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프라서 (내일 일하러 간다) 사무실에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나서는데 porch에서 crossword puzzle을 하시던 시어머니가 나를 잡아 세우신다. 뭐 보여줄 것이 있으시다고. 뭔가 싶어서 집안으로 따라 들어가니 NICU에 보낼 퀼트 만드신 것을 보여주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까 그 아기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theme의 패턴으로 퀼트를 하신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 앞머리 저렇게 하시는 거 넘 별로인데 어디 나가실 때마다 저렇게 하심. ㅋ 젤 예쁜 시어머니의 눈을 가려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지만. 


올 NICU 퀼트는 저것들로 마무리를 하신다며 크리스마스 패턴을 일일이 보여주셨다. 저 퀼트를 만드시면서 시어머니 혼자 시어머니의 퀼트를 받게 될 미숙아들 보다 그 엄마들이 좋아할 것을 상상하며 신나셨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나에게도 보여주면서 나도 같이 즐거운 생각을 하기 바라시니까 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보여주시는 그런 마음인 것.


나는 다정도 병인 사람이라 감정 소모가 많은데 비해서 시어머니는 이렇게 봉사를 많이 하시고(퀼드 만드는 것 말고도 봉사를 많이 하심) 하지만, 감정 소모가 없으시다. 자기가 해주고 싶으니까 해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고, 자기가 할 수 없으면 안 하는 분. 그래서 질척거리지 않아 좋지만, 어떨 때는 냉정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그만큼 '나와 타인과의 거리를 잘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해석해본다. 하지만, 그건 시어머니가 사소한 것부터 자신에 대한 절제와 자기 훈련이 잘 된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 해 같이 살면서 알게 되었다.















김 살로메 작가의 [엄마의 뜰]에는 <신발을 돌려놓으며>라는 글이 있다. 거기에 나온 글을 살짝 인용하면,


신발을 돌려놓는 마음은 한 청년에게서 배웠습니다. 잠시 잠깐 아들의 과외 선생님이었던, 갓 스물을 넘긴 풋풋하고 선한 대학생 말입니다. 방문 첫날,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선생님은 자신의 벗은 신발을 현관문 쪽으로 가지런히 돌려놓는 거에요. 손님을 배려해 집주인이 신발코를 돌려놓는 일은 봤어도 방문객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도 싱긋 웃기만 할 뿐 매번 그렇게 하더라고요. 제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던, 젋디젊은 청년의 역지사지 매무새가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더군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이 선생님으로서도 최고였음은 첨언할 필요조차 없지요.자기 관리를 하는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습관화된 청년 같았습니다. 신발을 단정히 돌려놓던 첫 모습에서 그런 모습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요. 자신을 갈고닦아 예의와 염치를 실행하는 마음. 섬세한 결을 지닌 청년의 역지사지를 보면서 한동안 자기반성 모드가 되곤 했지요.


p. 212-213


이 글을 읽었을 때 처음에 시어머니를 보면서 자기반성 모드로 자주 빠지던 내가 생각 난다. 


이 청년의 예 다음에 김 살로메 작가가 봉사 활동을 하면서 역시 신발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역지사지가 덜 된 제 실수담이 떠오릅니다. 역시 신발에 관한 것이군요. 시각장애인 봉사 모임에 동참한 적이 있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짝을 이뤄 야외 나들이를 갔지요. 제 짝지는 초로의 신사분이셨어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였지요. 초보 봉사자인데다 덜렁이인 저는 짝지의 신발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짝꿍의 신발 정도는 가뿐히 챙기는 다른 봉사자들에 비해 저는 우왕좌왕 헤맸지요. 난감해하는 저를 보고 베테랑 봉사자가 도와줘 신발을 찾긴 했어요. 


하지만 부끄러움은 온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짝지가 신발을 벗을 때 도와드리긴 했지만, 그 분의 신발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깨치지 못했지요.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봉사하는 행위에만 제 마음의 방점을 찍었던 거예요. 행위만 앞섰지 그들 입장에 대해 숙지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신발을 돌려놓는 마음의 수련이 있었더라면 짝지의 신발을 기억하는 것쯤이야 유쾌한 과제가 되었을 텐데 말예요.


p. 213-214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신발을 돌려 놓는 청년과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봉사하는 행위에만 제 마음의 방점을 찍고 덜렁거리며 우왕좌왕 헤매는 사람.


그러면서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으신다.


신발을 돌려놓는 작은 행위는 자기수양을 구하는 안으로의 수렴이자 타자이해를 실천하는 외적 발산입니다.


분별하려는 마음이 돋을 때마다 신발 돌려놓기를 생각합니다. 포개지고 헝클어진 마음의 코가 반듯해집니다. 


p.215


봉사활동으로 미숙아들의 이불을 만들면서 가운데 패턴이 있는 곳은 한 땀 한 땀 둘레를 바느질해 가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닐까 헤아려 본다. 봉사를 하면서 사실은 포개지고 헝클어진 마음의 코를 반듯하게 한 땀씩 꿰매며 자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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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0-12-11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어머니는 마음의 거리 두기를 할 줄 아는 분이시네요. 이게 정말 힘든데 말이죠. 가까운 사람과 책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라로님은 멋쟁이에요. 거리두기 좀 못하면 어때요. 이리 들여다보고 머리 한 대 줘박고 살면 되죠. 또 우왕좌왕하면서. 라로님은 라로님스럽게^^

라로 2020-12-13 14:25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가끔 저같이 정에 굶주린 사람은 냉정한 분인가? 싶게 느껴지기도 해요. ^^;; 멋쟁이라는 말 좋아하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넘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죠,,, 저는 행복한책읽기 님이 김장을 그렇게 하시면서 시를 쓰고 읽으시는 책을 보면서 멋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찌찌뽕!!^^ 맨날 머리 쥐어박고 삽니다.ㅠㅠ 우왕좌왕, 갈팡질팡,,,그게 라로 답죠.ㅋ

psyche 2020-12-15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퀼트 너무 이쁘게 만드셨네요. 미숙아들을 위해 저렇게 바느질을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라로님 주변에 멋진 분들이 있는 건 라로님이 멋지기 때문일까요?

라로 2020-12-16 15:13   좋아요 1 | URL
그죠!! 더구나 크리스마스라고 저런 천을 찾아서 만드시고 혼자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누구에게 보일려고 하는 거 아니라,,, 그런 마음 이해하시죠? 프님도 제 주변의 멋진 분입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멋져서가 아니라, 주변의 멋진 분들을 보고 배워라,,,뭐 그런 것 같아요!! 프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속도 깊고, 정도 많고, 책도 많이 읽으시고, 능력도 있고!! 더구나 똑똑한 딸 둘을 두신!!! 부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