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r & Force - Vagabon


나는 학교때문에 바쁘니까 좀처럼 마트에 가지 않는다. 마트나 코스트코는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가서 장을 봐온다. 그런데 오늘은 bobby pin이라는 일명 실핀이 필요해서 Target이라는 마트에 갔었다. 이왕 마트에 왔으니 이것저것 평소에 생각은 했었지만, 그렇게 아쉽지 않은 것이라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았던 것들을 함께 샀다. 가령 겨드랑이 털을 깎는 면도기의 리필 같은 거.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옆의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 사람이 계산원과 대화를 하는데 그냥 듣게 되었다. "코스트코에 화장실 휴지가 다 팔렸지 뭐에요."같은 얘기. 그러면서 계산대위에 화장지는 물론 손세정제며 청소용 물티슈를 왕창 사는 그 녀자를 보면서 갑자기 화가 났다. Covid 19 확진자가 나오고 위싱턴주의 Nrusing Home에서 10여명이 죽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캘리포니아에서 그렇게 사재기를 할 필요가 있나? 왜 저런 선동질을 해서 정작 필요한 병원에서 손세정제가 모자라는 일이 생기게 하는 거야!


지난 주 토요일에 ICU에서 일을 하는데 3개의 병실 옆에 손세정제가 없는거다. 나는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간호사들이나 다른 의료진들이 일을 하는데 부족한 것이 없도록 일회용 장갑, 마스크, 그리고 가운을 늘 살핀다. 그래서 부족하면 그런 것들을 넉넉히 비치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손세정제는 보통으로 청소하시는 분들이 챙기는데 ‘아마도 청소를 하실 때는 있었는데 다 소진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Charge Nurse에게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청소하시는 분을 보게 되면 그분에게 손세정제가 없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좀 있다가 청소하시는 아저씨가 오셔서 손세정제가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저씨는 기분이 얹짢으신 듯 그러신다, "어제부터 병원에 손세정제가 다 떨어져서 난리야."라고. 


나는 그날 좀 충격을 먹었더랬다. 손세정제는 병원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중에 하나다. 물론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하지만, 미국 CDC는 손세정제를 3번 사용해서 손을 소독(?)하면 그 다음에 반드시 비누를 사용해서 손을 씻으라고 권고한다. 그러니까 바쁜 의료진들, 특히 손을 계속 사용해서 환자와 접촉을 하는 간호사들은 3번까지 환자와 접촉 후 세정제로 손을 씻어도 되지만 4번째가 되면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누로 손을 씻은 다음에 다시 환자와 접촉을 하게되면 세정제를 사용할 수 있다. 바쁜 의료인들을 위한 배려이긴 하지만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병원에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굳이 손세정제를 사용해서 손을 소독(?) 할 필요 없이 그냥 비누로 손을 씻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미생물학 시간에 손세정제와 비누같은 세척제들 중에 어느 것이 더 소독 효과가 강한지를 실험한 적이 있다. 미생물을 비누에 넣은 페트리디쉬와 손세정제, 샴푸, 등등의 세척제를 각각 넣은 페트리디쉬를 사용한 실험이었는데 비누나 바디샴푸, 헤어샴푸 같은 것의 소독 효과가 손세정제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을 확인했다. 손세정제에 미생물을 넣은 페트리디쉬 안의 미생물은 거의 살아 있었지만 비누나 다른 세척제에 들어있던 미생물은 죽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서 일을 할때 3번의 손세정제 사용을 허용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손세정제를 안 사용하고 늘 비누로 손을 씻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바쁘면 어쩔 수 없이 손세정제를 사용했다가 다시 비누로 손을 씻는다. 그런데 손세정제가 없어서, 더구나 중환자실에 손세정제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는데, 비누로 손을 씻으면 되는 일반 사람들이 손세정제와 물티슈 등을 사재기 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난 것이다.


그건 지난 번에 칭칭이 보내준 사진을 보고서도 화가 났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10장에 $1 정도에 팔리는 것이니 150장이면 $15이면 될텐데 $386.03!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뉴스에서도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많이 들었을텐데 마스크 사재기도 여전히 유행(?)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Fresh air라는 NPR에서 하는 라디오 방송이 있는데 거기에 데이비드 쾀멘 (David Quammen)이라는 사람을 초대해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이 기억난다. 그당시 (2월) 그 사람은 호주에 갈 예정이라 혹시 태풍으로 인해 중국으로 가는 경로로 돌아 올 경우를 대비해서 동네 약국에 마스크를 사러 갔는데 (그 사람이 사는 곳은 몬타나 - 켈리포니아에 비해서 사람이 많지 않은 주) 매진이었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QUAMMEN: Yeah. Yeah, I think the CDC is also saying, look - ordinary people, we have a shortage of masks; let those masks be used by health care workers who need them most, rather than wearing them when you go to the hardware store.

네. 네. 제가 알기로 CDC (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도 얘기하죠, 보세요 - 일반인들(아), 지금 마스크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철물점(사실 hardware store는 철물점으로 되어있지만 여기서는 코스트코처럼 아주 큰 마트)에 갈때 마스크를 쓰고가는 대신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의료진들이 사용하게 합시다. (뭐 대강 이런 내용)


코로나바이러스 열풍으로 인해 데이비드 쾀멘의 책을 급하게 출판했는지 나는 표지도 제목도 넘 마음에 안들고 그렇다. 어떤 내용의 책인지도 모르겠는 책. 데이비드 쾀멘이 봤다면 실망할 것 같은. 표지와 제목이 50%를 먹고(판매의)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저 책의 표지를 보면 내용을 떠나서 사고 싶은 생각이 1도 없다. 암튼 책을 사기 전에 관심있는 분들은 Fresh air에 나온 데이비드 쾀멘의 인터뷰를 들어보시길. 링크는 밑에.

데이비드 쾀멘의 인터뷰 - Fresh Air


이렇게 무턱대고 사재기 하는 사람들 덕분에 청소용 물티슈를 만드는 회사인 Clorox나 Lysol회사의 주가가 치솟는다는 뉴스도 어제 들었다. 


이런 문제는 공포와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나도 그 병에 걸리면 어떻하지?"와 "나는 그런 병에 걸리고 싶지 않아".라는. 아니면, “나만 그런 병에 안 걸리면 돼”라든지.

그런데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 무지에서 시작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100번 이긴다고 했나? 


Covid 19, 일명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떤 전염병이고 어떻게 전염이 되는지 알면 그렇게 사재기를 안해도 된다는 것을 알텐데 안타깝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심각한 것 같다. 방금 알라딘 지기님이 알려주셨다. 도서관까지 1달이상 장기 전면 휴관이라고. Covid 19은 현재 droplet precautions disease 으로 CDC에서 분류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전염병마다 그 전염되는 경로를 따져서 구분을 짓는다. 그중 하나가 droplet precautions인데 주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입에서 나오는 감염자의 침같은 것으로 전염되는 것으로서 감염자로부터 3 feet (3발자국) 떨어져 있으면 감염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어쨌든 결핵처럼 공기중으로 전염이 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한 일반인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닐 필요도, 마스크를 쓰고 직장에서 일을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서관과 같은 공공 건물을 폐쇄할 필요까지 있을까? 더구나 한달이나 넘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를.


“Fear defeats more men than any other one thing in the world,” - Elbert Hubbard.

공포(심)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사람을 쳐부순다. 


확진자의 숫자가 많고 전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염병에 굴복하기 보다는 좀 더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병의 전염경로를 숙지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조언하는 대로 손을 잘 씻는 습관을 들인다면 그렇게 무서워 할 필요가 없는 병이라는 사실. 그리고 확진자가 다 사망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병원에 필요한 물품을 사재기해서 정작 병원에는 물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글을 좀 더 쓰려고 했는데 남편이 내 차를 자기 차보다 먼저 주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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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hat is known might change.
    from 라로의 봄날 2020-03-26 13:56 
    나는 3월 4일에 Fear and Force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었다. (그 글은 밑에 먼댓글로 링크되어 있다)그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은 미국의 CDC에서 droplet precautions disease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정보를 기반으로 글을 작성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사재기를 하면서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요지의 글을 올린 것이었다.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윤곽이 드러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체는 이제 정말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4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한국 공포는 마치 옛날에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에 상륙했을 때 천연두에 전염된 인디언의 공포처럼 느껴집니다. 걸리면 죽는다.. 이런 느낌. 공포가 지나치게 과대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보니깐 약국 앞에 백 미터 줄을 서 있더라고요. 오히려 그게 더 공포스러웠던....

라로 2020-03-08 08:07   좋아요 0 | URL
약국 앞에 백 미터 줄이라니,,,,상상이 갑니다. ^^;;
제가 이 글을 올리고 난 후 여기 미국도 좀 난리네요. 그전까지는 확진자가 60명이라 조용했는데
갑자기 200명을 넘기니까 그런건지...어쨌든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겠지요? ^^;;

진주 2020-03-0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로 님, 저는 어제 3시간 20분을 기다려 간신히 마스크 2장 샀어요... 미국이나 또는 같은 우리나라라도 TK권이 아니라면 ‘의연‘하게 무서워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대구 경북권은...으음.....제가 어떻게 설명해도 상상 못 하실거예요. 확진자의 동선 역학조사같은게 무의미한 지경이예요. 확진자로 밝혀져도 병상이 부족하니....의료공백 없이 속히 이 시국이 끝나기만 바랄 뿐이예요. 무탈하세요~

라로 2020-03-11 09:42   좋아요 0 | URL
어머나!!!!!!!!!!!!!!!!!!!!!!!!!!!!!!!!!!!!!!!!!!!!!!!!!!진주님!!!!!!!!!!!!!!!!!!!!!!!!!!!!!!!!!!!!!!!!!!!!!!!!!!!
5년을 기다렸어요! 이렇게 갑자기 똭 나타나시다니 꿈인가 싶어요.ㅠㅠ
사실 이상하게 요즘 더 진주 님 생각이 많이 났는데,,,이거 빈말 아니라 꽉찬 진심이에요!!!
만나본 적도 없는 분인데 왜 그렇게 그립던지,,,형체를 알 수 없으니 그 그리움은 정말 막연하더군요!!ㅎㅎㅎㅎ
아~~~~ 정말 너무 기뻐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려고 해요. 밖에 비가 와서 더 그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