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대부분 그렇듯,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쯤 만나는 가늘고 긴 인연을 어쨌든 이어오고 있다.
망망대해 위에 홀로 배를 탄 사람이 수평선 너머로 지는 거대한 토성을 바라보는 상상도도 실렸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잡지 속 우주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오랜 친구가 흔히 그렇듯 서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지내다 문득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친구는 미술을 전공하는 유학생이 되어 있었다.
황도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이고, 별자리는 항상 같은 곳에 있는데 지구가 자전할 때 팽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스르르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가 하느라고 기준 면이 아주 조금씩 바뀌니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별자리 위치가 오늘날은 조금 틀어져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짐작 섞인 설명은 시작한 지 십오 초 이상 지나면 정적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상대방은 이미 내가 앉아 있는 뒤쪽 벽의 무늬를 감상하는 중이고, 나는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생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 사이가 대단히 차분해졌네. 이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언가 다른 화제를 꺼내야 하는군.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럽지?
거리와 각도, 시차를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옴싹 달라붙어서,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애쓰며 점 두 개를 칠판에 찍고는 돌아서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무미건조한 중년 아저씨의 눈에서 반짝, 소년이 지나갔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그런 귀여운 교수님들이 또 있었다. 퇴임을 목전에 둔 할아버지 교수님께 기본천문학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 천문학자 1세대에 속하는 분인데, 그 연세에도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셔서 천문학자가 아니라 조선시대 최고 무관이라고 해도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런 장수 같은 사람이 칠판에 별을 그릴 때면 어찌나 작고 예쁘고 단정하게 그리는지. 나는 교수님이 별을 그릴 때마다 너무 귀여워서 속으로 쿡쿡 웃었다. 칠판에 별을 그릴 일은 자주 있었다. 중요한 부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보이는 그대로 별을 논하니까 별. 성단을 논하니까 또 별.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나는 그 친구가 무엇이어도 좋았지만, 열정적이고 무해하고 아름다운 화가라는 점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숨막히게 아름다웠던 잡지 속 우주로부터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향해, 한 사람은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학부 연구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연구실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첫째는 내가 연구실 소속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으며, 둘째는 늘 학교 앞 쌀국숫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전부인 연구실 회식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였다.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늘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고분산 자료를 처리하기에는 내가 너무 초보였고, 관측 당일의 환경은, 습도 89퍼센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수님들은 한번 들어온 제자를 잘 내쫓지 않는다. 대단한 영재가 아닌 다음에야 제자라고 해도 다 성인 아닌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대학원을 얼쩡거리는 사람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종자들이라는 것을 교수님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인생 고민을 잘 들어주시지만 결론은 늘 ‘알아서 해라’인 교수님 덕분에, 인공위성 추적팀에 있던 내 책상은 ‘행성방’으로 옮겨 갔고, 모니터 속 스펙트럼은 목성으로 토성으로 혜성으로 옮겨가며 태양계를 종횡무진했다.
관측자료 처리는 학부생 수준에서도 성실하기만 하면 할 수 있었고, 그저 엉덩이 붙이고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일, 조금 전까지 137번쯤 해봤던 것을 138번째 다시 해보는 따위의 일은 내 적성에 잘 맞았다.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타이탄에 관심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의 관심을 갖는 자가 나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난 어릴 때부터 ‘서른 살 즈음에는 외제차를 타고 고층 오피스텔에 살며 매일 정장을 빼입고 다니는 직장인이 되어 있겠지’ 같은 허상 말고는 별다른 목표가 없는 인간이었다.
어쩌면 한 번도 선택된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절대적인 연구 주제가 되었달까.
그만두기엔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덜 아까울 때일까 늘 궁금해하며, 남은 경제력과 남은 정신력을 자꾸만 저울에 달아보는 시기.
심정적 대비가 갖춰지기가 무섭게 강의 자리가 들어왔다. 마치 신이 내게, 그래 너 준비가 되어 있구나, 하고 말하듯이.
떠날 날은 멀었고 그럴 자격도 갖추지 못했건만, 연구실을 떠나는 연습을 한다. 버리고 또 버리면서 마음을 같이 비운다. 나는 안다. 내가 이곳을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여기서 내가 얼마나 큰 위안과 기쁨을 얻어왔는지. 이곳이 내게 얼마나 큰 휴식이었는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병을 얻고 치료하고 또 얻고 버텼다.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아이가 잘 때 틈틈이 만든 프로그램 코드에서 몇 달 만에 치명적인 오타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했다. 한 해에 며칠은 관측하러 다녀오고 나머지 기간에는 관측한 자료를 분석하거나 다음 관측계획을 세웠다. 노래를 부르고 싸우고 화내고 성공하고 실패했던 곳, 군대에 다녀온 것도 아니고 휴학을 하고서도 나는 연구실에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 빠른 밀물이 나를 이곳에 옮겨놓았다. 해변을 걷다보니 어느새 물속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이제 물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분다.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지 나는 이를 딱딱 부딪으며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몸을 쑤욱 내밀기 전에 크게 숨을 들이켠다. 아직 나가지 못했다. 한 번 더 크게 숨을 쉰다. 아직도 나가지 못했다.
육지는 꼭 바다처럼 넓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기러기가 창공을 가로지르다 내 어깨에 물똥을 지린다. 아, 여기가 이제 내 집이구나, 하며 햇빛을 피해 눈을 살짝 찌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를 상상한다. 떠날 준비를 한다. 어디로 가든, 그동안 참 잘했어, 하고 나 자신을 격려한다. 안녕, 이라고. 1000만분의 1 데시벨로 말해본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고, 따뜻한 밥 한술 먹인 뒤 과감히 등 떠밀어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준다. 여러 길로 갈라진 평행우주 속 용감히 떠난 나와 용감히 남은 나, 모두를 찬양한다. 그렇게 또 한발 내딛는 연습을 한다. May the force be with me.
박사가 되고 나니 이제는 누가 나를 ‘박사님’이라고 부를 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사라졌다. 과장, 차장이나 중령, 대령은 몇 년 후에 칭호가 바뀌는데, 박사는 아무리 시간이 오래 흘러도 여전히 박사라고 불릴 수 있으니 세상 간편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죽으면 비문에도 ‘박사’라고 새긴다나. 박사가 되는 것은 내 이름 외에 불멸의 호칭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박사가 훌륭한 학자인 것은 아니며, 모든 질문에 학문적으로 옳은 답을 내놓는 척척박사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삶은 끊임없는 평가의 연속이다.
계약직 신분이라면 조만간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 수도 있다. 계약직 연구원의 급여는 본인 혹은 그 연구원을 담당하고 있는 윗분의 연구과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유니버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그 자체로서의 우주다. 별까지의 거리, 성운의 크기, 가장 멀리 있는 은하까지의 거리, 은하의 나이, 우주의 크기 등을 구하는 것을 두고 ‘우주를 측정한다’고 표현하는데, 천문학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분야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버릴 텐데, 다행히도 우주의 먼지는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꼭꼭 뭉쳐 별과 행성을 만들어내고, 별은 제 안의 연료가 소진되면 남은 것을 폭발적으로 내어놓으며 다시 우주에 먼지를 공급한다. 별이 모이고 모여 성단을 이루고, 은하를 이루고, 은하단을 이룬다. 밤하늘의 별은 흘러가고 행성은 때때로 역행했다 다시 순행한다. 일식과 월식은 예측에 맞게 일어난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가 살펴보는 분야를 ‘우주론cosmology’이라고 한다. 칼 세이건의 대표작인 그 책 이름이 『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 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주’ 따위로 섣불리 번역하지 않고 원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컴퓨터 자판에도 있는 ‘스페이스’는, 자판에서와 다름없이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칭한다. 지구 주변의 환경과 그곳에 존재하는 플라즈마 등의 입자를 연구하는 분야가 ‘우주과학space science’이다. 인공물체가 도달한 우주 공간의 범위는 지난 40여 년간 크게 확장되었다. 1977년에 발사한 행성탐사선 보이저 1, 2호의 끊임없는 항해 덕분이다. 보이저는 이제 태양계 끝자락을 넘어갔다. 태양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인 태양권계면heliopause을 지나 항해를 계속하는 보이저와 함께 우리의 우주는 매일,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안드로메다가 완전히 이상하고 정반대라서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하니까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은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형제와 같은 존재다. 게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가까워지는 중이다. 지금의 속도라면 우리은하는 수십억 년 후 안드로메다와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은하의 충돌은 돌끼리 부딪히는 것과는 매우 달라서, 태양 근처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 우리 태양계를 다 집어삼키거나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많아지는 것 말고는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다.
호주 밤하늘의 남십자성은 우리 밤하늘의 북두칠성에 견줄 만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을 주극성이라고 부르는데, 호주에서는 남십자성이 주극성이라서 생일이든 아니든 매일 밤 볼 수 있다. 남반구에서는 북두칠성을 볼 수 없다. 호주에 여행 갔더니 과연 공해가 없어서 북두칠성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더라는 호들갑은 떨지 말자.
생일 별자리와 관련된 황도 12궁은 우리나라에서도 호주에서도 주극성이 아니다. 뜨고 지는 ‘출몰성’인데, 계절에 따라 뜨는 시각이 바뀐다. 생일 별자리는 태양의 위치가 중요한 시스템으로, 내 생일에 태양이 내 별자리 구역에 임한다는 뜻이다. 해가 그토록 밝으니 바로 옆의 별이 눈에 보일 리가 있나. 애초에 생일 밤에 제일 잘 보이는 것을 생일 별자리로 정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점성술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목숨을 걸고 천체의 움직임을 읽는 진지한 운명론이다. 해와 달이, 행성과 혜성이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다.
"천문학이란 미래에도 변함없이 살아남을, 시간에 무관한 기본 지식"이라는 멋진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그걸 포스트잇에 적어 공책 맨 앞에 붙여두었다. 지당한 말씀이다. 천문학은 그렇다. 동시에, 천문학은 그렇지 않다. 2019년, 인류는 최초로 블랙홀의 사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빨려들어가면서 휘어지는 빛,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물질 일부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블랙홀의 윤곽을 관측한 것이다. 그런 기법을 고안하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마침내 블랙홀의 사진을 얻어낸 놀라운 천문학자들 덕분에 나는 다시 강의하게 된다면 첫 시간 퀴즈를 수정해야 한다. 아니,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수강생들이 답도 주고, 문제도 정정하고, 함께 생각도 해보는, ‘우주의 이해’는 그런 강의니까.
나는 지도교수님의 강의에서 몇 번인가 99점을 받았다. 1학년 때부터 대학원 연구실을 들락거리며 학부 연구생으로 지냈기 때문에 다른 강의는 몰라도 지도교수님의 강의만큼은 특별히 열심히 들었다. 백점에서 1점 모자란 점수. 당연히 출석, 과제, 시험에서 얻은 점수의 총합일 뿐이지만 나는 그 점수가 좋았다. 연구실 제자라고 무조건 좋은 점수를 얻은 게 아니라 공정하게 평가받았다는 방증인 것도 같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살필 줄 아는 겸손한 학자가 되라는 함의인 것도 같다며 혼자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 꿈보다 해몽이다.
지구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는 13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소빙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빙하기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추운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1650년에서 1700년 사이에 특히 온도가 낮아서 온 지구가 추위에 떨었는데, 이 시기를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라고 한다.
동서양의 천문 기록을 살펴보면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같은 지구상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히 그럴 터이다. 1604년 10월 9일, 밤하늘에 별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크고 무거운 별 하나가 제 수명을 다하고 장렬히 폭발하면서 갑자기 밝아진 것이다. 이것을 초신성이라고 하는데, 폭발할 때 급격히 밝아졌다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이 초신성의 기록을 남겼는데, 같은 시기 조선 관상감觀象監에서도 이를 관측한 기록이 있다. 시간에 따른 밝기 변화를 그려보면 케플러의 기록과 일치한다. ‘관상감 초신성’이나 ‘조선 초신성’이 될 수도 있었는데 ‘케플러 초신성’이라고만 불리는 것은 조금 서운한 일이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뒤져보며 나만의 결론을 찾아보는 기쁨, 남의 글을 짜깁기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담백하게 적어보는 즐거움을 발견한 친구들이었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가 아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대학에 다니는 바람에 ‘반값 등록금’이니 ‘국가장학금’이니가 국가적 관심사인 사회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다.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만의 분야에 뛰어든 전문가들이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해야만 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쳤다.
서양식 과학을 무조건 맹종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전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게 되었는지 관찰하고 탐구해볼 필요는 있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꼭 다녀야만 한다면, 대학 졸업장이라는, 그 한없이 틀에 박힌 문서 하나가 주는 즐거움과 보람을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칠 수 있기를, 넘치게 바란다.
살다보면 본인의 삶에서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이 생기니까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죠. 강의에 빠지는 대신 중요하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면, 그게 L 학생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 ‘중요하고 알찬 시간’이란 전공 분야 행사일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고, 신나는 취미생활일 수도 있고, 돈벌이나 가족 문제, 또는 그저 좌절하는 데 들어간 시간일 수도 있죠. 다 중요한 시간이고 인생에 꼭 필요한 경험이에요. 본인의 삶에 있어 이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하고 있었으니까, 결석이 많다고 해서 죄송할 건 없어요. 출결 상황을 기록하는 게 내 직업의 일부라서 확인하는 것뿐이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시험도 마찬가지예요. 세세한 지식이야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는 시대잖아요. 다만 문화센터도 아니고 대학이니까, 평가하고 성적을 내야 하니 과제도 내고 시험도 보는 것이지, 시험을 못 봤다고 해서 내가 불쾌해하는 것도 아니고, 점수가 낮은 학생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 기회는 쉬이 오지 않고, 그럴 시간도 만들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 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몸으로 하는 씨름이라면 샅바도 맬 줄 모르지만, 엉덩이 붙이고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는 씨름, 몇 시간째 좁은 화면 안에 시선을 가둬놓은 탓에 눈이 침침해지고 과도한 마우스질에 오른쪽 팔목이 아려와도 버티고 버티는 그런 종류의 씨름이라면 내가 좀 한다.
이상하게 낮에는 공부가 잘 안 된다. 밖은 너무 밝고, 각종 소리들로 부산하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새와 벌레가 짝을 찾는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연구실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이 들고 나는 소리…… 그리고 핑계를 좀 대자면 우선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많다.
같은 팀에 있는 대학원생이 하소연을 하러 오면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쳐준다. 내가 괴로울 때 그들이 그렇게 해주었듯이, 곪아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약해지려는 마음을 서로 달래주는 품앗이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보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정말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각이 되기 직전에야 닥치는 대로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들고 뛰쳐나간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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