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모방을 못하는 사람은상상력이 부족한 거죠, 우리 방식 외에는, 그 바깥 것은보질 못하잖습니까………… 우리 모두 고약하고 좀스런 내셔널리스트예요. 그에 비해 외국인은, 이방인은, 자기를 위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자신을 받아 준 사회의 문화를 모방해야만 하죠. 우린 말로는 독창성과 오리지널리티를 높이 평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닮고 싶어 하죠. 심지어 서로의 차이조차 고만고만한 차이이길 바라고요. 내 말 알아듣겠어요, 베넷? - P51

나는 배우가 단 두 단어만으로도 실로 많은 걸 전달할 수 있단 사실을 배운 터였다. - P51

인생이 고될 때는 글도 안 써지고 무엇에든 열려 있는 자세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모든 걸 차단해 버리면 소재도 못 건지게 된다. 나는 주요 저서만 열 권 추려 헛간에 가져가기로 마음먹었고, 거기엔 기욤 아폴리네르, 폴 엘뤼아르, 실비아플라스, (그날 밤 벌들을 통해 내게로 그 영이 날아들었던)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인체 해부에 관한 책, 그리고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신화에 대해 쓴 책이 포함돼 있었다. 다시 말해 헛간 선반이 거의 비어 있었던 셈인데, 실리아의먼지 날리는 헛간에 과거 내 질서정연하던 서재의 한 버전을 재현하고픈 마음은 어차피 없었다. - P51

"모두가 타인이며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아니다." 으음, 네. 이건 내 초창기 각본에서 라벨리가 베넷에게 전달하고자 한 내용이기도 하다. 헛간에 앉아 하이데거를 읽을 때마다, 나는내가 베넷임을 깨달았다. - P52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도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도 없이 오히려 그 중간 어디께 있는 기분이었고, 그렇게 경계에서 서성이며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 P52

그래, 전기 자전거에 올라타는순간 운전 중에 분노하는 단계로 진급하고 만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난 삶에서 쌓인 분노가 도로 위에서 분출되기에 이른 셈이었다. - P53

나무 뒤에도 안 된다. 잠시 세워 두는 것도 안 된다. 다정하고 낭랑한 목소리였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속아아기 염소들이 순순히 문을 열어 주거든 들이닥쳐 잡아먹을 속셈으로 사납고 거친 목소리를 숨기는 늑대의음성이었다. 어미 염소는 어디 가고? - P54

진은 자기가 내 힘든 인생을더 힘들게 만드는 이유가 화보다도 설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려 부단히도 애썼다. - P55

코미디 영화 속 한 장면만 같았다. "어휴, 어쩜매번 이리 바쁘실까." 진이 말했다. "볼 때마다 바빠 바빠바빠예요."
진은 시간이 많은 모양이었다. 진은 히스테리컬한 희열감에 들떠 있는 반면 나는 침착한 와중에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 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섯 개나 되는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들어 올리기 시작하는데 목에서 진주 목걸이가 툭 끊어졌고, 차르르 쏟아진 진주알이진의 실용화 주위로 흩어졌다. - P55

"후면 주차장에서부터 끌고 오려니 좀 무거워야죠, 게다가 알다시피 나도 이젠 나이를 못 속이잖아요." 내입에서 이런 단어들이 이리도 사근사근하고 이해심 많은음성을 타고 흘러나온 게 놀라웠다. 진은 눈을 깜박이며속으로 꿀단지를 다섯 개쯤 더 삼키는 눈치였다. 그러고선한다는 말. "글쎄, 만날 그리 바빠 바빠 바빠 하면서 슈퍼마켓 배달 서비스 써볼 생각도 안해봤어요?" - P58

내가 평소 자랑스레 여기는 팁도 있었다. 멜론이나 파파야류의 과일이 익었는지 확인할 때 과일 양 끝을 동시에눌러 보는 방법이었다. 이때 과육이 손상되지 않도록 아주 살며시 눌러야 했는데, 과일이 익었다면 손끝에 닿는느낌이 단단한 귓불 정도의 촉감이어야 했다. 어지간해선 틀리는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아니요, 냉장 배달 차로 주문한 과일을 배송받을 생각일랑 없습니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과일을 인간 귀와 비교해 봐 달라고 운전사에게 부탁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 P59

아이들과 전기 자전거가 어쩌면 내 유일한 행복인지도 몰랐다. - P60

질문 하나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이남자가 원하는 건 아무래도 자기에게 열중하는 매혹적인 여자인 듯했다. 자기 옆을 지키며 저 대신 카나페를 날라 주고 자기가 유일한 화젯거리여야 함을 이해해 주는여자. 머리도 눈썹도 은발인 남자에게 나는 속으로 빅실버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 P61

1960년대에 스터즈 터클과 한 인터뷰에서 볼드윈은 미국 내 인종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도전장을 내민 적이 있다. "본인의 이름을 배우기 위해 당신은 내 이름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나는 생각했다. 빅실버한테 내가 정말로 해야 할 말도 이비슷한 말이야. "당신은 내 이름을 배워야 해요, 그래야내가 당신 이름을 배우니까요." - P62

여자를 억압하기 원하는 것부터가 수수께끼다. 여자가 여자를 억압하고 싶어 하는 건 그보다도 더 수수께끼다. 그만큼 우리 여성들 힘이 막강하고 그렇기에 항시 억압하려 들 필요가 있는 것이리라 짐작할밖에. - P62

"흠, 어디 보자." 내가 대답했다. "오늘 오후엔 쉼표를쓰느냐 마느냐를 두고 내 원고의 교열을 본 편집자와 옥신각신했어요. 교열자는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내 글에쉼표를 더 집어넣었으면 해요. 쉼표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쉼표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해요. 사방에 쉼표를삽입하려 들어요. 비아그라라도 삼킨 쉼표랑 같이 일하는 기분이라니까." - P63

나는 긴장해 손이 조금씩 떨리는 사람들을 믿는다. - P67

사실 난 침착함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여성성의구태의연한 정의에 따르면, 침착함은 여성성이라는 문화적 인성 중에서도 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특성이다. 그녀는 침착하고 그녀는 인내한다. 그래, 견디고 고통받는데 소질이 있다 못해 실은 인내와 고통이 그녀 이야기의진짜 주인공인 건지도. - P76

주인공들의 삶속에억압되어있던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영화의 문법으로 드러낸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유난히 큰 빚을 졌다. 뒤라스는 인간 주관성의 최대 극한까지 바짝 밀어붙인 언어를 영화를 통해 창조해 냈다. - P78

나는 70대에 접어든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캘리포니아 집에 딸린 수영장옆에 앉아 타자를 치는 나. 햇빛에 피부가 상한, 내로라하는 시네마의 귀재다. 대본을 타이핑할 때조차 수영복차림을 고집하기로 유명하며, 언제고 파릇파릇한 열대 식물에 둘러싸여 있다. 열대 식물은 마음을 활짝 열어 주고새로운 가능성을 부른다. 점심때면 스태프진이 칵테일을 흔들어 잔에 따르고, 싱싱한 오징어를 바비큐 그릴에얹어 요리해 준다. - P79

그럼 내 아이들은 어디 가고? 아이들은 무슨! 이미 클 만큼 커서 저마다의 삶을 사느라 바쁘고, 엄마한테 전화라도 걸려 올까 조마조마해하고 있을 텐데. 엄마야, 캘리포니아에 있대.
ו - P80

"젖은 옷은 벗고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하고오지 그러니?"라고 말해 줄 어른이 주위에 없었다. 나는혼자였고 나는 자유였다. 관리되는 것도 거의 없고 수도나 전기 같은 기본 시설마저 수시로 끊기는 집에 따라붙는 막대한 관리비를 지불할 자유가 내게 있었다. 식구를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다해 가는 컴퓨터에 글을 쓸 자유가 내게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조연과 주연에 해당하는인물 명단을 작성해 영화사 중역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야 했다. - P81

아이들은 큼직한링 귀고리를 하고 입에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있었다. 삶에 미치고 삶에 열광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하는말은 흥미롭고 예리하고 배꼽 잡게 웃겼다. 얘네라면 세계를 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른 건 모두 잊었다. 딸과 딸 친구들과 릴리와 내가 남김없이 먹어 치운 차에 치인 통닭살처럼, 모두 사라졌다. - P82

사랑과 거리를 둔다는 건 위험 부담이 없는 삶을 산다는의미다. 그런 삶을 살아 뭐 해? - P83

사랑 없이 사는 건 시간 낭비다. 나는 글쓰기 공화국이자어린이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아니니까. 그래, 난 그와는 다른 정거장(결혼)에서 하차해 역시나 다른 승강장(자녀)으로 이동했다고봐야 했다. 그는 내 뮤즈였지만 나는 명백히 그의 뮤즈가아니었다. - P83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랑 없는 삶이 시간 낭비임을 알았다. 사르트르를 향한 그의 꾸준한 사랑은 호텔에서 생활할 것, 사르트르와 가정을 꾸리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를 전제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데, 1950년대만 해도 이런 선택은 지극히, 어쩌면 보부아르 본인이 자각한것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서로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보부아르는 51년에 걸쳐 사르트르를 자기인생에 있어 필수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며 그에 헌신했다. 보부아르는 자기가 자녀를 원치 않으며, 사르트르의 아침 식사를 차린다거나 여타 심부름을 할 마음도없고, 그에게 더 사랑스럽게 보이고자 세계와 지적으로공감하고 교류하고 있지 않은 양 시늉할 생각 또한 추호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 P84

"나는 삶의 모든 걸 누리고 싶어. 여자이고 싶고 남자이고 싶고, 친구가 많은 동시에 외로움을 누리고 싶고, 많이 일하고 좋은 책을 쓰고 여행을 하고 즐기며 지내고 싶어 .…" - P85

호텔에서 눈뜨지 않는 기분이 어땠을까? 연인의 집에서 손님으로 지내는 기분이? 짐작건대 올그런이 가구 몇점과 전구 정도는 집에 장만해 두었을 테니 말이다. 보부아르를 초대한 건 올그런이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둘 사이의 연애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는 보부아르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진솔히 밝혔다. "나만의 주거 공간과 그곳에서 나와 함께 지낼 나만의 여자, 그리고 어쩌면 나만의 아이까지도. 이런 걸 바라는 게 유별난 건 아니지."
그래, 그런 좋은 것들은 하나도 유별나지 않다. 다만 자기가 치러야 할 대가가 올그런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크단 걸 보부아르는 알았다. - P86

제발 파리를 버리고 시카고로 와 함께 살자고 올그런이 사정했을 때, 보부아르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난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살 수 없어. 내 글쓰기와 일이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곳일지도 모를 이곳에서 계속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걸 단념할 순 없어." - P86

얼마 후 남자는 여자의 샌들, 팔찌, 선글라스와 가방, 자기 카메라와 선크림 그리고 휴대폰을챙겨 그늘진 테이블로 뒤따라 자리를 옮겼다. 남자의 삶속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로 하여금 모든 짐을 짊어지고 모든 입맞춤을 자진할 만큼의 용기를 준 것이다.
이렇듯 남자가 그를 더 원하는 상황에서 여자는 남자의용기를 꺾지 않으면서도 그런 대화의 운을 떼기 위해 어떤 방안을 모색해야 할까? - P87

진심이 담긴 내용을썼다 싶으면 곧바로 자기를 비하하는 농담을 적어 애써매듭을 풀어 얻어 낸 진실을 폄하하고 있었다. 이건 혹시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한 시도려나? 그런데 재능을 숨기라고 요구하는 사랑이 과연 사랑이기는 한가? 이 제자가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이들로 꼽은 작가 중에는 루시슈오브란 이름으로 태어난 시인, 예술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가 클로드 카엉Claude Cahun도 있었고, 옆구리엔 늘 정신의학자이자 혁명가이며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섬에서 태어난 프란츠 파농이 쓴 『검은피부, 하얀 가면들』을 끼고 다녔다. - P88

"아, 고마워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천재라는사실을 알려 줬다고 나한테 선물을 줄 필요는 없어요." - P90

엄마가 된 여성들이 배우는 "치명적인 인내심"이 그들스스로를 해치는 길임을 보부아르가 앞서 바르게 짚어내기도 했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겐 이런 인내심이없었다. - P90

우리의욕망을 주장하기란 너무나 어렵고, 차라리 그런 욕망들을 조롱하는 게 더 마음 편하기 마련이니까. - P90

오히려 한겨울에도 자기 안엔 불굴의 여름이 깃들어 있노라 선언했던 카뮈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 P91

우리가 알기를 꺼리는 것들이란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너무 면밀히 바라보려 들지는 않는 것들이 아닐까추측했다. 프로이트는 아는 것을 알지 않으려 하는 이런소망을 동기화된 망각motivated forgetting이라 불렀다. - P95

시몬 드보부아르가 일러 주었듯 힘과 성공을 남자 몫으로 간주하는 세계에서 여자가 남자를 능가해서는 안 된다. 남자가 여자의 재능에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리고 여자들에 관해 역사적으로 행사해 온 길고 긴 지배의 특권을 (현대적인 요소를첨가해) 수월히 이어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동시에 여자는 자기의 힘을 숨겨야만 남자에게 사랑받는다는 치명적인 메시지를 수용하게 된다. - P98

여자란 바라보이는 대상이어야지 바라보는 주체여서는 안 된다는 게 통설이니까. - P100

노년에 들어 어머니는 "물에 몸을 맡기는" 수영법을 터득했다. 요컨대 물속에서 뒤로 드러누워
"생각을 비우는" 동시에 "흐름에 항복하는" 기법이었다.
햄스테드 히스에 있는 수영 연못에서 내게 이 기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리와 잡초, 낙엽이 부유하는 검은 수면에 오필리아처럼 드러누운 채로. - P102

꿈에 젖은 어머니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라고? 우리는 우리 너머를 바라보며 다른 곳에 있기를 갈망하는 어머니를 원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 발 디딘,
활기차고 능력 있고 우리의 필요와 요구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어머니를 필요로 하지. - P103

내가 보기에 어머니란 존재는 언제나, 또는 거의 언제나,
즉 어린 시절과 어린 시절 뒤에 오는 생애 전체에 걸쳐,
광기를 상징한다. 우리의 어머니란 우리가 만난 사람 중에서 언제나 가장 희한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살림살이』La Vie matérielle - P105

때로 우리는 소속되기를 바라는 만큼이나 소속되지 않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 P106

잡히상상으로나마 자유롭다고 여기지 못한다면, 우리는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P106

죽음은 또한 언제나 부조리하다는 점을 마침내 시인하자, 그 공포의 손아귀에서 죽이는 기분이었다. 가게 바닥에는 것은 신발에 리튬이 상하지 말라고 판지 상자가 깔려 있었다. 함께 웃는 사이 축축하고 얼룩진 판지가 우리 발밑에서 미끌거렸다. 터키계 형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고, 어떤 면에서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도 더 자세히 설명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P112

아주 어린 나이부터 우리는 자기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우지만, 언어를 중단하는 것이 적당한 언어를 찾는 것 못잖게 중요한 순간들도 있다. - P115

나딘 고디머 옆에 앉았어. 아주왜소하고 말랐는데 새처럼 총기가 넘치더구나.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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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재미삼아 (주위에 다른 사람이라곤 없었으니) 나이트가운 입은 여성이라는 장르와 배관 수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 가운은 검정 실크 소재로,
통념상 관능적으로 여겨지는 축에 속했다. 이 가운 차림으로 산책을 할 수도 가장 행렬에 낄 수도 있을 터였다.
여성성이라는 것 자체가 어차피 일종의 가장이자 변장인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 P33

배관을 손보는 일은 고고학과 닮았다. 머리카락 뭉치는 땅속 깊숙이로부터 발출한 인공 유물이었다.
마스터 플런저는 미감과 기능을 두루 갖춘 물건이었다.
배수구로 물이 막힘 없이 콸콸 흐르기 시작하는 걸 확인하고야 나는 머리칼 뭉치를 휘두르며 외로운 승리를 축하했다. 이대로는 고대 로마도 발굴해 낼 수 있음은 물론,
고대 로마의 배관공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사의한 기계를 직접 장만해야 했다. 연장을 돌려주러갔을 때, 심장 전문의가 와인 한잔 같이하자고 청했다. 언젠가는 다시금 사랑에 빠져 보는 모험을 감수하고 싶은마음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고 심장 전문의에게 내 심장을 빼앗길 생각일랑 없었다. - P34

선인장도 다육이도 뾰족뾰족했고 일부는 날카로운 흰 가시가 돋아 있었다. 뜨거운 목욕물에서 김이 피어오를 때마다 에로틱한 열기에 사로잡히는 건지, 다육이들은 그날부터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 P35

새집으로 이사하고 모든 게 예전보다 축소되어 갈 즈음(다육이들만은 예외였다), 내 삶은 반대로 점점 확장됐다. 어려운 시절이었던 만큼 일이라면 들어오는 대로 받았고, 우편함에 청구서가 날아들 때마다 움찔댔다. 그리고 차츰 마땅한 요소들을 적정껏 갖추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 채광과 하늘과 발코니가 그런 마땅한 것들에 속했다. - P35

글을 쓸 만한 조용한 장소를 찾을 수 없는 건 마땅치 못했다. 함께 사는동물이 없는 것도 마땅치 못했다. - P35

언젠가 딸은 공원에서 다람쥐를 잡아 와 집에서 키우겠다고말하기도 했다.
그 말은 이뤄졌던가? 매일 아침 등교하기 전에 다람쥐꼬리를 빗겨 주는 게 딸의 새로운 일상이 됐던가? 아니,
딸이 원한 일임은 분명했지만 그 일 또한 끝내 실현되지않았다. 대신 딸은 침대에 누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고, 내게 F.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다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때로는 동물이 책보다 더 위안을 주기 마련이다. - P36

"너한텐 노란색이 좋아." 젬마는 고집했다. "노란색은 감정을 정화해 주고 시야를 넓혀 주거든." 이 말을 듣자 전에 살던 가정집에서 ‘잉글랜드 하늘색’이란 이름이 붙은 페인트로 침실 천장을 칠했던 기억이 났다. 천장은 찌뿌둥하니 흐린 하늘로 변신했다. - P36

해가 환히 내리쬐고 있을 때도 실내에는 비가 왔다. 밤이고 낮이고 비가 왔다. - P37

부르주아는 자기가 예술을 만드는 이유는 내면의 감정들이 자기를 능가할 정도로 크고 거대해서라고시류를 거슬러 밝힌 적도 있다. - P39

그래, 때론 느끼는 것 자체가 고역이고 고통이다. 나부터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겠다 작정하고 몇 달째 버텨 오던 중이 아니던가. 부르주아는 부모의 태피스트리 사업을 도우며 이른 나이에 바느질을 배웠다. 바늘이 마음의수선을 나타내는 물건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수선하고자 하는 건 과거라고 했다. - P39

지난날. 이것들과 반복해 맞서 싸우면서 나는냉장고 문에 삐딱하게 붙어 있는 이 두 예술가에게 눈길을 돌리곤 했다. 손수 발명한 형상을 조각의 형태로 침착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보여 준 특유의 주의력이 이들 각자에게 형량할 길 없는 아름다움을 준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아름다움만이 내게 중요했다. 불확실하던 그 시절, 내가 불확실에 내재된 불안을, 다음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감당할 수있게 해 준 얼마 안 되는 활동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서러움에서 부화한 걸지도 모를 구상이 떠오르거나 다가올 때마다, 이 착상이 내 집중된 주의력은 물론이고 분산된 주의력을 과연 이겨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수의 구상을 시간의 여러 차원에 걸쳐 펼쳐 보이는 것이 곧 글 쓰는 삶이라는 원대한 모험이다. 그런데 내겐 글을 쓸 곳이 없었다. - P40

하바나 럼을 마실 때마다 실리아는 쿠바가 이룩한 높은 문해율의 기적에 잔을 들어 건배했다. "참, 그리고 다음에 또 공동 보일러가 고장 나거든다들 내 집으로 목욕하러 와요."
세상 사람 모두가 실리아 같은 수호 천사를 하나씩은두어야 마땅하다. - P42

실리아는 내가 밤낮 안 가리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납득해 주었고, 적잖은 자기 친구들에게
"뒷마당에 숨어 지내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실리아의 감시가 있는 한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했다.
문을 두드려 대화를 시도하는 건 물론이고(날씨와 뉴스,
케이크가 도착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주인 마님의 긴급한전갈을 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렇게나 소중히 대우받고 또 존중받는 경험을 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건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것도 그래야 마땅하다는 식으로,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엔 몰랐지만 나는 그 헛간에서 세 권의 책을 완성하고 말 터였고, 그중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이기도하다. 헛간에서 나는 일인칭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나‘는 나 자신과 가깝기는 하나 나 자신이지는 않다. - P43

난 실리아에게, 본인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보이는지에 유독 신경 쓰는 환자일수록 꿈에 예컨대 시구 읊는 개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더 반색하기 마련이라는 점에 프로이트가 흥미를 느꼈다고 말해 주었다. 실리아는 머보이가 시를 낭독하는 날이 오거든 그땐 에이드리언이 쓴시를 낭독해야만 할 거라고 응수했다. 머보이의 이름이웨일스 이름 머바노이Myfanwy의 약칭이며, ‘내 사랑‘을 뜻하지만 또한 ‘내 귀한 이‘, ‘내 여자‘, ‘내 소중한 이‘를 뜻하기도 한다는 걸 난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실리아가 손에칼을 쥐고 있는 동안은 프로이트 이름을 그만 들먹이는게 좋겠다 싶었다. - P45

개는 친구를 사랑하고 적을 문다는 점에서 사람과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들은 순수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대상관계에서 늘 사랑과 증오를 뒤섞지요. - P45

나중에 그 헛간에서 처음으로 가을을 보냈을 때, 헛간지붕 위로 사과나무열매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폭발음처럼 요란했다. 그제야 나는 뉴턴이 사과가 돌이킬 수 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중력 이론을 못 박게 되었던 과정을 납득했다. 서서히 떨어지는 사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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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가 일러 주었듯 해피 엔딩인지 아닌지는 어디서 이야기를 끊느냐에 달려 있다. 7

바닷속을 누비다 고개를 내밀었더니 날씨가 급변해 있더라는 요지의 이야기였고, 밝히지 않은 자기의상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 P8

남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거다. 여자가 스스로를 조연으로 치부해 가면서까지 남자인 그를 주연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P8

"그만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요. 다른 사람은 이미 다 임자가 있으니까." - P9

해는 밝게 내리했다. 나는 수심 깊은 곳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년 만에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폭풍과 회오리 바람이 몰아들고 물결이 소용도는 가운데 파도가 내리치고 있었다. 처음엔 배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곧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다. - P13

간절히 원하는 것이야말로 혼돈이라고 믿게 됐다. 지따온 미래를 다는 신뢰할 수 없을 때, 유자받아 산 캠프옆자리에 잠든 사람이 못 미더워졌을 때 고개의 폭풍은 오랫동안 감독하고 있던 구름 속에서 나와 우리를 두리가 바라는 이 세계를 영위하는 방식에 한 딸 더 가까예리가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삶은 삐돌리고 무너진다. 우리는 화해되는 삶을 지키려 뭐든 손 닿는 대로 부여잡는다. 그러다 깨닫는다. 그 삶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 P13

그 시점에 결혼 생그대로 익사하리라는 것만큼은 명백했다. 그렇대도 결혼 생활은 남은 평생 내 뒤를 밟을 유령이기도 하다. 주역들을 그보다 비중이 작은 배역으로 격하시키지 않으면서도 끝끝내 지속하는 사랑에 대한 내 오랜 갈망, 이 갈망의 상실을 나는 평생 애도할 거다. 하기야 이 두 가지 모두를 이룬 사랑을 직접 본 적도 별로 없다 싶으니, 그런이상이란 애초 허깨비로만 존재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이 허깨비가 내게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걸까. 정치적인 질문임은 확실한데, 그렇다고 허깨비가 정치인인건 아니다. - P14

애벌레는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있지도않은 머리를 있는 듯이 꾸며 드러내기도 한다. - P15

사랑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그 틈새로 밤이 스며든다.
밤은 끝없이 이어진다. 분한 마음과 비난으로 들끓는다. - P15

밤새 이어지는 괴로운 내면의 독백은 해가 떠도 잦아들지 않는다. 나로선 이점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이토록 내마음이 ‘그이‘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그 사람에게 가로채였단 사실이 그건 점령당한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한 게 어느새 버릇이 되고 있었다. "우표나 새알을 하나·평생에 걸쳐 점차 키워씩 모아 수집한 컬렉션처럼갈수 있는" 변화하는 것으로 베케트가 설움을 묘사했듯이 말이다. - P16

사람을 고양시킨다. 업계 동료와 가을 낙엽을 헤치며 하이드 파크를 산책하는 동안에도 내 가방 끝에선 방울술이 발랄하게 흔들렸다. 동물적이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인 정체를 지닌 희희낙락하는 자유로운 영혼만 같았다.
나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해 보였다. - P16

"와이프가 또 차를 들이받았어요"
"아이이의 와이프는 이름조차 없구나. 금빛으로 저문 나무 사이를 지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저 와이프일 따름이구나이 남자는 행사 자리에서 만난 여자들 이름을 십중팔구 잊는 편이어서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래서 늘 이름 대신 누구누구의 와이프 또는 여자 친구라고 칭했다. 마치 그 여자들에 대해선 누구의 배우자또는 동반자인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 걸까? - P17

"사랑이 방명록에 서명만 했지 한집으로이사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사별을 겪고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 P18

왜 더 대담하지 못했던 건지, 무엇이 자신을 가로막았던 건지 자문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여러모로 출중한 인물이었던 고인이 생전에 선호한 아이리시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고인과 연인 관계였던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여러 세월에 걸쳐 연인이다 아니다를 반복한 사이였다고, 하지만 한 번도 상대방 앞에서 약해지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 P18

"내가 보기에 당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 P18

나는 난파해 바다 깊숙이 파묻힌 보트에서 먼 훗날 블랙박스가 발견되고, 그리하여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대화가-아이들 아버지 되는 사람과 내가 나눈, 실제로는 한번도 나눠 본 적 없는 가상의 대화가재생되는 장면을상상해 봤다. 먼 미래의 어느 비 오는 화요일에 블랙 박스를 발견한 인공 생명체들이 고통에 찬 인간들의 슬프고도 꿋꿋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러 하나둘 그 주위로 모여드는 광경을 그려 보았다. - P19

보트로 헤엄쳐 돌아가지 않은 것이야말로 내 평생 가장잘한 일이었다. 한데 그 대신 어디로 가야 좋단 말인가? - P19

내가 태어난 곳이자 어린 시절을 보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던 아홉살 때 기억이플래시백으로 눈앞을 스치고, 쉰 살에 살게 될 아직은 미지로 남은 삶이 플래시포워드로 펼쳐졌다. 내 삶의 기력을 어지간히 바쳐 지은 가정을 내 두 손으로 허물고 있는셈이었다. - P20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모두가 즐거이 누리는 가정, 순조롭게 기능하는 가정을 짓는 일은 수완과 시간과헌신과 공감 능력을 요한다. 다른 이들의 안녕을 건설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넉넉한 인심에서 비롯하는 행위다. - P20

가족이 살던 집을 허는 일은 시계를 부수는 일과 비슷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그 집의 갖가지 차원에 걸쳐 흐르고깃들었던가. 여우는 3~4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시간바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살던집 부엌에는 정원에서 3~4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시계가걸려 있었다. - P21

가정은 사랑이 깃든 가정과 사랑이 깃들지 않은 가정으로 나늴 따름이다. - P22

지난 삶을 새 삶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는 허황했다. 헌냉장고를 새 부엌에 들이자니 냉장고 부피가 너무 컸고 헌소파를 새 거실에 두자니 면적이 안 나왔으며 헌 침대를새 침실에 들이자니 모양이 맞질 않았다. 내 책점은 지난가정집에서 꾸려 온 다른 짐과 함께 상자째 차고에 쌓여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다른 어느 때보다 직업적으로 바빴던 그 시기에 서재라 부를 만한 공간이 증발해 버렸다는 게 나로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 P24

머릿속도 맑고 명쾌해졌다. 언덕 위 집으로 이사하고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간 갇히고 억눌렸던 것이해방된 모양이었다. 근골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는50대에 들어 나는 체력적으로 강해졌다. 기운 없이 지내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으므로 늘 기운이 넘쳤다. 아이들을 부양하려면 글을 써야 했고, 힘쓰는 일도 도맡아야 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 P25

가끔은 학생 시절처럼 밤을 틈타 침실에서 글을쓰기도 했는데, 그때와 달리 맥주와 대마초, 감자칩을 곁들이지는 않았다. - P27

살면서 벌과 조우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데 그래선지 숲이나 산림을 배경으로 한 동화에서 주인공이 벌레에 물리거나 쏘이는 경우가 왜그리 드문지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빨간 두건 소녀가 할머니에게 빵을 갖다드리러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 숲을 지나쳐야 했다면, 널 잡아먹겠노라 협박하는 늑대와 대면하기에 앞서 모기한테 종아리부터 뜯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P28

벌들이 내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기꺼이 나와 함께 살겠다고 의지를 보였으니, 그 나름대로 길조겠거니 싶었다. - P28

명성은 한 마리 벌..
노래를 가졌고—
침을 지녔지—
아,또한, 날개도. - P30

나는 ‘와이프‘ - 난 끝냈어 그걸-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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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문자 교육을 못 시키더라도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으론, 어른을 공경하고, 동기간과 이웃 간에 화목하고, 남녀가 함부로 섞이지 않고, 고독한 사람과 가난한 이를 측은히 여겨 보살펴야 한다는 유교적인 사람 노릇을 으뜸으로 쳤다.

반장을 뽑을 때는 선생님이 성적순으로 대여섯 명의 아이를 천거하면 아이들의 무기명 투표로 한 명을 뽑게 돼 있었는데 내 성적이 상위 대여섯 명 안에 들게 되자 나는 반장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그 영악하고 세련된 서울 아이들을 통솔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결코 당선될 리가 없는데도 몇 표 안 되는 내 표가 나올 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고향에 감사하고 싶은 것은, 훗날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이 나의 시골뜨기 근성에 힘입은 바가 크기 때문이다. 사교적인 모임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여러 갈래의 우호적 또는 적대적, 정열적 혹은 타산적 관계의 와중渦中으로 끼어들지 못하고 조금 비켜나 있고 싶어 하는 근성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점점 내 성격 형성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비켜나 있음을 차라리 편안하게 여기게 되었고, 와중에 있는 것보다는 약간 비켜나 있으면 돌아가는 모습이 더 잘 보인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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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함께 맡는 민들레꽃 내음은 참으로 좋았다. 그 조그만 게 피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뿌리 내린 흙의 저 깊은 속살의 꿋꿋함과 그 조그만 것까지 골고루 사랑한 봄바람의 어질고 부드러운 마음까지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녀석도 기억할까? 만 두 살 적의 어느 황홀한 봄날을. 그의 볼과 머리털에 머물렀던 할미의 눈길을.
손자야, 너는 애써 그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으리라.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 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 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 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내 애들 중 예능 방면의 천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를 알량하게 만나 묻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간혹 들긴 하지만 이다음에 ‘큰소리’치기 위해 지나친 극성을 떨 생각은 아예 없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 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 건 아이들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 · 미술 · 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6학년이 되기 전부터 할머니는 개성으로 완서가 수학여행 오면 떡 해 가지고 역까지 마중 나오실 것을 벼르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날짜가 정해지자 어머니가 할머니께 편지까지 올렸으니 마중 나오실 건 틀림이 없었다.

"보꾸엔쇼야, 보꾸엔쇼야."
그것은 아마 할머니가 입에 담으신 최초의 일본말이자 마지막 일본말이었으리라. 그러니 그 발음이 오죽했겠는가.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부르시는 소리는 목놓아 울고 싶도록 슬프게 들렸다. 아무도 할머니의 그 괴상한 발음이 내 이름이란 걸 알아듣기 전에 나는 슬픔과 미움과 사랑이 뒤죽박죽된 견딜 수 없이 절박한 마음으로 할머니한테로 뛰어갔다.

그때 나는 그게 무거워서 할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베보자기와 할머니의 당목치마가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그 전날 아마 밤잠을 못 주무시고 송편을 빚으셨을 테고, 새벽에 쪄서 정갈한 베보자기에 싸서 이고 아침나절에 20리 길을 걸으셨으리라.
이제 와서 회한이 가슴에 사무친들 무엇하리오. 그분이 돌아가신 지는 벌써 30년을 넘어 헤아린다.

음식을 덮어 놓기도 하고 만두 속이나 제육을 거기에 싸서 누르기도 하고 약식이나 빵을 찔 때 깔고 찌기도 한다. 음식에 닿는 섬유는 베가 아니면 딱 질색이다.
그 정결하고 시원하고 성깔 있고 소박한 섬유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때 할머니한테 저지른 나의 불효가 갚아지기야 하랴만, 그 섬유가 할머니의 손길만큼이나 좋은 걸 어쩌랴.

마치 우리의 인생행로에 요행보다는 불의의 재난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운 날보다는 쓸쓸한 날이 더 많듯이.

그 최초의 인식이야말로 자연과의 교감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달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쓸쓸할 때는 달도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기쁠 때는 달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집을 떠나 처음 서울에 와서 산동네 빈촌에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때 달이 서울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가.

달보다 휘황한 게 너무 많은 밤이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든, 싸워서 얼굴에 손톱자국이 나든 할머니와 어머니의 처방은 마음으로부터 안쓰러워하면서 그저 입김을 ‘호오, 호오’ 불어주시는 게 고작이었다.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슬퍼하지 않은 어린 날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런 일이 어머니의 입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복과 평화로 회상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 자식들이나 내 손자들이 훗날 그들의 어린 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문득 궁금하고 한편 조심스러워진다. 나보다는 내 자식들이, 내 자식들보다는 내 손자들이 따뜻한 입김의 덕을 덜 보고 자라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법까지도 매스컴이나 그 밖의 정보를 통해 대량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 오는 입김이 서린 가풍家風마저 소멸해 가고 있다.

입김이란 곧 살아 있는 표시인 숨결이고, 사랑이 아닐까?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심심해하지 않는 게 평화가 아니라 그런 일이 입김 속에서, 즉 사랑 속에서 될 수 있는 대로 활발하게 일어나는 게 평화가 아닐는지.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가 있다는 건 억지밖에 안 되리라. 숨결이 없는 곳에 생명이 있다면 억지인 것처럼.

동년배의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 근래에 사진을 몽땅 불태웠더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찍기도 좋아하고 찍히기도 좋아하던 친구였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게 그 친구의 입버릇이었는지라 그 친구의 결단이 장난이 아니라 비장하게 들렸다.

어차피 다 두고 죽을 걸, 남긴 물건이 요긴하게 쓰이건 천덕꾸러기가 되건 이승의 물건에 대해 저승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못 되나 사진만큼은 자식들이 귀찮아할 것을 생각만 해도 서럽고 괘씸해서 제 손으로 없애기로 작정하고 그대로 행했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자식들이 당황할 것만은 안 하고 싶어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거 몇 장은 남겼다니, 참으로 못 말릴 내리사랑이 아닌가.

내 사후에 내 사진들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구박받을 것을 생각하면 딴 유물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짠하니 언짢다.

어머머, 내 옆에서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이 사람이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잖아, 하며 지난 한순간에 고정된 그림을 보며 아파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느라 그렇게 시간이 걸렸나 보다.

아들을 잃었을 때, 내 여생에 다시는 근심도 기쁨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에 지쳤을 때 겨우 콩꼬투리만 한 새 생명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 그 새 생명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온몸이 떨리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나에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애를 낳은 딸네가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애가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로소 마음 붙일 곳이 생긴 것이다.

그 애의 생명력이 눈부시다면 내 생명력은 또 얼마나 징그러운가. 나는 딴 손자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 애를 얼마나 편애했던가.

그 한 장의 사진은 잊고 지내던 당시의 태산 같은 고통과 함께 온갖 자질구레한 기쁨과 슬픔을 불러내어 나를 부끄럽게도, 하염없게도 한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서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운 까닭이다.

나라는 촉수는 바로 현실이라는 시점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영상을 불러내서 상상력의 입김을 불어넣고 남의 관심까지 끌고 싶은 기억에의 애착이야말로 나의 글쓰기의 원동력이자 한계 같은 것이 아닐까, 요즈음 문득문득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 늙은 사람을 보면 저렇게 늙어서도 사는 재미가 있을까 의심했었는데 사는 재미란 죽는 날까지도 있게 마련인가 보다.

젊다는 것만으로 다 예쁘고 잘생겨 보이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이는 더 예뻐 보여 그 부모에게까지 치하를 하게 된다.

올해부터 나도 세배 오는 손자들 키나 재볼까. 해마다 키를 재보고 잘 먹고 무병해서 키가 많이 자란 놈을 칭찬해주는 할머니가 성적부터 묻고 안달을 하는 할머니보다 훨씬 귀여울 것 같다.

이왕이면 귀엽게 늙고 싶은 게 새해 소망이다.

나는 달달달 외는 것은 선수여서 그중에서 뛰어났다. 할아버지는 매우 만족해하셨고, 머슴아들은 엄한 스승의 손녀인 나에게 아부를 일삼았기 때문에 나도 한껏 교만해졌다. 그 애들에게 업어 달라기도 하고 함부로 잔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나보다 몇 배 덩치가 큰 머슴아들이 나의 부당한 명령에 굽신굽신 순종하는 게 나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 시절의 단발머리는 뒷머리를 뒤통수까지 높이 잡아 올리고 그 자리를 하얗게 면도질하는 것이어서 나는 뒷거울을 보고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서울 아이들은 다 그런 머리를 하고 깡총한 내리닫이(1930년대에 원피스를 부르던 말 - 편집자 주) 입고 학교 다닌다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때 그 시골의 안목으로는 너무도 기상천외의 머리였다.

"흥, 뒤에도 얼굴이 하나 더 있구나. 꼴 보기 싫다. 어서 가라."
할아버지는 이렇게 씹어뱉듯이 말씀하시고 쌈지에서 오십 전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 내 앞에 던지셨다. 데구르르 구르는 보오얀 은전을 엎드려 주우면서 맛본 이상한 슬픔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재롱부리는 시절과 하직하는 슬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여성이란 또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 이치에 대해 남자들처럼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

"언문은 세종대왕이라는 아주 어지신 임금님이 뒷간에서 뒤보시다가 문설주를 보고 생각해내신 글씨란다. 새로 만드는 데도 똥 누는 시간밖에 안 걸린 쉬운 글이니까 누구든지 하룻밤에 깨친단다."

그릇된 이해의 시작은 글에 대해서뿐이 아니었다. 성性에 대한 이해도 잘못 시작된 게 그 무렵이었다. 나는 그전에도 내가 계집애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나하고 신체의 일부가 다르게 생긴 아이가 사내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 계집애는 자라서 엄마가 되며 주로 집안일을 하고, 사내아이는 자라서 아버지가 되며 주로 힘든 바깥일을 한다는 남자 여자의 구실의 차이도 알고 있었다.

여자라는 게 모든 잘잘못 이전의 더 큰 잘못이 된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저지른 잘못이 아닌 태어난 잘못에 나는 도저히 승복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그 사건의 잘잘못을 설명하기를 단념하자 너무 분해서 온몸으로 난동을 부리다가 종당엔 경기까지 하고 말았다. 그러나 경기 끝에 기진한 나의 머리맡에서 어머니의 한숨 섞인 걱정도 역시 계집애 성질이 저렇게 고약해서 장차 팔자가 드셀까 봐 걱정이라고, 역시 계집애 한탄이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건 최고의 기대인 신여성은 당시로선 가장 팔자 사나운 여자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딸이 팔자 사나울까 봐 두려워했던 어머니의 모순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 슬프다.

딸 중엔 남자도 하기 힘든 전문직을 가진 애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 딸이 평생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야 할지 생각만 해도 안쓰럽다. 여자가 결혼하고도 일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큰딸 때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딸의 일을 위해서 내 일을 희생하느냐 마느냐로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을 갖기 위해서 딴 여자를 하나 희생시켜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느낌은 매우 맥 빠지고 낭패스러운 것이었다. 결국 나는 나의 일이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을 잘 지키고 아이 잘 기르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쪽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아무튼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1970년 봄 어느 날 단골 미장원에 가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뒤적이던 『여성동아』에서 여류 장편소설 모집이란 공고를 보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며 소설을 쓰고 싶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여성동아』와의 인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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