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다섯 조각
조안 해리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성장소설. 특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라고 있는 영악한 여자아이의 성장소설은 언제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거기에 오랜 세월동안 꼭꼭 묻어두었던 비밀이 점차 드러난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된다.

여기 한 여자아이가 있다. 독일과의 전쟁중인 프랑스의 시골마을에 자라고 있는 아홉 살 짜리 여자아이, 프랑부아즈.  그녀에겐 전쟁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외에 가족이 있다. 절대 웃지 않는 돌 같은 여인, 이해할 수 없는 굶주림이 밴 무미건조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던 여인(p. 37)이라고 묘사하는 어머니, 거친 모습 뒤에는 너무나 섬세한 면이 숨겨져 있었던(p. 55) 오빠 카시스. 추수감사절의 여왕, 귀염둥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마을 최고의 미인이었던(P. 19) 언니 렌 클로드.

주인공 프랑부아즈는 냉정한 엄마로 인한 외로움과 언니 오빠와의 단절감때문에 감정적인 굶주림을 느꼈고 그때 그녀에게 친절을 베푼 한 사람을 만난다. 독일인 토마스 라이프니츠. 그녀가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었던 유년의 비밀을 만들게 한 바로 그 사람.

그는 우리가 접한 어른들 중에 아직도 소년처럼 생각하고, 소년처럼 설계하는 최초의 어른이었다. 우리를 끌어당긴 것도 결국 그 점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우리와 동류라는 것, 그게 다였다. 그는 우리의 규칙에 따라 놀아주었다.(p.183)

그녀는 그에게 매료되고 그녀의 형제들도 그를 좋아하게 된다. 그는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아홉 살 여자아이의 사랑. 단순하고 열정적이며 무모한 사랑은 엄청난 비극을 부르게 된다. 감추었던 비극은 몇 십년 후, 그녀가 그 마을로 돌아가서면 점차 드러나게 되고 마침내 그녀는 그녀가 몰랐던 완전한 진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린 여자아이가 느낀 감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이중적 감정. 올드 마더에 대한 집착. 어린 아이 다운 허영심, 자신감, 외로움, 잔인함. 그리고 평생을 간 그녀의 사랑. 이런 것들이 프랑스 시골 마을에 관한 묘사와 함께 신비롭게 펼쳐진다.

또한 소설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프랑부아즈와 어머니의 관계, 프랑부아즈와 토마스의 관계, 어머니와 토마스의 관계에 대한 진실이 훗날 프랑부아즈가 어머니의 앨범을 해석하면서 감춰두었던 비밀과 함께 점차 드러나게 된다는 방식도 흥미를 가중시킨다.

이 책의 또 한가지 특징은 음식들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음식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 음식은 그녀의 향수요, 잔치였으며 음식을 준비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창조성을 발산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p. 15) 그녀의 형제들의 이름은 과일과 요리법을 따라 지어졌다. 카시스는 까막까치밥나무 열매, 렌 클로드는 서양자두, 프랑부아즈는 나무딸기 리큐르라는 뜻이다. 나중에 프랑부아즈는 그녀의 아이들의 이름을 피스타치오라는 피스타시, 개암이라는 뜻의 누아제트라고 짓는다. 또 책 곳곳에 레서피가 숨어 있고 그녀가 마을에 돌아와서 하는 일도 식당이며 그녀의 비밀을 드러내려는 조카와 조카의 처도 식당을 하고 요리책을 쓴다.

영악한 소녀의 유년의 비밀과 군침도는 프랑스 요리, 그리고 상큼하지만 비릿한 오렌지의 향이 어우러져 오감을 자극하는 소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6-03-1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보라고 잔뜩 부추김을 유도하는 리뷰군요..^^
아이고 아이고 이것도 질러야 하나...아이고...

토트 2006-03-1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
저는 무지 재밌었어요. 꽤 두꺼웠는데도 순식간에 읽게 되더라구요..^^
 
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8월
품절


행복이란 평온함 가운데 존재한다. 건강하고, 남에게 갚아야 할 빚도 없으며, 명석한 의식을 소유한 자가 지닌 행복에 그 무엇을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부의 증대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오두막이 아니라 호화로운 저택에 살면 응당 속도 편안하고 잠도 달게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와 반대인 경우가 너무도 분명하고, 빈번하게 발생한다......-60쪽

"어떤 제도가 존속하는 것은 그것이 무리 없이 돌아가거나, 혹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 아니야. 제도란 그 사회의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 근저에 있는 도덕적 지지가 바탕이 되어 존속하는 것이니까..."-78쪽

"정의야말로 사회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든든히 떠받치는 대들보라네. 사회가 혼탁해져 그 대들보가 약해지고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인간 사회는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어."-117쪽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 줄 아나? 그 본능 안에는 인간의 어리석은 규제와 법률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방해물들을 극복하고, 사회를 부와 번영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저력이 숨어 있다네!"-119쪽

"... 만약 자네가 내가 겪은 불행을 동정하지 않거나 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누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참을 수 없게 될 거야. 자네는 나의 격한 분노와 열정 때문에 당황스러울 테고 나는 냉담하고 감정이 결핍된 자네에게 화를 내겠지..."-171쪽

모든 감정을 고상한 자기애에서 추론해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쁨이나 고통의 원인을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자신에게서 찾는다. 자신의 연약함과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한 사람은 타인이 자신의 열정을 받아들여 줄 때마다 기뻐한다. 자신의 도움을 확인했기 ‹š문이다. 그리고 반대의 상황에서는 고통스러워 한다. 타인의 거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178쪽

"난 내 이성이 나를 이끌 수 있다고 늘 생각했어요. 아주 이성적이기만 하다면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었구요. 스미스는 여러 가지 중에서도 이성은 지혜의 일부일 뿐이라고 가르쳐 줬어요. 감정도 믿을 수 있으며 중요하다는 사실도. 고등학교 ‹š 선생님이 인용했던 흄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어요. '이성은 열정의 노예다'라는 말. 이제야 알게 됐죠."-193쪽

"감정적인 반응이 실제로 적절한지에 우리는 신경 쓰게 되지. 시간이 지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즉 타당성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면 반응을 바꿀 수 도 있지. 약한 긁힌 상처로 엄청 울어대던 아이가 점차 배우고 사회화되면 더 큰 상처 입을 때를 대비해 눈물을 아끼게 되는 것처럼."-237쪽

"양심에 도달하려면 도덕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해. 우리의 '수동적' 감정은 거의 대부분 야비하고 이기적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동적' 원칙은 반대로 관대하고 고결할 때도 있으니까."-241쪽

"영혼을 가진 지성적 존재로 사람을 대하면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 반대로 소 떼로 취급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언젠가 그 뿔로 당신을 들이받게 될 테니까." (볼테르)-264쪽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를 꾸며내야 할 것이다. (볼테르)-2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그들과 나라고 하는 두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벽이란 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벽이 있다해도,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허술한 '하리포데'라고나 할까, 그런 얇은 벽인지도 모른다. 몸을 슬쩍 기대는 순간 뚫려나가서, 벽의 반대편으로 쓰러져버릴지 모를 그런 벽이라고 할까. 우리 자신의 내부에 '저쪽 세계'가 이미 몰래 숨어 들어와 있는데도, 그런 것을 ƒ틈北?못하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133쪽

결단만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육체를 떠나, 실체를 뒤에 남기고, 질량을 갖지 않은 관념적인 시점이 되면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어떤 벽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다. 어떤 심연이라 해도 뛰어넘을 수 있다.-149쪽

마리 짱. 우리가 서 있는 땅이란 건, 탄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꽝' 하고 저 밑창까지 꺼져버리거든. 그리고 한 번 꺼지고 나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본래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지. 그 후엔 꺼져버린 땅 밑의 어두컴컴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219쪽

시간을 가지고, 자기의 세계 같은 것을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 세계에 혼자 있으면, 어느 정도 안도감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일부러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리고 그 세계란 것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세계에 불과하잖아요. 골판지 상자로 만든 집처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듯한......-231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235쪽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밝은가, 어두운가 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어둠과 밝음 사이에는 그늘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잖아. 그 그늘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그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어? 나는 마리가 성격적으로 별로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해-258쪽

우리의 눈에 비쳤다고 생각한 것은, 단지 눈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무언가의 작용으로 흔들리고, 그 움직임이 유리면에 반사된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27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 윈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2월
장바구니담기


당신네들이 스스로의 영혼을 가지기 전까지는 내 영혼도 가질 수 없을 거요. 어떤 상황에서나 당신들이 언제나 진실을 구하고, 결과야 어찌 되든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때가 올 ‹š까지는, 나는 내 양심을 따르고 나의 의뢰인을 최선을 다해서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168쪽

우리는 서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 있었다. 나는 벌새가 하나 남긴 알만큼이나 쓸모가 없었다.-242쪽

밤은 온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부드럽고 조용했다. 흰 달빛은 차갑고 맑았다. 우리가 꿈꾸지만 찾을 수 없는 정의처럼 말이다.-337쪽

조각조각 정보를 모아서, 깔끔한 형태로 다 끼워 맞춘 후, 뒷주머니 여기저기에 넣어가지고 있던 짝이 안 맞는 조각 하나에 슬그머니 파고들어, 동기와 인물을 분석하는 거요. 그렇게 해서 이런 짜릿한 순간까지 사람들이, 아니 그 문제에 대해서 나 자신이 가졌던 생각과도 완전히 다른 결과를 끌어내어 마침애 가장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용의자에게 염세적인 발톱을 들이대는 거요.-341쪽

나는 언제나 가던 식으로 갈 거요. 우아한 미소를 띠고 손목을 날렵하게 꺾어 인사하면서. 그리고 마음 깊숙이 진심으로 당신을 유치장에서라도 다시 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오. -35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밀리언셀러 클럽 22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절판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일했다. 다시는 범죄와 다름없는 어리석은 인간의 명령에 자신을 맡기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시는 그런 바보를 명령자의 위치에 앉히는 체제의 일부가 되지 않을 작정이었다.-136~137쪽

노예의 일상에는 한가하게 회고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우리는 미래에의 희망이 없고 과거의 추억이 없음을 낙으로 삼았다.-161쪽

어머니의 눈물을 본 그 순간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간밤에 삼십 년이나 늙어 버린 일은 더없이 잘된 일인 것 같았다.-330쪽

순간 냉혹한 현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상대는 내가 그녀를 위해 쓴 시를 낭송할 때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고 웃어넘겨 버리는 평범한 여자인 것이다. 헬레나를 위해 내가 쓴 시를 낭송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직접 나의 시를 읽고 잘못된 글자나 적절치 못한 운율을 지적하며 밑줄을 그어 줄 테니까. 그러면 나는 잔뜩 불만을 터뜨린 다음, 그녀가 말한 대로 시를 고칠 것이다.-342쪽

어떤 사건은 논리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단서들이 하나씩 드러나 나름대로 추리력을 동원하면 비교적 쉽게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수렁에 빠진 사건을 힘껏 휘저어서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부패한 잔재들까지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떠오른 잔재들과 모든 부유물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구슬을 꿰듯 천천히 사건을 짜맞춰 나가는 거이다.-378~37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