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詩集
나태주 글.그림 / 푸른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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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가 흔들린다/ 바람이 앉아서/놀다 갔나 보다...(시 '일요일'부분)

"가끔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간다. 밀린 일을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없어 고즈넉한 학교. 그런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면 조용해서 일이 잘 된다. 그러나 학교는 아이들이 있을 때만 씩씩한 학교가 된다.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이나 방학 때는 학교도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만 같다. 시무룩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것만 같다."-시 <일요일>에 덧붙인 이야기 중에서


'은행 두 알'의 추억이 몹시도 그립다

일요일의 초등학교. 조용하여 일을 하기에는 좋지만 평상시와는 달라 쓸쓸해진 시인은 창가로 가 운동장을 바라본다.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제일 많이 울려 나오던 놀이터에 마음이 가장 많이 머물렀을 것이다. 문득 바라보았는데 아주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는 그네.

타고 노는 아이들도 없는데 왜 그네가 흔들릴까. 아니, 조금 전까지 어떤 아이가 그네를 타다가 돌아간 걸까? 아니면 바람이 와서 그네를 타고 있었던 걸까?...<일요일>이란 시에 적어 넣은 시인의 마음을 읽으며 이제는 기억 속에서마저 아련한 초등학교 무렵을 떠올렸다.

학교에는 굵고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 은행나무는, 바닥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생쥐와 눈이 마주칠 때가 많았던 길고 긴 건물 옆에 서 있었다.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옆으로 한눈팔지 않으면 늘 정면으로 마주치곤 하던 나무였다.

어느 해 가을, 아니 6학년 이맘쯤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소사 아저씨가 삶은 은행 두 알씩을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은행나무가 우리들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었다.

전교생에게 나누어 준 은행 두알. 당시, 반마다 60여명쯤 이었고 학년마다 6~7반. 어림짐작으로 전교생이 3000명쯤 되는 학교였으니 은행의 구린내 나는 껍질을 벗기고 삶아 아이들 모두에게 나누어 주려면 어지간한 인내와 특별한 정성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 같다.

'교장선생님과 소사아저씨는 아마 그때 일요일에 나와서 그 많은 은행의 구린내 나는 껍질을 벗겨 삶아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셨는지 몰라.'

해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생각나던 은행 두 알이 올해는 더 특별히 여겨진다. 은행잎에 가을이 깊어질 때마다 구린내 나는 은행 열매 속에서 나온 매끈한 열매를 차마 먹지 못하고 오랫동안 간직하였던 기억만 떠올리곤 했지 단 한 번도 우리들에게 은행 두 알씩을 나누어 주던 교장 선생님 마음을 헤아려 본적이 없었는데....

시인처럼 아이들 소리가 전혀 없어 쓸쓸한 일요일의 학교에 나와 우리들 손에 쥐어줄 은행을 손질하는 동안 우리들 모습을 떠올리며 기분 좋았을 교장 선생님. 일제 때 지어져 일본귀신이 나온다는 미움까지 받았던 긴 교실 끝에 있던 두 그루 은행나무가 몹시 그리운 날이다.

징검다리는 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제 마음속 징검다리가
끝난 곳쯤에서 징검다리를
새로 더 놓으며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기도 할 것이다. ―'징검다리 2' 부분

시에 덧붙인 이야기:징검다리는 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징검다리는 우리들 마음속에도 있을지 모른다. 멀리 살고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든지 잊혀 진 것들을 다시 생각해 내는 것도 사실은 하나의 징검다리인지 모른다.

친구를 생각하고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쓰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잊고 지냈던 꽃 이름 하나하나, 노랫말 하나하나를 다시금 떠올려 보는 일 또한 마음속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친구들 마음속에 하나씩 자리 잡은 조그만 징검다리가 아닐까? -본문 65쪽


<이야기가 있는 시집>에서 만나는 수많은 시와 이야기들 중, <징검다리2> 에 덧붙인 이야기가 솔깃하게 다가든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눈길과 마음속에서 꿈을 키워 나가는 아이들. 초등학교 교사였던 시인이 그간 아이들을 향하여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태주 시인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자연과 아이들이 있는 맑고 순수한 서정이 돋보이는 시를 그동안 많이 발표해왔다. 이런 시인이 정년(2007년 8월)을 앞둔 아쉬움에 그간 자신이 써 온 수많은 시들 중에서 61편을 골라 이 시집 한권에 담았다.

이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시들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것들. 43년간 교사로서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의 증거로 시들을 골라 마지막 제자들에게 줄 수 있음의 소회를 책 머리말에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시마다 적고 있다. 언제, 왜 그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 시를 쓴 날 어떤 추억이 있는지, 그 시를 쓰며 생각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시를 적는 마음이 어땠는지 등. 이미 또 다른 시집에서 만났던 시를 이야기와 함께 다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만 따로 떼어 읽어도 좋은 한권의 산문집이기도 하다.

시와 시에 덧붙여 적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 동안 추억 속에 서있는 느티나무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진다고 할까? 아이들과 그네와 나무가 있는 학교 놀이터, 소박하고 작은 들꽃...,시인이 직접 그려 넣은 연필화들도 눈길을 오래 붙잡는다.

이 시집을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거나 징검다리에 너와 나의 애정과 그리움을 실어 이전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처럼 징검다리는 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너와 나의 마음속에도, 너를 그리워하고 너를 향한 그 마음, 너에게 힘과 빛이 되고픈 그 마음이 징검다리일 것이다. 소중한 네가 힘들어 할 때면 그 징검다리 건너가 위로해주고 싶다. 삶이 팍팍할 때마다 위로와 힘이 되는 네가 몹시 그리운, 너에게 편지 한 장 띄우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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