. 매일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노년이 되어서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돈을 미리 비축해 두어야 하는 조바심에서는 한시도 떨어져 본 일이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이는 일차적인 문제이겠지만,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품위있고 즐거운 시간을 꾸려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정작 해본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에서>는 노년에 대한 진지한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든 아니든 나만의 삶으로 꾸준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노년의 삶을 이 책으로 하여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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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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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를 다해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날마다 애정을 쏟아넣는 눈동자의 빛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작가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으면서 그가 글 쓰는 재주 외에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 정원사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 친화적인 낱말과 문장으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짐작케 되는 이력이다. 참으로 다양한 몰입의 즐거움을 알던 삶이었던 듯 싶다.

헤세의 눈동자에는 정원의 그득한 푸름이 머문 또 하나의 자연이자 세상을 한아름 담고 있는 것 같다. 단정히 다문 입, 확고한 고집이 느껴지는 주름, 굳은살 박인 다부진 손, 온 생을 다해 나이테처럼 두른 몸의 단단함은 헤세의 인생을 말해준다.

이 책은 정원에 대한 이야기로 묶여진 산문들이기 때문에 주로 헤세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한 권의 철학서나아포리즘을 읽는 것처럼 마음에 새겨지는 글귀가 많다. 그가 왜 정원을 가꿀 수밖에 없었는가, 자연스럽지만 필연적인 이유들이 내내 실리고, 주변부로 자꾸 이끌어지게 되는 삶이었는가를 정원을 가꾸면서 느낀 일일로 천천히 고백하고 있다.

 

 

 

 

헤세의 행로를 보면 시종일관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삶이었다는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에 깊이 매료되다 보니 세상이 크게 변화하거나 나아진다라고 하는 의미가 대단히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성토하듯 일침 한다.

세상의 급변함, 모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참담한 전쟁들, 인간성 상실에 대한 극심한 비극들이 벌어질수록 그의 글은 자연 그대로의 삶, 융화의 자세를 더욱 고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헤세는 가공하는 것, 인위적인 모든 것을 혐오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정원 역시 자연 그대로라고는 볼 수 없는 최소한의 가꿈으로 만들어진 곳이다하루하루 헤세의 손을 탄 정원의 인위는 그의 세계관이 완벽하게는 빛을 발할 수 없음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헤세가 바라던 세상과는 너무 멀리 와버렸을지 모를 일이나, 영원히 양면의 균형을 이루며 나아가야 함은 자명하기에 이 양면은 함께 간다.

 

 

 

자꾸만 주변부로 밀려나 살 수밖에 없던 작가의 고뇌는 풍성한 정원 안에서 외롭게 서있는 한그루의 소나무 같다. 넉넉한 잎새들이 내미는 손인사에 조용히 다독일줄 아는 독야청청함을 안고 말이다. 헤세의 정원 안에서는 그만의 철학과 사상들로 올 곧게 자라나는 꿀과 나비들이 꿈을 품고 마음껏 자연을 누리며 살아 간다. 그에게 정원은 요새이자 유배지였을까.

자연과 인간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를 잉태할 수 있는 삶으로 좀 더 근사하게만 펼쳐졌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은 헤세의 그것과 닮았으면 좋겠으면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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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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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작가나 뮤지션들이 자신의 작품을 중고거래장에서 보게 된 소회를 담담하게 고백하는 걸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헌책과 CD를 모아놓은 공간에 자주 들르는 작가라면 이런 일도 왕왕 있을 법 하다충격이라면 정도의 차이겠지만 대충 배신감과 창피함, 쓸쓸함, 회의감 등 짧지만 모든 부정적 감정들로 착찹한 기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버려진 자식 살피듯 쓸쓸해져서 내가 사버릴까하는 마음이야 왜 안들까. 거기다 반듯한 손 글씨로 쓰인 사인본이라도 발견한다면 서늘해진 마음을 추스르다가 괜히 겸연쩍은 웃음보라도 터질 것 같다.

한 때 본인의 온 것이 담겼을 작품이 누군가에 소중히 간직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야 작가가 아니어도 헤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책은 내용으로서의 면과, 물건으로서의 이중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구나 싶어진다. 시간이 흐르면 내용의 의미도 희미해질 일이니 눈앞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 편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의 소장 가치를 잃고 공간 확보의 의미가 더 중요해진다거나, 다만 몇 장의 화폐로 바뀌면 더 좋을, 그 정도의 쓸모로만 남기도 한다. 버린다는 말의 매정함은 물건으로서 가해진 행위에 지나친 감상적 표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만들어낸 사람 입장에서야 여기 저기 미아처럼 떠돌 가련한 행방을 염려하는 것이 이해될 노릇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헌책방에라도 부지되는 편이 애타게 찾아온 독자의 편에서는 천운의 기회로 삼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작가의 마음까지 헤아려 지는 이유는 헌책방에 들르면 어김없이 묘한 사연과 과정의 일들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기 때문에 그렇다. 내 손에 쥔 책의 작가의 마음도 헤아려 보게 되고, 한명 한명 책의 주인이라 이름 불렸을 그들의 감상평도 궁금해지는 것이며, 마음이 동한다면 내가 책의 새 주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설렘 또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활자로 어떤 이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고, 지식을 전하기도 하는 매개라는 것이 새삼 감탄스럽다가, 하나의 물건으로서 이리저리 찢기거나 상한 데는 없는지 눈요기로서의 면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 것이 바로 헌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스럽거나 채근 대는 마음 없이 오롯이 나와 버려진 책들의 뜨거운 만남이라는 것만 푸근하게 남는 곳, 헌책방은 그런 곳이리라. 버려진, 혹은 누군가 잃어 버렸을, 헌책이란 말의 부정적인 근사함을 생각하게 되는 곳. 누군가를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격정과,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었을 요란한 역사가 고스란히 세월의 먼지와 더께로 패잔병처럼 누워있는 곳은 어쩐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쓸쓸하지만 다음 생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근사하게 메워진 곳 그래서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 모아 특유의 냄새까지 애정한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 호스>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 소년의 말 조이가 시대의 격정에 휘말려 군마로 끌려가 오랜 세월 전쟁의 소용돌이에 떠돌다가 결국 주인공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 영화 <레드 바이올린>도 죽은 아내의 피로 색을 칠한 바이올린이 17세기를 거쳐 중국의 문화혁명 이후 소녀의 품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연과 역사의 아픔을 대신해 연주되는 유구함이 그려진다.

헌책을 사게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들인데 그만큼 물건이 내게 이르는 과정, 내용 이외에도 어떤 소장 가치로서의 개인사가 소중히 살아있었겠구나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찢겨서 더 이상 읽히지 못할 지경에만 이르지 않는다면 수만 수억 개의 헌책들이 나름의 역사를 안고 유구하게 떠돌 낭만은 언제라도 존재할 것이다. 헌책방에 들르면 단순히 책을 사기위한 단계로서의 공간, 그 이상을 상상하게 돼 좋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윤성근 작가의 오랜 헌책에 대한 애정으로 모아진 특별한 책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며 남긴 글, 메모, 전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들 각자의 사정들이 단정한 글씨에 서투르게 담겨 있다. 시대를 걱정하고, 때로는 소소한 우정이나 사랑을 전하며 선물했던 책에 당신이란 사람을 염두해 수줍은 고백을 말하고 있다. '나'와 '너' 를 이어주는 책의 이야기 가 있고, 행간에 읽히는 수많은 고백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좀 더 근사하게 펼쳐 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방에 꽂힌 책들의 다음 이야기는 어떤 이와 어떻게 꾸려지게 될지 왠지 뭉실한 생각들이 넘나들며 이미 헌책이 된 목숨들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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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에 이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울 플레이스>는 이충걸, 변종모, 한창훈 등 13명의 저자가 각자의 소울 플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내가 살던 곳을 훌쩍 떠나 생경하고 낯선 공간을 탐미하는 사람도 있겠거니와, 마음껏 울어 보기 위해 찾아든 흉가를 소울 플레이스로 추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 각각의 사연과 느낌들을 그 공간에 마음껏 부리고 또 얹어 가는 공간과의 사랑을 흠씬 느껴볼 것 같은 책이다.

 

 

 

 

 

 

 

어쨌든 미야자키 하야오 어른은 은퇴를 하셨다. 섭섭한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좋은 뒷모습을 기억하는 것 또한 근사한 일일 것 같다.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호의 애정이 담긴 세계 명작 50권을 가려 짧은 소회와 추천할 만한 덧글들을 담은 책이다. 그의 세계관과 철학 등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풀어낸 모양이라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더욱 좋은 책이리라 생각한다.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한 작가들의 초상화를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에 관한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괴테와, 셰익스피어, 체호프 등 유명 작가들의 익살스럽고 숨은 이야기들을 그림과 함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생과 문학에 대한 진면모를 실어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림으로 함축해 낸 초상화의 모습, 그들을 평생 연구해 온 평론가의 시선은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을지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온다리쿠가 비행공포증을 극복하고서 떠난 중남미 고대문명에 대한 이야기 <메갈로마니아>. 그녀 특유의 차분한 기색을 멀리하고 조금은 수다스런 여행기로 담겨 있다니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본 온다리쿠의 문체는 언제나 밤의 기운의 차분함, 유유히 흐르는 잔잔함의 정서이기 때문일까. 아이처럼 흥분하고 호기심 가득 어린 작가의 시선들이 궁금해진다.

어릴 때부터 심취해온 남미의 고대 문명 앞에서 작가가 느낀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지 나란한 마음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같이 맛보고 싶어진다.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는 잠시 머물줄 알았던 평양에서의 삶이 아버지의 처형으로 16년간 지속된다. 유년시절을 북한에서 보낸 그녀에게 평양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현대사의 아픈 면모들이 모니카가 기억하는 삶의 흐름 속에 어떻게 녹아 있을지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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