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몽땅
그대로 가져가거라, 내가 살아온 대로.
사람들은 취기를 잠자서 깨우는데
나의 취기는 종이 위에 적혀 있다.

쓰고 있는 글에다 그 순간 가장 절실한 것을 그만큼 쏟아부었다는 뜻일 겁니다. 언제든 그 순간에, ‘현재’에, ‘지금 여기’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당면한 문제를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씀으로써 하나의 이미지로 모아서 문제를 선명하게 파악하고, 늘 그런 식으로 그 한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생애 중 실의로 주저앉았던 한 대목에서 괴테는 썼습니다.

눈은 무엇보다 내가 세계를 포착하는 기관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들 사이에서 살았고, 대상들을 예술과 연관시켜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 내가 나 자신과 고독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긴 지금, 절반은 선천적으로 절반은 후천적으로 이 재능이 나왔다. 어디를 바라보든 나는 그림/이미지 하나를 보아냈으며, 내 눈에 뜨인 것, 나를 기쁘게 한 것을 붙잡아두려 했다. 그리하여 서툴게 그리기 시작했다.

글로 쓴 그림, 그것이 예로부터 시詩 아닌가요.

세상의 문제가 회피해서 해결될 리 없습니다. 정면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답이 찾아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문제에 원천적으로 답은 없습니다. 답이 있고 해결책이 쉬이 있으면 그게 문제이겠습니까. 얼른 답을 내려고, 답을 내어 그것을 벗어나려고 모두 노력하지만, 때로는 발버둥을 치지만, 쉽게 찾아진 답은 장기적으로 계속 답이 되기 어렵고 그래서 답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문제의 전모를 바르게 파악하면, 기이하게도 생겨나는, 문제를 감당해가는 힘. 그 힘이, 답은 없지만 그중 답의 근사치일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모색이 이루어지며, 그 길에서 쌓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슬기가 생기기도 하고, 문제 쪽에서 슬그머니 알아서 풀리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괴테는 때로는 정말로 취한 사람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젊은 날에도 노년의 끝머리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물증들도 남아 있습니다.

괴테는, 적어도 글을 쓸 때는 늘 취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평생 젊었던 것만 같습니다.

경탄을, "놀라움"을 잃지 않은, 굳어지지 않은 사람은, 굳이 괴테 아니어도, 연령과 상관없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나누어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몽땅 가져가라니! 그저 유쾌하게 받습니다.

언젠가 열 살 조금 넘은 나라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초청장을 받았을 때 스팸메일인 줄 알고 지울 뻔했지요. 이름마저 너무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에스토니아입니다. 그곳에 가서 겪은 일들을 그때 나는 조금 기록했고, 그 기록이 저의 책 『시인의 집』의 첫 장이 되었습니다.

‘노래 혁명’이라고 불리는 그 독립의 이야기도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곳 사람들도 먼 극동에서 온 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지 그 글을 나중에 자국 학술지에 실었음은 물론, 영문이었던 강연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명망 있는 스페인 학술지에 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세월이 가도 고마움이 새로워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할까 싶어 『시인의 집』을 조금 독일어로 번역해서 책과 함께 에스토니아로 우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 인사에 이어 또다시 초청장이 와서, 한번 더 가보게 되었습니다.

대학이 키운 사람들, 사람이 키운 대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곤 했습니다.

거대한 병풍처럼 산이 도시를 둘러 어디에서든 하얗게 눈 쌓인 장엄한 봉우리들이 보입니다. 시내 한 중심에서 톱니바퀴 전철을 잠깐 타고 한 차례 케이블카로 갈아타면, 도합 40여 분 만에 3000미터 정상에 올라 아득한 발밑의 아름다운 도시며 장엄하게 펼쳐진 시원의 알프스 설원까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그 고운 옥색 강을 따라 눈 쌓인 연봉을 바라보며 걸어서 학교에 가서 연구실 문을 열면, 또다시 눈 쌓인 봉우리들이 큰 창문이며 눈을 가득 채워옵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에 세상에 누가 그런 데를 올 생각을 할까요. 행사를 시작한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자문하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 그 ‘월요일 아침밥’은 벌써 6년째 늘 가득 차고 급기야 단체손님들마저 이어져, 못 들어오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이런 귀한 자리를 위해 무얼 준비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치하에서, 레바논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황야에서, 몽골의 초원에서 글을 써온 사람들, 그러나 하나같이 시에서 정신의 자양을 취하고 험한 삶을 견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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