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즐거움을 먼저 발견했을까, 아니면 괴로움을 먼저발견했을까? - P20

때때로 불안이 나의 목을 조른다. 그럴 때면 벽에 붙은마야콥스키의 사진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죽는 수도 있어, 죽는 방법도 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로르카를 힐끗 바라본다. "죽임을 당하는 방법도 있긴 있지"라고 그는 말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의 입술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나는 파베세를 생각한다. 산다는 이 일, 산다는수수께끼로 물불 안 가리고 괴로워했던 그를. 그러면 불안이 한번 더 거세게 나의 목을 조른다. 이러고 누워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당장 바람 부는 거리로 나가 정처 없이 쏘다녀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불안의 모가지를 한 손으로 비틀어 진 채 여전히 누워 있기만 한다. - P20

그리고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년필은 서랍안에 녹슨 채 그대로 들어 있고, 새 울음소리는 책갈피 속에더러더러 끼어 있고, 닫힌 책과 열린 책 사이로 말하는과 듣고 있는 귀 사이로 시간은 허망하게 빠져나가고, 담배와 커피와 외로움과 가난과 그리고 목숨을 하루종일 죽이면서 나는 그대로 살아 있기로 한다. 빙글빙글 넉살 좋게 웃으며 이대로, 자꾸만 틀린 스텝을 밟으며 이대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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