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1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6월
절판


잊혀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음마 라모츠웨는 생각했다.
사람의 머리는 작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하늘에 벌 떼가 가득하듯이 수천 가지의 기억과 냄새와 장소, 그리고 문득문득 떠올라 스스로의 모습을 일ƒ틸?주는 언젠가 겪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프레셔스 라모츠웨, 보츠와나의 국민으로 광부였다가 숨을 못 쉬게 되어 돌아가신 오메드 라모츠웨의 딸이다. 아버지의 인생은 기록된 바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누가 적어 놓는단 말인가?-23쪽

음마 라모츠웨는 여기서 생각을 멈추었다. 냄비에서 호박을 꺼내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이 인생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답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호박은 먹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삶을 계속할 이유를 부여했다. 호박 한 덩이가.-106쪽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어서 대기의 온도는 적당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바람에 나무 태우는 냄새가 살짝 묻어 왔다. 그녀는 이 냄새만 맡으면 모추디의 모닥불 가에서 맞았던 아침이 기억나 가슴이 짠했다. 은퇴할 나이가 되면 꼭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집을 한 채 사거나 지어서 사촌들을 불러 함께 살 것이다. 사촌들은 그 땅에 멜론을 키우고 마을에 조그만 상점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침마다 그녀는 집 앞에 앉아 모닥불 연기 냄새를 밭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보낼 계획을 세울 것이다.-200쪽

음마 라모츠웨는 옛 친구에게 미소를 지었다. 살면서 해마다 새로운 친구를 시귈 수도 있었다. 매달 친구를 새로 사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년이 되어서까지 계속되는 어린 시절의 우정을 대신할 만한 것은 결코 없었다. 그것은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해 주는 강철 연결고리였다.
음마 라모츠웨는 마케치 선생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오랜 친구들이 이따금 그러는 것처럼.-269쪽

아프리카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절대 그럴 순 없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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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구판절판


그를 만난 후 나는 내 어둠 속을 헤치고 죽음처럼 숨쉬고 있던 그 어둠의 정체를 찾아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들, 지독한 어둠인 줄 알았는데 실은 너무 눈부신 빛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게 어둠이 아니라 너무도 밝은 빛이어서 멀어버린 것은 오히려 내 눈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나는 내가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으리라.-10쪽

창밖의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떨어져내리고 있 었다. 사람도 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죽음 같은 긴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깨어나 연둣빛 새 이파리와 분홍빛 꽃들을 피우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26쪽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그런 표현들을 할 수 가 없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같은 말들을, 그냥 건성으로 하는 거 말고 진정 그 말이 필요할 때, 그 말이 아니면 안 되는 바로 그때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31쪽

내가 엄마와 우리 식구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돈이 많고 그들이 자신이 속물들임을 위장하기 위해 흔히 쓰는, 내게 돈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는 표정으로 문화예술가를 자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실은 뼛속까지 외롭고 스스로 홀로 앉은 밤이면 가여운 것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위장할 기회와 도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실은 스스로가 외롭고 가엾고 고립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ƒ틈事?기회를 늘 박탈당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과 정면으로 마주칠 기회를 늘 잃고 있는 셈이었다.-118~119쪽

그런데 그즈음 나는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까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고나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218쪽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 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ƒ틈事습?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관심이다.-247~248쪽

"신문을 보니까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간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어요. 문득 단풍은 사실 나무로서는 일종의 죽음인데 사람들은 그걸 아름답다고 구경하러 가는 구나 싶었어요...... 저도 생각했죠. 이왕 죽을 김에, 단풍처럼 아름답게 죽자고, 사람들이 보고 참 아름답다, 감탄하게 하자고."-260쪽

"....... 너는 뜨꺼운 사람이야. 뜨거운 사람은 더 많이 아프다. 하지만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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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나가는 길 - An Inspector Morse Mystery 2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5년 2월
절판


휴가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이런 거라고 모스는 중얼거렸다. 휴가는 자신의 어느 부분이 퇴화됐는지 성찰하게 만든다.-40쪽

저녁식사는 고독한 행사였다. 하지만 쓸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스는 일부러 사람들이 애써 구분하는 고독과 쓸쓸함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50쪽

나는 모든 것을 듣는 것보다 살짝 암시만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세세한 것까지 다 들으면 정신은 만족할지 몰라도 상상력의 나래는 펼쳐 볼 마음을 잃고 만다. (토마스 울드리치)-108쪽

맞다. 모스 자신도 때때로 합법적인 절차의 경계를 조금씩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다트 게임을 하는 사람이 표적 바로 앞에서 던지는 것과 비슷한 반칙이다. -174쪽

사람이나 사물의 배경은 그들의 본질을 드러낸다. 만일 내가 배경을 모른다면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후안 히메네스)-187쪽

어떤 사건에서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늘 모스는 슬픔을 느꼈다. 추적의 흥분은 끝나고 죄인은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종종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에 빠져들었다. -384쪽

기억이라는 마술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사건들은 꿈처럼 흐릿하게, 반면 전혀 쓸모 없는 사실들은 생생하게 보존되곤 한다. (리차드 버튼 경)-4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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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좋은게 뭐지?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닉 혼비는 덜 자란 어른들, 남자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아스날에 목을 맨 남자의 이야기인 <피버피치>가 그랬고 자기의 비눗방을 속에 살며 남의 비눗방울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이야기인 <어바웃 어 보이>가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이 책은 결혼 생활에 위기가 온 중년 부부의 이야기이고 그것도 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케이티는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해 왔고, 두 아이가 있고, 의사이고,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남편 데이비드. '홀로웨이에서 가장 분노한 남자'인 그는 칼럼을 쓴다. 케이티의 표현에 의하면 불평해서 먹고 사는 것이다. 이 둘의 결혼생활에 위기가 온다. 그녀는 이혼 얘기를 꺼내고 바람을 피고, 그는 시종일관 시니컬한 독설로 일관한다. 

그러다가 데이비드가 '굿뉴스'(사람 이름이다.)를 만난다. 케이트의 입장에서 볼 때 냉소적이고 배려도 할 줄 모르고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인생을 살았던 그가 새 사람이 되었다.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에 불탄다. 노숙자들을 걱정하고, 자신의 물건을 나누어 주며, "착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을 쓰려고 한다.
케이티는 혼란스러워졌다. 언제나 그가 '나쁜 사람' 이었고,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사실조차 확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닉 혼비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틀림없다. 그의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그는 그들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바꾼다. 게다가 거기에 블랙 유머를 가미해서.
이 책은 재밌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킥킥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웃다가도 뭔가 찜찜해진다. 케이티처럼 자신이 대체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모든 사람들이 케이티의 혼란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지 않을까. 그리고 데이비드가 정말로 '새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안도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지 않을까.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을까. " 착하게 사는 법"이라...

 

한 가지 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도대체 저 표지는 뭐란 말인가?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내 손에 들어 온 표지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닉 혼비의 책에 저런 표지를 썼단 말인가!!!  아마 책을 팔고 싶지 않은 거대한 음모가 있는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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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2006-03-2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판 표지와 비교해서 보니 저 표지는 너무너무 훌륭하네요.
번역판 표지 디자이너를 한번 보고 싶어요..ㅋ
 
오렌지 다섯 조각
조안 해리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1월
품절


어머니와 내가 왜 서로 그렇게 겨루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단순히 내가 성장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청소년기로 접어들자 어린 나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그녀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입가에도 주름이 잡혔다. 나는 어머니가 발작이 시작되면 무기력하게 자기 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늙은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줄기 경멸감과 더불어 깨달았다.-85쪽

사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잔인하다는 옛말은 틀림없는 얘기다. 아이들이 목적을 가지고 덤벼들 때는 어른보다 더 독한 법이다. 게다가 우리는 약점의 냄새를 맡았다 싶으면 무자비하게 덤벼드는 어린 야수들이었다.-281쪽

아, 어머니는 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향이 깊어지는 과정과 발효과정 - 병 속에서 끓어오르며 원숙해지는 생명력, 어둠 속에서 서서히 남몰래 이루어지는 변화를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치 마술사가 종이 꽃다발로 마술을 부리듯 향기의 꽃다발 속에서 새로운 포도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 그녀가 시간과 인내로 우리를 대했더라면. 이는 과일나무와 다르다. 그녀는 그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이를 멋지고 믿음직한 어른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점을 알았어야 했다.-325쪽

죽음이란 것은 본래 집 안 가구 속에 숨에 있던 생쥐들을 불러내게 마련인데, 레 라뷔즈에서 튀어나온 생쥐들은 질시와 위선, 거짓 동정과 탐욕이었다.-486~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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