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를 깨알같이 웃겨 주시는 남편.
어제부터 파스칼 키냐르의 떠도는 그림자를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완전 복불복이라고 해야 할듯.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를 다 읽고 무슨 책을 읽을지 도무지 결정을 못하겠기에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의 기억력도 시험 할 겸사겸사 책장 한 칸(책이 한 25권에서 30권 정도 꽂히는 듯)을 선택해서 제목을 읽어주면서 ˝맘에 드는 제목 골라봐~~˝라고 했다. 그런데 마침 파스칼 키냐르의 `떠도는 그림자들`이 맨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있었다. 그러니까 몽상의 시학과 맨발의 왕선생 사이.(난해한 배열~~ㅠㅠ 책정리는 언제 하나??ㅠㅠ) 그 책장 한 칸을 다 시험한 건 아니고 순수박물관까지. ㅎㅎ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 ˝그거, 떠드는 그림자들 읽어.˝ㅎㅎㅎ
한번 떠드는 그림자들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나도 떠드는 그림자라고 하게 된다는;;;(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떠드는 그림자들도 좀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암튼 나는 파스칼 키냐르의 자칭 마니아다. 예전에 바람결님(지금은 다른 닉네임^^)의 멋진 서재를 찾게 된 것도 알라딘에서 파스칼 키냐르를 검색하면서다. Nussbaum님과 키냐르는 분위기가 정말 잘 어울린다. 바람결님, Nussbaum님의 서재를 다시 찾게 해준 것도 키냐르 였으니까. 키냐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나의 친구다!!^^;;
이 책은 예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라 이번에 시작하면서는 맨 뒤에 있는 번역가 송의경씨가 프랑스 상스에 은둔해 있는 키냐르를 찾아가 대담을 나눈 부분부터 읽었다.
대문 앞에 `크게 두드릴 것`이라고 달랑 써놓고 송의경씨가 대담을 마치고 나갈 때 보니 그 메모가 사라지고 없었다는 부분이 참 좋았다. (대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최근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를 읽어서 그런가 초인종도 없이 사는 키냐르가 더 대단해 보인다!! 말하기는 쉬워도 그렇게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작은 나무문에는 `세게 두드릴 것`이라는 메모 한 장이 테이프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전화도 팩스도 이메일도 없는 것은 알았지만 초인종도 없다니....저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p.226
그의 은신처를 나서다가 힐끗 뒤돌아보니, 문 위에 붙어 있던 메모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배웅을 나온 키냐르가 웃으며 말했다. ˝필요할 때에만 붙이는 거예요.˝ -p. 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