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처음 있는 회식이었다. 사장님은 코리안 바베큐를 좋아한다며 코리아타운에서 젤로 맛있는 바베큐 집이라며 우리를 인도했다. 식당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발음을 너무 많이 굴리셔서 '송원 갈비'라고 하는지 '수릉 갈비'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들었지만 가보면 알 거라고 생각하고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발음이 안 좋은데 자꾸 물어보면 쪽팔리기도 할 것이고 자기는 올바르게 발음한다고 생각하면서 더 잘하려고 하다보면 완전 다른 발음이 나오기도 하니까. 암튼 그래서 도착해보니 갈빗집 이름은 '수원 갈비'.ㅎㅎㅎㅎ


조그만 곳이라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좁은 주차장이 차고 넘치고 발렛파킹까지 있는 식당인 걸 보고 맛은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었다!!.ㅠㅠ 한국에서 맛보던 맛을 고대로 담아냈다고나 할까!!! 무 생채 한 점 집어 먹고 눈물이 핑 돌 뻔 했다는. 올 2월부터 제대로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지라,,,사장님이 한국 고깃집보다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며 호언장담하던 게 무색하지 않았다는. 꽃살부터 차돌박이까지 종류별로 다 먹었다. 이럴 땐 직장 다니는 게 정말 좋아~~~.ㅋㅋ 고기냄새 풀풀 풍기며 집에 올 때는 나만 맛있는 거 먹고 와서 미안하기는 하더라만;;;;


집에 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으면서 왔는데 마침 TED 프로그램에서 연설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해주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는 테러리스트였지만 자기는 아니라며 연설을 하고 책까지 낸 Zak Ebrahim과의 인터뷰가 먼저 나왔고 그다음에 트렌스젠더 모델인  Geena Rocero 와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 분이 지나인데 트렌스젠더인 사람들 좀 봤지만, 암튼 몸매가 좋아~~~.^^;;


남자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은 여자인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지나가 그랬나 보다. 예전에 재밌게 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여자가 되고 싶었던 오 동구가 몰래 엄마의 화장품으로 화장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정말 알 수 없지만 누가 가르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을 거스르고 다른 성을 원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소수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거겠지만. 


한 번도 인생이 쉽다고 느껴본 적은 없지만(아니 솔직히 쉽다고 생각한 적 좀 있다. 철이 없을 때;;;) 사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좀 힘들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더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 도전하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고(아마도 엄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픈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한다고 생각해 낸 것이 아닐까?) 거기다 직장까지 다니려니 정말 내 한계를 넘어선 듯한 고달픔. 한 발자국도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듯한. 직장이고 공부고 가정생활이고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듯한 두려움에 거의 매일 시달렸었다. 더구나 나이가 도대체 몇이냐고!!!!ㅠㅠ 거의 매일 자신감이 쪼그라드는 일상에 시달렸는데 어느 날 H양과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대화를 나누다가 H양에게 "엄마는 (모든 것, 직장, 공부, 가정생활 등등) 도저히 못 할 것 같아."라며 힘겹게 말을 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너무도 신기하게 알라딘에서 얼핏 봤던 [신의 실수도 나의 꿈을 막지 못했다] 책이 생각나는 거 다 그러면서 남들은 성전환 수술까지 하는데,,,라는 생각이 미치자 새로운 용기가 솟아났던.


다시 책 소개를 읽어보니 남자로 태어났지만,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인지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원래 남성 무용수에서 여성 무용수가 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10년 동안이나 준비해서 결국엔 성전환 수술에 성공하지만, 수술 부작용으로 하반신 장애를 겪게 되다가 결국엔 그것도 극복했다는 내용이구나. 암튼 딸아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이 생각났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바꾸는 용기와 결단력. 그러면서 나는 그 정도의 극단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받았었던 기억이 어제 지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진싱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소수자였고 이방인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단 한번도 이방인이었던 적이 없다. 남보다 힘든 조건을 안고 살아가야 했지만, 그럴수록 더 단단하게 자신을 추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일수록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물론 진싱이나 지나처럼 전 세계 인구 중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소수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소수자이고 거대한 공룡과 싸우고 있는 거다. 남들이 봤을 때 내 공룡이 공룡처럼 안 보여도 내가 볼 때는 입에서 수천 킬로나 뻗어 가는 불을 뿜어내고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는 공룡. 


결국, 지금은 여전히 뭔가를 하려고 공부를 하긴 하지만 직장을 다니다 보니 자꾸 안주하고 싶은 충동이 매일 생긴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면서 이 나이에 공부는 무슨 공부,,,이렇게 직장 다니다 늙지 뭐,,,라는 생각이 자꾸 나를 유혹하는지라 다시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싶었는지, 정말 뭘 하고 싶은지를 되새기기 위해서 지나 얘기도 꺼내고 진싱까지 들먹여 봤다. 인생 한 번뿐인데 박 칼린 말대로 한번 멋지게 하고 싶은 것 최선을 다하면서 뭐든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고. 

 

"The world makes you something that you’re not — but you know inside what you are."

"All of us are put in boxes by our family, our religion, our society, our moment in history, even our own bodies," says Rocero. But some people have the courage to defy those boxes — so she decided she would no longer hide within the status quo.
"I am here exposed … to help others live without shame and terror."

To the public, Rocero’s outer self finally matched her inner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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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9-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하장사마돈나` 하니 생각납니다.
제가 아는 분(남자)이 사귀는 사람이 성전환 여성입니다. 천하장사 마돈사 시나리오 탈고할 때 감독이 자문을 구했던 분이 바로 제가 아는 분 애인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잠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죠....
잘지내시고 계신 것 같네요. 수원갈비도 드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라로 2014-09-30 00:30   좋아요 0 | URL
신기해요~~~. 전 곰발님보다 오래 살았는데도 그런 분들이 주위에 없네요.
아님 있는데 다들 숨기고 사는 지도,,,
천하장사 마돈나 정말 재밌었어요!! 거기서 김윤석도 눈여겨 봤었고,,ㅎㅎ
잘 지내고 있어요,,수원갈비 넘 맛있던걸요!!!ㅋ
월급날 가족들 함 데리고 가려고요~~~ㅋㅎㅎㅎ

2014-09-25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30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25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30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4-09-2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롬님 어머니 돌아가신 지 미처 몰랐어요...잘 극복하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라로 2014-09-30 00:35   좋아요 0 | URL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올 1월 20일에.
잘 극복하기를 엄마도 바라실 것 같아서요~~~.^^;;;
고마와요, 블라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