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니다. 폭력은 쾌락에 가깝고, 성적 학대는 재미고, 잔인함은 흥행과 직결된다. 성생활은 섹스산업이 되었다.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많이 스며든 것은 선정성이었다. 컴퓨터는 어린아이부터 어른 모두에게 끝없이 성과 폭력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는 때리면 아프다.

섹스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웬만큼 나이를 먹으면 섹스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자연을 관조한다든지 다른 관심사를 추구한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진정으로 추구할 유일한 재미는 섹스. 결과적으로 이 생각이 인류의 멸망을 가져왔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것은 건강 관리와 성적 매력 유지가 목적인 몸매 가꾸기다.

젊음은 노년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데 젊을 때 누리던 쾌락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한 가지 관심 있게 볼 것은, 분명히 자신의 육체에는 집착하는데 다른 생명에는 무관심하다는 점.

행복
젊고 예쁘고 부유한 것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멋진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물건과 어울릴 만큼 날씬하고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돈과 외모, 젊음, 성, 매력, 행복을 결합시켰다.

난폭한 신조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액 연못 사망, 애액분사 같은. 그런데 오늘날에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면 조회수와 관심과 권력을 얻는다.

쇼핑센터야말로 진정한 만남의 광장이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를 때,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는 대형 쇼핑몰로 가면 된다. 소비는 위안이 된다. 실연에 대한 위안, 나이듦 혹은 고독에 대한 위안.

(가난한 나라에서 가족 사랑과 매춘은 동전의 양면이다. 코로나가 창궐하자 경제적 위기에 처한 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에서는 아동매춘이 늘었다)

죽음의 부정은 남아 있는 삶을 만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하게 한다. 너무 많이 가지면 느끼지 못한다.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핵심이 ‘생명과 삶의 전 과정에 대한 돈의 지배’의 전면화였다면 디스토피아의 굳건한 토대는 무지와 무관심이다. 나쁜 것을 나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무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심 없는 무관심.

저항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나쁜 일이 나쁜 일임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누구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과 누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살아남은 인류와 크레이커들은 너무나 소수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해질 가능성이 높았고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실제로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서로를 돌보는 관계 속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자신이 무사히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할 지상의 단 한 사람으로 각자에게 존재했다. 이 두 사람을 묶어주는 아름다운 단어는 ‘나의 단짝’이었다.

그 둘의 좁다란 침대에서 이뤄진 대화 속에는 연인끼리의 농담(가끔은 야한 농담), 세상의 추함에 대한 욕, 친밀감, 추억, 세상에 대한 이해, 위안과 따뜻함이 다 있었다. 한 인간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밤들이 거기 있었다.

"‘부드러움’이 뭐지요?"
"부드러움은 상처를 닦아주는 거에요."

"상처가 뭐예요?" 토비는 "상처는 네 몸에다 글쓰기를 하는 것과도 같아. 그것이 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해줄 테니까"라고 대답한다. 과연 이 말을 크레이커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상처가 말을 해줘요? 그럼 상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말을 하는 상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말을 하는 상처’가 책이다. 책은 상처들의 목소리다.

우리 뒤에 올 세대를 위해 살아갈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고 변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어떤 때보다도 정성껏 노트에 기록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이 원래의 의미를 되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쁜 일은 나쁜 일이고 선한 일은 선한 일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서로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행복한 사랑은 거기서 태어난다. 사랑은 삶의 재발명이다.

기후변화는 사람의 영혼마저 바꾼다.

코로나 때는 생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엄마가 울면서 전화했어요. 우리 엄마가 알던 의사의 가족 다섯이 죽었어요. 의사, 의사의 아들 내외와 손자예요. 저도 생명이 이렇게 연약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들었어요.
? 취재 중 인터뷰한 우한 출신 비즈니스 우먼

내가 기억하는 한 "인간이 한낱 반영과 미망임을 깨닫도록 신은 꿈으로 수놓은 밤과 갖가지 거울을 창조하셨네"라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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