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 ‘은파’는 그런 뜻이다. 푸른 여름의 밤바다 위로 밝은 보름달이 고요히 떠오르면 연인들은 그 달빛 아래에 앉아 달이 아름답다고 서로에게 속삭이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주고받으면서.

먼 곳에서 날아온 커다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달이 생겨났다. 날아온 소행성도 거기에 부딪힌 지구의 일부도 산산조각이 났다. 조각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지구 주위를 맴돌다가 서로 얽히고설켜 달의 씨앗이 되었다. 굴릴수록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씨앗은 남은 조각들을 주워 삼키며 커다란 달로 자라났다. 이번에는 또다른 소행성이 날아와 달에 부딪혔다. 한 개, 두 개, 열 개…… 수없이 이어진 충격으로 달은 온통 불덩이가 되었다. 여러 개의 화산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것처럼 땅 밑 여기저기에서 용암이 흘러나왔다. 소행성들의 대습격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달은 천천히 식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산허리를 가득 메운 메밀밭에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

1969년엔 달에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주 탐사의 커다란 상징이었다면, 21세기의 달 방문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중력이 지구에서보다 여섯 배나 작으니까 더 적은 에너지로도 달의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향할 수 있다. 어쩌면 멀고 먼 화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화성을 향해 바로 출발하는 것보다 달 기지에서 환승하는 편이 더욱 안전하고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완성되어서다. 달의 뒷면에 없는 것은 또 있다. 지구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이, 달의 뒷면에서도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달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어지러이, 신화에서부터 휴대전화 부품에 이르기까지, 달에 대한 수만 가지의 생각이 싹틀 것이다. 보라,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도 벌써 달 생각 새싹이 쏘옥 고개를 내밀었다.

화성에서 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질문은 대학 행성천문학 기말시험의 단골 문제인데, 정답부터 말하자면 극지방이다. 물과 이산화탄소의 얼음으로 된 거대한 극관이 있으니 그 얼음을 녹여 물을 뽑아내는 것이다.

선곡 과정에서 지구인들의 추천도 받았는데, 가히 지구 최강이라 할 만한 팬덤을 보유한 BTS의 곡이 일찌감치 우주 디제이의 목록에 올랐다. 단순히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아니었다. 많은 후보곡 가운데 〈소우주〉와 〈134340〉, 그리고 멤버 RM의 〈문차일드〉. 이렇게 우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선택되었다.

어린 시절, 태양계 행성의 이름 앞글자만 따서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순으로 외웠던 사람들에게 마지막의 ‘명’을 묵음으로 처리해야 하는 당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분명 행성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지를 않나,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황도 12궁이 13궁으로 변해서 생일 별자리가 바뀔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지를 않나,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줄 알고 이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갖은 맹세를 다 했건만 천상의 세계도 변한다니 이 무슨 변고인가.

태양 주위를 돌면 행성, 그 행성의 주위를 돌면 위성, 위성은 아니지만 행성보다 많이 작으면 소행성, 때때로 태양 주위로 다가와 먼지와 연기를 흩뿌리며 지나가면 혜성이었다.

태양 주위를 도는 둥근 천체 중 궤도를 독점하면 행성, 궤도에 이웃이 있으면 왜소행성으로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 명왕성을 발견한 게 미국의 연구팀이라는 사실에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불만을 품고 행성 명단에서 끌어내렸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때때로 전 지구인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명왕성의 영어 명칭인 플루토Pluto라는 이름도 공모전 당선작이다. 영국의 한 소녀가 로마 신화 속 저승 신의 이름을 제안했던 것이다. 내가 지구 밖 우주에 이름을 붙이다니, 그 이름을 전 세계인들이 영구히 부르게 된다니, 과학자들의 논문에도 그 이름이 사용된다니, 그것 참 근사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동Udon’과 ‘소바Soba’도 있었다. 방 조명이 어두워서 알파벳을 잘못 읽었나 하고 잠시 먼 데를 보며 눈을 두어 번 깜박깜박해본 뒤 다시 보아도 우동, 소바였다. 그렇다. 어떤 나라, 어떤 문화권에서는 그것이 하늘에 붙일 가치가 충분한 중요 단어일 수도 있다.

지금 우주를 논하고 있는데 이 작은 지구에서 그런 일로 깜짝 놀라다니, 그건 내가 부덕한 탓일 뿐. 민주적 지구인답게 다른 후보에 한 표 보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다행히(?) 최종적으로 확정된 외계행성 이름에 음식 이름은 없었다.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만 원짜리 한 장은 가지고 다니도록 하자.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키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멀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트 무늬처럼 보여 지구인에게만큼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얼음평원 스푸트니크를 소중히 품은 채 태양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다.

팟캐스트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말한다. 경유지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짐을 기다리는 동안 읽을 것도, 쓸 것도 없어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노라고. 그러다보니 계절이 지나가는 게 느껴지더라고.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돌려 들었다.

하늘의 별은 하루에 한 바퀴, 그러니까 한 시간에 15도 움직인다. 그래서 아주 희미한 별이나 은하, 성운의 사진을 찍으려면, 망원경을 받친 가대를 천체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는 추적 모드로 두고 장시간 노출을 준다.

인공위성은 얼마나 높이 떠 있느냐에 따라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건 여간 숨막히는 일이 아니다. 망원경의 시야는 대단히 좁아서, 살짝만 건드려도 망원경 속 하늘은 저멀리 달아난다.

당신이 건드리지 않아도 지구는 돌고 행성은 별 사이를 돌아다니며, 담당자는 수시로 망원경 시야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숨이 막힌 이유는 또하나 있었는데, 배율이 아주 높아서 내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쌍안경 속에서 배우의 얼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계속 보려면 계속 숨을 참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옆자리 관객은 내 몫의 산소까지 한껏 들이마셨다. 그러려고 빌려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 돈다고 교과서에서 배우긴 했다. 동심원을 그리는 별의 궤적이 찍힌 일주 사진도 여럿 보았다. 별이 움직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니 그 속도는 하루에 한 바퀴, 360도를 24시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15도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계산. 천문학을 책으로 배운 내게는 그저 단위 환산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여러 숫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돌고래가 내 마음속에서 뛰어오르기 전까지는.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견디기 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 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 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처음에는 자기 노래 순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그러다 서로의 취향이 만나기도 한다. 큰애가 요청한 레드벨벳의 중독성이 강한 노래 〈짐살라빔〉의 후렴구는 동생이 더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고, 큰애는 내가 넣어놓은 보아 노래 중 〈내가 돌아〉의 순서가 돌아오기를 함께 기다린다. 차가 막히면 형돈이와 대준이의 〈올림픽대로〉를 따라 부르고, 신나게 달릴 때는 인큐버스의 〈Anna Molly〉를, 뒷자리의 아이들이 잠들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Girl from Iphanema〉를 듣는다.

음악이 없다면 낯선 타지에서의 두려움과 떨림, 떠나서 머무르고 되돌아오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그 피로를 어찌 덜어낼 수 있을까.

시차의 피로, 발표할 자료 중 행여나 뭐라도 빼먹은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 서로 다른 나라에 살기에 학회에서나 만나게 되는 공저자들과의 회의를 앞둔 긴장감, 향후 함께 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를 잠정적 공동연구자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 따위와 맞서려면 이어폰이 꼭 있어야 한다.

처음 와보는 도시, 혹은 여러 번 와봤지만 여전히 낯선 도시의 출퇴근길에, 내 핸드폰에 어느 나라의 유심 카드가 꽂혀 있든 간에 ‘멜론’이나 ‘지니’ ‘벅스’가 음악을 내 귀에 꽂아준다는 이 기적이야말로 신께서는 전형적 집순이요, 내향성 인물인 나까지도 애써 굽어살피신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신의 가호 아래 나는 이번 출장도 잘해내리라, 작은 성공이라도 얻으리라, 스트레스와 시차로 인한 불면의 밤도, 없던 감기도 만들어주는 호텔 방의 건조함도 이겨내고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리라. 여비 정산에 필요한 영수증을 단 한 장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약은 약사에게, 과학은 과학자에게, 그리고 탐험은 탐험가에게 맡깁시다. 저의 지구력은 지구에서만 발휘할 수 있거든요.

우주에 관한 수많은 노래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메이비의 〈어 레터 프롬 에이벨 1689〉라는 곡이다. 에이벨은 은하단을 조사하고 목록으로 만들었던 천문학자의 이름으로, 그가 남겨둔 은하단 목록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에이벨 1689는 에이벨 목록에 올라 있는 1689번째 은하단을 뜻한다. 처녀자리 부근에 있는 이 은하단은 지구로부터 대략 22억 광년 떨어져 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이고, 빛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신호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에이벨 1689의 사진은 사실 22억 년 전의 모습이고 지금쯤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연인과 헤어지고 나면 같은 지구상에 있어도 문자를 보낼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하물며 에이벨 1689만큼 떨어져 있다면 어떨까. 아득히 먼 그곳에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쓴 편지는 아무리 일찍 부쳐도 이미 늦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리다.

래퍼 학생께서는 명왕성에 깊은 영감을 받았는지 평가상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며 꼭 받아달라고 했다. 하지 말라는 과제를 해왔으니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지만, 나는 명왕성을 생각할 때마다 그 학생의 과제가 떠오른다. 지금쯤은 괜찮은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을까? 행성으로 인정받지 못한 명왕성과는 달리, 음악인으로 분류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그의 길은 어떤 음악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달에 꼭 달 과학자를 보내야 한다면, 행성에 꼭 행성과학자를 보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나여야만 한다면, 나는 우주 디제이에게 래퍼 학생이 과제로 제출했던 음악 파일을 틀어달라고 부탁하겠다. 행성이 아니지만 행성이었던 명왕성처럼 과제로 인정받지 못한 과제였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주 항해의 괴로움을 과제 채점의 괴로움으로 잊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수십 년 만에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위해 미항공우주국은 여러 가지 음악을 골라두었다.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선장은 착륙선의 사다리를 타고 달 표면에 첫발을 디디면서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곳의 환경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낯선 땅의 흙과 돌을 채집한 두 사람은 다시 달 궤도로 올라와 사령선과 재회하는 데 성공했고, 세 사람 모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한국에 행성과학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그러면 나는 능청을 떨며 대답했다. 원래 세 명인데 이번 주엔 다 여기 학회에 와 있어서 지금은 한 명도 없다고. 그들은 나의 그런 농담을 우습다고 좋아했지만, 사실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능청도, 그다지 엄청난 과장도 아니었다.

‘우리’가 사람을 달에 보내서 기뻤다고 했단다. ‘우리’는 미국인도, 미항공우주국 관계자도 아닌, 인류 전체였다. 이번엔 내가 조금 놀랐다. 과연 못난 자격지심이었구나.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위논문을 쓸 무렵에는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달 탐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국민들에게 감사한다. 한국형 달 탐사선이 얻은 관측자료를 전 세계와 나눌 차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성과는 우리나라가 혼자서만 잘해서 얻은 것은 아님을 생각한다. 유사 이래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교육받고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참조해가며 쌓아온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우리’ 관측자료를 내어놓을 그날을 기다린다.

과학자가 하는 일 중에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또하나 있다. 과학자도 에세이를 쓰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쓰는 과학자도 있지만 쓰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책을 쓰더라도 대개는 전문적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책이나 대학의 교재를 집필한다. 하지만 그런 책을 쓰기에는 스스로가 아직 너무 초짜라고 여기는 일종의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열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계절이 멀어지고 또다시 돌아오는 시간 중 대부분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이 ‘뭐라도’ 되었을 무렵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소모되었다. 그렇게 무척 쓸모없었고 대단히 중요했던 열 계절을 기꺼이 맞이한 끝에 이렇게 이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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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차 여행을 나는 항상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해 왔다. 함께 웃고 떠들며 감자칩을 먹었다고 스스로에게 늘이야기해 온 터였다. 그날 아침 세인트팬크러스 인터내셔널 역에서야 나는 우리 가족의 워털루행이 공포로 가득한 여행이었음을 깨달았다. 당시 난 아홉 살이었다. 우리 짐은 다 어디 갔던 걸까? 내 옷은? 장난감은? 우리 식구들 물건은? 우리 집에 있던 가구들은? 잉글랜드에 도착하거든 살 곳이 있기는 하고? 거기서도 나는 학교에 다니게 되나? 우리는 수다를 떨지도 웃지도 않았다. 워털루역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불안해하며 창밖으로 지나치는 역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었다. 열차 승무원에게 기차표를 보여 주는 어머니의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버지는 창밖만 봤다. 어머니는 자식들만 봤다. - P133

그럼에도 여자가 남자의 신문, 샌드위치, 사과에 공간을 양보하느라고 테이블에서 자신을 완전히제거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 P135

중년의 자아는 잔뜩경계하고 아이를 주시한다. 아이가 자기 딸들과 문제를일으키거나, 학교에 신고 갈 운동화가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며 딸들이 불평할 때 진짜 문제다운 문제를 못 겪어봐 그런다고 아이들에게 쏘아붙이는 상황은 피했으면한다. 그는 한 번도 자기 아이들이 용감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기를 바란 적이 없다. - P142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감 능력을 요하는 일이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 집을 갖는 목적이아닐까. - P143

나무가 휘지 않고 부러질 때 비극이 발생한다. - P143

두 사람은 이 집에서 20년 넘게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어느 날, 이들의 결혼 생활이 휘지 않고 부러질 것이다.
두 사람은 베이킹 팬을 모조리 꾸려 짐을 싸고 부엌에 걸린 벽시계를 내릴 것이다. - P143

삶이 살 만한 유일한 이유는 다들 상황이 나아지기를 무사히 집에 가닿게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니까요. - P144

꽤 소란스런 기침이었지만 새들은 겁먹지 않았다. 우리를 외면하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지만 친구와 난새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볏에 난 깃털을 살피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우리는 아무래도 앵무새가 아니겠느냐고 서로에게 말했다. 새들은 우리가 대놓고 저흴 보는 게 불쾌한 모양이었다. 친구의 기침 소리보다도 우리의 눈길을 더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 P146

"우리가 그리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던 불쌍한 우리 부모님에게도, 고달팠던 최근 몇 년의 시련에서 회복한 것에도 건배하자. 우린 이제 여기저기 긁히고 까진 수준이 아니라 아주 제대로 다친 거야." - P147

나디아는 내가 어디 있건 신경 안 써. 내가 아주 따분하대, 하는 말도 다 재미없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미 다 안다나, 그래서 내가 그 말을 꺼낼 동안 기다려야 하는 걸 못참지. 실은 날 쳐다보는 것도 못참는 것 같아, 항상 바쁘고 내 몸만 봐도 혐오감이 드는눈치야." - P148

이 모든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며 서로 소통에 실패하면 할수록 저희의 사랑이 각자의 고독을 얼마나 깊게 만드는지, 그리고 서로가 느끼는 경멸에 얼마나 좌절감이드는지 토로하는 모습을,
너랑 함께여서 불행하고 나 혼자여서 불행해.
다만 각본가 입장에서는 내 친구가 고다르 영화의 주연 격 인물이 되기에는 치아가 너무 희고 장황한 내적 독백을 전달할 만치 사색적이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 P149

느긋이 빈둥대는 건 유쾌한 일이었다. 서로 말을 할 필요도, 쓰레기 봉투를 내놓으라거나 고장 난 무언가를 고쳐 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아이들 얘기를 할 필요도 없이(실은 종종 아이들 얘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의 최선을 바란다는 걸-최악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ㅡ아는 기분.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던 건지,
뺨을 간질거리는 느낌에 깼다. 처음엔 새들이 집 안까지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소파 한 귀퉁이에서 풀려 나온 실밥일 뿐이었다. - P151

셰익스피어가 부친이 죽은 해에 『햄릿』을 썼다고 읽었어요. 그 희곡에서 내게 가장 의미 있는 대사는 뭘 읽고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는 햄릿의 말이에요.
말, 말, 말들.
그 무엇도 자기를 위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지싶어요. - P155

말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모든 걸 가리고 은폐하기도하죠. - P156

‘어머니가 치러 온 전쟁도 이제 끝났어요.
산 자들의 소식을 좀 전할까요. 올해 내내 새들이 날 찾아왔어요, 이런저런 경로로요. 실제 새들도 있고, 실제성이 떨어지는 새들도 있었죠.
하지만 어머니가 좋아하던 부엉이들은 실제로 존재하죠. 내가 왜 이리 새들에 집착하는 건지 생각하는 것도 이젠 관뒀지만, 어쩌면 죽음과 재생, 이 두 가지와 연관이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가을에는 욕실에 정원을 꾸몄어요. 키가 제일 많이 자란 선인장은 그만 놓아주어야 할때가 된 지도 제법 오래였고, 급기야는 쭈글쭈글 오그라들어 갈변하고 말았어요. 욕조에 들어가 선반에 있던 녀석을 끌어내렸어요. 작은 은빛 선인장은 버리지 않고 뒀지만 이번에는 자스민과 백합, 양치식물을 화분에 심었어요. 자스민도 오렌지 꽃처럼 저세상 것만 같은 향을 지녔지만, 어떨 땐 또 배수구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는 거아세요? 양치류는 욕조 위로 잎을 늘어뜨리고, 백합은 빛을따라 알아서 몸을 움직여요. 작은 은색 선인장은 천장을향해 팔을 뻗는 게 꼭 비를 바라며 기도라도 올리는 것처엄 보여요. - P156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매일매일이 참 힘겹네요.
그리고 나는 비를 사랑하네.
*내게 헤엄치는 법과 노 젓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냉장고가 비지 않도록 타이핑 일을 손에서 놓지않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계속 그 일들을 해 나가면서 어머니보다도 더 가차 없이 살아야 합니다. - P157

스피커에선 조니 미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내용의 노래였지만, 우리는 모른 체했다. - P158

여전히 서로에게 화가 난 상태였지만 둘 다 차분했고, 나로서는 한 번도 그를따분하게 여긴 적이 없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 P158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왕관에 박힌 보석들이다. 눈물지을 순간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그가 마지막으로 거처한 집, 자기자신의 기쁨만을 생각하며 꾸린 집의 평온 속에서 어느날 사색에 잠겨 이런 말을 했다. "글은 바람처럼 들이다친다" - P160

그건 벌거벗고 잉크로 만들어진 것, 쓰인 것이고, 삶의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스쳐 지난다. 그와 비견할 게 더는 남지 않았다. 삶 자체가 우리를스쳐 지나는 방식을 제외하고는, - P161

여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경제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던 보부아르가 일찍이 "여자가 자립의 길을 선택하려면 남성보다 더 큰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 P167

한 모습이다. 할머니는 날마다 통장 잔고를 헤아렸고, 허투루 돈을 쓰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내 생일이나 졸업식같이 특별한 날에는 봉투에 돈을 담아 건네곤 했다. "수린아, 생일 축카한다. 할머니가" - P168

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나름의 방식으로 돈을운용했고 할머니의 기준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돈을 썼다. - P168

할머니가 내 아버지와 그 형제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삯바느질과 계 모임으로 번 돈을 할아버지의 부족한 월급에 보탠 덕이었다. 혼자 힘으로 한글을 깨우칠만큼 똑똑했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했고, 자존심이 무척이나 셌던 할머니는 초등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재능을 펼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도 없이 부모의 뜻에 따라 - P168

‘결혼해 아이들을 건사하는 삶을 평생 살아야만 했다. 당신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 사람인지 미처 알기도 전에빛을 낼 가능성을 단념해야만 했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는 스스로 돈을 벌고 아껴 자녀를 뒷바라지한 것이처음으로 주체성을 경험해 본 일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어떤 수입도 벌어들이지 못하고 로션이나 스킨을 사는간단한 일조차 손녀딸에게 의지해야만 했던 할머니로서는 얼마 되지도 않는 통장 잔고를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
약간의 이자를 확인하고 가계부를 쓰는 일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어떻게든 유지하려애쓰는 일이 어쩌면 당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어김없이 슬퍼지고 만다. - P169

손재주가 아주 좋았고, 집 안을 누구보다 깨끗하게 정리했고, 식혜나 고추장 같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지만 할머니는 내겐 그런 것들을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작가가 된 후 새벽까지 거실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앉아있을 때가 많았는데,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나온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 하며 안쓰러워했다. "얼른 가서 자라, 병날라." 하지만 졸음 섞인 할머니의 목소리에 당신이 감히 꿈꿔 볼 수 - P169

없었던 어떤 고귀한 일을 하는 손녀딸을 기록해하는 바음이 한밤의 꽃향기처럼 비밀스럽게 배어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것밖에 몰랐던사람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물질적인 삶‘과는 다른 할머니의 눈에 보다 숭고해 보이는 정신적 세계를 향해 한발한 발 나아가는 삶. - P170

데버라 리비는 『살림 비용』에서 이혼을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동화의 벽지를 뜯어" 내는 일에 빗댄 다음 자신이 자아를찾아 가는 과정이 동화 벽지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21) 것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아내, 자녀들의 엄마,
손주들의 할머니로 평생을 살았으나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엄두조차 내 본 적 없던 할머니가 내게 살림을 결코배우지 못하게 했던 건 내가 당신과 달리 자유를 누리며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리라. - P170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내 집에서 오늘도 쓰고 또 산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면서.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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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 시리즈에서는 우주 곳곳의 문명이 서로 교류하며 행성 연방을 구성하는데, 연방의 규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외계 문명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프라임 디렉티브’ 규칙에 완전히 동의한다. 화성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웰스의 문어들이 줄줄이 쓰러진다고 해도 다른 문명이 끼어들어 항생제를 살포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먼지바람에 돌멩이들만 굴러다니는 세계에 선인장을 심거나 베르베르의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를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

태양계 생성 초기, 원시 지구는 온도가 섭씨 380도에 이르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물이나 탄화수소화합물은 증기가 되어 날아가버렸고, 금속과 규산화물 같은 물질들만이 남아 천천히 냉각되어갔다. 전형적인 암석형 행성이었다. 그런 지구에 물과 유기물질이라는 생명의 씨앗을 가져다준 여행자가 있었다. 인류가 탐사선을 쏘아 올리기 훨씬 전부터,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이저호가 태양계의 여러 행성을 차례차례 방문하기 전부터 태양계를 누비던 여행자, 소행성과 혜성이다.

새로운 것은 공포를 대동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움직이는 동물이 실제로는 나의 충직한 개일지라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듯이. 혜성이 태양계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선조들은 혜성이 나타나면 두려움에 떨며 국가와 부족의 운명을 걸고 대비를 갖췄다. 혜성이 태양계 멀리에서 지구 근처를 지나가는 작은 천체임을 안 뒤에도 혜성의 꼬리에 독극물을 만들 수 있는 시안CN-이 들어 있다며 장사치들은 방독면을 팔았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인류와 문명이 발달한 후에도 여행자들은 종종 찾아온다. 생명의 씨앗 말고도 우주의 신비, 태양계의 경이로움을 알려줄 힌트를 하나씩 떨구고 간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만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프톨레마이오스다. 훗날 라파엘로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학자들을 한데 모아 그린 〈아테네 학당〉을 보면, 프톨레마이오스는 관객을 등진 채로 서서 지구본을 들고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세상의 중심에 지구를 놓고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공전할 때 ‘주전원epicycle’이라는 작은 원을 각자 그리며 나아간다는 창의적 해결책을 도입했다.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 개념의 대척점이라고나 할까. 태양을 중심에 두고, 행성의 공전 궤도로 원이 아니라 타원을 도입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얘기지만 말이다.

오늘날 지동설의 영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중세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다. 그는 아주 꼼꼼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지구를 중심에 두고서는 행성들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관측자료를 다시 분석했다. 그의 자료는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말하고 있었다. 태양이 가운데 있고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순서로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렇게 훌륭한 분석을 해놓고도 정작 자신의 결과를 믿지 못했다. 과학자로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인지, 지동설을 주장하는 순간 시작될 교회의 탄압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 그가 지동설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정리한 것은 말년의 병석에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발간되었다. 훗날, 그가 완벽하게 옳았음이 증명되고, 지동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발상의 대전환을 촉발하는 사건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비유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꼼꼼한 천문학자의 계보는 튀코 브라헤로 이어진다. 그는 많은 양의 상세한 관측자료를 남겼는데, 행성뿐 아니라 혜성의 밝기와 위치를 기록했고, 1572년 갑자기 새로운 별이 나타난 것도 발견했다. 아직 맨눈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던 시기다. 현대의 도시와는 달리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많았을 텐데, 없던 별이 생겨난 것을 알아차린단 말인가!

브라헤의 관측자료는 다음 세대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넘겨졌다. 브라헤의 관측기록이 어찌나 정교했던지, 그 자료를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성은 태양 근처에서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태양에서 멀 때에는 느리게 움직이며, 공전 궤도의 장반경이 공전 주기의 3분의 2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세 가지는 ‘케플러 법칙’으로 불리며,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기본 규칙이 되었다.

태양계 천체의 모든 궤도를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이 드디어 등장했으니, 바로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뉴턴은 반사망원경을 제작하기도 했다. 좁고 기다란 형태였던 기존의 굴절식 망원경의 단점을 보완해 렌즈 대신 거울을 활용한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망원경의 길이도 줄일 수 있었고, 렌즈 표면을 아주 정밀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부족했던 당대에도 밤하늘의 별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후대의 사람들은 뉴턴의 제작 방식을 따라 대형 망원경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별은 아무리 큰 망원경으로 보아도 그저 밝은 점일 따름이지만, 메시에 목록에 나온 천체들은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볼수록 예쁘고,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오늘날 전 지구에 널리 퍼져 있지 않다고 해서 동양의 사고방식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어려운 이유가 우리말이 지구상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가 아니라서 타국의 대중이나 평론가가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동양에 살던 옛사람들도 별을 보았다. 가장 오래된 기록을 꼽는다면 고인돌을 들 수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에 송송 새겨진 작은 홈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고대의 별자리를 인위적으로 표시해놓은 흔적이다.

특이한 점은, 전 세계 고인돌 태반이 한반도 부근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동방칠수는 각角, 항亢, 저?, 방房, 심心, 미尾, 기箕의 일곱 별인데, 한자사전에서 각이나 항자를 찾아보면 열번째쯤 항목에 ‘별 각’ ‘별 항’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서당이란 암기의 전당이므로 일단 외우긴 외우는데, 왜 별을 뜻하는 글자가 그렇게 많은지,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훈장님도 문과 체질이라 그런가 한문책 속 별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던 모양이다.

대학 입시 원서를 쓸 때 내가 천문학과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자신의 기억 속에서 ‘별 무슨’ 한자들의 미스터리를 끄집어내 내게 해결을 의뢰했다. 운이 좋았다. 바로 그 해에 안상현 박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라는, 우리 전통 별자리에 관한 책이 나온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40년 묵은 ‘별별 미스터리’를 해결했고, 천문학자는 돈을 못 번다는 편견 따위에 맞서야 하는 난관 없이 천문학을 배우는 학과에 원서를 쓸 수 있었다.

사실 유사 이래 천문학에 있어 동서양의 가장 큰 차이는 주체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서양은 개개인이 관측하고 기록을 남긴 데 반해, 동양, 특히 우리의 천문 관측과 기록은 국가가 주도했다. 그래서 천문 기록이 역사서 속에 등장한다.

성종 8년(989) 9월 갑오일에 혜성彗星이 나타났다. 왕이 대사大赦를 실시하고 자기를 반성하고 행동을 조심하였으며 노약자老弱者를 원호하고 외롭고 헐벗은 사람을 구제하였으며 공훈이 많은 낡은 사람을 등용하고 효자孝子와 절부節婦를 표창하였으며 세금 범포한 자를 용서하고 체납한 세금을 경감하였더니 혜성이 재앙으로 되지 않았다.

우리처럼 ‘인류’가 되지 않고 조금 다른 진화의 길을 따라간 영장류도 별을 볼까.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도 빼곡하게 들어찬 수많은 별로 눈부신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때가 있을까? 동물원 안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면, 조금 밝혀줄 수 있을까, 동굴 같은 사육장의 밤도, 그 안에 갇힌 삶도.

로랜드고릴라의 평균수명이 40년가량이라고 하니, 누군가는 고리롱이 장수한 끝에 노환으로 생을 마감한 것은 썩 괜찮은 마지막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도 ‘문제은행’이 있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삶은 뻔한 적이 없었다.

그 생생한 공포의 끝자락에는 우울이 묻어나왔다. 갈 곳이 있어도 갈 곳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던 고등학생처럼, 폭주하는 고릴라 역시 거기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앞에 조금 비켜서서, 동물과 동물원과 세상살이와, 공포와 불안과 분노와 우울과 텅 빔과 쓸쓸함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얻고, 또 많은 생각을 비워냈다. 쓸쓸함과 무시무시함이 교차하던 저물녘의 유인원사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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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삶의 이야기는 책을 덮고 나서 시작된다. 책 읽기는 살기 위한 준비, 예열 과정이다. 책 읽기를 현실적인 일로 만드는 것은 삶과 작업 속에서다.

쉼보르스카는 여러가지 징후에 따르면 우리는 결국 색깔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지만 자기만의 시와 운명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변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어떻게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나쁠 수 있냐는 것이다.

내가 택할 길잡이가
그저 하늘을 떠도는 구름뿐이라고 한들
나는 길을 잃을 수가 없소.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책을 읽는 꿈을 꾸지만 사실은 책에 있는 각 단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독자를 향한 감사와 깊은 존중하는 마음을, 오로지 이 글 안에서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넣은 한권의 책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덕분에 편집자가 많이 지쳐 보인다.)

앨리스 먼로는 반드시 하루에 5킬로미터를 걷는데, 만약 일이 생겨서 하루 걸러야 한다면 보충해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의식과 일과를 지키면 어떤 것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한다. 나도 바쁠 때는 미리 읽을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왔다. 이것은 사실 행복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행복은 자신만의 의식이나 실천을 갖는 것이므로.

여행자들이 떠날 때와 달리 돌아올 때 뭔가 달라진 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을 포기하지 않아서이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리
부끄러움과 걱정이 기쁨을 주는 행동으로 변하는 날을.

미래가 알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지향점이다.

괴테가 말했듯 인생은 시처럼 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더라도 결코 우리에게도 하나의 인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을, 다시 한번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일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운명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든 것이 시적이다. 그리고 시는 무한하다. 재료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거절, 모욕, 슬픔, 서러움, 가슴 아픔……

길을 잃지 않는 데 중요한 것은 연결이었다.

워즈워스의 『서곡』을 펼쳐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푸른 정자에서 쉬시게, 그리고 홀로 있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시게.

파울 첼란은 ‘주문되지 않은 것이 우리를 드러낸다’고 했는데 책 읽기야말로 그런 시간이었다. 아무도 내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나의 선택으로 읽었다.

책과 맺은 사랑과 우정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우정과 다르지 않았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왔고 내 인생이 화석화되는 것, 내가 하나의 딱딱한 껍데기와 꽉 막힌 주장으로 고집부리는 것을 막아주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다. 늘 하는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는 것과 오직 내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을 피하게 해주었다. 더 가치 있는 고민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내 앞길을 개척해보려 한 것, 책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정으로 내 미래를 만들어보려고 한 것은 아무리 돌아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내 눈에는 전보다 나은 것은 모조리 다 아름다워 보인다.

샤르트르는 메를로 뽕띠에게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기적이 우리를 역경에서 벗어나게 도울 것이라고 했다.

내 가는 길에 함께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이고 그 원칙을 바꾸지 않는 한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꽤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좋은 벗과 책들은 나를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초연하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대담하게 살도록 이끌어주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한 존재를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각각의 존재가 보내는 신호는 너무나 중요했다.

우리는 저녁 약속을 만들고 표정을 만들고 분위기를 만들고 내일이면 아무 쓸모 없어질 것을 만들기도 한다.

책이 있던 자리에 사람이 오고 사람이 있던 자리에 책이 겹쳐지고 그곳에 내 삶이 섞여들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하루하루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방향성, 경향성과 함께 모험하는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 이 믿음이 나를 지키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몇권의 책은 우리의 짧은 인생과 달리 영원하다. 영원한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한 것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가능성을 열어준다. 보르헤스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면 어딘가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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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1




오늘은 내가
나에게 칭찬도 하고
위로도 하며
같이 놀아주려 한다

순간마다 사랑하는 노력으로
수고 많이 했다고
웃어주고 싶다

계속 잘하라고
힘을 내라고
거울 앞에서
내가 나를 안아준다

새해가 되어 좀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좋은 결심도 세우려니 우선 제가 저 자신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사랑하는 일에도 남보다 뒤처진 자신을 발견하고 의기소침해질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무력감에 우울해질 때, 어쩌다 한 번씩 방송이나 신문에서 인터뷰한 내용에 누군가 인신공격적인 악플을 달아 상심할 때, 수도자의 신분에 맞지 않게 밖으로 이름이 나서 듣게 되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말들에 변명도 못 해서 외로움이 싹트려고 할 때, 본인이 수첩에 암호처럼 메모해 둔 내용을 도무지 풀지 못해서 쇠퇴한 기억력에 스스로 답답하고 실망이 될 때, 앉았다 일어서는단순한 움직임조차 뜻대로 되지 않아 몸의 한계를 느낄 때 사는 일이 문득 힘겹고 자존감도 떨어져 앞이 캄캄하게 느껴질 적이 있습니다.

그 답답한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말고 잠시 저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하나의 편지이자 고백서로 〈내가 나에게〉라는 시를 썼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다른 사람을 인내하는 일도 쉬운 게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들어 때로는 낯설기까지 한 자신의 모습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일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인지도모릅니다.

아름다운 우표들이 많이 붙은 편지들을 보는 일은 늘 설레는 기쁨을 줍니다.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한 사람의 삶에 깊은 영향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다시 기억하면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

결국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고 그렇게 힘든 것이다. 세상에 사는 동안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선적으로 눈길을 주었던 힘없고 아프고 약한 사람들의 벗이 되어야 하리라.

8월엔 우리 모두
기다림에 가슴이 타는
한 그루 해바라기로 서서
주님을 부르오니

살아 있는 모든 날이 축복이고 생일이라고
살아온 기적은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영희 님이 하는 말은 항상
다른 이의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
힘찬 파도처럼 생기 있는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를 기억하면서
흰 구름 시인에게 흰 구름 수녀가 쓰는 편지




오, 보아라
잊혀진 아름다운 노래의
조용한 멜로디처럼
푸른 하늘 가를 계속 떠도는 흰 구름처럼
긴 여행 속에
방랑의 슬픔과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흰 구름을 이해할 수 없으리
나는 태양이나 바다나 바람을 사랑하듯
정처 없이 떠도는 흰 구름을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자에게 그것은
누이이며 천사이기에

- 헤르만 헤세의 시 〈흰 구름〉

열두 살 때부터 시인을 꿈꾸고 이루어 가장 사랑받는 세기의 시인이 되신 당신, 구름의 다양한 변화에 매번 놀라워하며 시간마다 계절마다 구름을 관찰하기를 즐긴 구름의 시인인 당신, "작가는 독자에게 빛을 통과시켜 주는 창문일 뿐"이라고 말한 평론가이기도 한 당신. 당신은 또한 화가이기도 했지요. 시들어가는 백일홍의 색채가 아름답고 신기해서 환성을 지르는 화가이기도 한 당신의 수많은 그림들 중 저는 1921년에 그린 〈책들을 올려놓은 걸상〉 그리고 1930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진 〈나선형 계단〉을 좋아합니다. 그 비슷한 계단이우리 집에도 있거든요.

"펜과 붓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내게 포도주와 같습니다. 그런 일에 취하면 삶이 아주 멋지고 푸근해져서 삶을 견딜 수 있게 됩니다"

"내 머리 위의 구름 하나 하나는 내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이 세상의 모든 미술관만큼 사랑스럽고 중요하며 교훈적이다"

저는 진심으로 수상님께서 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잠시라도 훌륭한 음악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고, 성경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어 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한 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수의 비유나 괴테의 시나 노자의 경구를 읽어보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헤세로부터의 편지》 중에서

나의 삶은
당신을 향해 흐르는
한 장의 길고 긴
연서였습니다

새털구름
조개구름
양떼구름
꽃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여러 형태의 무늬가 가득하여
삶이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당신을 찾고 있군요
내 안에는 당신만 가득하군요

보이는 그림은 바뀌어도
숨은 배경인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고

나는 구름으로 흐르며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 이해인의 시 〈구름의 노래〉 중에서

매일 새롭게 시작하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역시 흰 구름이 되어 다가가고 싶답니다.

성격이 불같고 모난 사람에겐 뭉게구름의 포근함을, 굼뜨고 둔한 사람에겐 새털구름의 예리함을, 스스로 외톨이가 되려는 사람에겐 양떼구름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요술을 피우는 즐거움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관계가 금방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구름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의 상징, 머물면서도 흘러가는 그리움의 상징입니다.

‘밤에도 구름은 흘러간다’ 당신의 아름다운 표현을 기억하면서 저도 한 점 구름이 되어봅니다.

남에겐 관대하고 스스로에겐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덕과 지혜임을 일러주셨습니다

우정을 잘 가꾸는 당신만의 비법도
지인들에게 살짝 알려주셨습니다
‘난 말이지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장점보다는 단점부터 트는 법을 익혀야
그 우정이 오래간다고 생각하거든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젠 나이로도 물러설 때가 되어 강연이나 행사 참여도 대폭 줄이고 수녀원 안에만 있으니 좋은 점도 많습니다. 사실 조금 밖으로 이름이 난 데서 비롯된 갈등과 고민이 없지 않았거든요. 마음은 소녀 같은데 어느덧 70대 중반에 이른 지금의 은은한 평화와 담백한 평상심이 참 좋습니다. 세월이 주는 선물이겠지요?

1) ?무엇을 달라는 청원 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더 많이 하겠다는 것

2) ?늘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하겠다는 것

3)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쓰겠다는 것

4)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 흥분하기보다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고 애쓰겠다는 것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솔선수범의 마음으로 우리 함께 최선을 다하기로 해요.

몹시 춥고 눈이 많이 온 2011년 1월 22일 선생님의 장례식 날. 여간해선 잘 울지 않는 제가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옆에서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수녀님의 60회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지금까지 사신 만큼 앞으로 더 사시고, 지금까지 그러하였듯이 앞으로도 주님 보시기에 탐탁하고, 저희들 보기에 아름답고 미더운 나날이 되게 하시길, 마지막 날까지 건강의 복과 사랑받는 기쁨을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 저번에 보내주신 예쁜 것들 중에서 ‘오늘을 위한 기도’, ‘말을 위한 기도’는 수녀님이 저를 위해 만드신 게 아닌가 한마디 한마디가마음에 스며 머리맡에 두고 조석으로 읽으며 명심하고 있습니다"라고 쓰셨지요.

추억이 많을수록 눈물도 많이 모이지만 이 눈물을 더 깊고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시키라는 선생님의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한때 ‘기억의 천재’라는 칭찬을 듣던 사람답지 않게 이미 심한 ‘기억 장애’를 겪고 있답니다. 꿈과 현실이 종종 혼돈되는 경험도 하고 있으며, 안 급해도 될 일에는 서두르고 정작 급히 움직여야 할 땐 게으름을 부려서 생활의 중심과 리듬이 깨지는 것도 경험하곤 합니다.

100명 넘게 사는 공동체에서 누가 나를 따돌리거나 맘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긴장 속에 살고 있는 저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게됩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인 것처럼 제가 어느 날 치매 판정을 받게 되더라도 가장 ‘나다운 나로 돌아가는 여행’일 수 있도록 순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겠습니다.

무엇보다 침묵을 강조하는 수도원에서 반세기 이상 살다 보니 시시로 ‘가만히!’ 하고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거나 주문하는 일도 갈수록 더 많아진다.

어떤 자리에서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싶은 찰나에, 옆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잔소리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 ‘가만히 있으세요’라고 주문하며 마음을 추스르면 이내 평화가 찾아온다.

일 년 사계절 중에 나는 특히 6월을 좋아한다. 내 생일이 들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초록의 나무들이 싱싱한 향기를 뿜어내고 아카시아 가득한 산숲에서 뻐꾹새가 노래하는 생명감이 좋아서이다.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가까운 데 있다’, ‘행복도 불러야만 오는 선물이다’, ‘누가 내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먼저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그 안에 행복이 숨어 있지 않을까?’ 등등 수많은 인터뷰나 수업 시간에 나는 행복에 대해 가르치고 그럴듯한 좋은 말로 답을 해왔지만,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싶어 열심히 나름대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해 왔다.

자신이 돌보는 중증 장애인들을 보배라고 부르는 대단한자매에겐 어떤 선물을 보내면 힘이 될까.

내가 네 살 때인가 동네에서 놀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예쁘다는 말을 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뛰어와 그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 재밌는 아이였다고 한다.

남학생들에게 러브레터를 많이 받던 10대 소녀 시절엔 한 사람의 애인 아닌 모든 이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겁도 없이 하더니 어느새 77세의 할머니가 되었구나.

결혼을 안 했기에 밥 잘 해주는 예쁜 엄마나 할머니는 되지 못했지만 시로 밥을 짓고 나누어 수도원 담 너머로 독자들과 폭넓고 다양하게 친교를 나누며 살게 되었으니 나의 또 다른 이름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집’이 아닐 수 없다. 그래그래, 오늘도 더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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