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선물
피터 켈더 지음, 홍신자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이 책을 당신에게 선물하십시오"-홍신자

2050년쯤이면 인간의 수명은 150세까지 가능하다는 뉴스를 최근에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앞날을 가상적인 세계로 서술한 이야기들에는 이제 인간의 탄생까지도 과학이 주관할 수도 있으며, 예를 들어 교통사고 같은 불시의 사고에 몸의 일부분을 손상당해도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얼마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관련 연구 성과를 보면 오직 신만이 관장하였던 우리의 생명이 이제는 또 다른 인간에 의해 그 수명을 달리하며 경우에 따라 변화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질병이나 늙음, 죽음은 운명처럼 받아 들여야만 하는 그런 절대적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인간의 몸 구석 구석을 해부하는 눈부신 발전 그 한편에는 전통적이며 가장 원시적이랄 수 있는 방법으로 진정한 삶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선물>은 말하자면 요가수행에 관한 책이다. 어느 날 신비롭게 펼쳐 많은 문명인들에게 공개 되었던 티베트 라마들로부터 전해지는 요가 수행법은 이제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실천되고 있다.

요즘을 웰빙시대라고 한다. 웰빙이라는 말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아이들에게까지 이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에도 붙는 이름이 웰빙이요. 운동기구에도 웰빙이 붙으며 속옷에까지 주저 없이 붙는 웰빙은 이제 그야말로 인기인이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우리들에게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능케 하는 것이지만 급작스럽게 다가온 웰빙 바람에 더불어 쉽게 씌어진 책은 아니다. 이미 1937년에 쓰여져서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가 팔렸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초판본이 발행된 이후 70여년 동안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실천하여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았다는 생생한 체험담까지 싣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이다. 나이를 먹는 만큼 뒷걸음치는 건강에 대해 우려해보았거나 요가, 다이어트에 관심을 두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분명히 보았음직한 동작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그간 보았던 그 어떤 방법이나 설명보다 유독 쉬워 보이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아닐까 싶다. 나아가 이 책이 주는 매력은 반드시 따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차크라'라는 단어가 다소 낯설지만, 브래드 포드 대령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동작은 쉽다. 나이든 사람이나 몸의 한부분이 눈에 띄게 불편한 사람들까지 실천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그런 동작들이다. 이런 쉬운 방법이 정말 젊음의 샘을 가능케 할까 의문이 들만큼 쉬운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허황된 것으로만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는데 70여년 동안 200만이 넘는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함께 이 동작을 실천한 사람들의 경험담이나 구도자의 춤꾼 홍신자의 말을 신뢰한다면 한번 믿어봄 직하지 않겠는가.

다섯 가지 동작 외에 한 종류의 음식을 적게 그리고 천천히 먹는 법이나 목소리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는 법, 초의식을 지배하는 법을 제시하는데, 다섯 가지 동작을 훑어본 후 이 부분에 이르러 믿음의 공감이 느껴졌다.

나의 직업상 손님들에게 물건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말을 많이 한 날은 몸에 느껴지는 피곤함이 극심했으며,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야단친 후에는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 나가버린 듯한 현기증에 시달리기도 했지 않은가. 아마 이 부분에서 공감하는 독자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갈구하여 영원을 꿈꾸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좀 더 건강하게 살고 싶고 가급적이면 아름답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욕망이다. 브래드 포드 대령의 말처럼 인간의 몸과 마음은 가장 단순해질 때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힘을 발휘하게끔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미처 모르고 지나가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영적인 힘은 늘 우리와 함께 하다가 불현듯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요가의 다섯 가지 동작과 함께 내 몸이 말하는 메시지에 천천히, 조용히, 묵직하게 귀 기울여 보자.

1937년에 이 책의 오리지널 초판본을 발행했던 피터 켈더와 책 속 또 다른 주인공 브래드 포드 대령은 실존인물이다. 브래드 포드 대령은 히말라야를 오갔던 사람이며, 피터 켈더가 이 책을 쓰는 시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실제로 만나던 사람이라고 한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피터 켈더가 자신이 그다지 알려지길 원하지 않으면서 브래드 포드 대령의 유익하고 소중한 메시지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둘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기록할 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여하간 피터 켈더는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젊고 건강하며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흔히 쉽게 이렇게 말한다. "밑져 보았자 본전." 그러나 밑져 보았자 본전의 그런 마음보다는 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방법의 하나로 이 책이 제시하는 동작이나 메시지에 주저 말고 접근해보자.

구도의 춤꾼 홍신자가 서문에서 밝히는 말은 이렇다.

"과학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인간의 가치관은 자꾸만 물질에 치우쳐가고 있다. 요사이 웰빙이라는 말이 새롭게 대두 되면서 사람들이 요가, 피트니스, 식이 요법, 명상 등을 찾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영혼의 삭막함에서 비롯된 목마름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소개되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의 삶을 바꿔 줄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진정한 사랑을 경험했다면 이 책을 읽은 후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세상에 알려진 지 60년이 지난 이 베스트셀러를 뒤늦게라도 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옮긴이, 뉴욕에서 구도의 춤꾼 홍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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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터님, 저에요.덕분에 보관함에 또 한권의 책이 늘었습니다.
 
달팽이 - 지성자연사박물관 6
권오길.이준상 지음, / 지성사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달팽이도 이빨이 있고, 이빨로 먹이를 먹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왜 한 번도 못했을까?

이 책을 통해 달팽이를 좀 더 알기 전까지 달팽이란, 그저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앙증스럽고 귀여운 생물일 뿐이었다. 무얼 먹긴 먹을 것인데, 잎사귀를 먹긴 먹었는데, “어떻게 먹었지?” 집에서 기르는 달팽이를 한 번씩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지성사 박물관 시리즈 중 한권이며 달팽이 박사 권오길의 달팽이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로 159페이지의 얇은 책이다.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던 달팽이였다. 어린 시절 텃밭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산지에서 막 올라오자마자 팔게 되는 트럭에서 채소를 사면 배춧잎 따라 묻어 와서 간혹 보기도 하던 달팽이였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가 달팽이에 대하여 아는 것은 어느 정도인가. 이 책을 통하여 달팽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우리에게 달팽이는 어떤 모습인가. 혹자들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바쁘다 바뻐!”로 무언가에 늘 쫓기는 듯 살다 시피 하는 현대인들에게 달팽이는 때론 작은 위안이다. 남들보다 좀 덜 가지더라도 느릿느릿 걸어가고 싶은 휴식과 여유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을 내놓는 글쓴이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달팽이는 무척이나 굼뜬 동물이다. 늘 무거운 짐을 등에 이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꾸준한지 모른다. 오죽하면 바다를 건너가겠는가.”<서문에서>

얼마 전에 우연히 달팽이 두 마리를 분양받아 키우는 중이다. 잠깐의 시간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은 참 신기하다. 오므리고 펴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들의 몸속에 일반 생물체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하는 것들을 다 갖추긴 한 걸까 싶을 만큼 어찌 보면 참 단순하다. 그리고 달팽이의 짐(집)만은 버거운 무게보다는 늘 신기함이 더 앞서곤 한다.

저 집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자웅동체라고 배우긴 배웠는데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수정을 할까? 언젠가 우리 집의 달팽이들도 새끼를 낳겠지? 달팽이는 어떤 원리로 기어 다닐까? 기어가는 자리에 남았던 분비물이 마르고 반짝 반짝 빛났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추운겨울을 어떻게 넘길까? 팥알보다 작던 한 무더기의 달팽이 새끼, 대체 몇 마리를 낳는 걸까?

아주 조그맣고 앙증스런 달팽이에게, 어찌 보면 단순하기만 했던 달팽이인데, 이런 복잡한 생물학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할 것이다. 달팽이에게도 이빨이 있다는 것도, 달팽이에게 섬유효소가 있어 신문지를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기어 다니는 원리와 이고 다니는 집의 줄무늬나 꼬임에 관한 이야기들. 또한 집을 통하여 달팽이의 나이를 계산해보는 것, 잠을 자는 동안 집 입구에 하얀 막을 쳐버리는 것 등등 흥미롭다. 날카로운 칼날도 넘을 수 있는 달팽이라는 사실을 그저 신기롭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달팽이란 무엇인가로부터 달팽이의 생태를, 2부에서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달팽이들 이야기다. 3부 달팽이와 인간과의 관계를 알아보는 이야기를 읽으며 청소년들이나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달팽이를 연구하여 인간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유익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도 좋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장 달팽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에서는 누구에게나 우쭐하며 말할 수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달팽이는 왜 칼슘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뱀이나 개구리를 빼닮은 달팽이의 겨울잠이야기, 당근을 먹은 달팽이는 붉은색 똥을 싼다든지, 우리가 메일을 이용하며 무심코 보았던 골뱅이@의 역사까지, 충분한 알 거리들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재밌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며, 흥미로운 사실들은 알아가는 재미를 더 바짝 부추길 것이다.

달팽이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책 속 100여장의 사진들을 통하여 많은 종류의 달팽이를 만날 수 있다.특히 2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달팽이 편에서는 많은 종류의 달팽이 사진과 함께 종류가 다른 달팽이의 특성을 낱낱이 실었으며, 우리나라 특산의 달팽이들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달팽이가 100가지라고?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저 몇 가지의 종류에 불과할거라는 지극히 단순하게 보였던 달팽이 세계의 그 복잡하고 놀랄 수밖에 없는 신비로운 이야기들. 주저하지 말고 만나보자.

달팽이 박사의 소신도 만나보자. 우리나라는 세계 어떤 나라들보다 환경, 생태학적 자료가 적으며 그 활동도 미비하다고 한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도 남다른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한 분야의 씨앗이 되어 주는 분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작은 관심은 더 큰 꽃을 피우고 더 알찬 열매를 맺지 않을까.

자연, 생물에 관한 많은 저서로 흥미로운 사실을 쉽고 친숙하게 들려주는 달팽이 박사 권오길이 끝맺음한 말은 이렇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대부분 생물을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행기가 그렇고 배가 그렇다. 자연을 잘 관찰하면 그 속에 수많은 과학이 숨어 있다. 달팽이도 자연의 일부이니 이들을 잘 들여다보는 것도 곧 과학의 기본인 것이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그러나 관심을 가질 때만 신비로움이 보이는 법.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달팽이의 세상도 의외로 간단치가 않음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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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이 보셔야 하는 리뷴데..알려 드릴까요?^^
 
뉴스 에스프레소
이정호 지음 / 이매진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그렇게 한평생 사는 거지 뭐. 다 알게 되면 세상 살맛이 그나마 어디 있겠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그게 아니지. 속지 말아야 할 것 들 앞에 우선 귀찮다고 알면서 속아 준다는 것은 젊음이 아니지. 눈에 빤히 보이는데 제 몸 편하자고 대충 살아서 안 되는 것 아니겠어? 그럼 그다음 아이들은 또 어떻겠어. 자네들은 그러면 안 되지. 누구나 다 그러면 법도 모르는 것 들 세상천지게?" 어느 어르신의 뉴스에 대한 말이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뉴스의 진실. 그런데 뉴스 속에 진실은 과연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된 질문이다. 어느 날 사건은 터졌다. 특종이라며 너나없이 보도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언론이 보도 하는 대로 믿었다. 더러는 미심쩍기도 했지만 순진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했다. 그래서 믿었는데 어느 날 또 그때 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언론은 다시 들썩 거렸다.

규명을 한다고 그들은 정신없이 떠들었고 숨겨 질 뻔했던 비화들을 세상에 쏟아냈지만 글쎄?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진실을 규명한다느니, 실체를 밝힌다느니 할 때까지 우리는 그게 진실인 줄 알았다. 그래도 우리들은 언론의 진실을 대부분 믿는 편이었다. 대부분 이러지 않는가.

이 책은 뉴스 다시보기다. 그냥 다시보기가 아니라 헤집어서 꼬집어가면서 다시 알아가기다. 지난해 보도 되었던 뉴스들을 다시 보며 우리가 반드시 알았으면 좋을 '새로운 뉴스들'을 다시 들려준다. 우리에게 보도 되었지만 우리가 미처 모른 채 보도자들이 전해 주는 대로 순진하게 받아 들였던 꺼리들에 상당히 예리한 시선으로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밝혀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보도기관에 사기당한 씁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이미 지나간 것들을 굳이 들춰 낼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것은 놔두고 앞으로는 좀 더 잘하는…'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책은 기분 좋게 읽어 진다기보다 무언가 계속 이어지는 씁쓸함을 주지만, 나는 가급이면 강한 줏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할 언론마저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이 땅의 언론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혀주는 이 책은 통쾌하기 이를 데 없다. "어 ? 이사람 이렇게 씹어대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을 순진한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이정호는 전직 언론에 몸담았던 예리한 눈매로 낱낱이 밝히고 꼬집어 댄다. 이런 사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언론마저도 몸 사리기에 급급한데. 언론의 보도 하나면 영광의 자리에 멀쩡하게 서 있던 사람도 추락하고 마는 세상인데 그런 칼을 휘두르는 언론에게 당당히 대항해주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썩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멍청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면 CNN이 대단히 진보적인 언론인 줄만 알았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구호하는 돈이 정말 순수한 천사표 구호인 줄만 알고 있었다. 80만 원 짜리 초콜릿에 어이없었고 밸런타인 같은 무국적인 날에 우리는 현혹되지 말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하였지 지난해 겨울 어느 날 영양실조로 죽어간 5살짜리 아이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사회의 부조리한 것들에 분노만 무성했지 그에 합당한 논리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이제 뉴스를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다. 한번쯤 의문도 가져보고 다른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들추어 보기로 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은 분노 할 것이다. 우리들의 눈을 가린 언론에, 이 땅의 언론에 분노하고 좀 더 의식화된 눈을 가지지 못한 자신에 대하여 분노 할 것이다. 가려진 진실들 앞에 왜곡된 사실들 앞에 그렇게 어이없고 사기당한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계속 속아줄 순 없잖은가. 무국적의 우리 언론을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계속 합승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읽기 전과는 의식이 이미 달라져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족인데, 다른 책을 검토하려고 서점에 갔다가 그 책 옆에 있는 이 책을 보았다. 당시 한 달 전에 막 신간이었던 이 책은 목차만 훑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호감 가는 책이었다. 처음부터 사려던 책 대신 이 책을 충동구매로 사게 된 만큼 정신없이 읽어나가다가 사회전반적인 문제에 두루 박식하며 의식 있는 내 친구를 생각하였다. 같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내 주리라. 알아야 할 세상꺼리를 당연히 같이 알아야 하리라. 그리하여 같이 분노하리라. 우리의 힘이 미약 하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리라. 보내주겠다는 말에 자영업자인 친구는 요즘 장사하기 참 힘들어서 책 한줄 읽을 여가가 없다는 현실을 한숨으로 말했다. '가뜩이나 힘들다는데 이 분노를 선물해야만 하는가. 아니 그래도 알 것은 알아야 한다. 아니 알긴 알더라도 조금 지나 알게 하자.

언제는 눈 가리고 야옹 아니었던가? 우리가 언제는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고 살아 왔어? 진실이 아닌 줄 알고는 있었지만 논리적으로 들이대고 대놓고 욕할만한 지식적인 논리가 부족했지'의 생각들로 서점을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결국 이렇게 한 달이 지났고 이제야 비로소 내 친구를 위하여 보내 주어야한다는 마음을 굳혔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렇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지애적인 친구와 함께 나누어 보다 보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 하는 세상의 진실을 위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모르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것보다는 좀 번거롭더라도 까다로운 생각을 꺼려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이 책의 목차만이라도 우선 훑어보길 권한다.

뉴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문명 속에 사는 한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든 저렇게 든 외면 못하는 뉴스를 구경삼아 보는 것은 또한 어떨까?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왜곡된 진실을 진실인양 끌려 다녔던 뉴스를 방관하며 보는 재미도 이 책에는 있다. 뉴스를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짚어내며 알고 있으면 좋을 상식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세금제도를 짚어 보면서 제시해주는 핀란드의 세금 계산법은 참으로 공명정대하고 통쾌하다. 막연히 불만스러웠던 것들에 대하여 마땅히 주장할 목소리가 자신 없었거나 작았다면 부족했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통쾌하고 신랄한 이야기를 흉내 내어 목소리 높여 봄직도 하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구태의연함을 답습하는 언론을 우리는 이제 믿을 수 없다. 그리하여 국민이 이제 언론인 세상이다. 언론은 공명정대해야하는데 언론마저 사회적 약자에게는 냉정하게 외면한다. 디지털의 놀라운 전파력으로 국민 스스로가 언론이 되어 목소리를 높이고 권리를 찾아야 한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적 바로 서지 못하고 언론마저 빌붙어 있는 꼴이라면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언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합세하여 언론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의 저자 덕분에 당연한 주장을 아주 조금 목소리 높여 본다.

이 책은 이렇게 끝맺음 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소득 1만 달러에 묶어두고, 지금도 소득 10만 달러가 넘는 10만 명 남짓한 부자들의 소득만 더 끌어올려 전 국민 평균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달성하자는 무서운 논리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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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냐,,,길어요 길어....^^
내일 천천히 읽을 겁니다.

2005-06-16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카시아 - 아프리카 마사이에 대한 황톳빛 푸른멍의 추억, 황학주 에세이
황학주 지음, 이상윤 사진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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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사진이 돋보이는 에세이집이다. 사진 한장 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마음에 와 닿는 여운들이 깊다. 사진마다 시인의 감성이 돋보이는 몇 줄의 글과 함께 생명의 발원지, 인류의 발원지 그 아프리카에 간다. 그곳에서 마사이들의 악보 없는 노래 소리에 몸을 맡겨본다.

황토빛 길 위에 서있는 마사이족들, 소똥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넓은 초원에서 방목되고 있는 소떼들, 그들의 꽃 붉디붉은 부겐베리아, 아프리카 종족들 중에서 가장 멋쟁이라는 평을 받는 그녀들, 전설적인 용맹을 자랑하는 마사이 전사 모란, 서서 오줌 누는 여인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왜 붙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가 서있는 초원.

아카시아 나무가 서 있는 이 초원의 일몰 속에서 시인은 문득 몸에 걸친 모든 것마저 훌훌 벗어버리고 나체가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리하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스스로 나체가 되어 실루엣으로 우리 앞에 섰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영혼으로 만나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이 아프리카의 초원이었다.

아프리카를 인류의 발원지라고 학자들은 이미 공식화 했던가. 한때 서구인들이 문명을 자랑삼아 뻐기고 그 그릇된 오만으로 식민지경쟁을 벌였던 그곳, 그들이 유린한 것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이었다. 그들은 인종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짐승취급을 하여 노예매매로 배를 불렸다.

그런데 유독 마사이 족만은 노예로 두기를 꺼렸다. 그들은 강한 자존심으로 노예가 되는 순간 혀를 깨물어 자살함으로써 유린당하는 인권을 지켜냈던 것이다. 이런 마사이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시인 황학주는 그들의 생활전반은 물론 정신세계, 전통, 풍습까지 이 책을 통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마사이에 관한 그의 시선은 애정이다. 그들의 자의식을 대변하는 듯한 깊은 시선이다. 여행자가 되어 스쳐지나가며 그들을 바라보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식과는 분명 다르다. 그는 마사이 마을에 3년 동안 머물면서 문명인과 비문명의 구분이 아니라 순수한 인류애의 시선으로 그들과 교감하였다. 아프리카에 머물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우연히 목격한 여성의 할례라고 한다. 잘못된 관습과 풍습에 여성을 유린당하는 그녀들에게 의식을 깨우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다. 이 책에는 인종을 떠난 같은 인류로서의 애정이 가득하다. 그는 말한다.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여성과 자연을 보호함이 인류의 희망이며 살아갈 원동력이라고. 그래서 그가 이 책을 통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에는 자연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 진지하다.

이 책을 통하여 소똥 속에서 생활하는 그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마사이족의 모든 것은 소와 함께 한다. 소똥위에서 아이들은 철퍼덕거리며 놀고, 어른들은 소똥 집에 둘러싸인 소마당에서 부족의 모든 것을 상의하고 결정한다. 여자들은 소똥을 몸에 발라 몸을 가꾸며 소똥 집을 짓는다. 그녀들의 각자 소유다. 일부다처제의 부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은 어느 날 문득 들러 사랑을 쏟아주는 남편을 기다려 사랑도 소똥 집에서 나눈다.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면 불결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생활이지만, 우리들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말 것을 시인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그들의 몫이고 그들 나름의 이유일 테니까.

사진들만을 본다. 기찻길이 마사이 마을을 통과하고 있다. 기찻길 역시 서구인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어놓은 금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마사이들은 땅에 금을 긋지 않습니다. 땅에 금을 긋는 일은 절교 혹은 싸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철로는 두 줄기 금을 그으며 그 위로 기차를 떠나보냅니다. 기차는 마사이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가 마사이 마을 밖으로 나가며 마사이의 금기를 무화시키고 있습니다…그 때 마사이들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지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 조상의 집인 땅에 철도가 금을 긋고 지나가는 것을 자신들의 변질과 무질서 때문이라고 믿고 그 불행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본문 中에서-

우리 인류의 발생지 아프리카를 감회에 젖어 시인과 함께 초원을 누빈다. 그들의 풍습대로 버려진 시체를 만난다. 시체는 뭇 짐승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취하였다. 망자의 가족들은 항아리에 뼈를 담아갔다. 이제 망자의 뼈는 소똥 집 한 구석에서 남은 가족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의 집단을 만났다. 얼룩말에 대하여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란 이렇다.

"저마다 다른 줄무늬를 가집니다…무리를 짓는 수 만 마리의 얼룩말속에서 아기 말은 이제 줄무늬 지문으로 어머니를 구별해야 합니다. 모든 얼룩말의 줄무늬가 다 다르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요. 사람의 생김새나 성정이 다 다르듯이 그들의 줄무늬나 얼굴생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그 '다름'을 놀랍게 여긴 내가 이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물과 식물 종들을 개체로서의 개성이 아니라 종단위의 집단으로서만 고정시켜온 내 관념의 폭력이지요. 하여, 아기가 태어나면 한나절 동안 다른 말의 줄무늬를 보지 못하도록 어미는 뒤뚱뒤뚱 움직이는 갓난 것에 바짝 따라붙어 아기의 시야를 제 몸으로 가려줍니다. -본문 中에서-

이 책은 이렇다. 사진 한장 한장이 주는 의미도 깊거니와, 그 아래 짧은 몇 줄의 글이 사진의 뜻을 더한다. 긴 글이 읽혀지지 않을 때면 사진들만 넘겨보며 자존심 강하고 아름다운 종족 마사이를 만난다. 그들과 함께 그들의 초원을 함께 누벼본다. 인류의 발원지에 감회에 젖어 서본다.

이 책의 뒷부분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사진이 있다. 사진은 이렇다. 제법 넓은 도로에 무뚝뚝하게 큰 돌들을 마구 던져두었다.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 도로를 포장하였으니 사람들이여 출입금지다. 이들의 문화는 이렇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마사이족의 모든 것이랄 수 있는 소똥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고. 2부에서는 마시이족의 풍습들이 좀 더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굳이 1부니 2부 나눔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책 속에서 볼 수 있는 마사이족들과 관련한 사진들은 강하다. 검은 피부 속에서 그들 내면 깊숙이 피어내는 꽃만큼 인상 깊고 쉽게 잊지 못할 그런 사진들이다.

시인이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교감과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견해나 시각이 궁금하여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마사이족에 관한 자료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도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들의 워킹법이 가장 진보된 발걸음이라는 말로 다이어트 관련한 웹 문서들이 더 많이 보인다(참고로 마시이 족의 워킹법은 이미 과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왔음).

우리들에게 그동안 아프리카는 아주 불결하거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야생의 이상적인 곳이었다. 또 유럽인들이 인권을 유린하고 식민지화 하면서 그들 입장으로만 퍼뜨린 오해의 이야기들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곳, 문명이라고는 어울리지 않는 곳, 그들의 수난사, 에이즈같은 질병이 제일 많은 곳, 일반국가들의 구호 손길에 감지덕지 하는 그들, 아직도 미개한 땅 대략 이랬다.

그간 아프리카는 이런 단편적인 모습과 함께 잠시 만나는 땅에 불과하였다. 이 책을 통하여 아프리카와 좀더 가까워지고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짐을 또한 느꼈다. 다른 세계와의 거리를 좁혀 주었으며 좀더 관심 있는 시선을 두게 하는 책, 그리하여 기회가 주어지면 따뜻한 가슴을 함께 나누고 싶게 하는 좋은 책 한권이 더없이 좋다. 마음에 자주 새겨지는 여운에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하기도 하였다. 마음 아려오는 이야기에 책장 넘기기를 다시 멈추기도 하며 사진에만 눈을 둔 적도 있다.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감동의 책읽기였다. 이제 타 매체에서 아프리카에 대해 말하면 좀더 관심 두고 볼 생각이다.

아프리카는 별개의 땅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별개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지구에서 공전과 자전을 동시에 함께 하며 호흡하는 같은 생명들이다.
2005-06-01 오전 10: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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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0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구미가 땡기는 책이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2005-06-03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03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07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 지안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유전자로 보면 침팬지와 인간은 침팬지와 오랑우탄보다 더 가깝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8.4퍼센트가 똑같고, 1.6퍼센트만 다르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차이인 3.6퍼센트보다 훨씬 더 작은 것이다. <책 속에서>

500~700만 년 전에 인간의 조상과 침팬지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서 각각 다른 길을 선택했다. 좀 더 넓고 눈부신 길을 택했던 인간과 열대우림에서 머물렀던 침팬지는 무수한 세월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유전학적으로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소설 <다니>는 인간의 본성에 잠재해 있는 폭력의 실체와 뿌리를,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를 통하여 찾아보는 김용규, 김성규 형제의 지식소설이다.

지식소설이라니? 소설에 대하여 전문적인 공부를 한 적 없어서 약간은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쳐 읽었다. 그러나 감동스럽게 전개되는 소설의 줄거리에 더해지는 지식의 파노라마에 손에서 놓지 못하고 틈을 노려 정신없이 읽었다.

소설로 보면 지극히 감동스런 한편의 소설이요, 지식 쪽에서 보면 참고 삼아 지식 확장에 큰 몫을 할 생물학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독특한 소재의 이 소설은 또한 인류학과 철학적인 면도 강하다. 소설이라는 씨줄과 지식이라는 날줄이 정교하게 직조되어 한편의 감동으로 남는다.

소설 이론은 물론 생물 생태학이나 인류학이란 개념조차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다만 순수 독자인 나에게 '지식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제대로 알려주는 뜻있는 만남이 되었다.

호기심만으로 펼쳐 들었다가 사바나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제니퍼 모건과 지극히 야생적인 침팬지 다니의 순수한 본성의 교감에 한편의 감동스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책에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이 책의 독특한 소재와 풍부한 지식에 누군가든 나처럼 쉽게 빠져들고 말 것이다. 또한,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편승하여 함께 사바나에서 뒹굴며 침팬지의 세계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함께 생각하기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제노사이드(동종 간 무차별 학살, 집단살해)의 한 모습인 중국의 문화혁명으로 부모를 잃은 제니퍼 모건, 그녀는 동물행동학을 전공했다. 제니퍼 모건은 야생에서 침팬지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맡아 탄자니아로 떠난다.

빅토리아호로 이어지는 사바나 나망가 계곡에는 두 집단의 침팬지가 살고 있다. 그녀는 튀들덤과 튀들디라는 이름을 각각의 집단에게 붙여준다. 튀들디 집단과 친해지는 제니퍼 모건에게 다니는 특별하다. 12살 암컷 침팬지 다니는 갓 태어난 새끼를 잃은 슬픔 속에 빠져 있었다. 제니퍼도 다니도 서로의 상처 때문인지 무수한 진화의 세월을 뛰어넘은 교감을 한다.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이들의 교감은 인간과 침팬지의 구별조차 잊을 만큼 감동스럽다.

나망가 계곡의 땅주인 웨슬리경은 무분별한 벌목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개발이지만 그 이면에는 돈벌이에 대한 욕심뿐이다. 오만스런 인간의 무리한 벌목으로 터전을 잃어 가는 침팬지들 사이에 제노사이드가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경을 비롯한 막강한 힘을 가진 집단에 의해 그들에게 반대하는 힘없는 사람들이 제노사이드 된다. 제니퍼도, 요하네스도..... 힘 있는 자의 무차별 제노사이드에 가담하여 이용 당하는 것도 힘없는 다른 무리들이다. 튀들덤 집단에게 제노사이드 된 튀들디 집단의 살아남은 암컷들은 인간의 전쟁역사처럼 승리한 자들의 성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다니도.

줄거리는 이렇게 몇 줄로 요약하고 말 수 있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인간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며 뻔뻔하게 정당화되는 폭력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끊임없는 폭력에 대한 강한 펀치를 생각할 수도 있다. 개발이라는 문명적인 언어로 무차별적인 자연훼손을 하는 인간에게 울리는 경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가면서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면 너무 억지일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빨리, 고속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고 싶다는 그릇된 욕심만으로 무분별한 개발 계획에 의해 산천을 파헤치고 갯벌을 막으면서 우리들이 유린한 우리 생태계-그 안에 깃든 생명들끼리 살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치고 서로를 뜯어 먹었을까.

"지식을 소설로 읽는다. 소설을 지식으로 읽는다." 소설로 읽어도 감동스럽고 지식으로 읽어도 흥미롭다. 감동스런 줄거리와 함께 끊임없는 질문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식에 밑줄을 긋고 그으며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인간의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가슴으로 읽어야 하며, 아울러 밑줄 그어 가며 머리로 읽어야 하는 지식소설인 것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운명을 같이한다는 뜻이다!’<책 속에서>"

인간의 끊임없는 폭력에 대한 그 해답을 이렇게 제시해 준다. 결국 하나라는 것. 인간과 인간도, 인간과 만물도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 혼자만의 이익으로 다른 존재에게 행하는 여러 형태의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 부메랑처럼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

덧붙이면, 이 책은 생물학적인 특별한 지식을 원하지 않고 다만 소설로만 생각하여 읽어도 썩 흥미롭다. 청소년이나 일반인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내용이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도 풍부하다.

이 책을 읽으려면 가급 연필 한 자루 쥐어라. 지식소설이라고 자신 있게 표방한 글답게 곳곳에서 나오는 귀중한 지식들은 그냥 읽고 이해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 풍성한 지식들을 눈으로만 읽지 말고 서슴없이 밑줄을 그어라. 제인 구달의 이름에도 다이안 포시란 이름에도 밑줄을 그었다가 다시 의문을 가지고 또 다른 지식의 확장을 시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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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양버들 2005-10-2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감동과 경험을 하셨군요. 연필 찾아 적은 것도 그렇고......,
님의 서재에 찾아와 보니 낯설지 않아요. 누구실까 찾아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