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21세기북스 편집부 엮음 / 21세기북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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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별이, 날개를 달다

부부에게는 이미 두 딸과 두 아들이 있었으며, 둘째 아들 예도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은 채로 태어났다. 예도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 가 있을 때 친척들은 아이를 포기하라고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부모로서 절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부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여서 더 꼭 끌어안아야만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서 환영받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또한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워내기란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들이 따르는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냉대는 물론 부모에게서조차 버려졌을 가엾은 아이들이 우연히 TV를 통하여 이들 부부에게 보였다. 시설에서 보호받고 자라나는 아이들 중 서너 살 되는 한 아이에게 눈이 고정되었다. 아이는 두 팔은 끝까지 생겨나질 못하고 팔꿈치에서 멈추었으며, 두발 역시 무릎까지만 겨우 생겨서 무릎걸음을 걷고 있었다. 무릎 아래 간신히 아주 작은 종아리가 겨우 생겼으며, 그나마 매달려 있는 듯한 연약한 발목은 사정없이 휘어 있었다.

아이는 걷는 것은 물론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아이 특유의 앙증맞고 천진난만한 미소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힘차게 저으며 실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며칠 후 부부는 시설에 가서 별이를 데려왔다. 이렇게 별이는 이들의 가족이 되었다. 이미 아이가 넷이나 있던 부부여서 별이가 오면서 이들은 스스로 '북두칠성 가족'이라고 불렀다.

북두칠성 가족에게 별이는 혈육처럼 이어진 가족이었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예도와는 좋은 동반자였다. 그러나 별이를 제대로 키워내기란 쉽지 않았다. 평생 무릎으로만 걸어야 하는 별이에게 의족이라도 신겨 걷게 하고 싶어서 병원을 찾아가자 고관절 탈골과 뒤틀린 발목 인대, 팔꿈치 수술까지 오랫동안 6~8번의 힘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예상치 못했던 진단이 내려졌다.

앞으로 별이가 겪어야 할 험난한 수술들과 고된 재활 과정을 생각하면 아빠와 엄마는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온다. 의족을 신길 수 있는지 알기 위하여 우선 해보아야 하는 MRI비용 62만원조차 이들에게는 버거웠다. 또한 별이 엄마의 '위 임파선암'이 별이를 데려와 키우면서 다시 재발하고 말았다. 예도를 낳고 얻었던 병인데, 몇 차례의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고 진행이 멈추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이었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자라온 별이 아빠에게, 별이 엄마의 위 임파선암 재발은 눈앞이 캄캄하게 할 뿐이었다. 아내와 별이를 살릴 수 있는 돈은 턱없이 부족하였으며, 하루하루 날짜만 흘려 보내다가는 아내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 별이 또한 수술 시기를 놓치면 평생을 누워 지낼지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오직 별이만 염려하며 수술을 생각할 뿐 자신의 병은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워내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썩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를 가지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 중 일부는 아이의 양육을 포기한다.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혈육의 정을 끊게끔 사회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려야만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시설에 보내면 자신보다 그나마 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애정이라 여기며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버려진 아이들, 그것도 장애를 가진 아이여서 버려진 경우 우리 사회에서는 입양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외국인들의 경우, 장애로 버려진 아이들만 입양하여 키워내는 박애의 사람들이 많다. 한 번씩 소개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도 막상 우리의 사회는 더 나아질 것도 없이 계속 버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방법의 도움도 줄 수 없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개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솔직히 죄스럽다는 생각을 별이 엄마를 통하여 했었다. 2003년 7월 어느 날 방송을 보고, 책으로 만나는 감회가 남다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 삶으로의 여행

"제가 만난 작은 천사들을 마법을 부려 단번에 낫게 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방송으로, 또 책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분들이 이 천사들에 대해 단 5분만이라도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황현정(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일요일 밤 11시 55분부터 12시 55분까지 난치희귀병 환아를 돕기 위한,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소개되었던 사연 19꼭지를 모은 책이다. 이미 방송에서 보았음에도 다시 책으로 만나는 가슴 먹먹해지는 아픔과 함께 감동이 뭉클 뭉클 눈시울을 적신다. 장애와 희귀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만 하는 우리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 음지에서 묵묵히 봉사를 하는 사람들과 사회 각계의 따뜻한 온정의 이야기들이다.

항문 없이 1.6Kg의 미숙이로 태어나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화장실을 가보지 못한 효진이의 생활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비극도 대물림하는 걸까? 엄마와 똑같이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겨 근육이 퇴화하는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서준이 모자의 사연 역시 어떻게 설명하지 못할 만큼 먹먹하고 눈시울만 끝없이 붉어진다. 형에 이어 동생까지 희귀병을 앓게 되고 걷지조차 못하는 태범이 형제의 날지 못하는 젊음이 눈에 아른거린다.

각막이 혼탁하여 시력조차 희미한 예지는 청력도 이미 잃었고, 심장질환까지 앓고 있었다. 호박귀신이라고 놀려대는 친구들 틈새에서 흐린 눈으로 학교를 다녔던 현경이에게는 언젠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나을 수 있는 약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14년을 70년처럼 살다 하늘로 간 현경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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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쾌락 - 부엌과 식탁을 둘러싼 맛있는 역사
하이드룬 메르클레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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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음식은 무엇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그렇다면 접대는? 음식을 통한 접대는 우리의 생활에 친목 이상의 중요한 문화다. 적게는 한 사람의 손님과 나누는 식사부터 많게는 결혼 피로연처럼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까지, 어떤 만남에나 행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접대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음식과 접대문화는 인간 생활의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식탁 위의 쾌락>은 음식과 손님을 신 앞에서 신을 대하듯 했던 고대 그리스의 접대문화부터, 회의용 탁자로 변한 19세기 시민사회 식탁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며 저자가 들려주는 부엌과 식탁을 둘러 싼 맛있는 역사에 기꺼이 빠져 맘껏 향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포크를 사용하는 건 신을 모독하는 행위?

11세기, 베네치아의 한 총독과 결혼한 비잔틴의 공주는 손으로 어떤 것이든 만지려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환관들은 음식을 잘게 잘라 공주 앞에 내놓았다. 그러면 비로소 공주는 두 갈래로 된 뾰족한 것으로 음식을 찍어 먹었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손으로 먹었다. 이들에게 음식은 신이 내린 고귀한 선물이어서, 공주처럼 손이 아닌 어떤 기구로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며 신을 모독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공주의 이런 식사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그러나 결국 수많은 비난 속에서 이탈리아가 이 기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세대를 거치는 동안 왕의 칙명으로 사용을 허가하고 권장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과자 같은 후식을 위한 기구로 쓰이다가 점차 본격적인 식사도구로 쓰였다. 지탄받던 포크 사용이 이젠 높은 신분을 의미했다. 최대한 우아할 필요가 있으며, 품위가 생명만큼 소중했던 귀족들은 식사 때마다 포크와의 전쟁을 벌였다. 포크에 서툰 이들은 접시 밖과 테이블 밑으로 많은 음식을 흘렸으며, 포크에 찍힌 음식이 제발 입으로 닿기만을 간절히 바랄 정도였다.

이것이 서양음식문화에서 포크를 사용하게 된 재미있는 기록이다.

포크의 등장과 함께 서양의 음식문화는 본격적으로 질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허겁지겁 먹던 일부 사람들은 포크 사용으로 음식을 어느 정도 자제하고 음미했다. 포크라는 식사도구의 사용은 다른 기구들의 사용으로 이어졌다. 냅킨이나 접시, 식탁보 등의 눈부신 발전까지 이어지게 만든 것이 포크의 등장이었다.

포크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포크의 기원을 저자는 동양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젓가락으로 상징된다면 서양의 음식문화는 단연 포크 아닌가.

중세엔 양념을 많이 쓸수록 높은 신분

로마 시대 부자의 집에는 식당이 몇 개나 있었을까. 중세에는 왜 그리도 양념에 집착했을까. 르네상스인들은 왜 포도주를 그토록 줄기차게 마셔댔을까. 바비큐 파티에서는 왜 항상 남자가 고기를 구울까. 중세에는 뚱뚱한 사람이 미인이었다는데… 서양 음식의 풀코스는 왜 그렇게 길까?

이 책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좀더 따라가 보면 이렇다.

첫 장에서 볼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접대문화는 참으로 경건하다. 그들은 손님에게 새 옷을 내주고 음식을 대접했으며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낯선 손님의 모습 뒤에 신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이었다.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신을 접대하는 것이었다.

로마시대 귀족층의 부패를 보면 놀랍다. 그들은 향락에 빠진 나머지,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어떤 귀족은 포도주로 손을 씻기까지 했다. 포도주 사용 역시 신분을 나타냈다. 갓 잡은 사냥감을 최고급 고기로 인정하여 즐긴 것도 부패한 로마귀족들이었다.

중세 음식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양념이다. 양념이 워낙 귀한 시대여서 양념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양념을 무조건 듬뿍듬뿍 넣어 요리를 했다. 모든 요리의 맛이 비슷했고 원재료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음식문화의 진정한 발전이 전혀 없었던 시대였다. 다만 음식은 신분을 과시하는 향락의 일종이었다.

문화 미식가들을 위한 만찬

이 책은 서양 식탁문화 2500년을 시대적으로 나열, 여섯 장으로 정리하여 자세히 보여준다. 고대그리스의 향연부터 19세기 시민사회 식사까지 많은 에피소드로 잘 차려진, 만찬 같은 느낌의 이야기들이다. 음식전문가인 저자가 음식과 식탁의 이야기를 통하여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서양의 다양한 문화나 관습, 역사가 들어 있다.

음식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그만큼 재미있으며 절실하다. 식탁(식사)의 모습은 어떤 문학작품에나 예술작품에 반드시 들어가는데, 이 책은 서양의 예술작품을 대하는 동안 다소 의아했던 음식과 관련된 장면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문화의 미식가들을 위한 맛있는 책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언제까지고 인간과 함께 할 음식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 음식과 만나는 그 순간인 식사와 식탁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것… 기대 이상의 성찬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음식은 감사의 마음으로 먹을 때 맛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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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4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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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생명공학의 위대한 도전
박세필.오일환.김훈기 외 지음 / 동아엠앤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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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물학상의 제과점'에서 배아 줄기세포는 밀가루와 같다. 즉 밀가루에 어떤 성분을 첨가하면 과자가 되고 또 어떤 성분을 첨가하면 빵이나 비스킷이 된다. 밀가루에 어떤 성분을 첨가하느냐에, 어떤 방식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지금 그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단계이다."-헤럴드 바머스

유전성불치병(펜코니)을 앓고 있는 6살 몰리는 골수이식을 받지 못하면 7~8살에 이르러 결국 죽게 된다. 몰리에게 맞는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골수를 찾기란 힘들지만, 동생이 태어난다면 골수이식은 문제없다. 다행히 부부가 건강하여 동생을 낳을 수 있지만, 1년을 기다려 태어날 아이가 유전적으로 건강하여 몰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100%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병 치료를 위해 수많은 수정란을 만들어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을 단 하나의 수정란을 골라(?) 몰리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애덤이다(2000년). 물론 애덤(탯줄)은 몰리를 살렸다. 이후 국제뉴스를 통하여 활짝 웃고 있는 몰리와 애덤의 모습이 전해졌다.

애덤들(다른 수정란들)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일었다. 감히 신의 영역이었던 탄생을 인간이 스스로 필요에 따라 만들어도 되는가? 또 다른 애덤들(선택받지 못한 수정란)은 다른 실험대에서 실험재료로 쓸 것 아닌가? 어쩌면 수정란들은 저온 창고에서 복제인간으로 부활을 꿈꿀지도 모를 일이다.

몰리를 살린 것은 애덤의 태반에서 뽑아 낸 조혈모세포였다. 조혈모세포는 모든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다. 어른들에게서는 일부 조직에서 골수를 채취하지만 신생아의 경우 태반이나 탯줄에 이 골수가 존재한다. 골수이식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나 복제인간과 같은 생명공학 뉴스 앞에 늘 우선 생각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골수와 줄기세포. 불치병(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골수이식뿐이라는 것이 어느새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졌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신에게 적합한 골수를 기다리며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생명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꺼져가는 생명이 골수이식을 받으면 살 수 있다. 대체 골수 이식은 무엇일까? 골수이식에 필요한 조혈모세포는 줄기세포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줄기세포는 만능 아닌가?

그렇다. 줄기세포는 임신 초기 며칠 동안 존재하며 우리 몸의 모든 조직, 모든 장기를 만들어내는 세포다. 인간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관장하는 세포가 줄기세포인 것이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필요한 조직으로 발달시켜 손상된(치료할) 조직에 이식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과연 세계가 줄기세포에 열광할 만하다.

헤럴드 바머스 교수 말대로 제과점의 밀가루요, 음식의 원재료다. 정작 밀가루가 없다면 빵을 만드는데 부수적으로 들어 갈 다른 훌륭한 재료가 제아무리 많아도 쓸모가 없다. 음식의 원재료가 없는 음식이 음식인가?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을 위하여 매달려온 것들은 이 줄기세포 하나로 대표되고 마는 것이다. 자, 이렇다면 세계가 열광할 만하지 않은가. 쉽게 말하면 줄기세포는 이런 존재다.

줄기세포는 환상의 스타가 아니다

...줄기세포라는 단어는 유명축구선수의 이름만큼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국어사전에도 실리지 않은 전문적인 학술 용어가 이렇게 전 국민적인 유행어가 되기도 흔치 않은 일이며, 다른 분야가 아닌 '과학'의 주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줄기세포의 유명세에 비해 대중의 이해는 턱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해와 성찰보다는 오해와 환상 쪽으로 관심이 더 집중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줄기세포가 신체의 어디에 있는 어떠한 세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대중의 무지를 탓하기 전에 미디어와 출판계, 과학자들의 게으름을 반성해야할 문제다...줄기세포와 관련된 생명과학분야는 대중의 맹목적인 환상과 열광보다는 정확한 이해와 냉철한 비판이 있어야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는 분야다. .-머리말 중 일부


저자들의 말대로 어느 날 느닷없이 줄기세포는 우리가 염려하고 있던 모든 불치병을 단박에 해결해줄 수 있는 환상과 함께 다가와 일약 스타가 되었다. 황우석 박사의 성공(?)은 줄기세포에 대하여 잘 몰라도 우리나라가 어떤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것만 같아 무언가는 모르지만 일종의 자부심과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줄기세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줄기세포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난 생물학에 대하여 그다지 아는 것은 없지만 줄기세포의 실체를 알고 보니 인간이 존재하는 한 줄기세포는 앞으로 은퇴가능성이 전혀 없는 영원한 스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온 환상처럼 만능일까?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스타 줄기세포의 실체와 전망을 한 번에 읽고 이해하도록 다양한 각도로 설명한다.

줄기세포의 실체와 다양한 모습 등 줄기세포를 둘러싸고 한편에서는 끊임없는 박수를, 한편에서는 염려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고 나서 냉철히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

"...따라서 좀 어렵고 힘들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줄기세포에 대한 정확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미디어와 과학자들의 의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줄기세포에 관한 어지러운 담론들을 속 시원히 파악하고 명확하게 정리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차후에 좀 더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룬 책이 나올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머리말 중 일부

생물학을 전혀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인 나로서는 이 책을 선뜻 펼쳐들지 못했다. 세상은 줄기세포로 열광하며 매일같이 특종을 날리는데, 줄기세포는 막연했으며 선뜻 다가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어차피 알아야만 할 줄기세포였다. 앞으로 두고두고 줄기세포는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알고 볼일이다. 들끓는 논쟁 속에서 한편의 사람들은 줄기세포에 왜 그렇게 매달려야만 하는지, 세계가 주목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경탄을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한편의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반대를 해야 하는지 줄기세포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 결국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그간 간혹 접해왔던 생명공학과 관계되는 막연한 문제들, 궁금하긴 하지만 막연히 어렵기만 하던 문제들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들었다.

일반인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다가와 있는 치매, 척수손상, 미용(다이어트), 당뇨 등과 관련하여 줄기세포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설명과 관련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과 내용들이어서 그간 나처럼 '막연하지만 결국 알아야 하는 줄기세포에 대한 가장 많은 이해'를 얻게 해줄 것이다.

지방질이 '공공의 적'인 다이어트 열풍은 쉼 없다. 최근, 우리 몸의 지방질에도 줄기세포가 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손상된 나의 몸 한 부위를 위하여 내 몸의 지방질에서 골수를 얻어 치료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설마 그렇게까지 가능할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정답이 가능하다. 그리고 줄기세포가 왜 세계적인 스타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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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2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꼭 필요한 책! 추천하고 가요~^^

2005-11-24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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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어른의 학교>란 책 내용 중 '루거를 불태우지 맙시다'라는 주제의 글은 저자가 미국의 어느 쇼핑센타에서 겪은 에피소드다. 이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그냥 웃고 말기에는 마음이 결코 편하지 못하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덧붙여 보면 이렇다.

"안녕하쉽니카?"라고 첫인사를 건넸던 계산원은 계산이 끝나고 돌아서는 자신에게 "끄너" 라고 친절한 인사를 하더란다. "끄너? 대체 어떤 의미인데?" 그 내력을 물으니 아르바이트 학생신분인 그 계산원은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이 전화를 끊으며 예사로 '끄너, 끄너' 하기에, 헤어질 때 다음을 기약하며 예의를 갖추고 반듯하게 하는 인사인줄 알고 열심히 배워두었다. 손님이 한국 사람이다 싶으면 '끄너'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하였었다.

이 에피소드로 저자는 말 한마디, 무심코 쓰는 단어 하나가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전이(轉移)되는지를 무섭게 실감하였다고 한다. 같은 동급생인 한국학생이 전화를 통하여 예사로 하던 '끄너'가 이국의 그 계산원에게는 '안녕 잘 있어' '잘 가' '잘 자'처럼 헤어지거나 전화를 끊을 때의 당연한 인사로 들려진 것이다. '루거를 불태우지 맙시다'라는 글은 번역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저자의 말은 이렇다.

"…사전을 열면 말의 역사가 보입니다. 그런데도 번역가는 사전 안 펴고, 어물쩍 넘어가고 싶다는 유혹과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싸워야 합니다. '제록스'와 '샴프'는 상표명이 '복사하다', '머리감다'는 의미의 일반 동사로 바뀐 대표적인 영어에 속합니다. 사전을 알아야 그렇게 바뀐 속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호치키스'는 원래 기관총 상표명입니다. 전쟁 끝나 기관총 잘 안 팔리니까 그 기관총 탄창에 총알 쟁여 넣는 기술을 원용해서 만든 것이 우리가 아는 호치키스인 것입니다.

나는 남의 오역(誤譯)을 지적하고 그걸 씹는 것을 별로 안 좋아 합니다. 그러나 번역하는 사람이 사전 안 찾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뜻에서 하나만 소개합니다. 나는 십수 년 전 어떤 소설 한국어 번역판에서 "그는 자기의 루거를 불태웠다"는 문장을 읽고 웃었습니다. 원문을 확인할 것도 없이 'He fired his Luger'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루거'는 독일제 9밀리 권총의 상표명입니다. 따라서 그 문장의 정확한 번역은 '그는 권총을 쏘았다'가 맞습니다." -루거를 불태우지 맙시다. 중에서


이어지는 저자의 고뇌들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번역하면서 사전은 결국 길라잡이에 불과해서 펄펄 살아있는 말을 찾아 쓰기에는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이 글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를 저자의 다른 산문집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저자는 고백하기를 단어 하나를 두고 하룻밤을 지새우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라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 지는 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내로라하는 번역 작가 아닌가?

저자의 맛깔스럽고 깊은 글들은 이렇게 태어나서 우리에게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펼쳐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에피소드를 일부러 읽곤 한다.

보아야 보이는 것 들 - 늘 깨어 있어야 한다

"… 소리를 하든,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더라. 자기가 하는 일에 깨어있더라는 것이다.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에게는 못 당한다는 옛말이 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는 전문성, 그걸 뭔 수로 당하겠는가 …'-김명곤이 이윤기의 아들딸에게 들려주는 말, 보아야 보이는 것들 중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김명곤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는 무대에서 절름발이 연기를 하려고 '저는 사람'을 관찰하고 배우기 위하여 종로2가에 나갔다고 한다. 절름발이야 간혹 보고 살아 왔지만 배우려면 확실한 관찰이 필요했을 거였다. 절름발이를 만날 필요가 없을 때는 보기도 힘들었지만 절름발이를 찾아 거리에 나서보니 무슨 사람이 이리 많은 것이며, '저는 사람'은 왜 또 많은지… 그런데 다시 '저는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없어지고 보니 종로에 나가도 저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마음에서 멀어지니 눈에서도 멀어지더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우리가 하는 일에, 스스로 하는 일에 노력을 함은 물론 늘 깨어있자는 것이다. 깨어 있을 때 원하는 것들이 비로소 보인다는 것이다.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스스로 처방하는 책

<어른의 학교>는 저자의 문학자세와 생활자세를 유감없이 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짧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들 32편은, 소나기처럼 시원한 글들이 남기는 여운이 깊고 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생각하고 마는 것들이나 꼭 필요한 것들을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끌어들이고 발효시켜 능청스럽게 들려주는 맛이란… 이야기들마다 이렇게 맛깔스럽게 속속 스며들까 싶다.

무엇을 하다보면 타성에 젖고, 그것마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오만으로 결국 딜레마에 빠졌다고 후회하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저자의 산문집 한권씩을 펼쳐 훑어보곤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교만과 게으름을 버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한다. 툭툭 던지는 듯, 한껏 능청스러운 맛깔스런 글에 맘껏 취하거늘,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사다리를 버린다(去梯)커니, 통발은 잊는다(忘筌)커니,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不立文字)커니 하는 거 아무나 지망지망히 시늉할 것이 아닙니다. 사다리는 누각에 오른 연후에야 버리는 것(登樓去梯), 통발은 물고기를 잡은 연후에 잊는 것(得魚忘筌)입니다. 자기 근기(根氣)는 요량도 못하는 채 뭘 불 싸지르고 뭘 버리는 거 좋아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적어집니다.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들 것이 아니라 모두 배우는 일에 겸손해졌으면 합니다. 옛 선사 한 분의 말씀이 들어둘 만합니다. <언필칭,' 불립문자 '라고 하나 문자도 방편될 것이면 가히 길동무 삼을 만한 것이라(그러니까 까불지 말거라).-'우리가 싸질러야 할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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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품 소나무
전영우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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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나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소나무 재선충 확산에 대한 대책과 안타까움에 2005년 3월 3일 예술인들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을 했다. 그리고 국회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한 종류의 나무를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전례도 없거니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일이다. 그 훨씬 앞선 2002년 5월 1일에는 정이품송의 첫날밤에 대한 기사가 일간지의 사회면에 실렸는데 이런 이야기는 우리 나라 정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왜 이렇게 고군분투하는가? 대체 무엇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소나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인의 DNA에는 소나무가 특별하게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특별한 문화적 코드라고 할까. 그래서일까? 소나무는 우리들 속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왠지 믿음직한 그 무엇이다. 야트막한 야산일지라도 소나무가 건강하게 서 있으면 그냥 마음이 꽉 차있는 듯하고, 가로수로 심어진 소나무일망정 문득 만나게 되면 공해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운 한편 우리의 전통이 흐트러지지 않고 여전한 듯 여겨지기도 한다.

소나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를 예찬해 왔으며 글과 그림으로 소나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래서 소나무를 지칭하는 이름도 많다. '반송, 금송, 관음송, 왕송, 곰솔, 도래송, 사인송, 당송, 표송, 처진 소나무, 부부송, 만지송, 백송, 수성송, 의암송, 구송, 당송, 반룡송, 효자송...'

함께 살아 온 소나무, 함께 살아 갈 소나무

소나무에 대한 막연하고도 각별한 애정을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나무와 관련한 추억과 애정이 있겠지만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둘러싸고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정이품송의 첫날밤'과 '포천부부송' 이야기다.

6백 년 넘은 정이품송의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 산림청은 10년 넘게 신부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뽑힌 소나무는 45그루였는데 결국 신부목으로 뽑힌 미인은 삼척의 준경릉 소나무였다. 2001년 5월에 두 소나무의 인공 교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정이품송의 반려자로 이미 정부인송이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말하자면 산림청과 관련 학자들이 정이품송을 외도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불륜'이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결국 이듬해 정부인송과 첫날밤을 치르도록 했다. 이 기사는 이름 있는 일간지 사회면에 실리고 했다.

포천 부부송은 가장 최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다. 밖에서 보면 한그루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한 그루가 다른 한 그루를 얼싸안고 있어서 애를 못 낳는 사람들이 많이 찾던 소나무였다.

2004년 12월 14일 문화재청은 이 두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하면서 '직두리의 처진 소나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주변 주민들이 소나무의 내면을 무시하고 외형만을 따져 붙인 이름에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이름을 공모하기에 이르렀다. 원앙송, 누리 보듬송, 만년송, 둘하나 소나무, 자매송 등의 이름이 치열한 경합 끝에 이혼이 만연한 세태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직두리의 부부송'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정했다.

이밖에도 천연기념물 소나무 주변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소나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 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셀 수도 없이 전해져 온다. 소나무들과 관련된 개인들의 추억들은 또한 오죽 많으랴.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있는 경우와는 달리 개인의 이기심에 희생되어 버린 안타까운 천연기념물 소나무도 있다. 그나마 간신히 살아가고 있던 전주 삼천동의 소나무가 죽어 가고 있다. 죽어가는 소나무를 보니 뿌리에는 구멍 8개가 뚫려있으며 독극물이 주입되어 있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제대로 관리하고 좀 더 세심히 신경 썼더라면 몇 백 년 장구하게 살아 온 그 생명을 이어 후손에게 오래도록 생명을 더해 주었을 것인데 고사해 버린 보은의 백송과 서천 신송리의 곰솔은 여간 마음 아픈 것이 아니다. 보은의 백송은 제대로 된 지식 없이 관리자가 흙을 너무 돋워서 뿌리가 썩었으며, 신송리 곰솔은 피뢰침 하나 세우지 않아 최근에 벼락을 맞아 고사하고 있다. 이 신송리 소나무는 곰솔 중에 가장 아름다운 수형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몇 백 년을 살다가 수명을 다하여 쇠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자연스러운 이치라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혹은 잘못된 관리로 고사하고 마는 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조차 말아야겠지만 전국으로 확산되는 재선충이 천연기념물 소나무들에게 언제 덮칠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소나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의 名品, 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기행문이다. 책 속에는 송진내 물씬 풍겨 올 듯한 소나무들이 꿈틀거리며, 혹은 곧게 가지를 뻗고, 혹은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책 속에 가득한 천연기념물 소나무 화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가득 솔내음이 스며들고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또, 나무와 숲의 존재를 가까이에 있게 한 전영우 박사의 소나무에 바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어떤 길로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찾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소나무를 관찰해야 하는지, 가슴 둘레 높이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장구한 세월의 나이, 성품이나 생김새들을 자세히 들려준다. 이 책을 따라 소나무 기행을 하는 동안 '우리에게 소나무는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언젠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삶이 휘청이면 소나무를 찾아가 부둥켜안고 하소연하고 통곡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다시 삶을 추스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의아했는데 소나무에는 생명과 치유의 힘이 있었다. 비단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뿐이랴. 세월을 더하여 굵어지는 동안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고 문화를 간직할 무수한 소나무들이지 않은가. 책을 덮고서도 소나무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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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2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나무 박사 이름이 전영우였던 것 같은데 동일인물인가요?^^

필터 2005-11-2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나무박사 전영우?....^^
같은사람 맞습니다. 나무와 숲과 관계되는 동명은 같은 분입니다.
박사의 소나무 사랑은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이 책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의 소나무란 책이 아마 지난해엔가?
먼저 나왔습니다....^^

비로그인 2005-11-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터님, 이곳에서도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미네르바 2005-11-2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에 저렇게 많은 이름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러고 보면 저도 다른 나무와 달리 소나무에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는 듯 해요. 이 글을 읽으니 어린 시절, 뒷동산에 높이 서있던 소나무가 떠올라요.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필터 2005-11-2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비숍님....그리고 미네르바님...보시기에 제가 상당히 게으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