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앉고 설지, 들고 날지, 걸어갈지 멈출지는 내가 정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습니다. 정확한 인식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바른 인식은 상황을 견딜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험함, 어려움에 대해서야 굳이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살다보면 다 알게 됩니다. 알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대가 옳지 않은 것이고
감사할 줄 안다면, 그대 형편이 좋지 않은 것.

형편이 정말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이, 아무리 작더라도 얼마나 사무치게 감사한 것인지는 그 혹독한 경험이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울며 밤을 지새워보지 않은 이
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참 유명한 시구입니다.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에 나오는 것인데요. 흔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나중에 빛을 볼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의미로 인용되곤 하지요. 대부분은 괴테의 시구인지도 모르기도 하지만, 그저 그 깊은 함의만으로 널리 알려진 훌륭한 문장입니다.

진정으로 감사하고 섭리까지 헤아려볼 수 있는 힘.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얻는 것 같습니다.

배은망덕해지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대체로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도움을 준 사람은 도와준 사람에 대하여 대개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 일방적이다보면, 어느 시점에 그만 대차대조를 하게 되고 맙니다.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여러 이유로, 받은 것을 준 바로 그 사람에게 받은 것을 다 돌려주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받은 고마움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들인 공도 그렇습니다. 넣은 바로 그 구멍에서 곧바로 뭐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문득 무언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바로바로 보답이 있기 어렵고, 바로 그곳에서 사례하기는 어려운 이 시간 차, 이 장소 차가 어쩌면 세상이 얽혀 있게끔 세상을 지탱해주는 넓은 그물망인지도 모릅니다. 받은 사람이 베푸는 사람으로 크는 시간이고, 세상이 넓혀지는 시간입니다.

특히 석사과정을 마칠 때쯤부터 10년쯤 세상은 늘 캄캄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무얼 좀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라 사정이 어려운 시절이라 대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진행하지 않는 날보다 오히려 드물었고,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려 하니 너무도 배운 게 없어서 참혹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설 곳도 앉을 곳도 마땅치 않은 좌불안석의 어려운 시기였지요.

당시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여자인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한다고, 어떤 교수님은 제게 웃지도 않고 "너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긴 세월 동안, 그 말이 얼마나 옳은 말씀이었는지 실감을 하며 살았습니다.

감옥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도 어딘가에 앉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쭈그리고 앉았고, 그러다보니 졸업 때 그만 성적이 너무 좋아 요란한 상을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학과를 빛냈다고 큰 특전까지 받았지요. 조교 보조가 되어 저녁에 학과 사무실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업이 없는 날은 낮에 교수님들과 조교님들의 심부름을 다녔습니다. 물론 무급이었지만, 밤에 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좋았습니다.

졸업은 했어도, 요란하게까지 했어도 못 배웠다는 느낌만 가득했던 제게 그 허드레 무급 일자리는 너무도 큰 상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손가락 하나,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아주어도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상은 손가락 하나를 잡아주기는커녕, 벼랑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손끝을, 밟는 듯이 무정했습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도망치듯이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났다고 생각했던 나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며 결혼했습니다.

"똑똑한" 여자가 어디서 용인되는 시절이 아니었지요. 더욱 답답한 것은, 똑똑하지도 못하면서, 똑똑한 여자 취급을 안 받으려는 노력까지 끝없이 기울여야 하는 상황들이었습니다.

"작은 건 양보해야지, 뭐. 작은 일에도 일일이 다 다투면 뭔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할 힘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나중에, 20년 가까이 지나서 서울대학교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맨 먼저 그 베란다에다 꽃을 심었습니다. 그날의 저처럼 이상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없도록, 꽃이라도 보고 돌아가도록 말입니다.)

역린이었습니다. 어디서 살림하던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그때까지의 전통과 질서를 뒤흔든 것이지요.

아이가 두 달이 되었을 때 저는 떠나야 했습니다. 못 떠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떠나서는 어떤 때는 아이가 보고 싶어 현기증이 일곤 했습니다.

그때는 방학 때 집에 온다든가 하는 사치는 상상의 범위 안에도 없었고, 한번 유학을 갔으면 학위를 받아서 그야말로 금의환향해야 하는 시절이었지요.

짧은 기간에 목숨을 건 듯 읽고 자료를 모았습니다.

돌아보면 그 캄캄하고 절박했던 세월이 내 인생의 초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막하게 쭈그리고 앉아 읽고 손가락이 굳도록 적었던 것들이, 혼자 힘으로 무얼 읽고 읽어내는 일, 지금껏 제 자양분입니다.

무언가 보답이 될 만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차근히 내려앉을 시간도 없었어요. 그래서 절반쯤 선 채로 마구 써내려갔지요.

그 책상과 의자를 만들어서 서원에 온 젊은이들이 크나큰, 크게 될 사람의 성찰의 자리에 앉아보는 각별한 시간과 공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시와 진실』도 한 권 그 곁에 놓아주고요.

세상에 문제의 즉답은 없다고 말입니다.

쉬운 답이 있으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면, 신기하게도 그 문제를 감당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무언지 알고 싶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요. 그러니 늘 쓸 게 많았지요, 느긋이 책상 앞에 정좌할 겨를도 없이 말입니다.

시간이라는 일륜日輪의 말들이 우리 운명의 가벼운 마차를 끌고 쉬지 않고 달리니. 우리에겐 용감하게 고삐 단단히 잡고, 때론 좌로 때론 우로, 이 돌멩이 저 낭떠러지를 피해 수레를 모는 수밖에 없구나. 어디로 가는지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 못 하거늘.

자존심이 없었을 리 없으니, 저 작은 책상에서 쓰인 글들은, 거기 담긴 성찰은, 아마도 자신을 더욱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겠지요.

아무튼 그 집이 바라다보이는 정원집의 뒤뜰 그 바위에 적힌 글귀를 판독하며 한번 웃고 나서 발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바이마르 산책 코스입니다. 그 바위에 적힌 괴테의 시구. 바위가 하는 말로 적혔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했다, 바위야 내 사랑의
증인이 되어다오.
그러나 증인 서겠다고
일어서진 말길. 네 동무들이 여기 있잖아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훌쩍 떨어져 바라보며 웃기도 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봄철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하는 일들은 경우에 따라 조금 미룰 수도 있지만 농촌 일은 조금만 미루면, 제때 밭 갈고 제때 씨 뿌리고 제때 거두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쳐버리게 됩니다.

아직도 농부 노릇이 서툴지만 그럼에도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고, 밭일 좀 한다고 책을 안 볼 수야 더더욱 없으니 주경야독이 두루 극에 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맙게도 일 좀 줄이라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줄일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고 있는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일의 능률만 생각한다면 가까운 데서 도울 인력을 구하는 편이 손쉬울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먼 곳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유는 그러는 게 사람들과 땅을, 또 사람들과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일인 것 같아서입니다.

그 어딘가에 자기가 심은 꽃이나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건, 또 그걸 보러 가는 건 그냥 봄나들이와는 다른 힘을 주지 않을까요?

나에게는 나무들이 그저 나무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또 그 누군가이기도 합니다.

막상 아이를 길러본 사람들은 대개 아이에게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압니다. 굳이 주고받는 일로 따져보더라도 말입니다.

다른 일들도 사실 얼마만큼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나아가 내 아이에게 쏟는 마음을 조금만 주변에, 또 일에 나눈다면 사회적인 안정감은 물론 우선 나 자신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무언가 뜻과 보람이, 꽃과 나무가 자라듯 자라나는 일이 세상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평생의 애씀이, 제가 하고 있는 힘겨운 노동에다가 어떻게든 뜻과 보람을 더해보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녘까지 이 글을 쓰다가도 잠깐 눈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어제까지 누렇던 잔디밭 전체가 파릇파릇합니다. 비껴 내린 첫 햇살 속에서 연초록이 눈부십니다. 어제 잠깐 내린 비가 초록빛 물감 묻힌 붓을 들어 천지를 한 획으로 칠해놓고 간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선물받았는데, 잡초 제거 정도의 답례는 흔쾌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찾아오는 나무 주인들도 기쁘게 거닐 텐데 말입니다.

오로지 돈을 받기 위하여 일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 그야말로 막노동일 것이고 그 벅찬 노동의 와중에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더 힘든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해가면서 조금이나마 좋은 뜻을 심어가면, 그 작은 뜻들이 쌓여서 무엇보다 나 자신의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그런 ‘보람과 뜻’을 누가 나에게 줄 수 있을까요.

꽃과 나무를 기르는 것은, 또 꽃과 나무가 자라듯 무언가 뜻과 보람이 천천히 자라나는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아이를 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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