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 권오길 생물이야기
권오길 지음, 김우리 그림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딱딱하기 쉬운 생물 에세이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 꿀벌이 벌집 아래 위로 왔다 갔다 하면 꽃이 태양이 있는 쪽에, 그리고 태양 방향과 오른쪽 60도로 가면서 춤을 춘다면 그 쪽에 꽃이 있다는 뜻이다. 또 둥글게 원무를 추면 꽃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고, 8자 모양을 3초만에 한바퀴 돌면 먹이가 1킬로미터 근방에, 아주 천천히 8초가 걸리면 8킬로미터 근방에 꽃밭이 있다는 신호다." -'꿀벌의 춤은 막춤이 아니다' 편에서

놀랍다. 이렇게 자세한 관찰이 과연 가능할까 싶다. 많은 벌을 보고 살아 왔지만 벌 한 마리의 몸짓에도 이렇게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었다니. 그런데 벌만이 아니다. 나비건, 매미건, 꽃이건… 수많은 생물체들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생물체들마다 자신들의 생태 습성을 저자에게 조근 조근 말해주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저자는 그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과의 만남이 재밌다.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늘 봐왔던 꽃이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 새삼스럽게 다시 보는 꽃은 남다르다. 단순히 예쁘다거나 열매를 맺기 위한 꽃으로서만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좀 더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로 다시 피어나는 꽃들이다. 꽃들은 왜 저마다 붉거나 노란색일까? 그리고 푸른 계열의 색으로 피어나는 꽃이나 하얀색의 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는 생물에세이다.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고 10매를 넘기지 않으려고 쓰다보니 힘들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흔히들 생물계의 이야기는 어렵고 딱딱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 속의 글들은 읽다보면 깔깔거리며 웃게 한다거나 눈물까지 찔끔거리게 한다. 생물계 이야기가 어쩜 이리 재미있을까 싶다. 어쩜 이토록 감동스러울 수 있으랴.

의미 있는 사진 찍기에 욕심이 있다면 이 책을 우선 읽어보면 어떨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낌이 가능하다고 했던가? 생물에세이가 좋은 사진, 의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니? 생뚱맞은 걸까? 생물계에 막연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물론이거니와 자연에서 의미 있는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생물계의 이야기들을 이 책은 요점정리를 잘해주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읽어나가는 동안 어떤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법하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로운 현상을 담으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도 재미있는 장면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풍성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을 찍으며 그 안의 비밀스러움까지 볼 수 있다면 사진은 좀 더 다양하고 생생하게 가치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보는 잠자리를 통하여 이런 사진 찍기 구상은 어떨까? 저자가 들려주는 잠자리를 따라가 보자. 잠자리는 결혼 비행을 통하여 공중에서 짝짓기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물위를 스치는 듯 나는 것은 알을 낳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잠자리 두 마리가 붙어 나는 것은 짝짓기인데 그럼 암컷과 수컷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이런 호기심과 함께 잠자리를 따라가 보면 암컷이 온몸을 둥글게 말아 하트 모양으로 짝짓기 한 뒤 알을 낳는 그 생생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감탄만 하면서 남들과 같은 사진을 찍을 것인가? 풍부한 상식이 뒷받침 된 좀 더 의미 있는 사진을 찍을 것인가? 저자가 들려주는 생물체들은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거나 이미 보면서 자라온 것들이어서 더 의미를 두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 책은 조선닷컴에서 2년 동안 연재되었던 글 51꼭지를 우선 묶었다. 연재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저자의 생물 에세이는 지금도 격주로 연재되고 있다. 또한 여전히 베스트 연재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글들이다. 뿐만이 아니라 출간 된 지 몇 년 된 저자의 다른 생물에세이들 역시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고 한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식지 못하게 할까?

5년 전, 우연히 저자의 다른 생물에세이 한 권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무심히 보아 왔던 자연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자를 통하여 다시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에 한동안 설렜다. 설렘은 또 다른 생물이야기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고리로 연결된 수많은 갈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니 자연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할까?

나와 자연은 한 몸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 뜻 깊은 만남, 그 시작이었다.

이 책이 조금 아쉽다면 내용에 나열된 생물체의 다양한 모습을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주제 하나마다 비교를 해야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자주 보아온 모습이었지만, 이야기를 따라 우선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생물체의 모습을 우선이라도 보고 싶을 만큼 저자의 이야기가 생생하였다고 할까?

열 권 남짓한 권오길의 생물에세이 중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생물계 이야기로 깊이 빠져 드는 계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 동감할 것이다. 낙엽을 모두 떨군 나뭇가지마다 생명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인간과 자연계의 제대로 된 어울림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생명, 그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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