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대부분 그렇듯,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쯤 만나는 가늘고 긴 인연을 어쨌든 이어오고 있다.

망망대해 위에 홀로 배를 탄 사람이 수평선 너머로 지는 거대한 토성을 바라보는 상상도도 실렸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잡지 속 우주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오랜 친구가 흔히 그렇듯 서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지내다 문득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친구는 미술을 전공하는 유학생이 되어 있었다.

황도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이고, 별자리는 항상 같은 곳에 있는데 지구가 자전할 때 팽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스르르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가 하느라고 기준 면이 아주 조금씩 바뀌니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별자리 위치가 오늘날은 조금 틀어져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짐작 섞인 설명은 시작한 지 십오 초 이상 지나면 정적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상대방은 이미 내가 앉아 있는 뒤쪽 벽의 무늬를 감상하는 중이고, 나는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생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 사이가 대단히 차분해졌네. 이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언가 다른 화제를 꺼내야 하는군.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럽지?

거리와 각도, 시차를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옴싹 달라붙어서,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애쓰며 점 두 개를 칠판에 찍고는 돌아서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무미건조한 중년 아저씨의 눈에서 반짝, 소년이 지나갔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그런 귀여운 교수님들이 또 있었다. 퇴임을 목전에 둔 할아버지 교수님께 기본천문학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 천문학자 1세대에 속하는 분인데, 그 연세에도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셔서 천문학자가 아니라 조선시대 최고 무관이라고 해도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런 장수 같은 사람이 칠판에 별을 그릴 때면 어찌나 작고 예쁘고 단정하게 그리는지. 나는 교수님이 별을 그릴 때마다 너무 귀여워서 속으로 쿡쿡 웃었다. 칠판에 별을 그릴 일은 자주 있었다. 중요한 부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보이는 그대로 별을 논하니까 별. 성단을 논하니까 또 별.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나는 그 친구가 무엇이어도 좋았지만, 열정적이고 무해하고 아름다운 화가라는 점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숨막히게 아름다웠던 잡지 속 우주로부터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향해, 한 사람은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학부 연구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연구실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첫째는 내가 연구실 소속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으며, 둘째는 늘 학교 앞 쌀국숫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전부인 연구실 회식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였다.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늘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고분산 자료를 처리하기에는 내가 너무 초보였고, 관측 당일의 환경은, 습도 89퍼센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수님들은 한번 들어온 제자를 잘 내쫓지 않는다. 대단한 영재가 아닌 다음에야 제자라고 해도 다 성인 아닌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대학원을 얼쩡거리는 사람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종자들이라는 것을 교수님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인생 고민을 잘 들어주시지만 결론은 늘 ‘알아서 해라’인 교수님 덕분에, 인공위성 추적팀에 있던 내 책상은 ‘행성방’으로 옮겨 갔고, 모니터 속 스펙트럼은 목성으로 토성으로 혜성으로 옮겨가며 태양계를 종횡무진했다.

관측자료 처리는 학부생 수준에서도 성실하기만 하면 할 수 있었고, 그저 엉덩이 붙이고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일, 조금 전까지 137번쯤 해봤던 것을 138번째 다시 해보는 따위의 일은 내 적성에 잘 맞았다.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타이탄에 관심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의 관심을 갖는 자가 나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난 어릴 때부터 ‘서른 살 즈음에는 외제차를 타고 고층 오피스텔에 살며 매일 정장을 빼입고 다니는 직장인이 되어 있겠지’ 같은 허상 말고는 별다른 목표가 없는 인간이었다.

어쩌면 한 번도 선택된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절대적인 연구 주제가 되었달까.

그만두기엔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덜 아까울 때일까 늘 궁금해하며, 남은 경제력과 남은 정신력을 자꾸만 저울에 달아보는 시기.

심정적 대비가 갖춰지기가 무섭게 강의 자리가 들어왔다. 마치 신이 내게, 그래 너 준비가 되어 있구나, 하고 말하듯이.

떠날 날은 멀었고 그럴 자격도 갖추지 못했건만, 연구실을 떠나는 연습을 한다. 버리고 또 버리면서 마음을 같이 비운다. 나는 안다. 내가 이곳을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여기서 내가 얼마나 큰 위안과 기쁨을 얻어왔는지. 이곳이 내게 얼마나 큰 휴식이었는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병을 얻고 치료하고 또 얻고 버텼다.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아이가 잘 때 틈틈이 만든 프로그램 코드에서 몇 달 만에 치명적인 오타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했다. 한 해에 며칠은 관측하러 다녀오고 나머지 기간에는 관측한 자료를 분석하거나 다음 관측계획을 세웠다. 노래를 부르고 싸우고 화내고 성공하고 실패했던 곳, 군대에 다녀온 것도 아니고 휴학을 하고서도 나는 연구실에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 빠른 밀물이 나를 이곳에 옮겨놓았다. 해변을 걷다보니 어느새 물속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이제 물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분다.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지 나는 이를 딱딱 부딪으며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몸을 쑤욱 내밀기 전에 크게 숨을 들이켠다. 아직 나가지 못했다. 한 번 더 크게 숨을 쉰다. 아직도 나가지 못했다.

육지는 꼭 바다처럼 넓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기러기가 창공을 가로지르다 내 어깨에 물똥을 지린다. 아, 여기가 이제 내 집이구나, 하며 햇빛을 피해 눈을 살짝 찌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를 상상한다. 떠날 준비를 한다. 어디로 가든, 그동안 참 잘했어, 하고 나 자신을 격려한다. 안녕, 이라고. 1000만분의 1 데시벨로 말해본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고, 따뜻한 밥 한술 먹인 뒤 과감히 등 떠밀어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준다. 여러 길로 갈라진 평행우주 속 용감히 떠난 나와 용감히 남은 나, 모두를 찬양한다. 그렇게 또 한발 내딛는 연습을 한다. May the force be with me.

박사가 되고 나니 이제는 누가 나를 ‘박사님’이라고 부를 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사라졌다. 과장, 차장이나 중령, 대령은 몇 년 후에 칭호가 바뀌는데, 박사는 아무리 시간이 오래 흘러도 여전히 박사라고 불릴 수 있으니 세상 간편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죽으면 비문에도 ‘박사’라고 새긴다나. 박사가 되는 것은 내 이름 외에 불멸의 호칭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박사가 훌륭한 학자인 것은 아니며, 모든 질문에 학문적으로 옳은 답을 내놓는 척척박사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삶은 끊임없는 평가의 연속이다.

계약직 신분이라면 조만간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 수도 있다. 계약직 연구원의 급여는 본인 혹은 그 연구원을 담당하고 있는 윗분의 연구과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유니버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그 자체로서의 우주다. 별까지의 거리, 성운의 크기, 가장 멀리 있는 은하까지의 거리, 은하의 나이, 우주의 크기 등을 구하는 것을 두고 ‘우주를 측정한다’고 표현하는데, 천문학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분야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버릴 텐데, 다행히도 우주의 먼지는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꼭꼭 뭉쳐 별과 행성을 만들어내고, 별은 제 안의 연료가 소진되면 남은 것을 폭발적으로 내어놓으며 다시 우주에 먼지를 공급한다. 별이 모이고 모여 성단을 이루고, 은하를 이루고, 은하단을 이룬다. 밤하늘의 별은 흘러가고 행성은 때때로 역행했다 다시 순행한다. 일식과 월식은 예측에 맞게 일어난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가 살펴보는 분야를 ‘우주론cosmology’이라고 한다. 칼 세이건의 대표작인 그 책 이름이 『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 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주’ 따위로 섣불리 번역하지 않고 원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컴퓨터 자판에도 있는 ‘스페이스’는, 자판에서와 다름없이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칭한다. 지구 주변의 환경과 그곳에 존재하는 플라즈마 등의 입자를 연구하는 분야가 ‘우주과학space science’이다. 인공물체가 도달한 우주 공간의 범위는 지난 40여 년간 크게 확장되었다. 1977년에 발사한 행성탐사선 보이저 1, 2호의 끊임없는 항해 덕분이다. 보이저는 이제 태양계 끝자락을 넘어갔다. 태양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인 태양권계면heliopause을 지나 항해를 계속하는 보이저와 함께 우리의 우주는 매일,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안드로메다가 완전히 이상하고 정반대라서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하니까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은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형제와 같은 존재다. 게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가까워지는 중이다. 지금의 속도라면 우리은하는 수십억 년 후 안드로메다와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은하의 충돌은 돌끼리 부딪히는 것과는 매우 달라서, 태양 근처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 우리 태양계를 다 집어삼키거나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많아지는 것 말고는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다.

호주 밤하늘의 남십자성은 우리 밤하늘의 북두칠성에 견줄 만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을 주극성이라고 부르는데, 호주에서는 남십자성이 주극성이라서 생일이든 아니든 매일 밤 볼 수 있다. 남반구에서는 북두칠성을 볼 수 없다. 호주에 여행 갔더니 과연 공해가 없어서 북두칠성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더라는 호들갑은 떨지 말자.

생일 별자리와 관련된 황도 12궁은 우리나라에서도 호주에서도 주극성이 아니다. 뜨고 지는 ‘출몰성’인데, 계절에 따라 뜨는 시각이 바뀐다. 생일 별자리는 태양의 위치가 중요한 시스템으로, 내 생일에 태양이 내 별자리 구역에 임한다는 뜻이다. 해가 그토록 밝으니 바로 옆의 별이 눈에 보일 리가 있나. 애초에 생일 밤에 제일 잘 보이는 것을 생일 별자리로 정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점성술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목숨을 걸고 천체의 움직임을 읽는 진지한 운명론이다. 해와 달이, 행성과 혜성이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다.

"천문학이란 미래에도 변함없이 살아남을, 시간에 무관한 기본 지식"이라는 멋진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그걸 포스트잇에 적어 공책 맨 앞에 붙여두었다. 지당한 말씀이다. 천문학은 그렇다. 동시에, 천문학은 그렇지 않다. 2019년, 인류는 최초로 블랙홀의 사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빨려들어가면서 휘어지는 빛,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물질 일부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블랙홀의 윤곽을 관측한 것이다. 그런 기법을 고안하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마침내 블랙홀의 사진을 얻어낸 놀라운 천문학자들 덕분에 나는 다시 강의하게 된다면 첫 시간 퀴즈를 수정해야 한다. 아니,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수강생들이 답도 주고, 문제도 정정하고, 함께 생각도 해보는, ‘우주의 이해’는 그런 강의니까.

나는 지도교수님의 강의에서 몇 번인가 99점을 받았다. 1학년 때부터 대학원 연구실을 들락거리며 학부 연구생으로 지냈기 때문에 다른 강의는 몰라도 지도교수님의 강의만큼은 특별히 열심히 들었다. 백점에서 1점 모자란 점수. 당연히 출석, 과제, 시험에서 얻은 점수의 총합일 뿐이지만 나는 그 점수가 좋았다. 연구실 제자라고 무조건 좋은 점수를 얻은 게 아니라 공정하게 평가받았다는 방증인 것도 같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살필 줄 아는 겸손한 학자가 되라는 함의인 것도 같다며 혼자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 꿈보다 해몽이다.

지구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는 13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소빙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빙하기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추운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1650년에서 1700년 사이에 특히 온도가 낮아서 온 지구가 추위에 떨었는데, 이 시기를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라고 한다.

동서양의 천문 기록을 살펴보면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같은 지구상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히 그럴 터이다. 1604년 10월 9일, 밤하늘에 별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크고 무거운 별 하나가 제 수명을 다하고 장렬히 폭발하면서 갑자기 밝아진 것이다. 이것을 초신성이라고 하는데, 폭발할 때 급격히 밝아졌다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이 초신성의 기록을 남겼는데, 같은 시기 조선 관상감觀象監에서도 이를 관측한 기록이 있다. 시간에 따른 밝기 변화를 그려보면 케플러의 기록과 일치한다. ‘관상감 초신성’이나 ‘조선 초신성’이 될 수도 있었는데 ‘케플러 초신성’이라고만 불리는 것은 조금 서운한 일이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뒤져보며 나만의 결론을 찾아보는 기쁨, 남의 글을 짜깁기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담백하게 적어보는 즐거움을 발견한 친구들이었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가 아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대학에 다니는 바람에 ‘반값 등록금’이니 ‘국가장학금’이니가 국가적 관심사인 사회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다.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만의 분야에 뛰어든 전문가들이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해야만 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쳤다.

서양식 과학을 무조건 맹종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전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게 되었는지 관찰하고 탐구해볼 필요는 있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꼭 다녀야만 한다면, 대학 졸업장이라는, 그 한없이 틀에 박힌 문서 하나가 주는 즐거움과 보람을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칠 수 있기를, 넘치게 바란다.

살다보면 본인의 삶에서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이 생기니까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죠. 강의에 빠지는 대신 중요하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면, 그게 L 학생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 ‘중요하고 알찬 시간’이란 전공 분야 행사일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고, 신나는 취미생활일 수도 있고, 돈벌이나 가족 문제, 또는 그저 좌절하는 데 들어간 시간일 수도 있죠. 다 중요한 시간이고 인생에 꼭 필요한 경험이에요. 본인의 삶에 있어 이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하고 있었으니까, 결석이 많다고 해서 죄송할 건 없어요. 출결 상황을 기록하는 게 내 직업의 일부라서 확인하는 것뿐이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시험도 마찬가지예요. 세세한 지식이야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는 시대잖아요. 다만 문화센터도 아니고 대학이니까, 평가하고 성적을 내야 하니 과제도 내고 시험도 보는 것이지, 시험을 못 봤다고 해서 내가 불쾌해하는 것도 아니고, 점수가 낮은 학생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 기회는 쉬이 오지 않고, 그럴 시간도 만들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 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몸으로 하는 씨름이라면 샅바도 맬 줄 모르지만, 엉덩이 붙이고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는 씨름, 몇 시간째 좁은 화면 안에 시선을 가둬놓은 탓에 눈이 침침해지고 과도한 마우스질에 오른쪽 팔목이 아려와도 버티고 버티는 그런 종류의 씨름이라면 내가 좀 한다.

이상하게 낮에는 공부가 잘 안 된다. 밖은 너무 밝고, 각종 소리들로 부산하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새와 벌레가 짝을 찾는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연구실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이 들고 나는 소리…… 그리고 핑계를 좀 대자면 우선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많다.

같은 팀에 있는 대학원생이 하소연을 하러 오면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쳐준다. 내가 괴로울 때 그들이 그렇게 해주었듯이, 곪아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약해지려는 마음을 서로 달래주는 품앗이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보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정말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각이 되기 직전에야 닥치는 대로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들고 뛰쳐나간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 인테리어 잡지에는 실리지 않는 것들에서 뜻하지 않게
‘그 사람‘이 보일 때가 있다. 고향과의 거리, 지금까지 걸어온길,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라왔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새활신조와 장래의 꿈까지 - P5

다이닝룸이나 거실과 달리 부엌에는 꾸미려야 꾸밀 수 없는진짜 일상이 넘쳐난다. 성품과 개성이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나고 만다. - P6

별 생각 없이 먹고 사용하는 것에서 인생의 한 부분을 엿본다. 익명이기 때문에 보이는 본질도 분명 있다. 그런 부엌을 찾 - P6

아다니는 소소한 모험을 통해 도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그랬듯이, 부엌을 뒤로하고 나왔을 때의 따스하고 온화한 마음의 평화가 당신에게도찾아온다면 기쁘겠다. - P7

싱크대도 작고 조리 공간도 좁다. 하지만 여기서 만들지 못할 요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분명 도구의 힘이다. 바구니, 소쿠리, 석쇠, 종려나무 냄비받침, 철냄비.
그녀는 주방도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도구를 쓰고 싶어서 요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오래 써서 손에 익은 일본의 도구들이 하나같이 꺼내기 쉽고말리기 쉬운 최적의 장소에 배치되어 있다. - P16

낮 동안에는 가게에서 거의 서서 지낸다. 밤 10시가 넘어서야가게를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낡은 집이지만 역에서 가깝고, 부엌 창문으로 옆 건물 벽을 휘감은 담쟁이덩굴 잎이 보이는 것도마음에 든다.
"신기하게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돌아오면 요리를 하고 싶어져요. 그럴 땐 어김없이 푹 끓여 먹는 음식을 만들죠."
자신은 만들기만 할 뿐 먹지 않는다. 저녁때가 다 되어 점심을 먹는 탓에 그다지 허기가 지지 않기 때문이다. - P17

"요리가 완성될 즈음이면 자정에 가까워져 있는데, 그 시간을가장 좋아해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거든요." - P19

센 불로 휙휙 단숨에 볶는 요리보다 뭉근히 끓여 다음날 아침이면 맛있게 우러나는 요리를 즐긴다.
부엌에 놓인 테이블은 작업대로도 식탁으로도 쓴다. 남자친구는 식탁, 그녀는 가스레인지 앞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 여기에 있는다는 걸로 보아 냄비 앞은 그녀가 휴식을 취하는 지정석인 듯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그녀가 하루의 끝에 찍는 작은 마침표일 터. 깊은 밤 자신만의 지정석에서 마음을 가득 채우는 맛있는 냄새와 함께 하루가 저문다. - P19

"수납공간이 적어서요. 지금은 아이들도 늘어서 식구가 다섯이라 매일 막 써도 잘 깨지지 않고, 집에 있어도 거슬리지 않는질감과 디자인을 지닌 기능성 높은 그릇들을 조금만 갖고 있어요. 도자기 그릇 같은 건 나중에 여유롭게 즐길 시기가 오겠거니기다리는 거죠." - P23

‘세월과 함께 점점 깊은 맛을 더해가는가.‘
이것이 그들 마음속에서 집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질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야말로 이 집의 본모습이다. - P25

"날이 저무는 저녁때가 되면 집 안에 그림자가 드리워요. 그러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져요. 그늘도 꽤 괜찮구나, 모든 곳이 밝을 필요는 없구나 하고 이제는 생각하죠."
아내가 "맞아요, 저도 옛날에 남편이 쓰던 방을 사진으로 한번 본 적 있는데 ‘난 절대 이런 곳에서는 못살아‘ 싶더라니까요"
라며 웃는다. 분명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책을 읽은 순서대로아무렇게나 책장에 찔러 넣고, 서랍 닫는 걸 깜박깜박하고, 집이란 구석구석까지 밝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그녀와의 생활이진정한 안락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 P33

‘지혜를 짜내어 마지막까지 알차게 쓰는 것.’ -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는 마치 돈과 같은 속성이 있다. 언제나 다른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꿔치기할 수 있고, 그런 세계에서는 가해자를 희생자로 희생자를 가해자로 바꿔치기할 수도 있다. 문제를 불필요하게 꼬아놓을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죽기 살기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세상에서는 말이 칼이 된다.

뻬소아의 스승 까에이루는 ‘나는 무엇이든 내가 보는 것과 크기가 같다’고 했다. 이 구절을 읽은 뻬소아는 ‘이 문장은 새로운 별자리가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내게 준다. 위대한 정신의 힘. 나는 그것에 기초해서 모든 감정을 느낀다’고 했지만 나는 때때로 가슴 아리게도 그 반대로 한다. 인간은 자기 키 높이만큼만 볼 수 있어서 자기 키가 낮을 때 상대방도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방을 보는 시선은 나를 보는 시선과 다를 수 없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도 상대방에게 투사된다. 자신이 진실하지 않으면 타인도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과 이해관계만 믿는 사람들은 다른 가치를 믿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말을 하게 마련이다.

비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이 쏠리게 되면 상황을 낫게 바꿀 수도 있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말을 바꿔치기하면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세상을 왜곡한다.

이것이 바로 비본질주의다. 그가 잘생긴 것이 그가 살인자가 된 것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워즈워스의 말대로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어떤 말은 말하는 사람 자신의 힘까지도 뺏어버린다. 나의 경우 나에게 가장 관심이 없는 것은 과거의 나다. 인생의 한때 삶에 대한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그냥 남들이 사는 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질문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조차 멍청한 대답을 하거나 가장 무난해 보이는 남의 생각과 말을 따라했다. 나의 정체성은 앵무새였다. 그러나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아침에 왜 일어나는가 같은 질문이라도 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나 자신에게 충실했더니 아주 진부한 한 인간이 나타났다. 지금도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말을 아주 무서워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는 말도 무서워한다. 남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을 때 나는 괴물은 아니었지만 애물단지였을 것이 틀림없다.

다 잘될 거야.
사상 최악의 허무맹랑한 말.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 너라면 뭐든 할 수 있어!와 쌍벽을 이루는 비현실적인 말. 희망이란 무엇이든 이뤄줄 거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낙천적이고 순진한 말. 저절로 잘되는 것은 없다.

사람 다 똑같지 뭐. 별 수 있나?
사상 최악의 평준화.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다른 인간도 끌어내리는 말. 말한 사람이 아무런 구별 능력이 없다는 자백으로서만 쓸모 있는 말. 차라리 이에 비해선 ‘사람 다 저마다 다르지’가 관대한 말.

현실은 안 변해.
사상 최악의 근거 없는 믿음. 현실이 앞으로도 지금 그대로일 것이라는 말인데, 말하는 사람이 보는 눈도 없다는 증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인간에게는 아주 커다란 결함이 있는데, 그 결함은 어떤 상황을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설정하고 그 상황에 자신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썩었다고 너는 말한다. 마치 우리는 그렇지 않은 듯이.’

우리는 세상이 썩었다는 것을 개탄하느라 썩지 않은 세상에 대한 책임과 해야 할 일은 덜 이야기한다. 나 자신은 남의 흉이나 보고 있을 만큼 오만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결론부터 제시하는 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 위험이 있는 말.

기분 전환하자.
뭘 해도 기분이 잘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기분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할 때다.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말은 매사에 너 자신의 뜻과 주장을 관철하라는 말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자신의 운명에 잘 개입하는 법을 알아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누군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큰 고통을 안고서 힘을 내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기로 한 사람은 최종적인 승자일까? 아니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는다. 왜냐하면 삶은 절대 혼자서는 구축할 수 없으므로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는 것은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없게 만든다.

착하게 살아라.
‘착취는 기본’인 세상에서는 위험한 말. 착하게 살되 이기적일 수 있어야 한다. 이기적이되 자기중심적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도 상황이란 게 있잖아.
너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달라도 공유된 뭔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어떻든 서로 지킬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폭력이 난무하는 황량한 세계가 될 것이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질책으로 쓰이는 것은 세계에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 질서가 얼마나 문제덩어리인지 바로 그 문제를 덮게 된다.

베토벤의 말을 따르자면, 아름다움을 위해서 파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은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못 견디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까지 받아들이면 더이상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일은 무수히 많다. 그 현실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정말로 아무 일도 못하고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늘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방에 훅 간다.
아니다. 한방에 훅 가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빌리자면 지켜보는 이도 없고 상벌도 없는 평범한 나날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잤으며 작은 시간들을 어떻게 쪼개 썼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권위와 능력이 주어질지 정해진다.

지켜보는 이도 없고 상벌도 없는 평범한 나날을 내가 어떻게 썼는지는 결국 표면에 떠오른다. 마치 한방에 훅 가는 것처럼 떠오른다.

상투어를 아무 때나 진부하게 남발한 결과는? 우리 시대에 꼭 맞는 진부한 사람이 되어간다. 나의 정체성은 새로운 것 하나 없이, 관찰력도 나에 대한 애정도 없는 타인이 나를 보는 것에 딱 맞아떨어지게 그대로 되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고 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최선의 것이 아니라 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까뮈가 말한 것처럼 늙을수록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사람과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기쁨을 정당화하는 말을, 자신만의 성찰을 찾아내야 한다.

자신을 춥고 어두운 감옥에서 해방시킬 열쇠가 될 단어를 찾아내야 한다. 마야꼽스끼는 ‘나는 말의 위력을 안다. 인간은 영혼과 입술과 뼈로 살아 있으니까’라고 했는데 나도 마야꼽스끼처럼 말의 위력을 알아가고 있다. 우리가 가치를 둔 단어에 다양한 현실이 따라 붙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루쉰의 첫 소설집 제목은 ‘외침’이다. 그가 『외침』을 쓴 배경을 말해주는 한 단어가 있다. ‘적막감’. 루쉰이 말한 적막감은 이런 것이다. ‘낯선 이들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아득한 황야에 놓인 것처럼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하여 내가 느낀 바를 적막이라 이름했다.’

자신의 꿈이 실패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빌미로 자신도 꾸었던 꿈과 믿었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출발이다.

강한 사람은 어느 시대나 타인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지펴올린다.

나약한 사람은 어떻게든 남의 힘을 꺾고 에너지를 뺏는다.
약점을 바꾸느니 무기로 사용한다.
내가 너보다 더 힘들어! 그러니 내 말대로 해야 해. 힘듦을 도덕적 우월성의 근거로 내세운다.
자신의 무게를 남의 어깨에 척 하니 얹어놓는다.
타인을 축소시킨다.
인간정신을 빈약하게 한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말만 바꾼다.

강한 사람은 누가 봐도 지치고 쓰러질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훌륭한 생각을 해낸다.
문제에서 출발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작은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내면에서 더 나은 인간을 끌어낼 줄 안다.
이미 일어난 힘든 일에 짓눌리지 않고 더 나은 일을 위한 재료로 쓴다.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단련하고 자신을 바꾸는 싸움에서 영웅적이다.
자신의 무게를 남의 어깨에 올려놓지 않으려 애쓴다.
감상적이지 않고 연민과 동정에 기대지 않고 고통에 호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 기다리는 날이 오지 않을 가능성까지 받아들이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려고 한다.
적응만이 아니라 변화를 말하고 대안을 만들려고 하고 그렇게 사는 삶이 가능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강한 사람 옆에 있으면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고 아주 많은 일들이 쉬워진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그 순간, 그러니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대신 쾌감과 고통은 따로 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플라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장 감동적인 말입니다. 용감한 사람, 곧 죽음을 앞두고도 그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죽음조차도 소크라테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확실히 용기에는 어딘가 초연한 맛이 난다. 내가 이런 용기, 이런 의연함을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수세기 동안 한번만 사는 나는 나의 삶을 다른 누구의 삶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06년 아테나이에 여름정원을 구입한다. 그는 그곳에서 남은 삶을 살았고 동료들과 산책을 하고 우정을 나눴다. 죽을 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알려진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며 가장 아름다운 날이네.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과거에 나눴던 대화를 생각하면 영혼의 기쁨을 느낀다네.’

에피쿠로스는 삶은 불행하므로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했다.

기쁨은 오래가는 감사의 마음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의 웃음처럼 남는다. 고양이는 사라졌어도 그 미소는 하늘에 오래오래 남는다.

●나의 어머니 덕분에 나는 경건한 마음과 베푸는 마음, 나쁜 짓만이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는 마음과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태도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

●루스티쿠스 덕분에 나는 내 성격을 개선하고 손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훈계하는 말을 하지 않고, 금욕가나 박애주의자인 척하지 않고, (…) 책은 정독하며 읽어 피상적인 사고로 만족하지 않고, 수다쟁이들에게 성급히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 서문도 오래가는 감사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서문을 간략하게 인용하면 이런 형식이다.

●아폴로니오스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어떤 것도 행운에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섹스토스 덕분에 나는 상냥함과 (…) 가식 없는 위엄과, 친구들에 대한 배려와 (…) 관용을 알게 되었다. (…) 그는 또 인생에 필요한 원칙들을 적확하고 목표에 맞게 파악하고 정리할 줄 알았다.

●플라톤학파 철학자 알렉산드로스 덕분에 나는 누군가에게 "시간이 없소"라고 불필요하게 너무 자주 말하거나 그 말을 편지에 써서는 안되며,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시무스 덕분에 나는 (…) 어떤 상황에서도, 특히 병이 들었을 때도 쾌활할 수 있었다. 그는 (…) 맡은 일을 아무 불평 없이 해냈다. 모두 그가 말한 것은 그가 생각한 것이며, 그가 행한 것은 악의 없이 행한 것이라고 믿었다. (…) 그는 선행을 베풀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정직했다. 그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기보다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자신이 그에게 멸시당했다고 여기거나 감히 그보다 더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 덕분에 나는 성품이 온유해지고, 충분히 검토한 뒤에 일단 판단을 내리면 흔들림 없이 그것을 고수하게 되었다. 그분은 (…) 친구들을 지킬 줄 아셨고 (…) 모든 점에서 자족하셨고, 마음이 쾌활했다. 그분은 또 당신에 대한 요란한 박수갈채와 모든 종류의 아부를 차단하셨다. (…) 그분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 특출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시기심 없이 인정하고, 저마다 그 재능에 걸맞은 명예를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게 되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곤 했다. 사람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는 것은 좀더 나은 나를 찾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더 나은 사람을 믿고 본보기로 삼고 살아보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 덕분에 자연, 특히 나무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게 되었다. 은행나무를 유달리 좋아하는 아버지는 똑같은 은행알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반쯤 굽은 허리로 은행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아버지 덕분에 근본적으로 경이감을 갖고 사물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 덕분에 작은 일에도 평생에 걸쳐 감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눈이 내려!’ ‘천지사방 꽃향기 때문에 어질어질해.’ ‘귀뚜라미 운다!’ 내 어머니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말들이다. 많은 인간적 약점이 있지만 그것을 추진력으로 삼지 않을 때 얼마나 강한지도 몸소 보여줬기 때문에 나 역시 내 약점에 힘을 싣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은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단호할 때는 한없이 단호했다.

그는 인간 삶에 드리워진 고통스러운 면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덜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 썼고, 그 일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생색도 짜증도 내지 않고 해냈다. 그 과정에 자신이 겪은 가난과 궁핍함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나는 그 덕분에 체호프가 단편 「굴」에서 한 말, ‘나는 그의 옷이 낡을수록 그를 더 사랑했다’는 말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는 유머에 윤리를 결합시킬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종종 즐거운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빠져들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을 보자마자 나와 친구는 말을 잃었다. 마치 새벽처럼, 영원히 지치지 않고 돌아오는 우리의 꿈, 빛나는 날에 대한 꿈, 뜻밖의 좋은 일에 대한 꿈 같았다.

대체 천사는 누구일까, 혹시 내 옆을 스치는 저 많은 사람들 중에도 있을까? 소로우는 친구 에머슨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은 성스럽다.’ 특히 이 그림 속에서 천사는 왜 2인조인가.

나도 인간이므로 내 영혼에도 틀림없이 사랑에 빠지게 만든 비밀스러운 빛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천사가 어두운 순간에 나타나는 이유? 우리가 어두울 때 빛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풍부한 어두움이 있으므로 천사도 그만큼 더 자주 나타나야 한다.

성스러움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파장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에 남을 뿐만 아니라 영혼과 감정, 피를, 삶을, 입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신비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것을 믿는 것 말고는 삶이 신선해지는 다른 방식은 아직은 모르겠다.

책장을 넘길 때도 천사의 날갯짓 소리를 듣는다. 책을 읽는 사람의 구부린 어깨에서 투명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을 본 일도 있다. 그 날개는 주는 자(저자)나 받는 자(독자)나 순수한 채로 서로의 영혼을 나누었기 때문에 투명해 보였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지 모를 것이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러웠다.

내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빛나는 이유는 그들이 마음속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신뢰, 믿음, 너그러움, 이런 것들은 몸 밖으로 흘러나오면서 빛이 된다. 그들은 안을 때 서로의 장점뿐 아니라 무한한 신뢰, 믿음, 너그러움도 함께 안는다.

사랑하는 무엇인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빛이 날 뿐만 아니라 힘도 세어진다. 우리가 힘을 내는 방식이 그렇다. 우리는 세상과 나 사이의 연결고리에 의지해서 힘을 낸다. 연결고리가 좋은 것이라면 우리의 삶도 좋은 것이다. 연결고리가 강력한 것이면 우리의 힘도 그만큼 세어진다.

나와 세상 사이의 연결고리는 늘 책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늘 책으로 돌아갔다. 밤과 책의 위안으로 돌아갔다. 응답 없는 세상과 삶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랑을 갖가지 아름다움으로 바꿔놓은 것이 책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책이 날개를 펄럭일 때 떨어져나오는 황금빛 가루에 의지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를 달래고, 은밀히 격려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버티고, 집요하게 미래를 위한 소원을 품고, 슬픔을 잠으로 바꾸고, 꿈을 꿨다. 그리고 세상으로 돌아갔다.

소로우는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지를 여름 햇빛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은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지를 책을 읽는 밤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글을 쓸 때 나는 항상 독자인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의 고독을 떠올리고, 당신의 아까운 시간이 이 책으로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당신의 삶 또한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혼자서 책을 읽는 당신에게 말할 필요도 없이 기쁜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빠스깔 끼냐르의 말을 빌리자면 고독 없이, 시간의 시련 없이, 침묵에 대한 열정 없이, 두려움에 떨며 비틀거려본 적 없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무엇 안에서 방황해본 적 없이, 우울함 없이, 우울해서 외톨이가 된 느낌 없이 기쁨이란 없다.

내가 먼저 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바다로 나가긴 했는데 어디까지가 얕고 어디서부터 깊은지 알 수 없으니 조금 나갔다가 재빨리, 그보다 더 많이 후진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계속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았다. 영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두려움이 용기를 이겼다. 그때 저 머나먼 아스라한 곳이 아니라 거의 코앞이나 다름없는 해변에서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창밖엔 결코 성공하지 못할 자식을 바라보는 늙은 아버지의 한숨 같은 저녁 하늘이 펼쳐져 있곤 했다. 혹은 아버지가 사랑한 방식으로 삶을 사랑할 수 없기에 기대를 저버리고 성공하지 않기로 결심한 아들같이 창백하게 질린 달이 하늘에 떠 있기도 했다. 나는 너희 둘 다 똑같이 사랑한다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었다.

그날도 똑같았다. 그 무렵 읽고 좋았던 책, 그 무렵 만나 마음에 남은 사람, 그 무렵 듣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각자의 인생 이야기도 조금씩 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 어김없이 밀려오던 질문, 인생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들려줬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중 많은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으면서도 얼마나 피할 수 없었던지……"

당장 사는 데 아무런 실질적 도움이 될 리 없는 책 이야기들. 이를테면 『적과 흑』의 주인공 줄리앙 쏘렐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남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혼자 있을 때 모습이 훨씬 좋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던 책에 의지하곤 한대"라고도 말했다.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참 좋았다. 나도 내가 한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설익은 충고나 지혜를 가장한 말들을 남발하지 않았다. 아니,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찾아올 아침을 바라보듯 자신이 쏟아낸 말, 들은 말, 열정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무자비하게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 밤, 우리는 서로 단단해지려고 애썼던 것 같다.
우리는 그 새벽에 헤어질 때 뒤돌아보지 않았다. 우린 각자의 하늘을 머리에 지고 그냥 걸어갔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견디고 살아냈다. 다만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뜻밖의 좋은 일’이라는 것도 실은 마음속으로 수많은 날 기다리던 것이란 걸. 그렇다면 우리에게 한가지 좋은 일이 생기기 위해서 그전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

타인의 슬픔을 슬픔으로, 타인의 기쁨을 기쁨으로 느끼는 능력이 아직 내게 남아 있음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에 고마웠다.

쿄오또 여행자들은 골목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곤 하는데 나도 그랬다. 모퉁이를 돌면 커다란 꽃 핀 나무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모퉁이는 다른 길로 이어지고 초록색 수로는 맑고 청결했다. 쿄오또는 사람이 너무 외롭지 않도록 만들어진 도시 같았다.

사시사철 오직 쿄오또만 여행하는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쉼 없이 일한 젊은 날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일할 때는 거의 매일 노트에 그날 한 일의 기록을 꼼꼼히 남겨두었다. 시간이 흘러 더이상 젊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노트들을 꺼내 읽어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하나도 없잖아! 이제부터 남의 돈벌이를 위해서 내 삶을 없애버리는 일은 그만하겠어! 먹고사는 문제에 그만 매달리겠어. 좀 놀겠어!’라고 결심을 하고 발견한 곳이 쿄오또였다는데, 왜 하필 쿄오또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과 관계없이 가슴에 묻혀 있던 쿄오또가 생각났다.

"성숙한 인간에게 이유 따위는 필요 없지요. 바람 따라 길 따라. 하이꾸의 대가 바쇼오도 노래했어요. 제비꽃을 이야기하는 것도 여행의 하나니. 꽃이나 보시지요."

3월 말의 쿄오또는 아직 찬란한 벚꽃의 도시는 아니었다. 사방에 벚꽃이 필 기미만 가득한 도시였다. 곧 시작될 봄에 대한 암시로 가득한 도시였다. 곧 다가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였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자유롭지 않은 거지요? 우리의 삶은 수동적으로 참아야 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면서 나아가는 거지요? 위기상황은 이것을 가장 깊게 느끼는 상태이기도 한 거지요?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되면 깊은 무력감, 깊은 수동성, 타인의 처분에 맡겨진 듯한 나를 느끼지만 어떻게든 정신력과 능력으로 상황을 극복하려고 투혼을 발휘하고 분투하니까요. 그래서 위기상황은 삶의 신비로운 충동이 제일 잘 보이는 순간이기도 한 거지요?

우리는 소설 『나자』의 주인공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드는 우연의 일치를, 자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줄 빛의 광선을, 계시를 보여주는 사건을 만나기를’ 바라면서 산책을 하는 건지도 몰라요.

빛이 제일 잘 보일 때는 우리가 어둠속에 있을 때라고 해요. 우리 마음은 늘 우리 마음이 닮고 싶은 것을 찾아냅니다.

저 꽃망울들도 겨울에는 틀림없이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그다음에 그토록 기쁨을 주는 존재로 탄생한다는 사실에 사랑과 우정을 느꼈다.

아름다움만큼 반가운 것은 없었다. 그 순간 세상은 따뜻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치누아 아체베는 가만히 앉아서 일이 잘 풀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다,라고 말했는데 내 생각도 같다.

언어는 삶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 관한 진실은 내가 입으로 뭘 주장하는가가 아니라 무심코 하는 말, 무의식적으로 하는 동작에 담겨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나도 믿을 때는 공허하지 않다.

삶에 시달리면서도 가볍게 되고, 삶이 꿈이란 것을 알고 싶었다.

이렇게 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노동을 하고 아침을 맞고 바쁘게 일상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할 때도 있다. 삶이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힘을 내는 인간들이 신비롭다.

게다가 존중할 수 없는 생각은 넘쳐나고 친절이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맹렬히 싸워야 할 때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은 나만큼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란스럽기는커녕 질서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그 질서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현실은 부당할수록 어쩐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환상 없이 보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제노의 의식』을 쓴 스베보에 대해서 그의 친구들은 스베보는 삶이란 별로 바람직하지 않거나 그다지 애착을 가질 만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강렬하게 열망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나도 그렇게 기억되면 참 좋을 듯했다.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의 무거움과의 싸움이고 꼭 필요한 일을 하면서 산다는 느낌, 그것이 삶의 가벼움이라고 생각했다.

‘지옥은 내가 간다!’

오오에 켄자부로오가 아이를 살리고 다가올 일을 어떻게든 감당하기로 결심하면서 생각한 문장이 바로 ‘지옥은 내가 간다’였다. 그런 선택을 한번 하고 끝낸 것이 아니다. 오오에 켄자부로오는 인생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마다 ‘더 힘든 쪽’을 선택해버리고는 ‘지옥은 내가 간다’를 되뇌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길을 갔고 그것이 삶에 일관성, 혹은 방향성을 줬다고 말했는데 나는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이 생각에 참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어려운 것은 ‘발견을 자신에게 합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 책의 문장을 되뇌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정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미래를 만들어보는 것이 구원이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날 혈안이 되어서 가장 좋은 문장을 찾아서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을 모두 다 뒤집어볼 기세가 돼버렸다. 내게도 인생의 한 문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한 문장은 예언이자 신탁, 단테의 베아트리체요, 신데렐라의 마술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요, 미래를 향한 황금열쇠 같아 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식 된 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슬픔과 함께 멍에를 벗은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불효한 것일까. 그러나 솔직한 심정이 그러했다. 더는 모순된 이중의 고향, 두 개의 허상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지자, 허상에 바쳐진 애증은 헛된 정열일 뿐 결코 진정한 힘은 아니다, 앞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실상뿐 아니라 자신의 실상까지 바로 보는 것만이 진정한 힘이 되리라는 새로운 희망도 생겼다.

원한이란 반드시 복수의 욕구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평화가 목적일 뿐 아니라 수단도 되어야 하는 통일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정서가 아니다.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고인이 된 지 오래인 왕년의 스타의 연애편지나 착용하던 신발, 속옷 등속이 고가로 팔렸다는 해외 토픽을 접하면 그걸 그렇게 비싸게 사서 어디다 쓰려는 걸까 공연한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생전에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면이 드러난 편지가 공개되는 걸 보면 세속의 호기심은 저승길까지 마다 않고 쫓아다니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가방은 그런 작은 단서도 없을뿐더러 잃어버린 주인의 애착과 성의까지 없다는 증거니까 귀중품이 들어 있으리라는 기대는 안 해도 된다.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숨은 욕망은 국적이나 개인의 인격 차에 상관없이 공통된 것인가 보다.

속 검은 사람 앞에서일수록 반듯한 내용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안에는 때 묻은 속옷말고 더 창피한 것도 들어 있었다. 파리에 들렸을 때에 슈퍼에서 봉지에 든 인스턴트커피를 잔뜩 사서는 옷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선 커피가 비싼 귀물이었다. 외국 갔다 오는 사람이 커피 한 봉지만 선물로 주어도 고맙고 반갑고 그랬기 때문에 나도 친지들에게 그걸 선물할 작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궁상맞은 선물인가. 나의 그 큰 여행가방 안에는 1980년대 내 나라의 궁핍과 나의 나태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한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그때는 보이는 모든 것이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젊은 내 새끼들의 옷깃과 검은 머리칼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조차도 어디 멀고 신비한 곳으로부터 그 애들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이라고 불어온 특별한 바람처럼 느꼈으니까. 아마도 나는 그때 곧 세상을 하직할 남편의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전국의 도로란 도로가 엄청나게 정체하는 광경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돌아갈 곳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아이들한테까지 그것으로 생색을 내곤 했다. 마치 집 없는 거지가 남의 집 불타는 걸 고소하게 구경하면서 제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집이 없어 불날 걱정 안 해도 좋으니 얼마나 좋으냐. 다 애비 덕인 줄 알아라" 했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거지 아범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 가장 처량해진 나이이다. 만추晩秋처럼. 돌아갈 고향이 없는 쓸쓸함, 내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줄 웃어른이 없다는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예년에는 한 번 가던 추석 성묘를 올해는 두 번 다녀왔다.

왜 혼자 오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먼저 간 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갈 때마다 가슴이 에이는 듯 아프던 데가 이상하게 정답게 느껴지면서 깊은 위안을 받았다.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 떨어지면, 혹시 저 늙은이가 살아날까 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한다면, 그건 아마 이 세상에 대한 나의 마지막 농담이 되겠지. 실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

석 달도 안 된 어느 날 느닷없이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코에 와 닿았다. 살 의욕이 없이 어떻게 식욕이 생겨날 수가 있는지, 나는 짐승 같은 나의 육체에 모멸감을 느꼈지만 결국은 식욕에 굴복하고 말았다.

신은 각자가 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고통은 결코 주지 않는다는 말은 역시 맞는 말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말이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먹을 거 다 먹고, 새 옷도 사 입고, 남은 자식들의 작은 효도에 웃고, 조금만 섭섭하게 굴어도 삐치면서,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꽃 피면 즐겁고, 손자들 보면 대견하니 사람 할 짓은 다 하고 살고 있지 않은가? 때때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처연해지곤 한다.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자식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면 사랑의 기쁨인들 있었으랴. 추醜가 없으면 미美도 없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기쁨이 있듯이,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때로는 나에게 죽음도 희망이 되는 것은 희망이 없이는 살아 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현란하게 흥청대는 첨단의 소비문화 한가운데서 미아가 된 것처럼 우두망찰했다. 그때 그 미아의 느낌은 공간적인 게 아니라 시간적인 거여서 어딜 봐도 귀로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무만 잘라 먹고 남은 총각김치의 무청을 차곡차곡 모아두면 나중엔 표면에 골마지(물기가 많은 음식 표면에 생기는 곰팡이와 비슷한 물질 - 편집자 주)가 낀다. 그걸 바락바락 물에 빨아 우려내고 나서 멸치나 몇 개 들어뜨리고 지진 된장찌개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걸 물에 행굴 때 단 한 오라기라도 떠내려갈까 봐 안달을 한다. 그래서 아줌마는 나한테 할머니는 우거지라면 치를 떤다고 흉을 본다. 아무리 헹구어도 남아 있는 곰삭은 시간의 맛, 절대로 인공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그 맛은,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고독의 맛이기도 하다.

아무하고도 그 맛의 밑바닥, 궁핍했던 시절이 내 혀끝에 남긴 맛의 오지만은 나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보잘것없는 것을 아귀아귀 포식하고 나면 슬프다.

내 나이란 더는 이사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할 나이 아니던가.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분꽃, 과꽃, 봉숭아, 백일홍, 한령, 꽈리, 옥잠화 따위 내 유년의 뜰의 촌스러운 화초를 사다 심거나 씨를 얻어다 뿌리는 일이었다.

내 마음은 너무 오래 정처 없이 떠돌았다. 나도 임의로 할 수 없던 내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유턴을 해서 시발점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걸 요즈음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평화롭게 소멸하고 싶다. 내가 재현하고 싶은 건 옛날 꽃이 아니라 어린 날 맛본, 폭 파묻혀 단잠에 들고 싶은 요람 같은 평화다.

그런데 떠날 준비가 정을 떼는 게 아니라, 마음 붙일 것들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것이라니. 나는 옛날 채송화를 만난 걸 좋아라, 씨를 받으며 스스로를 나보다도 훨씬 나이 많은 남 바라보듯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 손바닥의 아픔으로 내 새끼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타들어 가던 애간장이 스르르 녹게 된다. 저세상에서 내 새끼와 다시 만날 때도 그러고 싶은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엑스터시 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나 최고의 엑스터시도 육신을 통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걸 어이하리.

몸은 늙어도 마음은 마냥 꼬장꼬장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어느 틈에 허물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구두쇠니까 옳다구나 거저 탈 게 뻔한데도 왜 그렇게 그의 명확한 답변을 들으려고 안달을 했는지 모른다.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운전교습소에서 쿠폰을 끊어다 놓고 그에게 운전을 가르치려고 시도해본 적도 있다.

전철을 거저 타는 노인을 무시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런 제도는 수입이 없어진 노년층을 위해 국가에서 할 수 있는 복지 제도니까 65세 이후에도 수입이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표를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했다. 나로서는 그것이 조금도 잘난 척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도 친구들하고 같이 어디 갈 때 혼자서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좀 신경이 쓰이긴 했다.

연탄 장수 아저씨하고 어떻게 잘 통해 놓으면, 그만한 연탄을 확보해 놓을 수 있을까. 내가 가을과 함께 골몰하는 생각은 고작 이런 구질구질한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이 투명하게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다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일까.

계절의 변화에 신선한 감동으로 반응하고, 남자를 이해관계 없이 무분별하게 사랑하고 할 수 있는 앳된 시절을 어른들은 흔히 철이 없다고 걱정하려고 든다. 아아, 철없는 시절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한꺼번에 많은 아름다운 것을 봐두려고 생각하면 그건 이미 탐욕이다. 탐욕은 추하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窓이 허락해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 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