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그들과 나라고 하는 두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벽이란 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벽이 있다해도,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허술한 '하리포데'라고나 할까, 그런 얇은 벽인지도 모른다. 몸을 슬쩍 기대는 순간 뚫려나가서, 벽의 반대편으로 쓰러져버릴지 모를 그런 벽이라고 할까. 우리 자신의 내부에 '저쪽 세계'가 이미 몰래 숨어 들어와 있는데도, 그런 것을 ƒ틈北?못하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133쪽

결단만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육체를 떠나, 실체를 뒤에 남기고, 질량을 갖지 않은 관념적인 시점이 되면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어떤 벽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다. 어떤 심연이라 해도 뛰어넘을 수 있다.-149쪽

마리 짱. 우리가 서 있는 땅이란 건, 탄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꽝' 하고 저 밑창까지 꺼져버리거든. 그리고 한 번 꺼지고 나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본래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지. 그 후엔 꺼져버린 땅 밑의 어두컴컴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219쪽

시간을 가지고, 자기의 세계 같은 것을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 세계에 혼자 있으면, 어느 정도 안도감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일부러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리고 그 세계란 것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세계에 불과하잖아요. 골판지 상자로 만든 집처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듯한......-231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235쪽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밝은가, 어두운가 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어둠과 밝음 사이에는 그늘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잖아. 그 그늘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그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어? 나는 마리가 성격적으로 별로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해-258쪽

우리의 눈에 비쳤다고 생각한 것은, 단지 눈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무언가의 작용으로 흔들리고, 그 움직임이 유리면에 반사된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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