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해리슨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한 사람이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면 학대로 여겨진다. 그런데 산업이란 명목으로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면 용인된다. 나아가 정말정말 큰 돈이 걸리면 아주 똑똑한 사람들까지 나서서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끝까지 옹호한다.

카미유는 삶을 즐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플로랑클로드의 말을 빌리자면 삶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남자들이 대체로 모르는 것이다.

행복한 커플들은 오직 자기 둘만이 아는 작은 의식들, 말버릇, 장난 등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매주 금요일 밤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주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번 소라찜과 바닷가재를 먹었다. 그는 그것들이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믿었다.

"나는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내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고, 심지어 살아오는 동안 대부분 그럴 능력이 없었다."37

그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이, 어느 날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고 마는 인생이란 게 좀 끔찍스럽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능성 없음, 그것이 비참함이다. 그러나 그는 고독이 끔찍이 싫다. 조금도 좋지 않다. 가끔은 모둠 세트 요리도 먹고 싶다. 가끔은 텔레비전 소리 말고 다른 인간의 목소리도 듣고 싶다.

나는 처음에 당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숨은 질문이 있다. 당신에게는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 있는가? 끝까지 헌신할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게 있는가? 상황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을 관계가 있는가?
이 사랑스럽지 않은 삶,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단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는 인간계에 질병을 야기하는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보석금으로 은행가들을 빼내고, 역외 시추 작업을 재개하고, 공해를 유발하는 기업이 환경을 오염시키도록 그들의 물건을 사준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들 없이 어떻게 경제가 성장하겠느냐 반문한다. 하지만 모든 경제적 성장은 갈수록 부자들만의 이익으로 남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진다.
? 어슐러 K.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39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소설 ‘미친 아담 3부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코로나 이전이었다. 그래서 심각한 기후위기와 감염병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3부작의 많은 내용을 지금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닥쳤다. 그러자 그녀가 예언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년 전에 2020년을 거의 똑같이 예언했다. 그녀는 감염병으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는 우울과 각종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고 하루에 몇 번씩 손을 씻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심지어 전염병이 돌고 난 뒤 맑아진 공기에 대해서도 썼다. 바이러스, 백신, 비타민, 배고픈 북극곰에 대해서도. 그녀는 어떻게 이런 일을 내다볼 수 있었을까?

사실 미래에 대해 아무리 정확히 썼다고 해도 소설가가 예언자는 아니다. 그보다 작가는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탐구자일 것이다.

그녀가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면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확하게 관찰하고, 만약 우리가 이대로 계속 산다면 어떻게 될까 꼼꼼하게 따져본 덕분일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떠오른다. "현재를 아는 자, 수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다."

내장의 어느 부위에 병이 들어도 새로운 장기를 돼지에게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