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쾌락 - 부엌과 식탁을 둘러싼 맛있는 역사
하이드룬 메르클레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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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음식은 무엇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그렇다면 접대는? 음식을 통한 접대는 우리의 생활에 친목 이상의 중요한 문화다. 적게는 한 사람의 손님과 나누는 식사부터 많게는 결혼 피로연처럼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까지, 어떤 만남에나 행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접대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음식과 접대문화는 인간 생활의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식탁 위의 쾌락>은 음식과 손님을 신 앞에서 신을 대하듯 했던 고대 그리스의 접대문화부터, 회의용 탁자로 변한 19세기 시민사회 식탁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며 저자가 들려주는 부엌과 식탁을 둘러 싼 맛있는 역사에 기꺼이 빠져 맘껏 향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포크를 사용하는 건 신을 모독하는 행위?

11세기, 베네치아의 한 총독과 결혼한 비잔틴의 공주는 손으로 어떤 것이든 만지려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환관들은 음식을 잘게 잘라 공주 앞에 내놓았다. 그러면 비로소 공주는 두 갈래로 된 뾰족한 것으로 음식을 찍어 먹었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손으로 먹었다. 이들에게 음식은 신이 내린 고귀한 선물이어서, 공주처럼 손이 아닌 어떤 기구로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며 신을 모독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공주의 이런 식사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그러나 결국 수많은 비난 속에서 이탈리아가 이 기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세대를 거치는 동안 왕의 칙명으로 사용을 허가하고 권장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과자 같은 후식을 위한 기구로 쓰이다가 점차 본격적인 식사도구로 쓰였다. 지탄받던 포크 사용이 이젠 높은 신분을 의미했다. 최대한 우아할 필요가 있으며, 품위가 생명만큼 소중했던 귀족들은 식사 때마다 포크와의 전쟁을 벌였다. 포크에 서툰 이들은 접시 밖과 테이블 밑으로 많은 음식을 흘렸으며, 포크에 찍힌 음식이 제발 입으로 닿기만을 간절히 바랄 정도였다.

이것이 서양음식문화에서 포크를 사용하게 된 재미있는 기록이다.

포크의 등장과 함께 서양의 음식문화는 본격적으로 질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허겁지겁 먹던 일부 사람들은 포크 사용으로 음식을 어느 정도 자제하고 음미했다. 포크라는 식사도구의 사용은 다른 기구들의 사용으로 이어졌다. 냅킨이나 접시, 식탁보 등의 눈부신 발전까지 이어지게 만든 것이 포크의 등장이었다.

포크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포크의 기원을 저자는 동양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젓가락으로 상징된다면 서양의 음식문화는 단연 포크 아닌가.

중세엔 양념을 많이 쓸수록 높은 신분

로마 시대 부자의 집에는 식당이 몇 개나 있었을까. 중세에는 왜 그리도 양념에 집착했을까. 르네상스인들은 왜 포도주를 그토록 줄기차게 마셔댔을까. 바비큐 파티에서는 왜 항상 남자가 고기를 구울까. 중세에는 뚱뚱한 사람이 미인이었다는데… 서양 음식의 풀코스는 왜 그렇게 길까?

이 책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좀더 따라가 보면 이렇다.

첫 장에서 볼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접대문화는 참으로 경건하다. 그들은 손님에게 새 옷을 내주고 음식을 대접했으며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낯선 손님의 모습 뒤에 신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이었다.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신을 접대하는 것이었다.

로마시대 귀족층의 부패를 보면 놀랍다. 그들은 향락에 빠진 나머지,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어떤 귀족은 포도주로 손을 씻기까지 했다. 포도주 사용 역시 신분을 나타냈다. 갓 잡은 사냥감을 최고급 고기로 인정하여 즐긴 것도 부패한 로마귀족들이었다.

중세 음식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양념이다. 양념이 워낙 귀한 시대여서 양념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양념을 무조건 듬뿍듬뿍 넣어 요리를 했다. 모든 요리의 맛이 비슷했고 원재료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음식문화의 진정한 발전이 전혀 없었던 시대였다. 다만 음식은 신분을 과시하는 향락의 일종이었다.

문화 미식가들을 위한 만찬

이 책은 서양 식탁문화 2500년을 시대적으로 나열, 여섯 장으로 정리하여 자세히 보여준다. 고대그리스의 향연부터 19세기 시민사회 식사까지 많은 에피소드로 잘 차려진, 만찬 같은 느낌의 이야기들이다. 음식전문가인 저자가 음식과 식탁의 이야기를 통하여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서양의 다양한 문화나 관습, 역사가 들어 있다.

음식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그만큼 재미있으며 절실하다. 식탁(식사)의 모습은 어떤 문학작품에나 예술작품에 반드시 들어가는데, 이 책은 서양의 예술작품을 대하는 동안 다소 의아했던 음식과 관련된 장면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문화의 미식가들을 위한 맛있는 책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언제까지고 인간과 함께 할 음식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 음식과 만나는 그 순간인 식사와 식탁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것… 기대 이상의 성찬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음식은 감사의 마음으로 먹을 때 맛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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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4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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