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해변에서 책을 읽다말다 하면서 남편이랑 애들이 물속에서 노는 것도 지켜봤다가 까무룩 잠도 들었다가 그랬다. 그러고 물속에서 나온 남편이 대륙쪽 하늘을 가르키며 “저기서 불이 난 것 같아!”그런다. 그런데 내가 볼때는 하얀, 아니 조금 아이보리 색 같은 뭉게구름처럼 보이는데? 남편이 아니라고 하면서 저것은 불이 날때 생기는 연기란다. 그럴수도 있겠다. 이번주가 가장 뜨겁다고 하니까. 속상하다. 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탔을까! 얼마나 많은 물과 자원이 소비됐을까! 얼마나 많은 소방관들이 수고를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제발 불이나서 생기는 연기가 아니길, 그냥 뭉게구름이길 바랐다.
오늘 아침 걷는데 오늘은 페블리 비치에서 돌아오는 대신 산으로 올라가서 집 뒷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걷기로 했다. 그런데 안개처럼 얇게 깔린 하얀 구름덩어리로 보이는 것이 머리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아직도 안개가 끼었나? 오늘 날씨 좋으려나? 이러면서 올라가는데 정상쯤 올라가니 그건 안개가 아니라 구름처럼 보였다. 산허리에 있는 구름. 그랬는데 자세히 보니까 이건 도대체 구름이 아닌거다. 어제 남편이 말한 그것이구나. 연기! 바람이 육지쪽에서 불어오니까 저것들이 90키로가 넘는 곳까지 밀려왔구나 싶어서 뉴스를 검색해봤다.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두곳에서 불이 났단다. 3시간만에 1000에이커를 태웠다고. 무. 섭. 다. 1000에이커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있었을까? 그것이 3시간만에 타다니. ㅠㅠ
<랩 걸>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그랬다. 어떤 식물의 씨앗은 땅속에서만 몇 백년을 있다가 나무로 성장한다고. 몇백년은 아니라도 최소한 몇년씩 기다렸다 자라난 나무들이 많을텐데... 속상하다. 인간의 부주의로 불이 나지만 여기는 너무 뜨거우니까 자연적으로 불이 나는 경우도 많다. 어서 빨리 이 더위가 한풀 꺾이고 비가 많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제발.
저 거대한 불을 끄기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이 안타깝다. 물론 근처에서 불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지만. 작년인가?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꽤 유명한 가수가 자기 집에 불이 난 경험을 얘기 하는 인터뷰를 들었었다. 그 가수는 그 경험 이후로 가족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 있는 우리가 소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진은 추억이 있기 때문에 소중히 여긴다고.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서 더이상 아무것도 집착을 안 하게 되었다고.
나이가 자꾸 많이 들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노력해서 쌓아가야 하는 것은 돈이나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
남편은 두 꼬맹이들 데리고 러버스 코브(lovers cove)에 스노클링 하러 갔고 엔군은 늦게 일어나서 내가 만든 블루베리 팬케이크를 먹었다. 점심으로 튜나(참치)샌드위치와 샐러드, 천도복숭아, 포도, 허머스와 크래커등을 싸가지고 해변으로 갔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더 먹고 싶어 했다.
어제는 라벤더 비키니를 입었고 오늘은 노란색을 입었다.
사진은 어제 남편이 만들어준 BLT부터 오늘 아침에 내가 시험삼아 만들어 본 베리베리 팬케이크. 레즈베리는 팬케이크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블루베리는 그리 나쁘진 않았는데 오늘 아침의 두가지 베리의 팬케이크 맛을 본 남편의 한마디는, “안 어울려.” 나도 알아.
오늘 아침부터 많이 걸었다. 아직 배는 들어가지 않고 고대로지만 다리는 좀 달라진 느낌이 든다.
아침에 아이들이 스노클링을 하러 갈때 해든이에게 스스로 썬블락을 바르라고 했는데 저녁 먹기 전에 샤워하고 나온 아이를 보니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왜 그러냐고 하면서 썬블락을 제대로 바른거냐고 하니까 생각을 하더니 이마만 바르고 눈 밑으로는 안 바른 것 같단다. ㅠ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ㅎㅎㅎㅎ 암튼 그래서 얼굴에 붙여줄 오이를 사가지고 와서 얇게 잘라서 붙여주고 나머지는 썰어서 냉동실에 넣었다. 자기전에 오이 바꿔주고 내일 붙여주고 그러면 괜찮을 듯.
오늘 저녁의 활동은 빙고게임이었다. 비치에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6시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인데 빙고 판 하나에 $1.00을 내면 된다. 우리는 각자 두 판씩 들고서 게임을 했다. 엔군은 안 한다고 해서 우리 넷이서 했는데 8개의 판으로 했는데 다 꽝이었다. 실망한 해든이와 에이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이 빙고 게임을 시작하신 분은 원래 농아인데 보청기를 끼고 들으신다. 그래서 발음이 조금 안 좋은데 게임을 진행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지역 사회 사업자들이 상품을 기부하고 관광객들과 주민들은 $1.00을 내고 게임을 하는 거다. 그렇게 한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했는데 인기가 많으니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을 한다. 목요일에 또 빙고 게임이 있다. 아이들이 또 하겠다고 한다. 빙고가 안 되어도 참여해서 즐기는데 의의가 있는 게임이다. 그녀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장애인이 정부의 보조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의 고유한 문화(?)에 일조하며 자립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동스러웠던 장면 하나.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인듯한 지체장애자 남자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는 나이가 많아야 12살 정도?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다가 나오면 엄마인듯 한 사람을 비롯해서 세명 정도가 수건을 들고 아이를 기다렸다가 머리를 닦아주고 따뜻한 곳으로 데려갔다. 아이가 수영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가끔 내가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할때면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를 생각해본다. 나는 그분들에 비하면 얼마나 편한가. 함들다고 투정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
내일도 그 할아버지와 아이가 수영을 하러 나올지 궁금하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거의 20,000을 걷기도 했지만, 여러가지로. 그래서 글도 두서없이 많이 길다. 그리고 <랩 걸>은 소문대로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