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른 사람들이나 스스로에게 자신은 병들지 않았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팔팔하다고 둘러대곤 했다. 하지만 방문하는 마을 상가에서 도는 말에 따르면, 요즘 버클리 씨가 주문 처리를 실수하는 일이 잦은데 그를 잘 아는 정 많은 상점 주인들이 그가 내심 갈망하는 은퇴까지 무사히 버텨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호하느라 실수를 알아서 바로잡는다고 했다.

전성기 때와 마찬가지로 쇠락해가는 지금도 그는 애정 어린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옷을 가져갈 자선단체들의 이름을 말했고, 당연히 지역 빈민에게도 나누어줄 거라고 했다. 플로리언은 처분 방식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원피스와 아버지의 양복과 구두를 다른 사람들이 입고 신은 모습을 상상했다.

딜러핸은 본래 꼬치꼬치 캐묻는 성격이 아닌 데다 당황스러운 감정이 들면 의문을 품기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엘리가 무료해하고 농장의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 살림하고 달걀을 모으고 유제품 작업장을 깨끗이 관리하고 토탄 창고를 회칠하는 일거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그 외에 다른 것을 원한 적이 없었다.

아서 테틀로에게 몸을 허락했을 때는 자기 행동에 확신이 있었다. 남지 말았어야 했던 집에 남았다는 사실만이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희한한 일이다, 조지프 폴은 생각했다. 아침 식사는 식어가고 있었다. 꼭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는 것 같기도 했고 사용하는 표현도 그때의 사태 이후로는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이었다. 누이의 윗볼에 홍조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 보던 모습이었다. 누이는 분탄을 한 움큼 집어 사람들에게 던지곤 했다.

누이의 어리석은 행동이 집안에 그런 풍파를 일으킨 뒤로 그는 누이가 창문 밖으로 집 앞을 응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그녀가 무엇을 찾는지도 알고 있었다. 누이가 투숙객들의 구두를 닦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구두 한 켤레 한 켤레가 그녀에게는 아서 테틀로의 장식적인 검정색 브로그 구두처럼 보일 거라고도 추측했다. 아마도 그건 누이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환상일 것이며, 지금 상상하고 있는 사건 때문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 환상은 어쩐지 위태로워지는 듯했다.

누이는 아버지가 각별히 아낀 자식이었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이는 그 사건 이후로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온 아버지 모습 때문에 속이 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셔츠 칼라를 떼어내고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충혈된 눈으로 집에 들어왔다. 현관에서부터 얼빠진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고 휘청거리거나 넘어지며 계단을 올랐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뉘우침의 표시라도 되는 양 나누어주었다.

아일랜드를 영영 떠나기 전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무리한 바람 같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 희망은 줄어만 갔다. 쇳조각을 하나 발견한 그는 라벤더를 옥죄는 담쟁이덩굴을 되는 데까지 모두 뽑아냈다. 자신이 간 뒤에 이것을 본다면 그가 한 일임을 알까 궁금했지만, 그녀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그는 부모님이 함께 쓰던 옷장 문을 열고서, 고인들의 옷을 그렇게 오래 간직하고 사는 게 보기만큼 이상하지는 않다고 말할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플로리언을 보았다. 그가 이야기를 듣는 모습, 그러다 손을 내미는 모습, 오펀 렌이 작별 인사를 뜻하는 악수를 공손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플로리언 킬데리를 사랑하는 거다, 그녀는 소리 없이 말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벗어나 캐슬드러먼드 로드로 들어설 때 엘리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면 노인이 전에 얘기했던 집이 있던 곳을 보여주겠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여자가 아니었다. 다시 그는 망설였고 침묵은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시간 있어요?" 마침내 그가 말했다.

클룬힐에서는 남자를 고용하지 않았으며, 남자의 도움을 청하는 때는 발전기가 고장 났거나 굴뚝 청소를 해야 할 때, 겨울에 파이프가 얼었거나 여름에 말벌 집이 발견되었을 때뿐이었다.

그는 시작하지도 않은 일을 끝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제는 그녀가 주인이었고 오늘은 진주목걸이도 걸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플로리언은 엘리 딜러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주춤했다.

너무 허름해진 집을 보고 민망해하는 여자들의 감정이 전해졌다.

내 말은, 지금 뭐하는 거냐고 대놓고 물으라는 거야. 난 항상 엘리를 아꼈어."

플로리언은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가시철망을 벌려주었고, 쓰러진 나무가 큰길을 가로막은 곳에서도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가 엘리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피부를 느꼈으며, 평온함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쪽으로, 숱이 적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나 키가 크고 자세가 굉장히 꼿꼿했다. 노력만 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단련해 자세를 유지해온 사람 같았다.

달콤한 죽음 자체가 그녀에게는 꿈꾸던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보상이 되었으니까.

자기는 그런 병을 앓고 있지 않으며 집에 달걀을 대주는 여자가 잘 사는지 관심을 갖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되었든 그 외에 다른 뜻은 전혀 없었다.

그의 주장이 너무도 열렬했고 피로에 지친 눈이 너무도 밝게 빛나며 모든 고단함을 지우는 터라 플로리언의 정중한 거짓말은 마음속 깊은 연민이 시킨 말이라 할 만했다.

작업 틀에는 망가진 액자가 고정된 상태로 끼워져 있었다. 나쁜 말을 반복하면 벌을 받는다. 남자 배달부에게 말을 걸거나 <당신은 나의 햇살>이나 <베사메무초>를 속삭여 노래하면 벌을 받는다. 무도회장에서 춤추면 벌을 받는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너희는 운 좋은 사람들이다.

플로리언은 엘리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전거 바퀴가 바짝 마른 길 표면에 닿아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럴 법도 한데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엘리에게 어울리는 행동이 아님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좁은 샛길이 더욱 좁아졌고, 그녀는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자전거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둘을 함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그들은 중간에 끊겨버리는 진입로를 다시 걸었지만 길이 끊긴 곳 너머로는 가지 않았다. 그 방향으로 계속 가면 자동차와 트랙터가 다니는 곳, 라스모이 변두리의 단독주택들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진입로의 쓰러진 나무 근처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포옹했다.

약속한 날이 되면 떠나는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모두들 홀에 모였다. 갈 곳이 정해진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었으니까, 다들 갈 집이 정해져서 떠나기를 바랐어요.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요. 모든 게 결정되면 기대를 엄청 하면서 들뜨곤 했죠. 우린 어디로 가게 될까 추측해보곤 했어요. 우리가 원한 건 큰 마을이었고요. 전 워터퍼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거기 가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말해준 곳은 농장이었죠."

그가 클룬힐에서 보낸 유년기에 대해 더 많이 물을수록 엘리는 질문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아직 가끔은 낯설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플로리언이 평생 알고 지내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가 말해준 과거의 이야기들은 그녀의 또 다른 일부가 되었다.

장소가 어디든 그와 함께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우정, 혹은 어떤 삶보다 더 소중했다.

플로리언은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과거에 사로잡힌 남자의 집에 그녀를 일꾼으로 보내어서는 안 되었다고. 그러나 그렇게 생각만 했을 뿐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혹시 겉으로 드러날까 싶기는 했지만.

"그렇게 끔찍한 곳은 아니에요." 엘리가 말했다. 마치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그냥 거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뿐이에요."

그는 항상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요즈음은 투숙객들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는다, 언젠가 조지프 폴이 이렇게 말했다. 가정부도 자신을 건성으로 대한다. 그녀는 그가 잠은 잘 자는지 궁금했다.

"넌 정말 동정심이라고는 없는 거니? 딜러핸이 어떤 일을 겪었는데, 그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엘리가 그 사람하고 가정을 이루고 불행을 극복하며 살고 있는데 별안간 돼먹지 않은 침입자가 나타난 거잖아."

동생을 탓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응석받이로 떠받들려 살아와서 동생은 세상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다. 젊은 아내가 누군가에게 푹 빠졌다는 얘기가 딜러핸의 귀에 들어갈 텐데,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누가 그를 탓하려 하겠는가?

"트랙터에 다 실려 있어요." 엘리는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남편에게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한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창가에서 엘리는 남편이 헛간에서 경운기를 끌어내 트랙터에 연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개들을 태우고 트랙터를 몰고 나간 뒤에도 여전히 조바심은 남아 있었다. 생소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그런 느낌이 싫었다.

플로리언은 셜해나를 팔려고 내놓았다는 사실과 매매가 성사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털어놓지 않았다. 집을 완전히 넘기고 나면 아일랜드를 떠날 거라는 사실도. 수도사들의 무덤이나 리스퀸의 진입로에서, 혹은 찻집이나 에나에서 매번 그는 헤어지기 전에 반드시 그 말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매번 말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이유는 엘리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일까? 혹은 시작은 그렇지 않았으나 이제는 기쁨이 된 관계를 갑작스럽게 끝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자주 그랬듯이 뭐든 숨기고 싶어 하는 성향이 우세했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미루고 있을 때는 그게 옳다고 느꼈지만 숨긴다고 해서 어떻게 해볼 수 일이 아니며, 자신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일어날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는 얼마나 익숙한 사람인가, 그는 생각에 잠겼다. 잿빛의 푸른 눈, 부드러운 입술, 목소리, 미소, 수줍어하면서도 침착한 태도. 오늘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만나기 전이면 그는 늘 엘리가 어떤 옷을 입고 올지 궁금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파란색, 녹색, 인동덩굴 무늬? 남편의 결혼 선물이라는 팔찌와 수녀님들이 주었다는 울워스 잡화점의 브로치, 그리고 낡은 핸드백은 또 얼마나 익숙한지. 그녀의 순수함, 그리고 처음에 그토록 자신의 연민을 자극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온화함은 또 얼마나 익숙한 것인지.

그는 떠날 테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지금 아침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가 있다는 사실인 것처럼.

여름이라는 계절로 인해 더욱 목가적으로 느껴졌던 우정을 되도록 길게 끌고 싶었다는 것이 정확한 진실이었다.

그는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는 사랑받는 느낌을 사랑했고, 다정함만으로는 충분한 보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날 밤 엘리는 잠결에 울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까봐 애써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자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겨우 깨어나 보니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베개가 젖어 있어 뒤집었는데, 아침이 되어 보니 눈물은 마치 꿈속에서 흘렸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음을 그녀는 알았다.

이사벨라는 짐을 모두 홀에 내려놓은 상태에서 ‘현장수첩’을 침대에 놓고 왔음을 깨닫고 그것을 플로리언에게 감춰두라고 매섭게 지시했다. 중요한 일이었다. 혹은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당시 그녀와 플로리언이 하던 일 대부분에는 비밀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라는 플로리언이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때로는 경솔하게 내팽개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그녀는 냉정하고 차분했고 그는 조급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수월했기에 엘리는 희망을 넘어선 어떤 기대를 품었고, 그렇게 고털라사의 산허리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을 놓기가 힘들어지죠. 그래서 더더욱 놓아야 하고요. 그렇다고 가진 걸 팔아치우기가 누군들 쉽겠어요? 그분 나이는 차치하고라도 말이죠."

엘리는 남편의 걸음걸이를 보고 대출 승인을 받았는지 알아내려 했지만 짐작이 되지 않았다. 어깨에 숄을 두른 여자가 손을 내밀자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동전을 하나 꺼내 손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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