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의 죽음 2

우리 병원 차지 널스들의 좋은 점은 오늘 내가 본 환자를 내일도 내가 일하게 된다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 그 환자에게 대해서 알아볼 시간이 너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간호 경력이 오래 되어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간호사의 스케줄은 인계 받자마자 정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더구나 나처럼 초짜는 의사의 오더 보고, 랩 결과 보고, 무슨 약을 줘야 하는지 보고, 환자 신체 검사도 자세히 해야 하고 등등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래서 이 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버겁다. 그런데 그 전에 봤던 환자를 다시 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나는 린다를 또 맡고 싶지 않아서 제발 다른 환자를 맡게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사려 깊은 우리 차지 널스는 나에게 다른 사수인 K와 같은 환자 두 명을 맡겼다. K는 아마도 우리 중환자실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는 간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너무 완벽하고 꼼꼼해서 그녀와 몇 번 일했는데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데 어제도 그랬다.


J가 우리에게 인계한 단 한마디는, "환자가 죽어가고 있어." 그게 다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린다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가 이러고도 간호사냐? 뭐 이런 자각에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 같다. 죽어가는 사람을 판단했다는 생각. 린다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뭐라고 그녀를 함부로 판단하고, 구토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간호하기를 꺼렸던 생각. 더구나 저러고 살아 남아서 뭐하겠어?라는 린다에게 뿐 아니라 심각해 보이는 환자를 보면 늘 하던 생각들.


K는 우리가 그녀를 돌보는 시간 중에 그녀가 죽으면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뒤치닥거리를 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계속 의사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사실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린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게 되면 그냥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건데 K는 린다가 목숨이 붙어있을 순간까지 붙어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린다는 거의 8시간을 숨이 넘어가는 숨을 쉬면서 목숨을 붙이고 있다가 J에게 인계 한 후 10분 뒤에 숨을 거뒀다. 나는 혈압 상승약을 주는 대신 몰핀을 주고 싶었다. 어차피 린다가 오래 살 수 없을텐데 마지막 가는 길 고통스럽게 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수에게 몰핀을 주자고 했다가 말만 들었다. 혈압이 저렇게 낮은데 지금 몰핀을 주면 죽음을 재촉하는 거라고. 그녀가 한 시간이라도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나는 몰랐으니까. 사수의 목표를 뒤늦게 파악했으니까. 지금도 후회가 된다. 더 강력하게 몰핀을 주자고 하지 못한 내 어정쩡하고 바보 같은 모습이. 


집에 오면서 술을 산 이유는 K에게 화가 나서다. 너의 편의를 위해서 왜 죽어가는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없는 것이니? 나에게도 화가 났다. 나는 왜 멍청해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병신처럼 가만히 있었는지.


린다는 여동생이 있지만 사이가 안 좋아서 사회복지가가 그녀의 여동생에게 연락을 했을 때 오히려 린다의 친구라는 F아저씨에게 연락을 하라며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는 기록을 읽었다. 만약 린다에게 누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녀 주위에 고양이들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발톱을 깎고, 피부를 관리하며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거나, 아니,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지 않더라도 세수하고 이빨 닦는 일마저 안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니 그 나이에 이빨이 하나도 없고. 틀니도 없었다. 치아만큼 경제력과 문화, 사회성을 드러내는 부위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건강의 이유가 아니라도 치아를 깨끗이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녀는 직업이 있었지만, 주위에는 대부분이 동물들이니 아무리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 받는다고 해도 인간과 함께 하는 삶과는 다를 것 같다. 모든 중환자실의 사람들이 같은 경우는 없지만, 대부분의 중환자실에 오는 환자들을 보면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해서 내가 판단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그들의 몸을 검사하다 보면 이 사람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가꿨는지가 보인다. 특히 발톱. 문제가 있으면 숨기기도 가장 쉬운 부분이 발 아닌가? 남에게 드러낼 필요도 없으니. 더구나 사람의 발에 무좀이 생기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좀이 생겼을 때 치료를 하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차이는 크다. 나는 우리 시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해마다 페디큐어를 받으실 수 있도록 상품권을 사드린다. 발톱을 잘 관리하는 것은 미를 위해서도 좋지만, 것보다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더구나 나이든 사람들의 발톰 관리는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톱 관리를 자주 해줘야 낙상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사소한 일 같지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귀지. 젊은 사람들도 귀지를 정기적으로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들면 더. 외로운 사람은 더더.


남들이 있던 없던, 보던 안 보던,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몸을 잘 가꾸고, 작은 습관들이 결국 큰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기. 


린다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난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는 올리지 못할 것 같다. 이틀이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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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8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1-02-18 09:29   좋아요 1 | URL
라로님 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라로님 마음이 이해되어서 찡했네요.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몸을 잘 가꿔야 한다는 말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늙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건강하려면 그만큼 내 몸을 아끼고 관리해야 하니까요.

라로 2021-02-19 16:20   좋아요 0 | URL
정말 중환자실에서 일을 해보니, 모든 사람의 몸이 다 다르긴 하지만, 젊어서 어떻게 자기 관리를 했나가 노년을 좌우하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소한 것들,,, 치과에 정기적으로 가는 것 정말 중요하고요,,,암튼 언제 이런 사소한 거 관리하는 중요성에 대한 글을 함 써볼까봐요.^^;;
우리 몸 잘 관리해서 건강한 노년을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