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품 소나무
전영우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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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소나무 재선충 확산에 대한 대책과 안타까움에 2005년 3월 3일 예술인들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을 했다. 그리고 국회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한 종류의 나무를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전례도 없거니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일이다. 그 훨씬 앞선 2002년 5월 1일에는 정이품송의 첫날밤에 대한 기사가 일간지의 사회면에 실렸는데 이런 이야기는 우리 나라 정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왜 이렇게 고군분투하는가? 대체 무엇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소나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인의 DNA에는 소나무가 특별하게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특별한 문화적 코드라고 할까. 그래서일까? 소나무는 우리들 속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왠지 믿음직한 그 무엇이다. 야트막한 야산일지라도 소나무가 건강하게 서 있으면 그냥 마음이 꽉 차있는 듯하고, 가로수로 심어진 소나무일망정 문득 만나게 되면 공해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운 한편 우리의 전통이 흐트러지지 않고 여전한 듯 여겨지기도 한다.

소나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를 예찬해 왔으며 글과 그림으로 소나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래서 소나무를 지칭하는 이름도 많다. '반송, 금송, 관음송, 왕송, 곰솔, 도래송, 사인송, 당송, 표송, 처진 소나무, 부부송, 만지송, 백송, 수성송, 의암송, 구송, 당송, 반룡송, 효자송...'

함께 살아 온 소나무, 함께 살아 갈 소나무

소나무에 대한 막연하고도 각별한 애정을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나무와 관련한 추억과 애정이 있겠지만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둘러싸고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정이품송의 첫날밤'과 '포천부부송' 이야기다.

6백 년 넘은 정이품송의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 산림청은 10년 넘게 신부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뽑힌 소나무는 45그루였는데 결국 신부목으로 뽑힌 미인은 삼척의 준경릉 소나무였다. 2001년 5월에 두 소나무의 인공 교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정이품송의 반려자로 이미 정부인송이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말하자면 산림청과 관련 학자들이 정이품송을 외도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불륜'이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결국 이듬해 정부인송과 첫날밤을 치르도록 했다. 이 기사는 이름 있는 일간지 사회면에 실리고 했다.

포천 부부송은 가장 최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다. 밖에서 보면 한그루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한 그루가 다른 한 그루를 얼싸안고 있어서 애를 못 낳는 사람들이 많이 찾던 소나무였다.

2004년 12월 14일 문화재청은 이 두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하면서 '직두리의 처진 소나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주변 주민들이 소나무의 내면을 무시하고 외형만을 따져 붙인 이름에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이름을 공모하기에 이르렀다. 원앙송, 누리 보듬송, 만년송, 둘하나 소나무, 자매송 등의 이름이 치열한 경합 끝에 이혼이 만연한 세태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직두리의 부부송'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정했다.

이밖에도 천연기념물 소나무 주변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소나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 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셀 수도 없이 전해져 온다. 소나무들과 관련된 개인들의 추억들은 또한 오죽 많으랴.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있는 경우와는 달리 개인의 이기심에 희생되어 버린 안타까운 천연기념물 소나무도 있다. 그나마 간신히 살아가고 있던 전주 삼천동의 소나무가 죽어 가고 있다. 죽어가는 소나무를 보니 뿌리에는 구멍 8개가 뚫려있으며 독극물이 주입되어 있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제대로 관리하고 좀 더 세심히 신경 썼더라면 몇 백 년 장구하게 살아 온 그 생명을 이어 후손에게 오래도록 생명을 더해 주었을 것인데 고사해 버린 보은의 백송과 서천 신송리의 곰솔은 여간 마음 아픈 것이 아니다. 보은의 백송은 제대로 된 지식 없이 관리자가 흙을 너무 돋워서 뿌리가 썩었으며, 신송리 곰솔은 피뢰침 하나 세우지 않아 최근에 벼락을 맞아 고사하고 있다. 이 신송리 소나무는 곰솔 중에 가장 아름다운 수형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몇 백 년을 살다가 수명을 다하여 쇠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자연스러운 이치라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혹은 잘못된 관리로 고사하고 마는 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조차 말아야겠지만 전국으로 확산되는 재선충이 천연기념물 소나무들에게 언제 덮칠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소나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의 名品, 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기행문이다. 책 속에는 송진내 물씬 풍겨 올 듯한 소나무들이 꿈틀거리며, 혹은 곧게 가지를 뻗고, 혹은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책 속에 가득한 천연기념물 소나무 화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가득 솔내음이 스며들고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또, 나무와 숲의 존재를 가까이에 있게 한 전영우 박사의 소나무에 바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어떤 길로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찾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소나무를 관찰해야 하는지, 가슴 둘레 높이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장구한 세월의 나이, 성품이나 생김새들을 자세히 들려준다. 이 책을 따라 소나무 기행을 하는 동안 '우리에게 소나무는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언젠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삶이 휘청이면 소나무를 찾아가 부둥켜안고 하소연하고 통곡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다시 삶을 추스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의아했는데 소나무에는 생명과 치유의 힘이 있었다. 비단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뿐이랴. 세월을 더하여 굵어지는 동안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고 문화를 간직할 무수한 소나무들이지 않은가. 책을 덮고서도 소나무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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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2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나무 박사 이름이 전영우였던 것 같은데 동일인물인가요?^^

필터 2005-11-2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나무박사 전영우?....^^
같은사람 맞습니다. 나무와 숲과 관계되는 동명은 같은 분입니다.
박사의 소나무 사랑은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이 책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의 소나무란 책이 아마 지난해엔가?
먼저 나왔습니다....^^

비로그인 2005-11-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터님, 이곳에서도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미네르바 2005-11-2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에 저렇게 많은 이름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러고 보면 저도 다른 나무와 달리 소나무에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는 듯 해요. 이 글을 읽으니 어린 시절, 뒷동산에 높이 서있던 소나무가 떠올라요.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필터 2005-11-2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비숍님....그리고 미네르바님...보시기에 제가 상당히 게으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