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의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정신과 전문의가 쓴 에세이가 읽고 싶기도 하고 음악 얘기도 읽고 싶어서 예전에 순오기 님께서 선물로 보내주신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을 골라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에서 박종호 씨가 일본의 한 저명한 평론가가 Sergei Nakariakov의 트럼펫 연주를 처음 보고는 너무 놀라서, 박종호 씨의 표현에 의하면, 전문가 답지 않은 천진함으로 "저 소년은 대체 언제 숨을 들이마시는 가?"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의 첫 글의 제목은 [나팔부는 소년]이고 부제가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 -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 이다. 

psyche 님께서 나카리아코프의 치고이너바이젠을 찾아주셔서 링크를 변경했다.

들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를 누르면 된다. (여전히 유튜브는 나를 거부하고 있;;)


치고이너바이젠은 나 역시 무척 좋아하는 바이올린 곡인데 역시 박종호 씨의 표현대로 "한마디로 정신없는 곡"이지만 그 음악을 듣고 있는 순간 함께 정신이 없어지면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난 후의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그런지 나는 즐겨(?) 듣고 자 한다.

하지만 어쩌면 사실 딸아이 때문인 것 같다.

딸아이가 바이올린을 전공할 생각을 했을 당시 이 음악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늘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흐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인지 딸아이도 예중 입시에 탈락하고 외고로 방향을 전환해서 외고에서 불어를 결국 전공하고 (그렇다고 바이올린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는 신경 과학을 전공한 후, 이제는 의대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어쨌거나 그 당시 이 어려운 곡을 하면서 딸아이는 얼마나 선생님에게 혼이 났는지...애가 혼나는 거 별로 눈 깜짝 안 하는 나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치고이너바이젠을 배울 때는 정말 안쓰러웠다. 그 당시 내깐에는 딸을 도와준답시고 이 곡을 열심히 들으면서 딸의 연주와 비교해 주는 역할을 하고자 했지만, 결론은 아이에게 더 많은 스트레스를 줬다는 것은 안 비밀. ㅠㅠ


어쨌든 이 곡이 정말 너무 어려운 곡이란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박종호 씨도 그의 책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제1부는 애수를 잔뜩 머금은 멜로디가 비감하게 시작되어 집시 특유의 애절한 선율로 진행된다. 제2부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전형적인 집시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제3부에서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면서 현란하게 진행되다가 폭풍처럼 끝맺는다.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도 대단히 어려운 곡이다. 기교가 난해하면서 또한 감정도 살려야 하는, 한마디로 정신없는 곡이다. 지금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잘 연주하고 있지만, 사라사테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외에 이곡을 제대로 표현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pg. 19

나카리아코프의 트럼펫으로 된 연주를 찾는데 실패했지만 고소현이라는 그 당시(2018년) 12살 된 우리나라 소녀가 연주하는 영상을 찾았다!

Sarasate: Zigeunerweisen, Op. 20 - 고소현


딸아이가 저 곡을 연주할 때도 고소현 양 나이 정도였다. 아마도 13살? 

소현 양의 연주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저 소녀는 누구의 제자일까?" 그리고 소현 양은 바이올린을 하기 좋은 신체적인 조건을 갖고 있구나. 악기의 가격이 얼마인 것을 사용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을 했을까? 저 소녀도 연습을 하는 동안 선생님께 많이 혼이 났을까? 아닐거야. 무척 자신있어 보이잖아....아마도 부모가, 특히 엄마가 잘 도와주고 있나 보다...그리고 연주를 제법 잘 하는구나. 저렇게 뛰어난 아이들이 많으니 역시 우리 딸이 입시에서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사였던 거네...뭐 등등 그딴 생각들이 떠올랐다.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정말 늙긴 늙어가나보다,,,아이들의 어릴 때가 막 생각나는 것 보니까...ㅎㅎ

어쨌든 고소현 양의 앞날이 기대된다. 연주 중간에 씨익 웃는 자신 있어 보이는 모습도 보기 좋았는데 계속 그렇게 자신있게,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길. 


덤으로 Carnival of Venice - Sergei Nakaria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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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03-31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저 찾았어요!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가 연주하는 거요. https://www.youtube.com/watch?v=l86f0vKBKJQ
트럼펫 좋아해서 덕분에 잘 감상했어요. 저희 집 엠군도 트럼펫을 하는데 연습을 한번도 안 하기에 소리 들을 일이 없답니다. ㅋCarnival of Venice 는 아이들 밴드에서 매번 하던 곡인데 역시 다르네요 ㅎㅎㅎ

라로 2020-03-31 05:30   좋아요 0 | URL
우앗! 역시 프님이야!!!^^
올려주신 링크로 변경하겠습니다요!!
맞아요, 저도 트럼펫 들으면서 엠군 생각했었죠.
엠군은 언제 숨을 쉬나? ㅎㅎㅎ 뭐 이러면서.ㅎㅎㅎㅎㅎ
언젠가 하겠지요. 저희 엔군은 호주에 가서 악기를 못만지니까 이제야 좀 할 마음이 다시 생긴 것 같아요.
얼마 안 있으면 올텐데(이누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잠깐 들어와요.ㅠㅠ) 두고봐야죠.ㅎㅎㅎㅎ

쎄인트saint 2020-03-3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덕분에 ..
오늘 아침 좋은 음악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현이...정말 앞으로도 기대되는 연주자입니다.
연주 중 표정의 밝음과 여유로움이 인상적이네요..

라로 2020-03-31 11:38   좋아요 1 | URL
쎄인트 님 댓글 감사합니다.^^
음악이 좋으셨다니 기뻐요.

고소현 양은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표정도 밝고 자세도 진중하고
기본이 잘 닦여진 학생 같아요. 중간에 미소도 귀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