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나가던 시 한가운데서 부딪쳤던 한 구절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찔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행복하여라, 세상 앞에서/ 증오 없이 자신을 닫는 이"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시인은 거닙니다. 그저 강가가 아니라 "기쁨과 고통 사이를" "고독 속"을 거닙니다. 외로움이 하나의 장소 같습니다. 그가 거닐며 살아갈 강가, 삶의 터 같습니다.

그렇게 운명을 생각하며, 젊은 시인은 작은 강가 작은 집에다 고요히 자신의 거처를 짓습니다. 시를 씁니다. 자신의 세계를 짓고, 고요히 들여다봅니다. 사람의 마음속을, 운명을, 그 얽힘, 착종을 예리한 눈길로 들여다봅니다. 예리한 눈길이지만, 깊고 그윽합니다.

그런 눈길로써 진정한 시작詩作은, 진정한 글쓰기는 제대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소유

거침없이 나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려는 사유밖에는,
고마운 운명이 나로 하여금
바닥에서부터 향유하게 하는
호의로운 순간순간밖에는 그 무엇도
진정 내 것 아님을 나 알고 있네.

순간순간이, 다름아닌 이 찰나가 진정한 나의 소유라니, 지금 이 순간은 얼마나 귀한지요.

나는 젊은이들이 부동산 투기 따위로, 혹은 그보다 더, 없는 부동산으로 괴로워하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든 이 어마어마한 유산을 마음에 담고 살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색채론』 연구에는 『파우스트』보다는 조금 짧은 40년을 매달렸습니다. 이와 같은 대작뿐만이 아닙니다. 「신과 무희」라는, 인도의 설화를 소재로 한 한 편의 발라데를 위해서도 그는 "40년을 품고 다녔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 한 편의 시는 "다마스쿠스의 검"처럼 날카롭게 벼려졌습니다.

다마스쿠스의 검이란 자고로 칼 중에서도 강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유명한데, 그 제조공법이 특이합니다. 유별나게 강한 쇳덩이를 잘 녹여 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수많은 철사 가닥을 겹쳐서 불에 녹이고 다루고 또 녹이고 다루어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긴 호흡, 오늘날 같은 시대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빛날 수 있는 귀한 것 아닐까요. 설령 당장 실천을 못 한다 해도, 그런 생각을 해보는 순간은 얼마나 풍요롭고 귀한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 초조,
더더욱 쓸모없는 건 후회
초조는 있는 죄를 늘이고
후회는 새 죄를 만들어낸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아직 긴 시간이 있다
처리하는 법을 빨리 배우라
졸리기 전에.

아리따운 인생을 짜맞추어 가지려거든
지나간 일을 두고 근심해서는 안 된다
극히 작은 일이 그대를 분명 언짢게 하겠지만
늘 현재를 즐겨야 한다
특히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미래는 신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다면 저항하라! 그래야 그대가 품위를 지킬 것이다
휴식시간이 되기도 전에 벌써 쉬려는가?"
무언가를 비난하기에는 나는 너무 늙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행할 만큼은 충분히 젊다

희망

이루어다오, 내 두 손이 해내는 하루의 일과여
내가 완성하는 드높은 행복을!
나를, 오 부디 지치게 하지 말아다오!
아니다, 빈 꿈이 아니다
지금은 줄기일 뿐이어도, 이 나무
언젠가 열매 맺고 그늘 드리우리라.

대시인 괴테의 희망이, 더도 덜도 아니고, 그날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었다니!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참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침 없이 만나야 하는 것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근심

이렇게 원을 그리며
자꾸자꾸 맴돌지 말라!
오, 놔두어다오 나의 방식을 내버려두어다오
오, 다오 내게 행복을 다오!
나더러 도망치라고, 나더러 그걸 잡으라고
이제, 절망은 충분하다
나를 행복하게 놔두지 않으려거든
근심이여, 이제 나를 현명하게나 해다오.

누군들 근심을 피할 수 있을까요. 부유하든 가난하든, 힘이 있든 없든 인간이 결코 떨치지 못하는 것이 근심입니다. 그것을 일찍이 이미 통찰하고, 그 벗어날 수 없는 것에 ‘항복’하며, 괴테는 부탁합니다. "근심이여, 이제 나를 현명하게나 해다오."

희망으로, 근심의 단련鍛鍊으로, 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대한 바른 성찰이라는 오랜 단련으로 노년의 현인 괴테는 빚어진 것 같습니다. 그 자신이 마치 다마스쿠스의 검 같습니다.

차분히 앉을 겨를도 없어 절반쯤 선 채로 엉덩이만 붙인 채 글을 쓰곤 했던 괴테의 젊은 날의 집을 닮은 훨씬 더 작은 한 칸 집을 지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집의 용도는 한 장의 편지를 쓰기 위한 것입니다. 10년 후의 자기 자신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 한 칸 집의 이름을 "나의 집"으로 지을까 합니다.

나는 여백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물론 늙은이도 마음이 젊으면 괜찮습니다―동네 숲 지도 한 장을 챙겨 들고 걸어가서 찾아내는 그 오두막에서 조용히 자신과 마주앉아보는 시간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1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 그저 멋있게 생각해낸 반짝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아주 귀한 경험이 있어 그걸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경황없이 살았을뿐더러, 번듯해 보이는 학벌과는 달리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거의 독학이라 어렵사리 구한 책들이 너무도 귀해서 일일이 번역을 해가며 읽었고, 다 읽고는 그것에 대해서 글을 썼고, 쓴 글이 또 모이면 연구서로 묶기도 하며 살아서―어쩌다 우연히 기회가 있으면 그 원고들이 책이 되기도 했으나―책이 된다는 보장으로 책을 쓴 일은 거의 없고, 그렇듯 허겁지겁 읽고 쓰고 살다보니 쓴 책들마저 손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10년이 되어 그간 대략 수합해놓은 책 한 권 한 권의 후기를 복사하여 작은 거실 바닥에다 구불구불 늘어놓고 그 사이를 거닐던 순간이 잊히지를 않습니다. 젊은 날이 참으로 캄캄했었는데, 한 치 앞이 안 보이게 캄캄했었는데, 시간 순으로 늘어놓은 그 구불구불한 종이의 열列을 따라 이리저리 걸어보자니 마침내 길 같은 것이 보인 것입니다.

눈 앞이 캄캄한 채로, 그 어떤 등댓불도 없이, 그러나 눈앞의 일만은 그저 힘껏 했었는데 돌이켜보자니 그 ‘힘껏’이 길을 만들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니 적어도 본업인 전공 분야에서는 과히 틀리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감사하며, 또 만감이 교차하며 그 종잇장들을 모아 다시 하나하나 타이핑을 해서 약속한 대로 책이 될 만큼 묶었는데, 바로 책으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다 묶어놓고 나서 보니 슬며시 욕심이 조금 들었습니다. 정말 쓰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아직 못 쓴 것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고 묶음을 5년 더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5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생산적인 시기가 되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서울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하면서 방학 동안만 가서 근무했는데, 자주 15미터 떨어진 숙소를 못 건너갈 만큼 몰두해서 일했지요.

그 기간에 독일어 연구서가 네 권이나 쓰였고 모두 좋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특히 그중 두 권은 독일에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금 웬만한 학술도서관에는 다 꽂혀 있습니다. 같은 기간에 국내에서는, 그 한 권 한 권을 감히 필생의 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책이 다섯 권이나 나왔습니다. 사람이 5년 안에 그렇게 일을 할 수는 없고, 그간에 공부하고 일한 것들을 온전히 몰두하여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학마다 주어졌던 것입니다.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 하나의 질문 덕분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이제 저는 아끼는 젊은이들에게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답을 직접 듣지 않고, 그들이 쓴 편지로 받아두었다가 10년 뒤 찾아가게 하거나, 찾아가지 않으면 부쳐줄 생각입니다.

연로하신 분들을 만나는 기회는 놓치거나 미루면 안 됩니다.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뵙고 그 지혜를 조금이나마 더 배우고 싶고, 또 그런 어른들이 세상에 계시다는 게 그저 너무 고마워서 저절로 발길이 옮겨집니다. 요즘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드니, 이곳저곳에 가끔씩 안부전화나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넓디넓으니, 조금 뒤처지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큰 위안을 시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깊이 절감했습니다.

제가 이즈음 이런저런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견뎌내는 것은, 또 앞으로도 견뎌갈 수밖에 없는 것은 먼 도나우강가에 서서 나를 그 "뒤처진 새"로 반기며 힘을 주시는 분의 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이곳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그곳은 타들어가도록 메말랐을 시기였는데, 물마저 귀하지만 언제든 내가 오면 마실 물은 비축해두었다고도 쓰셨습니다. 시인이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분의 글을 읽고 내가 어찌 함부로 살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게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요.

가슴을 연 사람만이 아름답다고 부담감을 주지도 않습니다.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가슴 연 아름다운 땅 위의 가슴 연 사람인들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그대 그토록 찌푸리고 서 있었으니
바라볼 줄을 몰랐구나.

가슴을 열어야 아름다운데 그 열린 가슴을,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못을 박는 말입니다.

열림이란 무엇보다, 다름의 인정이고 다양성의 수용입니다.

멀리 저 밖으로 나가기를 그리워하면서 그대
민첩한 비상飛翔을 준비하고 있구나
자신에게 충실하라, 또 남들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이 협소한 곳이 충분히 넓다.

가슴 열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을 쓰고 온 세상을 여행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열린 가슴으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 역시 사람입니다.

라바터를 만나서 그 곁에서 행복합니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치유예요, 사랑 안에 깃들어 살고 지향志向이 있는 사람, 활동하면서 그 가운데서 즐기기도 하는 사람이기 위해서요.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의를 기울여 친구들을 감당하고, 먹이고, 인도하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한 석 달만 이분 곁에서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괴테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 안에 깃들어 살고, 지향이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들에 그저 치이지 않고, 그 가운데서 즐길 줄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신이, 더 많은 장점들 가운데서 이 장점 또한 우리와 함께 집으로 오게 해주시기를, 우리의 영혼이 열려 있게 해주시기를, 또 우리가 선한 영혼들을 열 능력을 주시기를.

자연과학자로서의 자신은 범신론론자Pantheist이고, 시인으로서의 자신은 다신론자Polytheist이며 인간적으로는 유일신론자Monotheist라고 말입니다.

조개들이, 살을 껍질 밖으로 펼쳐낼 때 물에 뜨듯이, 그렇게 나는 사는 걸 배웁니다.

조개가 연한 살을 내미는 곳은 짠 바닷물입니다. 우리의 세상과의 만남은 연한 살이 소금물에 닿을 때처럼 아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서, 상황에 따라, 그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사고를 유연하게 열고 옮길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진정 큰 힘인 것 같습니다.

학문과 예술을 가진 자
종교도 가진 것이다.
저 둘을 가지지 못한 자
종교를 가져라.

우린 왜 이렇게 굳어져버렸을까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에서조차 말입니다.

인생이란 강물도 어차피 자기 힘으로 혼자 헤쳐가는 것

저는 저와 같은 미약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생각해보는 참입니다. 또 무슨 일인들 차분히, 꾸준히 해서 아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일이 가슴을 열어젖히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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