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계사 강의]를 읽고 있는데 성인의 경지에 대해 언급한 부분 중 한 구절에서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봤던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꽤 감명 깊게 봤던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일단 유튜브에서 찾은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한 다른 사람의 의견이 담긴 동영상을 올린다.
사족이지만 나는 [맨 오브 스틸]을 두 번이나 봤다.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끝 부분에 너무 때려 부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N군이 우리와 함께 못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같이 봤는데 때려 부수는 것에 대한 걸 미리 알고 있어서 그런 지 첫 번째 관람했을 때보다 두 번째가 더 좋았다는.
전에 맡았던 수퍼맨보다 이번 수퍼맨 몸이며 얼굴까지 진짜 대박!!!
주역계사 강의]에서 남회근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지이장왕(知以藏往)" 하여 아무것도 아는 게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고명한 처사입니다. (중략) 누가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모두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듯이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재앙이 닥칠 것을 미리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미리 알고서 피해 버린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 아닙니다. p. 335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언급했듯이 클락의 아버지 역으로 나온 인물(오랫만에 반가왔던 캐빈 코스트너 분)은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돕고 더구나 우리가 미물이라고 하는 자신의 개를 구하고는 (아들이 자기를 아주 쉽게 구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에게 간단하게 손가락을 들어 구하지 말라는 표시를 하고는)토네이도에 휩쓸려 죽음을 맞는다. 물론 허구의 상황이지만 정말 감동 받았다. 재앙이 닥칠 것을 미리 알고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아들이 겪게 될 불행(?)을 늘 염두에 두고 그 불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희생. 더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외계인이기까지 한 존재를 위한 거룩한 희생. 그 희생의 장면을 보면서, 작위적인 장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도 그 장면을 기억하게 하는 구절이 있어 다시 뭉클해졌다.
성인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사실 성인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만은 아닌 것이다. 남을 위한 희생, 자기에게 닥칠 불행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대표적인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다. 어쩌면 그래서 수퍼맨 이야기가 예수님 이야기와 흡사하게 비교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진리는 동서양이나 다 통하는 것이 아닐까? 남회근 선생님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도를 깨달은 도인(ㅎㅎ)이라고 하면서 "이(예수님)처럼 진정으로 도를 깨달은 사람은 도를 드러내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저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하면 적잖은 부모들도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목숨을
희생하진 않아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하는 많은 사람도 작은 의미에서 성인이다. 오늘 하루 내 주위의 작은 성인들의
분투가 느껴진다. 나는 작은 성인은커녕 좀 이기적인 사람인데 이번 주부터 학교에 안 가고 있는 N군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만들어
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결심을 해보지만, 모든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이 다 다른데 나는 음식을 해주는 것에 대한 포비아가 있다. 나
먹을 건 잘 먹으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뭘 준비해 줘야 하는 지, 정말 매일매일 머리에 쥐난다!!! 아이를 위해 희생은커녕
끼니나 거르지 않게 해줘야 하는데~~~.ㅠㅠ
어제 남회근 선생님의 다른 책[논어 강의 상, 하]를 받았다. 이 주문과 함께 주문했던 [나의 프랑스식 서재]도 함께 받았는데
표지가 깔끔하고 책 크기가 작아서 좋았다. 어젯밤 알라딘에 글을 올리고 나니 시간이 1시가 다 되었다. 서재를 대강 둘러보고
컴퓨터를 끈 뒤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 안 왔다. 그래서[논어강의]를 손에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의 원제목은
[논어별재]이다. 남회근 선생님께서 자신의 저술 중 핵심이 [논어별재]라고 해서 그런지 이 책을 집어 들면서 가슴이 좀
두근거렸다.ㅋ
이 책을 번역한 송찬문씨는 역자 서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끝맺는다.
끝으로, 예사람이 말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건만 불혹(不惑)은 커녕 아직 이립(而立)에도 이르지 못한 채 아무 것도 이룩한 바가 없고 허물만 많아 회한이 깊은 저는, 이 책의 번역을 빈녀일등(貧女一燈)의 법공양으로 삼아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송찬문씨의 겸손함을 잘 느낄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나는 (송찬문씨를 성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뜻을 세워 이 책을 번역해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그 정성에 감사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나와 같은 사람이 쉽게 훌륭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니 사실 편지라도 써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 페이퍼로 그 감사한 마음을 대신한다.
다른 얘기지만 이 책에는 또 리영희선생님께서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몇 있는데 그중 가장 내 관심을 받은 구절은
나 자신은 어떠한 언어에 대해서도 퍽 관용적이고 폭넓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1960년대에 이미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일어, 불어, 중국어 해서 5개 국어를 익혔다. 그래서 당시 국제회의가 드물었던 우리 나라에서 어쩌다 국제회의가 열리면 3개 언어 동시통역을 맡아서 짭짤한 과외수입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어학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겟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괜히 여러 외국어를 배우느라 시간을 허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구절은 나에게 좀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리영희 교수님은 다른 외국어를 더 배우려고 했던 그 시간을 허비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시간에 뭘 하고 싶으셨던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정말 궁금하다. 나는 통역을 할 수준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정도로 한국어, 영어, 일어를 할 수 있는데 최근 스페인어까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리영희교수님의 능력의 코딱지 만큼도 안 되는 내 재주로 또 뜬구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귀가 좀 얇은 편이라 (사실은 좀 많이) 이런 글을 접하게 되면 또 금방 의욕이 사라진다. 이 나이에 이 나쁜 머리로 꿈도 야무져~~~~~~하튼.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