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박사님 과학하고 놀기
정태섭 지음 / 지성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제3장 '방사선 X파일'을 주목하자

"X레이 찍다"라고 흔히 말하는 'X선', 혹은 '방사선'의 두 얼굴을 본다. 방사선은 야누스처럼 양극이 심하여 적절하게 잘 쓰면 인간의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인류를 파멸하게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살아남은 피폭자들에게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 몸속에 악마처럼 스며든 방사선의 영향은 2세에게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방사선을 무조건 죄악시 할 수만은 없다. 방사선은 오늘날 의학과 산업 등의 분야에서 다양하고 소중한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뢴트겐에 의하여 X선이 발견되고 그 1년 후인 1896년 한 해 동안, 방사선을 이용하여 몸 안에서 총알을 찾아내어 살게 된 사람의 수는 미국남북전쟁 시 총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뢴트겐에 의해 X선이 발견되기 전에는 '탐침'이라는 갈고리를 총알이 박힌 자리에 넣고 휘저어 총알을 찾아냈다고 한다.

'위험하지만 어떻게 하면 인간에게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란 고민으로 스스로 피폭의 고통까지 감수하며 방사선을 발전시킨 과학자가 있는가 하면 방사선을 이용하여 떼돈을 번 사람도 있다. 방사선의 두 얼굴이 이렇게 뚜렷하게 다르다.

뢴트겐에 의해 X선이 처음 발견되자 독일의 어떤 재벌이 뢴트겐에게 "특허를 넘겨주면 거액의 사례를 하겠노라"는 제안을 하였지만, 뢴트겐은 "이미 있던 것을 알아낸 것이지 발명이 아니다. 인류를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며 단호히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런 뢴트겐을 보고 남을 칭찬하는데 무척 인색했던 에디슨은 "과학에 있어서도, 의학에 있어서도, 산업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X선을 발견했으면서도 금전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칭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폭의 첫 사망자 기록은 에디슨에 의한 에디슨의 조수 '달리'라고 한다. 에디슨은 1896년 X선 촬영기를 구해 만국박람회에 전시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에게 X선을 비추어주고 돈을 받는 일종의 영업을 하였다고 한다. 손님대신 조수 달리의 손을 기계에 대고 촬영을 하였으며, 사람의 뇌의 구조와 능력에 호기심이 많았던 에디슨은 달리의 머리에 수시로 X선 촬영을 하였다. 조수 달리는 피폭으로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괴사하는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우리에게 방사능의 구체적인 연구발전을 남겨준 마리 퀴리와 그의 딸 이렌 퀴리 역시 방사능의 피해자였다. 이들은 방사능의 부작용과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연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쉽게 놓지 않았다. 방사능에 의해 짓물러 있는 자신들의 손을 다른 연구관들에게 자주 보여주며 그 위험성을 늘 알리고 경고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주머니에는 방사성의 동위물질인 라듐이 늘 들어 있을 정도였다. 이들은 백혈병으로 죽었다.

방사능을 이용하여 돈을 번 사람은 에디슨만이 아니었다. 뢴트겐이 X선 촬영으로 몸속 뼈까지 볼 수 있다는 논문을 처음 발표했을 때, 어느 신문사는 "당신들이 아무리 우아하게 치장해도 뢴트겐은 해골로 볼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삽화를 실어서 당시 여성들은 뢴트겐에 게 몰려가 데모까지 했다. 이때 영국의 한 속옷회사가 납 가루를 넣어 만든 내복을 만들어 '누구도 꿰뚫어 볼 수 없는 내복'이라는 선전을 하며 팔기도 했다고 한다. 그 옷은 불티나게 팔렸음은 물론 차폐복의 원조가 되었다.

1970년대 만해도 X선에 의한 인체촬영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초음파나 MRI등 방법이 다양해졌으며 방사선과라고 불렀던 이름을 이젠 영상의학과로 고쳐 부른다. 그리고 촬영을 해도 발견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피폭의 위험도 극히 적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X선, 방사선은 도대체 무엇일까?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인간의 몸을 진단하는데 X선이 쓰이기 시작한걸까? 지금 현재 인류에게 가장 큰 화두인 X선에 얽힌 이야기들을 이 책의 3부인 '방사선 X파일'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 CT촬영기로 환자뇌에 있는 동맥류를 검사하다가 우연히 하트 모양의 동맥류를 발견했어요. 보통 뇌동맥류가 터지는 경우는 사망률이 50퍼센트 이상으로 매우 위험한데 이 하트 모양때문에 미리 예방할 수 있었어요...발렌타인데이에 주고 받는 장미와 쵸컬릿을 X선 촬영하다(책 속 사진 설명중에서)
ⓒ2005 지성사

영상의학 기계와 과학자들을 둘러싼 이야기

<아하 박사님 과학하고 놀기>는 영상의학과에서 근무하는 저자는 우리가 병원에서 만났던 기계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막연한 거부감이 더 앞섰던 기계를 통하여 보는 우리 몸속 하트들이 신기하다. 저자의 설명대로 한장 한장 보다보면 하트모양의 무언가가 발견되면서 환자는 생명을 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계가 촬영해 낸 우리 몸의 일부에서 보여 지는 하트를 보며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위에서 일부를 소개한 '방사선의 X파일'을 통하여 방사선에 대하여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비교적 쉽게 이해하였다. 짧으면서도 폭 넓은 이야기들이 참 유용하다는 생각인데 아이들과 함께 접근하여 읽는 내내 유용했다. 방사선과 관련한 과학자들의 숨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과학에선 더더욱 방사선의 음과 양의 차이는 엄청나다. 아울러 국제 정세를 뒤흔드는 방사선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들이 막연히 거리감을 두었던 병원의 기계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방사선, 화폐 속 과학자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단순하게 세간에 많이 알려진 과학적인 상식들을 묶어 놓은 것이 아니라 비교적 덜 알려진 분야의 이야기들이어서 과학분야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접근이 될 듯싶다.

아이들의 꿈, 어떻게 키워줘야 할까?

'좀 별난 의사 선생님 정태섭'. 괴짜의사와 정 가이버라는 별명이 붙은 저자는 영동 세브란스 영상의학과에 근무하며 MBC 어린이 과학 프로그램인 <아하 그렇구나>를 진행하는 '아하 박사님'이다.

괴짜의사 정태섭은 아이들을 이끌고 별 탐사를 다니는 별박사인데 과학교사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통하여 다시 꿈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학교사인 그의 아버지는 어린시절 실수를 되풀이해도 실패 속에서도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도리어 실수를 통해 용기를 얻게 했다고 한다. 화폐수집가이기도 한 저자는 화폐 속에서 과학자의 얼굴을 찾아 그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우리나라 화폐에도 과학자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별자리를 보고 있는 저자의 어린시절 흑백사진 한 장이 남달라 보인다. 망원경에 눈을 댄 아이의 키와 렌즈가 맞지 않는다고 망원경주인은 아이의 머리를 눌러서 아이를 망원경에 맞춘다. 그래서 저자는 아이들과 별자리 탐사를 나가면서 아이들 키에 맞는 몇 개의 발판을 빠뜨리지 않고 준비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무한한 호기심을 우리는 어떻게 해줄 것인가. 아이들에게 펼쳐져 있는 무한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 배우가 되다 - 꿈을 키우는 아이들 2 꿈을 키우는 아이들 2
주경희 지음, 김명곤 그림 / 서울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야, 바보! 공을 그렇게 차면 어떻게 해!"
"난, 강민휘야, 바보가 아니란 말이야!"
"야, 공부 시간에 밖으로 나가고, 4학년이나 돼 가지고 선생님이 숫자를 적으라고 해도 넌 못 적잖아. 그게 바보 아니고 뭐냐?"
"난 바보 아니야! 난 바보가 아니란 말이야! 강민휘야. 강민휘!"

민휘는 바보라고 놀리는 친구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말싸움은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은 구경만 하고 서 있었습니다.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민휘의 동생 설희가 다가온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우리 오빠 왜 때려!" 설희는 오빠의 친구를 마구 때렸습니다.
- 책 속에서


<천사, 배우가 되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는 아이와 고만고만한 철부지 아이들의 싸움 같다. 친구에게 맞고 있는 오빠의 편을 드는 동생 설희의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남매의 이야기 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영영 낙오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배우 강민휘의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민휘는 두 돌이 되었지만 말문을 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조금 더디려니, 그래서 말문을 아직 열지 않으려니' 이렇게 생각하며, 언젠가는 말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부모에게 아들이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닌 스물한 번째 염색체가 하나 더 있어서 그것이 장애가 되는….

아들이 '다운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민휘의 부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이의 말문이 트이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포기하지 않고 꼭 다물어진 아이의 입을 향해,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다.

"자, 민휘야 따라 해봐 엄마, 엄마…."

'엄마'란 지극히 짧은 한마디, 젖을 떼기도 전에 우리들 누구나 본능으로 말하게 되는 '엄마'를 부르기를 바라며….

'민휘'란 자신의 이름을 아이 스스로 부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정성에 아이의 스물한 번째 염색체(다운 증후군 원인 염색체)가 감동한 것일까. 비록 보통 아이들보다 한참이나 늦었지만, 어느 날 민휘는 기적처럼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비록 더딘 발걸음이지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서 건강하게 태어난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통 아이들 속에서 적응하기란 다른 아이들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노력이 되풀이 되어야만 가능했다. 무엇이 하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 더 있는 염색체 때문에 평범하지 못한 민휘는, 보통 아이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증상을 보였다. 수학시간인데 민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밖에 나가 공을 차고 뛰놀고 싶었다. 그리고 공부시간에 교실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민휘의 이런 증세는 평범한 아이들이 보기에 장애아였고 바보였던 것이다.

민휘의 부모는 장애아와 보통 아이들 간에 있는 벽에 부딪쳐 결국 학교를 옮겨야만 했지만 이미 시작된 희망과 용기를 꺾지는 않았다. 민휘에게는 가족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으며, 그 누구보다 동생 설희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자기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에 나가기를 머뭇거리는 장애아가 아니었다. 남들에게 없는, 자신에게만 있는 스물한 번째 염색체는 행복 염색체인 것이었다. 자신의 장애를 밝게 비추어서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그런 행복 염색체인 것이다.

민휘는, 동생 설희가 소원했던 연기자가 된 오빠를 보지 못하고 죽어서 슬프다. 설희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노래를 들려주지 못해서 슬프다. 그러나 민휘는 오늘도 활짝 웃으며 행복하다.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의 스물한 번째 행복 염색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보'라는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 대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으며,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배우 강민휘는 아름답다. 이 책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강민휘의 성장스토리와 가족의 뜨거운 사랑을 우리에게 감동스럽게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들 가족의 뜨거운 사랑에 눈시울이 자주 붉어졌다. 그리고 민휘 어머니의 사랑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도 모르게 번져오는 눈물을 몇 번이나 훔쳐야만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다운증후군'이란 '지체장애'로 불리며 평생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살아가야하는 불치병인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첫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의 성장스토리를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신체 장애는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배려로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심코 생각하던 인간의 장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 강민휘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빛이 되어 또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용기 있게 일어서서 걸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들려줄 수 있어서 좋다. 우리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장애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접어 버릴 때 찾아오는 장애가 훨씬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아이들과 장애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역사를 움직인 훌륭한 사람들 이야기도 좋겠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 전해주는 감동실화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좌절하지 않고 걸어 갈 수 있는 좋은 모범이 될 것 같다. 배우 강민휘와 가족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연사랑 2005-11-2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극장'에서 강민휘군 이야기를 본 적 있어요. 안타깝게도 그 동생은 먼저 좋은 곳으로 갔더군요. 세상에 아픔없는 가족은 없겠지만 이렇게 용기있는 가족도 드문 거 같아요.

필터 2005-11-2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설희라고 하였던 것 같네요....^^..설희가 드라마 작가를 꿈꾸었지요. 그래서 오빠가 방학때 오면 각본을 가지고 드라마 ...가만 난소암이었던 것 같네요.
 
얼굴 - 손문상이 그리는 21세기 대한민국 속살
손문상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신문에 '그림만인보' 연재를 중단하고도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책으로 엮어낼 물건인지 아직 확신이 없는데, 모진 세상 사람들을 불러내 과분한 상을 타기도 했다. 그런데 또 그 연재물을 묶고 다듬어 <얼굴>이란 책을 세상에 내보려 한다. 무렴하다. 분신한 사람, 목매단 사람,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람, 총 맞아 죽은 사람, 굶는 사람, 전쟁터로 간사람, 식물인간이 된 사람, 남들이 간첩이라고 우기는 사람, 이주노동자 또는 통틀어 블랑카로 불리는 사람, 그리고 이십 구 만원 밖에 없다는,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사람까지… 사람, 사람, 사람…."

▲ 시사만화계의 풍운아 손문상의 작업(?)모습과 2003년 언론노조가 선정한 '민주언론상-보도부문특별상'을 받은 작품 모음집 <얼굴>의 표지
ⓒ2005 우리교육
<얼굴>에는 우리 시대 다양한 속살이 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손문상의 <얼굴>을 본다. 시사 만화집 <얼굴>을 통하여 우리시대의 얼굴, 그 다양한 속살을 본다. 사회의 그늘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들. 권리를 박탈당하고 짓눌린 사람들의 그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해야만 했던 사람들. 소수의 그릇된 욕망보다 다수의 건강한 이익을 위하여 풀꽃 같은 희망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

정치적 목적이나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자신만의 어떤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돋는 희망마저 꺾어버리는 부끄러운 얼굴들을 본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얼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누구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이 시사만화집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묵묵히 이 사회를 이끌어 냈던 소신 있는 사람들과,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우선 배려하였던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한 컷의 만화와 짧게 덧붙여진 시적인 표현은 시사만화계의 풍운아 손문상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카드와 메시지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 그 다양한 속살을 들여다본다.

펜 하나로 신랄하게, 그렇지만 더욱 더 따뜻하게

<얼굴>은 2003년부터 부산일보에 <그림만인보>라는 타이틀로 연재한 것을 묶고 다듬은 것이다. 또한 이 작품으로 2003년 민주언론노조가 선정한 '민주언론상-보도부문 특별부문'을 수상했다. 이 시사 만화집에 수록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내가 이기나 창이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창을 던진다"-허희선
ⓒ2005 우리교육
창을 던져 그것이 꿈일 수 있기까지 휘청대는 지축은 절망이 아니었다. 양손의 무리 속에서 너의 왼손을 안위하지 않고 날아가는 창의 포물선을 따라 불안한 시대 진정 당당했던 선사(先史)의 기억으로 되돌아오는….

장애인 육상선수 허희선이 희망의 창을 던졌다. 세살 때 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은 그는 2003년 9월 13일 열린 전국체전 남자육상 창던지기에서 장애인으로선 사상 최고 성적인 2위에 올랐다. 그의 꿈은 장애인 최초로 육상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것. "내가 이기나 창이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창을 던진다"는 그에게 장애의 벽은 높지 않다. 왼손잡이 투창선수 허희선편


왼손잡이 투창선수, 장애인 허희선을 부끄럽게도 나는 전혀 몰랐다. 손문상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비단 허희선 뿐이랴. 세상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바쁜 생활 속에서 어느새 잊혀지는 사람들을 그려내어 우리에게 다시 만나게 하는 그의 묵묵한 열정이 돋보인다. 그의 날카로운 펜은 우리 시대의 ‘공공의 적‘이랄 수 있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꼬집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따뜻하여 더욱 가치 있다고 할까?

손문상의 한 컷, 인물캐리커처를 통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조금 살펴보면 이렇다.

몸을 비워 다른 생명을 살리는 지율스님이나 네 명의 성직자.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 윤이상과 돌아오지 못하는 이 송두율을 만날 수 있으며, 죽지 않는 노동자 박창수를 또한 만날 수 있다. 우리말의 큰 스승 고 이오덕 선생과, 세상 낮은 곳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긴 권정생 선생, 농사꾼 전우익도 그가 그려낸 얼굴들이다. 한진 중공업 노조 고 김주익 선생이나 박창수, 이라크 한국인 첫 희생자인 김만수, 곽경해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하며 안타깝다.

행동하는 지식인 고 김진균 선생도, 큰 광대라고 이름 붙여진 고 박동진 명창도 만날 수 있으며 ‘효리신드롬’의 이효리도, 배우 최민식이나, 할 말 하는 딴따라 신해철도 만날 수 있다. 전혀 모르는 얼굴들이지만 마음은 오직 하나로 뭉쳤던 촛불광장의 사람들을 만나는 감동스럽게 만난다. 뿐만이랴. '최틀러?라고 작가가 말하는 최병렬'도, '우리 시대의 공공의적 전두환'이라 제목이 붙여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감회(?)도 남다르다고 할까? 감회, 감동, 뭉클함, 분노… 어찌 다 열거하랴 싶다.

▲ '대물림 귀족 이건희, 이재용 부자'편은 언론의 주목을 특히 많이 받고 있는 한 컷이다. '다시 일어서라 박찬호'. 박찬호는 어두운 IMF시절에 우리들의 위안이었고 빛이었다. 2005년 그의 화려한 부활에 박수를 보내며...둘 중, 누가 성공신화의 진정한 주역인가?...생각해보았다.
ⓒ2005 우리교육
시사만화계의 풍운아 손문상, 시사만화집 <얼굴>

손문상은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학과 재학 시절부터 '운동'에 항거하는 방법으로 만화를 도입함으로써 시사만화계의 풍운아로서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졸업 후 경인지역 노동미술활동과 언론개혁확대를 지평으로 확산하는 등, 그는 여러 언론매체에 우리 시대 자화상을 그려왔다. 또한, 여전히 여러 언론매체에 날카로운 그만의 카리스마 넘치는 그림을 연재하고 있다.

손문상의 만평은 그림 자체의 신랄함과 함께 적절한 배경처리가 뛰어나며 시대적 이슈를 적절히 짚어낼 줄 안다. 또 그림도 그림이지만 한 컷, 한 컷마다 덧붙인 인물 묘사의 글 솜씨 또한 빼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손문상의 남다른 열정과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시사 만화집 <얼굴>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뜻 무심히 넘겨보고 말지도 모를 그림들이지만 한 컷 만화와 짧은 설명이 담긴 묘사는, 그가 그려낸 주인공들마다 책 한 권씩은 족히 나옴직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책 내용에 앞서 세 편의 긴 글이 있다. 작가의 머리말과 언론인 손석춘, 권영길 의원의 추천사가 있는데 그가 그간 걸어 온 시사만화가로서의 여정이나, 사회각층에서 주목받는 손문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글이다.

아울러 후기 식으로 실린 못 다한 이야기 두 편과 송두율을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회고의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아리게 남는 글들이다. 손문상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할까. 어떤 분의 말처럼 시사 만화집 <얼굴>은 송곳처럼 파내려간 우리 시대의 속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사에서 부친 편지
경봉 스님 외 지음, 정성욱 엮음, 명정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J형. 오랜만에 편지를 적습니다. 메일이 보편화되어 손쉬운 만큼 마음도 더 많이 전하자 싶었는데 마음뿐, 연하장 띄우고 이렇게 다시 가을입니다. 늘 바쁘고 정신없으면서도 한번씩 그리운 것은 오롯이 마음을 적어 보던 편지입니다. 편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입니다.

'무얼 하며 살아가나?' 요즘, 그간 다소 어수선했던 마음을 돌아 볼 서간집 한 권을 읽었습니다. 인터넷에 입맛들인 후 늦은 밤에도 쉽게 물러나지 못하던 습관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마음 뚝 떼어 물러나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큰스님들이 남긴 주옥같은 삶의 화두들

서간집 <산사에서 부친 편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큰스님들이 수행 중에 틈틈이 주고 받았던 편지글 130여 편을 모은 것입니다. 큰스님들이 남긴 주옥같은 삶의 화두들을 통하여 돌아 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만 온 그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람이든 일이든 제게 머물러 있는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선뜻 줄 수 있으며 얼마만큼 배려하며 바라보아 줄 수 있는가?' 오랜만에 많은 생각도 해보았던 계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리글에 "색이 바래고 때론 쥐똥이 묻은 편지, 찢은 도포자락이나 죽순 잎, 그리고 나무껍질 등에 씌어진 글…"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과 제자, 구도의 길을 함께 가는 도반(같이 공부하는 벗)으로서 인연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입고 있던 도포자락을 찢어 마음을 적어 전해야만 했을까? 죽순 잎에, 혹은 나무껍질에라도 담아 전하고자 했던 순간순간의 작은 깨달음들, 서로를 바라보아주고 이끌어 줌. 그 깊이는 어느 만큼일까?

J형. 비록 속세의 잡다한 욕망에 등을 돌리고 참선과 고행을 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그들이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세속적인 번뇌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부단히 일었다가 스러지는 정한이야 사람이니 어찌 할 수 없는 것임에야. 그럼에도 부처의 가르침에 부단히 다가가려는 그들의 고행과 깨달음을 향한 푸른 발원을 보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사람의 본성으로 잠시나마 흔들렸다가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하는 그들의 살가운 속내였습니다.

그러나 샛별처럼 반짝이는 구도의 발원은 동시에 속가의 어머니에겐 불효였습니다. 속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간병을 위해 산을 내려가는 벽안스님의 편지에는 출가수행자이기 전에 늙은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절절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깨달음에서 멀어질지라도 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그나마 다하려는 그 마음이 제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렇다한 그 무엇 하나 못하고 마음 속에서 늘 아린 친정어머니가 몹시 그립기도 하였습니다.

"원래 중놈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함에도 시름시름 앓는 어머님을 두고서 밤마다 이렇듯 가슴이 미어져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피안(彼岸)행 열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를 사하는 길이니 부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속세의 인연'-벽안스님이 경봉스님에게)

그렇습니다. 눈 푸른 납자(중)가 되어 구도의 길을 가지만 속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데 어찌 무심할 것이며, 나 몰라라 참선에만 들 수 있을는지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한 채 얻은 깨달음을 어찌 제대로 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얻어진 깨달음으로 극락에 간들 그것이 무엇일 수 있으랴. 무릇 종교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지 종교를 위한 종교가 아님을, 종교인으로서 참된 자세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

효봉스님의 일화를 아시지요?

"나는 왜 출가를 해야만 했는가를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법관이라고는 하나 과연 한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가? 과연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이미 내 몸이 세속의 70에 들었으나 아직도 이 뼈아픈 화두 앞에서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뼈아픈 화두'-효봉스님이 경봉스님에게)

일제 때, 법관을 지내던 효봉스님은 어느 날 자신의 판결에 죽어가는 사형수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본의 아니게 일본의 앞잡이로서 자신의 민족인 사람들에게 내리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순간 판사직은 물론 모든 명예를 버리고 엿장수로 떠돌며 참회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참회의 방법으로 늦깎이 출가를 하여 득도하였지만, 그 참회가 평생의 화두였다는 뼈아픈 고백 앞에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깊은 고뇌를 봅니다.

J형! 삶에 미숙하던 청소년기의 제게 효봉스님의 일화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길인지를 생각하게 하였었습니다. 우연찮게 이 서간집에서 다시 대하며 세상에 대하여 꿈이 더 많던 시절들이 새삼 그리워졌습니다.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들 이룸 없이 살아가는 타성에 젖은 모습일 뿐이지만 이렇게 깊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책이 좀 더 깊은 인간일 수 있으리라.

이제 낙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며 가지 속에 부지런한 꽃눈을 준비하였던 나무들이 일년을 묵묵히 살아내고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낙엽은 또 겨울 혹한 속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작은 미물들을 덮어 주겠지요.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생명들의 풍족한 거름이 되어주겠지요. 일년 동안 쓰고 남은 것을 나뭇잎으로 되돌려 주는 나무의 넉넉함과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를 봅니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정작 나무처럼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것도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그늘을 만들어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활엽수처럼 살기란 더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낙엽마저 다른 삶의 배려가 되는 나무, 없는 듯 늘 배경으로만 서 있지만 제 할일 다 해가는 나무 한 그루 품어보는 가을입니다. 낙엽이 지고 있습니다.

삶이란 내가 살아온 흔적이고 살아가는 그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뚜렷하게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는 이룸 없는 삶, 돌아보니 분주한 발걸음뿐입니다. '낙엽이 지고 얼마 후면 다시 한해가 저물 텐데…'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어리석음이지만 이제라도 마음 돌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아닐는지요. 곁들여진 사진들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눌러 앉혔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합장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 권오길 생물이야기
권오길 지음, 김우리 그림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딱딱하기 쉬운 생물 에세이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 꿀벌이 벌집 아래 위로 왔다 갔다 하면 꽃이 태양이 있는 쪽에, 그리고 태양 방향과 오른쪽 60도로 가면서 춤을 춘다면 그 쪽에 꽃이 있다는 뜻이다. 또 둥글게 원무를 추면 꽃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고, 8자 모양을 3초만에 한바퀴 돌면 먹이가 1킬로미터 근방에, 아주 천천히 8초가 걸리면 8킬로미터 근방에 꽃밭이 있다는 신호다." -'꿀벌의 춤은 막춤이 아니다' 편에서

놀랍다. 이렇게 자세한 관찰이 과연 가능할까 싶다. 많은 벌을 보고 살아 왔지만 벌 한 마리의 몸짓에도 이렇게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었다니. 그런데 벌만이 아니다. 나비건, 매미건, 꽃이건… 수많은 생물체들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생물체들마다 자신들의 생태 습성을 저자에게 조근 조근 말해주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저자는 그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과의 만남이 재밌다.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늘 봐왔던 꽃이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 새삼스럽게 다시 보는 꽃은 남다르다. 단순히 예쁘다거나 열매를 맺기 위한 꽃으로서만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좀 더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로 다시 피어나는 꽃들이다. 꽃들은 왜 저마다 붉거나 노란색일까? 그리고 푸른 계열의 색으로 피어나는 꽃이나 하얀색의 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는 생물에세이다.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고 10매를 넘기지 않으려고 쓰다보니 힘들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흔히들 생물계의 이야기는 어렵고 딱딱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 속의 글들은 읽다보면 깔깔거리며 웃게 한다거나 눈물까지 찔끔거리게 한다. 생물계 이야기가 어쩜 이리 재미있을까 싶다. 어쩜 이토록 감동스러울 수 있으랴.

의미 있는 사진 찍기에 욕심이 있다면 이 책을 우선 읽어보면 어떨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낌이 가능하다고 했던가? 생물에세이가 좋은 사진, 의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니? 생뚱맞은 걸까? 생물계에 막연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물론이거니와 자연에서 의미 있는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생물계의 이야기들을 이 책은 요점정리를 잘해주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읽어나가는 동안 어떤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법하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로운 현상을 담으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도 재미있는 장면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풍성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을 찍으며 그 안의 비밀스러움까지 볼 수 있다면 사진은 좀 더 다양하고 생생하게 가치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보는 잠자리를 통하여 이런 사진 찍기 구상은 어떨까? 저자가 들려주는 잠자리를 따라가 보자. 잠자리는 결혼 비행을 통하여 공중에서 짝짓기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물위를 스치는 듯 나는 것은 알을 낳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잠자리 두 마리가 붙어 나는 것은 짝짓기인데 그럼 암컷과 수컷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이런 호기심과 함께 잠자리를 따라가 보면 암컷이 온몸을 둥글게 말아 하트 모양으로 짝짓기 한 뒤 알을 낳는 그 생생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감탄만 하면서 남들과 같은 사진을 찍을 것인가? 풍부한 상식이 뒷받침 된 좀 더 의미 있는 사진을 찍을 것인가? 저자가 들려주는 생물체들은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거나 이미 보면서 자라온 것들이어서 더 의미를 두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 책은 조선닷컴에서 2년 동안 연재되었던 글 51꼭지를 우선 묶었다. 연재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저자의 생물 에세이는 지금도 격주로 연재되고 있다. 또한 여전히 베스트 연재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글들이다. 뿐만이 아니라 출간 된 지 몇 년 된 저자의 다른 생물에세이들 역시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고 한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식지 못하게 할까?

5년 전, 우연히 저자의 다른 생물에세이 한 권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무심히 보아 왔던 자연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자를 통하여 다시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에 한동안 설렜다. 설렘은 또 다른 생물이야기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고리로 연결된 수많은 갈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니 자연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할까?

나와 자연은 한 몸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 뜻 깊은 만남, 그 시작이었다.

이 책이 조금 아쉽다면 내용에 나열된 생물체의 다양한 모습을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주제 하나마다 비교를 해야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자주 보아온 모습이었지만, 이야기를 따라 우선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생물체의 모습을 우선이라도 보고 싶을 만큼 저자의 이야기가 생생하였다고 할까?

열 권 남짓한 권오길의 생물에세이 중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생물계 이야기로 깊이 빠져 드는 계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 동감할 것이다. 낙엽을 모두 떨군 나뭇가지마다 생명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인간과 자연계의 제대로 된 어울림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생명, 그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