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글 쓰는 작가나 뮤지션들이 자신의 작품을 중고거래장에서 보게 된 소회를 담담하게 고백하는 걸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헌책과 CD를 모아놓은 공간에 자주 들르는 작가라면 이런 일도 왕왕 있을 법 하다충격이라면 정도의 차이겠지만 대충 배신감과 창피함, 쓸쓸함, 회의감 등 짧지만 모든 부정적 감정들로 착찹한 기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버려진 자식 살피듯 쓸쓸해져서 내가 사버릴까하는 마음이야 왜 안들까. 거기다 반듯한 손 글씨로 쓰인 사인본이라도 발견한다면 서늘해진 마음을 추스르다가 괜히 겸연쩍은 웃음보라도 터질 것 같다.

한 때 본인의 온 것이 담겼을 작품이 누군가에 소중히 간직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야 작가가 아니어도 헤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책은 내용으로서의 면과, 물건으로서의 이중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구나 싶어진다. 시간이 흐르면 내용의 의미도 희미해질 일이니 눈앞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 편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의 소장 가치를 잃고 공간 확보의 의미가 더 중요해진다거나, 다만 몇 장의 화폐로 바뀌면 더 좋을, 그 정도의 쓸모로만 남기도 한다. 버린다는 말의 매정함은 물건으로서 가해진 행위에 지나친 감상적 표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만들어낸 사람 입장에서야 여기 저기 미아처럼 떠돌 가련한 행방을 염려하는 것이 이해될 노릇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헌책방에라도 부지되는 편이 애타게 찾아온 독자의 편에서는 천운의 기회로 삼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작가의 마음까지 헤아려 지는 이유는 헌책방에 들르면 어김없이 묘한 사연과 과정의 일들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기 때문에 그렇다. 내 손에 쥔 책의 작가의 마음도 헤아려 보게 되고, 한명 한명 책의 주인이라 이름 불렸을 그들의 감상평도 궁금해지는 것이며, 마음이 동한다면 내가 책의 새 주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설렘 또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활자로 어떤 이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고, 지식을 전하기도 하는 매개라는 것이 새삼 감탄스럽다가, 하나의 물건으로서 이리저리 찢기거나 상한 데는 없는지 눈요기로서의 면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 것이 바로 헌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스럽거나 채근 대는 마음 없이 오롯이 나와 버려진 책들의 뜨거운 만남이라는 것만 푸근하게 남는 곳, 헌책방은 그런 곳이리라. 버려진, 혹은 누군가 잃어 버렸을, 헌책이란 말의 부정적인 근사함을 생각하게 되는 곳. 누군가를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격정과,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었을 요란한 역사가 고스란히 세월의 먼지와 더께로 패잔병처럼 누워있는 곳은 어쩐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쓸쓸하지만 다음 생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근사하게 메워진 곳 그래서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 모아 특유의 냄새까지 애정한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 호스>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 소년의 말 조이가 시대의 격정에 휘말려 군마로 끌려가 오랜 세월 전쟁의 소용돌이에 떠돌다가 결국 주인공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 영화 <레드 바이올린>도 죽은 아내의 피로 색을 칠한 바이올린이 17세기를 거쳐 중국의 문화혁명 이후 소녀의 품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연과 역사의 아픔을 대신해 연주되는 유구함이 그려진다.

헌책을 사게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들인데 그만큼 물건이 내게 이르는 과정, 내용 이외에도 어떤 소장 가치로서의 개인사가 소중히 살아있었겠구나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찢겨서 더 이상 읽히지 못할 지경에만 이르지 않는다면 수만 수억 개의 헌책들이 나름의 역사를 안고 유구하게 떠돌 낭만은 언제라도 존재할 것이다. 헌책방에 들르면 단순히 책을 사기위한 단계로서의 공간, 그 이상을 상상하게 돼 좋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윤성근 작가의 오랜 헌책에 대한 애정으로 모아진 특별한 책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며 남긴 글, 메모, 전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들 각자의 사정들이 단정한 글씨에 서투르게 담겨 있다. 시대를 걱정하고, 때로는 소소한 우정이나 사랑을 전하며 선물했던 책에 당신이란 사람을 염두해 수줍은 고백을 말하고 있다. '나'와 '너' 를 이어주는 책의 이야기 가 있고, 행간에 읽히는 수많은 고백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좀 더 근사하게 펼쳐 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방에 꽂힌 책들의 다음 이야기는 어떤 이와 어떻게 꾸려지게 될지 왠지 뭉실한 생각들이 넘나들며 이미 헌책이 된 목숨들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