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 아프리카 마사이에 대한 황톳빛 푸른멍의 추억, 황학주 에세이
황학주 지음, 이상윤 사진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사진이 돋보이는 에세이집이다. 사진 한장 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마음에 와 닿는 여운들이 깊다. 사진마다 시인의 감성이 돋보이는 몇 줄의 글과 함께 생명의 발원지, 인류의 발원지 그 아프리카에 간다. 그곳에서 마사이들의 악보 없는 노래 소리에 몸을 맡겨본다.

황토빛 길 위에 서있는 마사이족들, 소똥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넓은 초원에서 방목되고 있는 소떼들, 그들의 꽃 붉디붉은 부겐베리아, 아프리카 종족들 중에서 가장 멋쟁이라는 평을 받는 그녀들, 전설적인 용맹을 자랑하는 마사이 전사 모란, 서서 오줌 누는 여인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왜 붙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가 서있는 초원.

아카시아 나무가 서 있는 이 초원의 일몰 속에서 시인은 문득 몸에 걸친 모든 것마저 훌훌 벗어버리고 나체가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리하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스스로 나체가 되어 실루엣으로 우리 앞에 섰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영혼으로 만나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이 아프리카의 초원이었다.

아프리카를 인류의 발원지라고 학자들은 이미 공식화 했던가. 한때 서구인들이 문명을 자랑삼아 뻐기고 그 그릇된 오만으로 식민지경쟁을 벌였던 그곳, 그들이 유린한 것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이었다. 그들은 인종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짐승취급을 하여 노예매매로 배를 불렸다.

그런데 유독 마사이 족만은 노예로 두기를 꺼렸다. 그들은 강한 자존심으로 노예가 되는 순간 혀를 깨물어 자살함으로써 유린당하는 인권을 지켜냈던 것이다. 이런 마사이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시인 황학주는 그들의 생활전반은 물론 정신세계, 전통, 풍습까지 이 책을 통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마사이에 관한 그의 시선은 애정이다. 그들의 자의식을 대변하는 듯한 깊은 시선이다. 여행자가 되어 스쳐지나가며 그들을 바라보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식과는 분명 다르다. 그는 마사이 마을에 3년 동안 머물면서 문명인과 비문명의 구분이 아니라 순수한 인류애의 시선으로 그들과 교감하였다. 아프리카에 머물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우연히 목격한 여성의 할례라고 한다. 잘못된 관습과 풍습에 여성을 유린당하는 그녀들에게 의식을 깨우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다. 이 책에는 인종을 떠난 같은 인류로서의 애정이 가득하다. 그는 말한다.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여성과 자연을 보호함이 인류의 희망이며 살아갈 원동력이라고. 그래서 그가 이 책을 통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에는 자연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 진지하다.

이 책을 통하여 소똥 속에서 생활하는 그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마사이족의 모든 것은 소와 함께 한다. 소똥위에서 아이들은 철퍼덕거리며 놀고, 어른들은 소똥 집에 둘러싸인 소마당에서 부족의 모든 것을 상의하고 결정한다. 여자들은 소똥을 몸에 발라 몸을 가꾸며 소똥 집을 짓는다. 그녀들의 각자 소유다. 일부다처제의 부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은 어느 날 문득 들러 사랑을 쏟아주는 남편을 기다려 사랑도 소똥 집에서 나눈다.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면 불결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생활이지만, 우리들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말 것을 시인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그들의 몫이고 그들 나름의 이유일 테니까.

사진들만을 본다. 기찻길이 마사이 마을을 통과하고 있다. 기찻길 역시 서구인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어놓은 금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마사이들은 땅에 금을 긋지 않습니다. 땅에 금을 긋는 일은 절교 혹은 싸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철로는 두 줄기 금을 그으며 그 위로 기차를 떠나보냅니다. 기차는 마사이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가 마사이 마을 밖으로 나가며 마사이의 금기를 무화시키고 있습니다…그 때 마사이들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지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 조상의 집인 땅에 철도가 금을 긋고 지나가는 것을 자신들의 변질과 무질서 때문이라고 믿고 그 불행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본문 中에서-

우리 인류의 발생지 아프리카를 감회에 젖어 시인과 함께 초원을 누빈다. 그들의 풍습대로 버려진 시체를 만난다. 시체는 뭇 짐승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취하였다. 망자의 가족들은 항아리에 뼈를 담아갔다. 이제 망자의 뼈는 소똥 집 한 구석에서 남은 가족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의 집단을 만났다. 얼룩말에 대하여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란 이렇다.

"저마다 다른 줄무늬를 가집니다…무리를 짓는 수 만 마리의 얼룩말속에서 아기 말은 이제 줄무늬 지문으로 어머니를 구별해야 합니다. 모든 얼룩말의 줄무늬가 다 다르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요. 사람의 생김새나 성정이 다 다르듯이 그들의 줄무늬나 얼굴생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그 '다름'을 놀랍게 여긴 내가 이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물과 식물 종들을 개체로서의 개성이 아니라 종단위의 집단으로서만 고정시켜온 내 관념의 폭력이지요. 하여, 아기가 태어나면 한나절 동안 다른 말의 줄무늬를 보지 못하도록 어미는 뒤뚱뒤뚱 움직이는 갓난 것에 바짝 따라붙어 아기의 시야를 제 몸으로 가려줍니다. -본문 中에서-

이 책은 이렇다. 사진 한장 한장이 주는 의미도 깊거니와, 그 아래 짧은 몇 줄의 글이 사진의 뜻을 더한다. 긴 글이 읽혀지지 않을 때면 사진들만 넘겨보며 자존심 강하고 아름다운 종족 마사이를 만난다. 그들과 함께 그들의 초원을 함께 누벼본다. 인류의 발원지에 감회에 젖어 서본다.

이 책의 뒷부분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사진이 있다. 사진은 이렇다. 제법 넓은 도로에 무뚝뚝하게 큰 돌들을 마구 던져두었다.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 도로를 포장하였으니 사람들이여 출입금지다. 이들의 문화는 이렇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마사이족의 모든 것이랄 수 있는 소똥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고. 2부에서는 마시이족의 풍습들이 좀 더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굳이 1부니 2부 나눔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책 속에서 볼 수 있는 마사이족들과 관련한 사진들은 강하다. 검은 피부 속에서 그들 내면 깊숙이 피어내는 꽃만큼 인상 깊고 쉽게 잊지 못할 그런 사진들이다.

시인이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교감과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견해나 시각이 궁금하여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마사이족에 관한 자료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도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들의 워킹법이 가장 진보된 발걸음이라는 말로 다이어트 관련한 웹 문서들이 더 많이 보인다(참고로 마시이 족의 워킹법은 이미 과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왔음).

우리들에게 그동안 아프리카는 아주 불결하거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야생의 이상적인 곳이었다. 또 유럽인들이 인권을 유린하고 식민지화 하면서 그들 입장으로만 퍼뜨린 오해의 이야기들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곳, 문명이라고는 어울리지 않는 곳, 그들의 수난사, 에이즈같은 질병이 제일 많은 곳, 일반국가들의 구호 손길에 감지덕지 하는 그들, 아직도 미개한 땅 대략 이랬다.

그간 아프리카는 이런 단편적인 모습과 함께 잠시 만나는 땅에 불과하였다. 이 책을 통하여 아프리카와 좀더 가까워지고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짐을 또한 느꼈다. 다른 세계와의 거리를 좁혀 주었으며 좀더 관심 있는 시선을 두게 하는 책, 그리하여 기회가 주어지면 따뜻한 가슴을 함께 나누고 싶게 하는 좋은 책 한권이 더없이 좋다. 마음에 자주 새겨지는 여운에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하기도 하였다. 마음 아려오는 이야기에 책장 넘기기를 다시 멈추기도 하며 사진에만 눈을 둔 적도 있다.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감동의 책읽기였다. 이제 타 매체에서 아프리카에 대해 말하면 좀더 관심 두고 볼 생각이다.

아프리카는 별개의 땅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별개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지구에서 공전과 자전을 동시에 함께 하며 호흡하는 같은 생명들이다.
2005-06-01 오전 10: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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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0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구미가 땡기는 책이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2005-06-03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03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07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