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詩集
나태주 글.그림 / 푸른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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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가 흔들린다/ 바람이 앉아서/놀다 갔나 보다...(시 '일요일'부분)

"가끔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간다. 밀린 일을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없어 고즈넉한 학교. 그런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면 조용해서 일이 잘 된다. 그러나 학교는 아이들이 있을 때만 씩씩한 학교가 된다.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이나 방학 때는 학교도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만 같다. 시무룩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것만 같다."-시 <일요일>에 덧붙인 이야기 중에서


'은행 두 알'의 추억이 몹시도 그립다

일요일의 초등학교. 조용하여 일을 하기에는 좋지만 평상시와는 달라 쓸쓸해진 시인은 창가로 가 운동장을 바라본다.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제일 많이 울려 나오던 놀이터에 마음이 가장 많이 머물렀을 것이다. 문득 바라보았는데 아주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는 그네.

타고 노는 아이들도 없는데 왜 그네가 흔들릴까. 아니, 조금 전까지 어떤 아이가 그네를 타다가 돌아간 걸까? 아니면 바람이 와서 그네를 타고 있었던 걸까?...<일요일>이란 시에 적어 넣은 시인의 마음을 읽으며 이제는 기억 속에서마저 아련한 초등학교 무렵을 떠올렸다.

학교에는 굵고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 은행나무는, 바닥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생쥐와 눈이 마주칠 때가 많았던 길고 긴 건물 옆에 서 있었다.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옆으로 한눈팔지 않으면 늘 정면으로 마주치곤 하던 나무였다.

어느 해 가을, 아니 6학년 이맘쯤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소사 아저씨가 삶은 은행 두 알씩을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은행나무가 우리들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었다.

전교생에게 나누어 준 은행 두알. 당시, 반마다 60여명쯤 이었고 학년마다 6~7반. 어림짐작으로 전교생이 3000명쯤 되는 학교였으니 은행의 구린내 나는 껍질을 벗기고 삶아 아이들 모두에게 나누어 주려면 어지간한 인내와 특별한 정성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 같다.

'교장선생님과 소사아저씨는 아마 그때 일요일에 나와서 그 많은 은행의 구린내 나는 껍질을 벗겨 삶아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셨는지 몰라.'

해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생각나던 은행 두 알이 올해는 더 특별히 여겨진다. 은행잎에 가을이 깊어질 때마다 구린내 나는 은행 열매 속에서 나온 매끈한 열매를 차마 먹지 못하고 오랫동안 간직하였던 기억만 떠올리곤 했지 단 한 번도 우리들에게 은행 두 알씩을 나누어 주던 교장 선생님 마음을 헤아려 본적이 없었는데....

시인처럼 아이들 소리가 전혀 없어 쓸쓸한 일요일의 학교에 나와 우리들 손에 쥐어줄 은행을 손질하는 동안 우리들 모습을 떠올리며 기분 좋았을 교장 선생님. 일제 때 지어져 일본귀신이 나온다는 미움까지 받았던 긴 교실 끝에 있던 두 그루 은행나무가 몹시 그리운 날이다.

징검다리는 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제 마음속 징검다리가
끝난 곳쯤에서 징검다리를
새로 더 놓으며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기도 할 것이다. ―'징검다리 2' 부분

시에 덧붙인 이야기:징검다리는 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징검다리는 우리들 마음속에도 있을지 모른다. 멀리 살고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든지 잊혀 진 것들을 다시 생각해 내는 것도 사실은 하나의 징검다리인지 모른다.

친구를 생각하고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쓰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잊고 지냈던 꽃 이름 하나하나, 노랫말 하나하나를 다시금 떠올려 보는 일 또한 마음속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친구들 마음속에 하나씩 자리 잡은 조그만 징검다리가 아닐까? -본문 65쪽


<이야기가 있는 시집>에서 만나는 수많은 시와 이야기들 중, <징검다리2> 에 덧붙인 이야기가 솔깃하게 다가든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눈길과 마음속에서 꿈을 키워 나가는 아이들. 초등학교 교사였던 시인이 그간 아이들을 향하여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태주 시인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자연과 아이들이 있는 맑고 순수한 서정이 돋보이는 시를 그동안 많이 발표해왔다. 이런 시인이 정년(2007년 8월)을 앞둔 아쉬움에 그간 자신이 써 온 수많은 시들 중에서 61편을 골라 이 시집 한권에 담았다.

이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시들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것들. 43년간 교사로서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의 증거로 시들을 골라 마지막 제자들에게 줄 수 있음의 소회를 책 머리말에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시마다 적고 있다. 언제, 왜 그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 시를 쓴 날 어떤 추억이 있는지, 그 시를 쓰며 생각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시를 적는 마음이 어땠는지 등. 이미 또 다른 시집에서 만났던 시를 이야기와 함께 다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만 따로 떼어 읽어도 좋은 한권의 산문집이기도 하다.

시와 시에 덧붙여 적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 동안 추억 속에 서있는 느티나무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진다고 할까? 아이들과 그네와 나무가 있는 학교 놀이터, 소박하고 작은 들꽃...,시인이 직접 그려 넣은 연필화들도 눈길을 오래 붙잡는다.

이 시집을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거나 징검다리에 너와 나의 애정과 그리움을 실어 이전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처럼 징검다리는 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너와 나의 마음속에도, 너를 그리워하고 너를 향한 그 마음, 너에게 힘과 빛이 되고픈 그 마음이 징검다리일 것이다. 소중한 네가 힘들어 할 때면 그 징검다리 건너가 위로해주고 싶다. 삶이 팍팍할 때마다 위로와 힘이 되는 네가 몹시 그리운, 너에게 편지 한 장 띄우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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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달걀 샘터어린이문고 6
벼릿줄 지음, 안은진.노석미.이주윤.정지윤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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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재현, 경주, 경민, 달이. 이 아이들은 <까만 달걀>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이름만으로는 그저 평범한 아이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릇된 편견과 잣대'가 만들어 낸 특별한 아이들이다. 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세상을 떳떳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야만 하는 혼혈아들.

"쟤, 걔잖아. 혼혈아."
"뭐? 튀기?"
"맞네. 잡종! 윽, 냄새. 야. 냄새 옮겠다. 가자."
"어쭈! 튀기가 김밥을 먹네? 김밥은 한국음식인데 왜 쟤가 먹고 있냐? 에이, 앞으로 김밥도 못 먹겠네. 튀기가 먹는 음식을 어떻게 먹냐? 더러워서!"
- ‘내 이름은 유경민이야’ 중에서


설마, 아직도 '살색' 크레용을 사용하세요?

두 번째 이야기인 '까만 달걀'에 나오는 장면이다.

미술시간. 가족 모습을 그린 재현이는 '살색 크레용'과 '까만 크레용'을 칠할까 한참 고민한다. 흑인병사였던 할아버지를 닮은 아버지와 자신이 피부도 까맣기 때문에. 재현이는 살색 크레용을 집어 누가 볼까 급하게 색칠하지만 언제 보았는지 성구가 잘못 칠했다고 떠든다. 아이들도 재현이 그림에 달라붙어 색칠을 잘못했다고 몰아붙인다.

선생님의 위로에도 여전히 서러운 재현이는 제 방에 처박혀 울면서 피부 까만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를 원망한다. 재현이 아버지도 놀림과 왕따 속에 자랐고, 직장을 구할 때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겨서 화합을 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로 셀 수도 없이 거절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차별과 수근거림은 여전했다.

재현이 아버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달걀을 삶아 까만 매직으로 꼼꼼하게 색칠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재현이반에 찾아가 아이들에게 까만 달걀을 모두 나누어 준 다음 껍질을 벗겨보라고 한다.

"...하얀 달걀도 있고 갈색도 있고 알록달록한 메추리알도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까만 달걀도 있어요. 겉모습은 하얀색이거나 갈색이거나 까만색일 수 있지만, 속은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모두 하얘요. 그리고 똑같이 흰자위가 있고 노른자위가 있어요. (중략)아저씨나 우리 재현이가 겉모습은 달라도 여러분과 똑같이 한국 사람인 것처럼. 아저씨랑 재현이한테도 여러분과 똑같은 한국인의 피가 흘러요. 내나라 내 조국은 겉모습이 다르다고 우릴 몰라볼지 모르지만, 우리는 절대 내나라 대한민국을 몰라보지 못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한국 아버지를 찾아 온 경주, 벌레취급 당하는 태국혼혈아 경민이, 일본인 아버지를 두어 '하-후 데스까'(일본말로 혼혈아입니까?)가 이름대신 불리는 달이, 그리고 필리핀 까막눈 엄마를 둔 아랑이 이야기. <까만 달걀>은 우리들에게 '혼혈아'나 '튀기'로 불리는 이 다섯 아이의 복받치도록 서러운 이야기들이다.

'혼혈'대신, '다문화가정' '국제가족' '온누리안(온세상사람)' 이라고 불러야!

우리나라에 혼혈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해방직후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이고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시작된 우리 혼혈인들의 아픔이다.

당시 미군을 아버지로 태어난 이들은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 당하며 성장했고, 재현이 아버지처럼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직장에서 거절당하기 일쑤. 군대에서조차 제외시킨 그들이었다. 2만에서 6만 가량이 태어났다고 추산하지만 어렸을 때 입양되었거나 이민 등을 이유로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천 명 정도라고.

한국 땅에서 혼혈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짐작이 충분하다.

지금은 해방 직후와는 달리 국제결혼의 증가로 태어나는 혼혈이 대부분. 2005년 기준으로 전체 결혼 중,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13.6%. 특히 농촌의 경우는 3분의 1이 국제결혼이라고. 이런 추세로 최근 우리 주변에 혼혈인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중요한 사회구성원이 되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 그만큼 혼혈아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공부하는 일이 흔해진 우리 아이들. 혼혈인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자세가 바람직한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등, 혼혈인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바람직하게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까만 달걀>은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 아이들이(우리 모두가) 혼혈아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고 재수 없다며 혼혈인친구를 벌레 보듯 하는 두현이 같은 아이들처럼? 살색을 잘못 칠했다고 몰아붙이는 아이들처럼 자라야 할까?

아니. 따돌림 당하는 아랑이의 친구가 되어 주는 속 깊은 금이처럼. 아랑이 엄마를 늘 감싸주는 금이 할머니처럼. 한국과 태국의 멋진 만남으로 경민이가 태어나서 축복받은, 그래서 '국제가족'이라면서 힘들 때 따뜻하게 안아주는 태권도 사범과 재현이 선생님과 같은 그런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르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에요. 단지 '다르다'는 이유의 차별은 너무 서러워요!"

"'다르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차별을 받을 이유가 되지 못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니까요.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두 달라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답니다. 이제는 내 친구에게서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하면 그 친구의 개성을 존중해 줘요. 그리고 서로 같은 점은 어떤 게 있을지도 생각해 봐요. 다른 점은 다른 점대로, 같은 점은 같은 점대로 우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유가 되잖아요?" - 여는 글, 김넨시 글 중에서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먼저 소개되고 있는 이 편지 한 통을 여러 차례 읽게 되었다. 그녀는 36세. 보육사의 꿈을 가지고 경북 왜관에서 늦깍이 공부중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백인, 지나치게 하얗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진 백인 혼혈 김넨시 역시 다른 외모 때문에 외톨이로 자랐다는 고백을 편지에서 하고 있다.

지난해(2005년 5월)부터 크레용의 '살색'대신 '살구색'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살색'을 '살구색'으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 우리들 마음 속에는 여전히 살색을 구분하고 그들을 별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 안타깝고 아픈, 뭉클하고 따뜻한 감동이 많은,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까만 달걀>이었다.

다르다면 다른 그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나는 정상, 너는 비정상' 식의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얼굴색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이들이 다양하게 그린 얼굴색들이 고운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어울리는 그런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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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무크타르 마이 지음, 조은섭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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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타르 마이’는 파키스탄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다.

28세 되던 해인 2002년 6월 22일.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집안의 처녀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남동생이 감금당한다.

마스토이 부족에게 동생의 용서를 구하러 간 무크타르 마이. 하지만 마스토이 부족은 그녀를 집단윤간 하라는 잔인무도한 평결을 내린다.

그녀는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네 명의 마스토이족 사내로부터 집단윤간을 당한다. 그리고 반나체로 길거리에 내던져진다.

사실, 동생 사쿠르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계급의 여자를 강간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없는 죄를 만들어 씌운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여자들처럼 무크타르 마이도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경우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간혹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십중팔구 피해자인데도 더 큰 보복을 당했다. 여자를 죽이고 온가족에게 테러를 저질렀다.

"나를 구한 것은 솟구치는 분노다!"

"수일동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날뛰었다. 이렇게 계속 누워서 숄에 얼굴을 처박고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죽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데, 어느 순간 그 몸부림 사이로 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이것은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어떻게 죽을까만 붙들고 살았었는데, 사내들이 유린한 이 몸을 끔찍하게만 여겼었는데, 나를 그 죽음의 그물로부터 구출해 낸 것은 뜻밖에도 솟구치는 분노였다. 분노가 삶의 의지를 부추겼다. - 본문 중에서


그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고 고소를 하지만 명예범죄의 실상을 알고 있는 경찰은 문맹인 그녀에게 백지진술서에 사인 할 것을 강요, 사건을 조작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입을 통하여 사건의 실상이 밝혀진다.

목숨을 담보로 한 무크타르 마이의 생생한 증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인권단체와 세계인들은 분노하였다. 세계의 들끓는 여론에 난감해진 파키스탄 정부는 그제야 재수사하기에 이른다. 2002년 8월 31일, 마스토이 부족의 남자 6명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잔악한 그들에게는 남성들의 잣대로 조각된 전통이 있었다. 수도 없이 자행되는 여성범죄에 대해 처벌만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닌, 범죄자들을 보호함으로서 여성범죄를 도리어 부추기는 악의 핵, 철통같은 전통이었다.

범죄자인 그들은 이 전통을 믿고 항고, 2005년 3월 3일 6명 중 1명만 무기징역을 받고 나머지 5명은 무죄 방면된다. 이에 무크타르 마이는 즉시 항고를 했고 사건은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이다.

무크타르 마이는 현재 여성인권의 수호신이 되어 여성인권과 여자들의 문맹퇴치에 온힘을 쏟고 있다. 그녀는 성금으로 받은 전액을 고향마을에 여자학교를 짓는 데 썼다. 문맹의 여성들이 자신의 딸에게 끔찍한 굴레를 되풀이하여 물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일부 남성들은 맘대로 다루기 힘들다는 이유로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때문에 글을 모르는 여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평생을 억울하게 살아간다. 무크타르 마이 역시 문맹이어서 조작된 진술서에 사인을 했고 백지 진술서에 사인을 강요당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남자들의 시빗거리로 교환되고 복수물로 제공되는 파키스탄 여성들

부족의 수많은 남자들과 집안의 남자들을 놔두고 왜 하필 28세의 그녀가 동생의 용서를 구하러 가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녀는 함께 간 삼촌과 아버지가 보는 가운데 윤간을 당했다. 부족회의에서 그녀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명예범죄 때문이다.

파키스탄에서 여자는 상품취급을 받는다. 아무리 어린 동생이더라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시빗거리에 복수의 대상물로 교환되고, 무크타르 마이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용도로 쓰여진다. 여자들을 납치하여 감금한 후 장기적으로 집단윤간을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회에서 남편이 인간 이하의 학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음료수를 다 마신 후 밟아 눌러 차버리는 것처럼 여자에게 초산을 끼얹어 흉측한 모습으로 평생 고통을 받으며 살게 한다. 교묘하게 지나(불륜녀)의 죄를 씌어 감금시키기거나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파키스탄 인권협회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04년 사이에만 거의 2800명의 여성들이 살해됐고, 최근 10년 동안 1500명의 여성들이 초산테러를 당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강간, 납치, 폭행 등 자잘한 여성범죄는 비일비재하다." - 역자후기 중

이 책을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었다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은 여성범죄가 횡행하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고통 받고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불행을 대변, 소리 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여성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무크타르 마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증언이 없었다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더 가혹하게 되풀이 되었을 여성범죄의 실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2002년 8월부터 지금 현재까지 수많은 세계인과 여성인권단체들이 주목하고 있는 '무크타르 마이 사건'의 진실과 파키스탄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실상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명예범죄라고 불리어지는 여성범죄의 실상, 헌법과 관습법, 이슬람법이 공존하는 파키스탄의 악습 속에 범죄자인 남성이 도리어 보호받는 현실, 남근숭배와 남성우월주의의 모순이 세대를 이어 여성을 상품 취급하는 사회, 신분에 따라 차별되는 관습 속에 희생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무크타르 마이에 의해 생생하게 밝혀지고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분노가 끝없이 치밀었다. 수많은 그녀들의 아픔에 눈시울이 흐려져 몇 번을 덮어야만 했다. 무크타르 마이가 겪은 일이나 지금 현재도 자행되고 있을 많은 여성범죄의 실상은 그 누구도 함부로 넘길 수 없는 비극이었고 끔찍한 일이었다.

무크타르 마이의 핏빛 고백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고 있는 파키스탄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크타르 마이의 용감한 고백이 세계 또 다른 나라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여성들을 구제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가 하는 말을 마리 테레즈 퀴니가 받아써서 출간한 그녀의 책은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무크타르 마이는 자신을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여성이며,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여성으로 여길 뿐이다" - 르 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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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 그 서툴게 끼인 자리
오세윤 지음 / 푸른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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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43년 해주항 근처 용당포에서 시작하는 <슴베, 그 서툴게 끼인 자리>는 작가 오세윤의 성장 소설. 지난 반세기 한국의 역사 속에서 자라난 한 한국인의 성장과 자아 발견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해방이 되었지만..., 화자인 ‘나’의 가족은 아버지가 일제 때 운영한 공장 때문에 막 움트는 공산주의자들의 감시의 눈길 속에 월남한다. 해방이 되고서야 일본 국민이 아닌 원래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소년.


"동네입구에 들어서자 유리 미닫이문에 붉은 글씨로 '복떡방'이라고 써 붙인 작은 가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떡을 파는 가게인 줄 알았다. 떡은 없고 노인들만 모여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중략)...대문에 '맹견주의'라고 써 붙인 집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항상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 아니면 결전을 앞둔 적군의 작은 성을 지나가는 듯 쭈뼛한 느낌이 들었다.(중략)도둑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곳 서울은 도둑 천지인가 보다.-본문 중에서

 

지난 반세기 한국의 역사 속에서 자라난 한 한국인의 성장과 자아 발견 과정


해방 이듬해의 서울, 처음 만난 서울을 이렇게 반추한다. 매일 되풀이 되는 빤한 나의 일상이어서 밋밋한 줄거리의 이 책은 자칫 무료했다.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여 모두 읽고서야 책을 놓은 것은 이처럼 재미있는 표현들 때문이기도 했다. 이쯤은 주인공이 9살인데 소년의 순진한 시선이 재미있고 당시 서울이 짐작된다.


해방과 전쟁을 앞둔 한반도. 뱃길로 필요한 물자를 구하러 오고가는 친척이야기, 친할머니의 해주행..., 하지만 대체적으로 평온한 소년의 일상이다. 공동우물 앞에 물통을 길게 줄지어 놓고 기다리는 동안 놀기에 바쁜 소년이다. 날마다 잠자리에서 오줌을 쌀만큼.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6.25전쟁. 가족은 피난을 떠나는데 아무런 계획도 연고도 없는 홍성에서 피난생활은 시작된다. 6.25라는 나라전체의 혼란과 함께 주인공 역시 사춘기가 시작되는데. 힘들수록 자아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간다. 홍성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이 소설의 가장 많은 부분에 해당한다. 가장 아프지만 가장 따뜻한 희망이 자라는 시기이다.


가족은, 다른 피난민들처럼 끼니마저 힘든 날들을 보낸다. 아이밖에 낳고 키울 줄 모르던 어머니가 밥벌이를 위해 좌판 장사를 하게 되고 소년 역시 가족들의 끼니를 위하여 어떤 일이든 하게 된다. 심지어는 원하지 않는 도둑질도 하게 되는데..., 하지만 무엇을 하든, 그 일이 만족스럽든 괴롭든 자아성장의 욕구로 늘 허전하다.


소년에게 자아성장의 가장 큰 몫은 공부. 그런데 왜 부모님은 장남인 자신을 공부시키려 하지 않는가. 피난 이듬해부터 두 여동생을 이미 학교에 보내고 있으면서. 어떤 힘든 상황에도 가족들을 든든하게 이끌던 아버지 아닌가. 그럼 어머니는? 어머니는 자신에게 유독 냉정했다. 학교문제도 그랬다.


자아실현과 현실에서 허전할 때마다 한줄기 위안은 늘 외할머니다. 혹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특별한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동안 화자의 할머니 이야기에 눈 끝이 축축하게 젖을 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가볍게 드러내지 않는 할머니도 나를 맞을 때는 서두는 몸짓을 했다. 언제나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중략)..방안에 들여놓는 소반에는 죽 한 그릇과 김치 한보시기. 할머니는 차마 부엌에서 들어오지 못했다. 아침에 지게를 지고 나서는 나에게 도시락을 건네줄 때의 할머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뭇짐을 지고 오느라 더 힘들었을 손자에게 죽 한 그릇을 내어 놓는 그 속이 얼마나 쓰리고 오죽이나 민망했을까.-본문 중에서


나무하러 가는 손자에게 매일 아침 자신의 하루 끼니, 그 몫을 덜어 도시락을 들려주면서 행복한 할머니. 하지만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 온 손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멀건 죽 한 그릇. 그것이 너무 안쓰럽고 미안해서 차마 손자를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순박함에 아주 어렸을 때 시골 아무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던 할머니들 모습이 떠올랐다.


소설은 이처럼 6살 어린 소년의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시작. 6.25에 대한 혼란.  몇 년 후 난생처음 아버지로부터 “개새끼”라는 욕을 들으며 아버지가 원하는 의대를 지망하는 등등, 한 소년이 성년에 이르는 과정이 주인공의 나이 따라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줄거리도 밋밋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아 가슴 뭉클해지기를.


주변 친구들의 어렵고 곡절 많은 신변 이야기 들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서로 힘든 사람들끼리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돋보이는 희망의 이야기였다.


슴베! 슴베, 그 서툴게 끼인 자리의 의미가 특별하게 와 닿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슴베'를 전혀 몰랐다. 슴베는 날과 자루를 이어주는 부분, 즉 칼이나 낫을 보면 자루 속에 박혀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슴베라고 한단다. 아무리 잘 드는 칼날도 이 부분이 없으면, 야무지게 끼어지지 못하면 칼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 좋은 말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슴베, 그 서툴게 끼어서 어정쩡한 아픔이 지은이만의 이야기뿐이랴. 우리 누구나 서툴게 끼어있는 슴베 같은 아픔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있을 터. 쉽게 털어버릴 수 있든, 나처럼 가슴에 꽁꽁 묻어두고 한번 씩 아파하는 것이든.


내 나이 스물 몇 살. 오직 가고 싶어 열망하던 길이 있었다. 주변 사람 모두 염려하고 말렸지만 그래도 오직 그 길만이 내가 가야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길을 가기 위해 버려야 하는 많은 것들이 결코 아쉽거나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그 길을 아프게 놓아야만 했던 절망이란.


아직은 인연이 닿지 못했다고 억지위안을 삼으면서 한순간에 놓고 돌아서야만 했던 그 길. 그때, 그 길을 원하는 대로 갔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 아직은 주인공처럼 털어내 보일 자신도 용기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삶의 길에 방해가 될 뿐이니 어서 털어내 버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올 한해. 살아온 날들을 한번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이즈음에 읽기 마땅한 소설이다.


"왜 책의 제목이 '슴베, 그 서툴게 끼인 자리'인가. 남쪽에 내려와서는 ‘삼팔따라지’라고, 피란 가서는 '서울 놈'이라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야간 출신’이라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지방, 타교에서 온 놈'이라고, 가족 내에서의 위치도 언제나 어설프게 끼인 자리로 살았다. 자루도 아니요 날도 아닌 ‘슴베’ 같은 인생.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신과 많은 이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왔다. 싹을 틔우면 나무는 자라는 법, 그게 나무의 속성이요 성장 의지가 아닐까." -후기 중에서


작가 오정희의 초기 작품 속에 나오는 ‘가족과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16살 큰오빠’가 이 책의 저자 오세윤. 많은 동생들 때문에 늘 기저귀가 펄럭이던 집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많은 동생들 중 한사람이 오정희.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실존인물이라니 두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맛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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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지킴이 노빈손, 한강에 가다 신나는 노빈손 가다 시리즈 2
박경수 지음, 이우일 그림, 환경운동연합 감수 / 뜨인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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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전만 해도 시골은 물론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제비는 이제 시골에서도 거의 볼 수 없는 새가 되었다. 가을날 자주 볼 수 있었던 새들의 'ㅅ'자 행렬도 거의 볼 수 없는 풍경. 동요에 나오는 ‘따오기’도 ‘오빠생각’이란 노래에 나오는 뜸부기도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새가 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학'도 이젠 연하장이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 이처럼 우리들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새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

<철새 지킴이 노빈손, 한강에 가다>는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생태계가 파괴. 새들은 물론 많은 생물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환경운동연합, 환생교(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들 모임)등 생태계보전에 뜻있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나온 책이다.

"새들과 함께 한 지난겨울은 행복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친 탐조여행과 열흘간의 습지 기행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습지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인간과 새들의 공생'을 꿈꾸게 해 준 두루미들의 맑은 울음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머리말에서

이런 책을 내기 위해 저자와 환경생태보전에 뜻을 둔 사람들이 수차례의 탐조여행과 갯벌탐사를 한곳은 한강하구. 그럼 왜 하필 한강하구일까?

한강하구는 희귀동식물로 가득 찬 보물창고

유네스코에서는 2개국 이상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 중 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접경생물권 보존지역(TBR)'로 지정하였는데 세계적으로 몇 되지 않는 지역인 TBR에 한강하구도 해당한다. 게다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DMZ(비무장지대) 생태와 서해안 해양생태를 잇는 중요한 통로여서 세계적으로 더욱더 주목받고 있는 한강하구다.

여기에, 동북아시아 물새들의 서식지 겸 이동통로라는 것까지 더해지고 보면 한강하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을 하고 보전에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 한강하구에 어떤 새들이 살까?

넓은 습지와 농경지, 다양한 식물과 바다 밑에 사는 생물과 어패류 등을 갖춘 한강하구는 수많은 새들의 보금자리다. 2004년 한 해에만 124종 8만 2천여 마리의 새들이 발견되었을 정도. 그중엔 비교적 흔한 새들도 있지만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희귀한 새들도 많다.

최근 몇 년간 발견된 새들 중 멸종 위기 종 1급은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노랑부라백로,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매 등 6종이다.2등은 재두루미, 개리, 큰기러기, 물수리, 솔개, 말똥가리, 독수리, 잿빛개구리매 등 22종이나 된다. 그동안 보고된 천연기념물만 해도 24종이다. 고양, 김포, 파주를 아우르는 구간은 아예 양쪽의 강변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 250호 재두루미 서식지로 지정되어 있다."-본문에서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을 ‘기수역’ 이라고 하는데, 일반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생태계특성을 이룬다. 민물에서 사는 생물도 살고 바닷물에서 사는 생물도 살고 이 두 지역을 회유하는 생물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잘 보전되면 무척 풍부한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생태계적으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 기수역인것.

기수역인 한강하구가 지금처럼만 보전되어도 경제적 가치는 1년 기준 약 7336억 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한강하구의 생태습지와 생물들을 위협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 <철새 지킴이 노빈손, 한강에 가다>는 이런 사실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책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기수역에 해당하는 한강하구가 생태적으로 중요한 한반도 생태축이요, 희귀동식물로 가득 찬 보물창고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 책 덕분에 한강하구를 피부 가까이 받아들여 관심 두는 계기가 되어서 다행이다.

다양한 상식이 풍부한 '철새백과사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노빈손’의 인기는 높은 편이어서 이름만 대어도 알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노빈손 시리즈는 좋아하는 편. 시리즈 한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초등학교 도서관 대출순위도 높은 편이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줄거리는 평범하다. 이벤트에 당첨된 노빈손과 말숙이가 철새지킴이 탐조여행을 관계자들과 떠난다. 노빈손 일행은 ‘곡릉천’이나 ‘장항습지’처럼 생태적으로 중요한 한강 하구습지를 찾아다니면서 독극물이 든 볍씨를 뿌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뜬소문만 믿고 새들의 먹이인 ‘새섬매자기’ 씨를 말리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리고 습지에서 살아가는 여러 새들도 만나고 위험에 처한 새들도 구해낸다는 줄거리다.

줄거리야 이정도. 하지만 노빈손 캐릭터도 재미있고 책속 내용과 관련시켜 그린 한 컷의 그림들이 만화처럼 재미있다. 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단어와 표현을 써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면서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자세하고 풍부하게 들려주고 있다. 때문에 아이들이 학습이라고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빠져들기에 좋다.

사실 학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본문과 쪽지, 부록으로 별도 구성을 하여서 많은 지식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장점까지 있었다.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 그에 비하여 흥미롭게! 인기의 비결은 이것 아닐까?

'개펄’은 ‘갯벌’의 방언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둘의 차이점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사람다리와 반대쪽으로 구부러지는 새 다리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새들에게 끼워 주는 가락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생물다양성계약'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새들도 사투리를 쓸까?’ 언젠가 무척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답을 만나 반가웠다. 제주에서 만난 휘파람새와 서울에서 만난 휘파람새는 소리가 분명 다르다고.(물론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점을 염두에 두고 데이터 관찰)

이 책에서 읽은 쪽지 하나. 독일에서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있었다고 다. 이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어려운 이론이나 법원판결도 아닌 단 한마디.

“이 세상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을 한군데쯤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개발주장은 쏙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뼘의 땅만 있어도 개발하자고 아우성인 어떤 나라(!)에 비하면 말이다. 멸종위기에 있는 개구리 서식지라는 이유로 예정했던 지역 대신 다른 곳에 올림픽 경기장을 세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숨은 일화도 부러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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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8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필터 2006-11-0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사추리라고 적으셨어욤....아고!...바로 잡아 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