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부친 편지
경봉 스님 외 지음, 정성욱 엮음, 명정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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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형. 오랜만에 편지를 적습니다. 메일이 보편화되어 손쉬운 만큼 마음도 더 많이 전하자 싶었는데 마음뿐, 연하장 띄우고 이렇게 다시 가을입니다. 늘 바쁘고 정신없으면서도 한번씩 그리운 것은 오롯이 마음을 적어 보던 편지입니다. 편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입니다.

'무얼 하며 살아가나?' 요즘, 그간 다소 어수선했던 마음을 돌아 볼 서간집 한 권을 읽었습니다. 인터넷에 입맛들인 후 늦은 밤에도 쉽게 물러나지 못하던 습관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마음 뚝 떼어 물러나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큰스님들이 남긴 주옥같은 삶의 화두들

서간집 <산사에서 부친 편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큰스님들이 수행 중에 틈틈이 주고 받았던 편지글 130여 편을 모은 것입니다. 큰스님들이 남긴 주옥같은 삶의 화두들을 통하여 돌아 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만 온 그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람이든 일이든 제게 머물러 있는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선뜻 줄 수 있으며 얼마만큼 배려하며 바라보아 줄 수 있는가?' 오랜만에 많은 생각도 해보았던 계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리글에 "색이 바래고 때론 쥐똥이 묻은 편지, 찢은 도포자락이나 죽순 잎, 그리고 나무껍질 등에 씌어진 글…"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과 제자, 구도의 길을 함께 가는 도반(같이 공부하는 벗)으로서 인연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입고 있던 도포자락을 찢어 마음을 적어 전해야만 했을까? 죽순 잎에, 혹은 나무껍질에라도 담아 전하고자 했던 순간순간의 작은 깨달음들, 서로를 바라보아주고 이끌어 줌. 그 깊이는 어느 만큼일까?

J형. 비록 속세의 잡다한 욕망에 등을 돌리고 참선과 고행을 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그들이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세속적인 번뇌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부단히 일었다가 스러지는 정한이야 사람이니 어찌 할 수 없는 것임에야. 그럼에도 부처의 가르침에 부단히 다가가려는 그들의 고행과 깨달음을 향한 푸른 발원을 보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사람의 본성으로 잠시나마 흔들렸다가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하는 그들의 살가운 속내였습니다.

그러나 샛별처럼 반짝이는 구도의 발원은 동시에 속가의 어머니에겐 불효였습니다. 속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간병을 위해 산을 내려가는 벽안스님의 편지에는 출가수행자이기 전에 늙은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절절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깨달음에서 멀어질지라도 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그나마 다하려는 그 마음이 제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렇다한 그 무엇 하나 못하고 마음 속에서 늘 아린 친정어머니가 몹시 그립기도 하였습니다.

"원래 중놈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함에도 시름시름 앓는 어머님을 두고서 밤마다 이렇듯 가슴이 미어져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피안(彼岸)행 열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를 사하는 길이니 부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속세의 인연'-벽안스님이 경봉스님에게)

그렇습니다. 눈 푸른 납자(중)가 되어 구도의 길을 가지만 속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데 어찌 무심할 것이며, 나 몰라라 참선에만 들 수 있을는지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한 채 얻은 깨달음을 어찌 제대로 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얻어진 깨달음으로 극락에 간들 그것이 무엇일 수 있으랴. 무릇 종교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지 종교를 위한 종교가 아님을, 종교인으로서 참된 자세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

효봉스님의 일화를 아시지요?

"나는 왜 출가를 해야만 했는가를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법관이라고는 하나 과연 한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가? 과연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이미 내 몸이 세속의 70에 들었으나 아직도 이 뼈아픈 화두 앞에서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뼈아픈 화두'-효봉스님이 경봉스님에게)

일제 때, 법관을 지내던 효봉스님은 어느 날 자신의 판결에 죽어가는 사형수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본의 아니게 일본의 앞잡이로서 자신의 민족인 사람들에게 내리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순간 판사직은 물론 모든 명예를 버리고 엿장수로 떠돌며 참회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참회의 방법으로 늦깎이 출가를 하여 득도하였지만, 그 참회가 평생의 화두였다는 뼈아픈 고백 앞에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깊은 고뇌를 봅니다.

J형! 삶에 미숙하던 청소년기의 제게 효봉스님의 일화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길인지를 생각하게 하였었습니다. 우연찮게 이 서간집에서 다시 대하며 세상에 대하여 꿈이 더 많던 시절들이 새삼 그리워졌습니다.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들 이룸 없이 살아가는 타성에 젖은 모습일 뿐이지만 이렇게 깊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책이 좀 더 깊은 인간일 수 있으리라.

이제 낙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며 가지 속에 부지런한 꽃눈을 준비하였던 나무들이 일년을 묵묵히 살아내고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낙엽은 또 겨울 혹한 속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작은 미물들을 덮어 주겠지요.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생명들의 풍족한 거름이 되어주겠지요. 일년 동안 쓰고 남은 것을 나뭇잎으로 되돌려 주는 나무의 넉넉함과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를 봅니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정작 나무처럼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것도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그늘을 만들어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활엽수처럼 살기란 더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낙엽마저 다른 삶의 배려가 되는 나무, 없는 듯 늘 배경으로만 서 있지만 제 할일 다 해가는 나무 한 그루 품어보는 가을입니다. 낙엽이 지고 있습니다.

삶이란 내가 살아온 흔적이고 살아가는 그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뚜렷하게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는 이룸 없는 삶, 돌아보니 분주한 발걸음뿐입니다. '낙엽이 지고 얼마 후면 다시 한해가 저물 텐데…'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어리석음이지만 이제라도 마음 돌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아닐는지요. 곁들여진 사진들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눌러 앉혔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합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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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 권오길 생물이야기
권오길 지음, 김우리 그림 / 청년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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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기 쉬운 생물 에세이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 꿀벌이 벌집 아래 위로 왔다 갔다 하면 꽃이 태양이 있는 쪽에, 그리고 태양 방향과 오른쪽 60도로 가면서 춤을 춘다면 그 쪽에 꽃이 있다는 뜻이다. 또 둥글게 원무를 추면 꽃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고, 8자 모양을 3초만에 한바퀴 돌면 먹이가 1킬로미터 근방에, 아주 천천히 8초가 걸리면 8킬로미터 근방에 꽃밭이 있다는 신호다." -'꿀벌의 춤은 막춤이 아니다' 편에서

놀랍다. 이렇게 자세한 관찰이 과연 가능할까 싶다. 많은 벌을 보고 살아 왔지만 벌 한 마리의 몸짓에도 이렇게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었다니. 그런데 벌만이 아니다. 나비건, 매미건, 꽃이건… 수많은 생물체들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생물체들마다 자신들의 생태 습성을 저자에게 조근 조근 말해주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저자는 그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과의 만남이 재밌다.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늘 봐왔던 꽃이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 새삼스럽게 다시 보는 꽃은 남다르다. 단순히 예쁘다거나 열매를 맺기 위한 꽃으로서만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좀 더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로 다시 피어나는 꽃들이다. 꽃들은 왜 저마다 붉거나 노란색일까? 그리고 푸른 계열의 색으로 피어나는 꽃이나 하얀색의 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는 생물에세이다.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고 10매를 넘기지 않으려고 쓰다보니 힘들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흔히들 생물계의 이야기는 어렵고 딱딱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 속의 글들은 읽다보면 깔깔거리며 웃게 한다거나 눈물까지 찔끔거리게 한다. 생물계 이야기가 어쩜 이리 재미있을까 싶다. 어쩜 이토록 감동스러울 수 있으랴.

의미 있는 사진 찍기에 욕심이 있다면 이 책을 우선 읽어보면 어떨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낌이 가능하다고 했던가? 생물에세이가 좋은 사진, 의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니? 생뚱맞은 걸까? 생물계에 막연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물론이거니와 자연에서 의미 있는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생물계의 이야기들을 이 책은 요점정리를 잘해주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읽어나가는 동안 어떤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법하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로운 현상을 담으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도 재미있는 장면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풍성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을 찍으며 그 안의 비밀스러움까지 볼 수 있다면 사진은 좀 더 다양하고 생생하게 가치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보는 잠자리를 통하여 이런 사진 찍기 구상은 어떨까? 저자가 들려주는 잠자리를 따라가 보자. 잠자리는 결혼 비행을 통하여 공중에서 짝짓기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물위를 스치는 듯 나는 것은 알을 낳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잠자리 두 마리가 붙어 나는 것은 짝짓기인데 그럼 암컷과 수컷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이런 호기심과 함께 잠자리를 따라가 보면 암컷이 온몸을 둥글게 말아 하트 모양으로 짝짓기 한 뒤 알을 낳는 그 생생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감탄만 하면서 남들과 같은 사진을 찍을 것인가? 풍부한 상식이 뒷받침 된 좀 더 의미 있는 사진을 찍을 것인가? 저자가 들려주는 생물체들은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거나 이미 보면서 자라온 것들이어서 더 의미를 두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 책은 조선닷컴에서 2년 동안 연재되었던 글 51꼭지를 우선 묶었다. 연재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저자의 생물 에세이는 지금도 격주로 연재되고 있다. 또한 여전히 베스트 연재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글들이다. 뿐만이 아니라 출간 된 지 몇 년 된 저자의 다른 생물에세이들 역시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고 한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식지 못하게 할까?

5년 전, 우연히 저자의 다른 생물에세이 한 권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무심히 보아 왔던 자연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자를 통하여 다시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에 한동안 설렜다. 설렘은 또 다른 생물이야기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고리로 연결된 수많은 갈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니 자연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할까?

나와 자연은 한 몸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 뜻 깊은 만남, 그 시작이었다.

이 책이 조금 아쉽다면 내용에 나열된 생물체의 다양한 모습을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주제 하나마다 비교를 해야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자주 보아온 모습이었지만, 이야기를 따라 우선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생물체의 모습을 우선이라도 보고 싶을 만큼 저자의 이야기가 생생하였다고 할까?

열 권 남짓한 권오길의 생물에세이 중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생물계 이야기로 깊이 빠져 드는 계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 동감할 것이다. 낙엽을 모두 떨군 나뭇가지마다 생명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인간과 자연계의 제대로 된 어울림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생명, 그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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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
최종욱 지음 / 김영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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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물들과 부대끼면서 얻은 생생한 감동의 이야기들

얼마 전 우치 동물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돼지꼬리원숭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이제 갓 두 달된 녀석이 위험한 장난을 시작하였다. 사바나에서 사자까지 해치울 정도인 개코원숭이의 새끼가 한달 정도면 어미 품을 벗어나는 것에 비해, 돼지꼬리원숭이는 2~3개월이 지나야 어미 품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데 채 준비되지 못한 녀석이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원숭이들은 철창을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먹을 것을 얻어가기도 하는 등 수시로 철창 밖으로 모험을 시도하는데 미숙한 돼지꼬리원숭이가 시도한 것이다. 녀석은 철창에서 떨어졌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못하고 꼼짝 않고 있는 것이 크게 다쳤지 싶었다. 다행히 녀석은 다치지 않았고 사육사가 달려와 철창 안으로 넣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사육사가 새끼를 철창 안으로 넣어주자 아기를 받으러 온 것은 어미가 아니라, 평소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원숭이었다. 사육사에게 재빨리 다가와 새끼를 받아 어미에게 돌려준 수컷은 다짜고짜 암컷을 쥐어박고 꼬집으며 면박을 주기 시작했다. 암컷은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는 듯 5분 동안 모질게 계속되는 수컷의 잔소리를 군소리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부부의 일상 같았다.

새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미원숭이가 죽은 시체를 한참동안 안고 다니다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죽는 모습은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도 원숭이를 말할 때 모성을 강조한다.

새끼가 장난을 걸어오면 묵묵히 받아줄 뿐 대부분 수컷들은 새끼를 안아주거나 어루만져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워낙 과묵하고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던 수컷도 새끼가 위급하자 부정을 누르고만 있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 모습에서 묵묵한 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직접 동물들과 부대끼며 나누는 교감을 바탕으로 한 감동어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더 감동적이다.

사람과 동물 간에도 주고받는 것이 많다

우치 동물원에 '우울증 환자'라고 불릴 만큼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고 피하던 침팬지가 있었다. 처음 올 때부터 녀석은 내실 구석진 곳에서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오죽하면 청소할 때마다 폭죽을 터뜨려 내쫓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녀석은 수시로 나와 일광욕도 즐기는가 하면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내밀며 아양을 부리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녀석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매점 아저씨였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에 비로소 마음을 열고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 것이다. 침팬지뿐이랴. 관람객의 손가락을 물어 화제가 되었던 사나운 하이에나도 사육사 앞에서는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처럼 먹을 것과 애정을 보챈다고 한다. 어떤 동물들은 좋아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주를 넘거나 가슴을 치고 문을 꽝꽝 두드린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과의 진정한 교감을 통하여 저자가 들려주는 감동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동물 간에도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관심과 애정으로 서로 길들여지고 나면 많은 것을 주고받는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꼬리는 폼으로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는 광주에 있는 우치동물원의 수의사 최종욱씨가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우치동물원은 예산이 넉넉지 않아 건강이 좋지 않은 동물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동물을 확보한다. 개장 이후 동물원이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코끼리 한 마리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태어나는 곳이다. 아픈 동물들을 데려다가 정성으로 보살피고 치료하여 오히려 다른 동물원에 새끼를 보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할까?

우리는 동물원에 가면 가장 보편적인 상식으로 동물들을 구경할 뿐이지 관심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 책은 같은 생명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무심히 보았던 동물들의 꼬리 이야기가 나온다. 열대로 갈수록 길어지는 소꼬리, 겨울에 몸을 감는 보온재의 역할이 되는 다람쥐나 여우꼬리, 두발로 설 때 지지대용으로 쓰는 캥거루의 꼬리, 낚시용으로 쓰는 재규어의 꼬리, 유혹하기 위해 쓰는 공작이나 칠면조의 꼬리 등 꼬리마다 나름의 역할이 있다. 정말이지 폼으로 달고 있는 꼬리가 결코 아니었다.

꼬리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눈이나 초식동물의 위에 대한 이야기 등도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장으로, 관련 주제의 글을 59꼭지로 묶어 들려준다. 저자가 현장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은 교감의 이야기들 못지않게 동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훗날 아이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게 되면 조목조목 알려 주고 싶다.

이 책은 감동의 글 못지않게 감동적인 장면을 담은 화보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많은 화보마다 짧게 정리하여 덧붙여 둔 그 설명만으로도 동물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하여 알게 된 동물들 이야기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감동이었다. 사람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듯 그들 역시 존재할 이유로 늘 우리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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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11-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원작이 주는 감동 이상의 것을 읽는 이에게 던져 줍니다. 리뷰는 이렇게 쓰는 거라는 걸 님이 잘 보여주고 계시네요. 맨 마지막 말씀 역시, 다른 데 가서 써먹고 싶네요.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 - 혁명의 색 빨강부터 이슬람의 녹색까지 세계를 지배한 색 이야기
21세기연구회 지음, 정란희 옮김 / 예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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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이 정말 있다고?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은?" 이렇게 물으면 생뚱맞다고 할까? 그런데 사실 벼룩색이 있다. 피를 빨아 먹은 벼룩색은 물론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 색이 정식으로 등록된 후 한때 한 사회의 유행과 선망의 색이었다. 벼룩의 색 퓨스(puce)를 좀 더 알아보면 이렇다.

근세 초기까지 왕후의 화려한 치장 뒤로는 벼룩으로 고생한 역사가 있었다. 폭 넓고 주름이 많아 풍성한 왕후나 귀부인들의 드레스 속에서도 벼룩은 기승을 부렸다. 신분에 걸맞은 품위를 지키며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들은 속으로는 끊임없이 벼룩과 치열한 전쟁을 은밀히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벼룩과의 전쟁이 오죽했으면 드레스 속에 벼룩을 잡는 기구를 밀어 넣는 부인들이 있었을까. 귀부인들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벼룩과의 전쟁이 치열했던 만큼 사람들은 피를 빨아 먹기 전의 벼룩과 피를 빨아 먹은 후의 벼룩을 쉽게 구분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피를 빨아 먹기 전 벼룩의 색과 피를 빨아 먹은 후의 벼룩색은 분명 달랐다.

14세기가 되자 프랑스에서 퓨스(puce; 벼룩)라는 새로운 색이 탄생하였다. 사람들은 일상의 큰 골칫거리인 벼룩의 모습을 색에 담아 보는 것으로 벼룩으로 인한 짜증스러움을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퓨스, 이 색은 피를 빨아 먹은 후의 벼룩색깔로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적갈색이며, 영어에도 같은 말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많은 색을 탄생시켰고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마리 앙뜨와네뜨의 모든 것은 곧 유행이 되었다. 14세기에 생겨난 퓨스가 18세기에 마리 앙뜨와네뜨에 의해 급속히 유행하였다. 그리하여 왕비가 옷을 맞출 때마다 '벼룩의 배' '빨간 얼굴의 벼룩' 같은 색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발표한 색들마다 대대적인 유행을 몰고 다녔다.

황태자의 똥(caca dauphin), 솔개의 똥(merde d' ore), 런던의 쓰레기, 슬픈 여자들, 독을 마신 원숭이, 멋쟁이의 내장, 변비 색, 천연두, 살아 돌아 온 죽은 자, 비구니의 아랫배…. 피를 빨아 먹은 벼룩색이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당시의 색 이름들이 재밌다. 이렇게 색은 그 사회를 표현해주기도 한다.

재미있고 놀라운 색의 숨겨진 이야기들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의 제일 마지막 장 '세계를 지배한 색, 그 뒷이야기' 편에 보면 벼룩색은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여러 편 보인다.

내세를 믿은 이집트인들은 3000년 동안 수많은 미라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미라는 아주 희귀하여 박물관에서나 전시될 정도다. 중세에는 미라의 가루가 머미(mummy)라는 색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때문에 미라를 분말로 만들어 팔아먹는 안료업자가 있었다. 또한 미라가루를 만병통치약으로 팔아먹었는데, 이런 행위는 300여년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나 황제의 색을 언뜻 금빛으로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통하여 중국황제의 자금성이나, 로마황제의 상징을 통하여 다시 보는 '자주색'이 새롭다고 할까. 스페인의 붉은 염색과 관련한 이야기, 다양한 낙타색, 오셀로, 퍼플 하트 부대의 전설 등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으스대며 들려줄 수 있는 의외의 이야기들이 재밌다.

색을 통하여 알아가는 수많은 호기심 코드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는 제목처럼 '한두 시간 집중하여 넘기다보면 책 한 권 쉽게 읽을 수 있다더라' 하는 그런 책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여서 한번 읽고 난 후에 필요에 의해 여러 차례 펼쳐 보게 될 책에 속한다. 색과 관련한 일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한 제목이지 않을까?

다시 몇 번을 펼쳐보며 참고하면 유용할 책이다. 가령 2편에서는 국기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 관한 이야기인데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면 저마다의 국기들이 상징하는 것이 궁금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때 국기에 대하여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이런 책은 속 시원히 그 궁금함을 풀 것이다(2장 국기 이야기).

종교적인 색도 제법 다양하지 않은가. 크리스마스에 문득 궁금한 산타클로스라면 이 책에서 이미 보았던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다시 펼쳐 보면서 '어?,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에서 비롯되었다고?' 이렇게 특정한 순간에 관련한 색에 대해 궁금할 때마다 이 책을 펼쳐 보면 궁금함이 어느 정도 풀린다고 할까(3장 성서이야기).

빨강, 파랑, 노랑, 하양과 검정…. 색의 우두머리랄 수 있는 이런 색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같은 색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부를 상징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불온하다. 색 하나로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여 그 민족을 융합시키기도 한다. 색마다 상징하는 것들은 저마다 다르다. 어떻게 그런 상징적인 색이 되었는가? 색 하나에 왜 그리 집착하는가?

색을 통하여 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나 역사적 이야기들이 색다르고 재밌다. 색에 이렇게 많은 코드가 숨어 있었다니 놀랍다. 전체적으로 9가지 주제를 정하여 색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부록으로 덧붙인 '색의 소사전'도 유용하고 재미있다. '색에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가 있었다니'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된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접하고 목록에서 '피를 빨아 먹은 벼룩의 색은?'이라는 소제목을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선뜻 선택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선택하여 얻어진 것이 의외로 많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벼룩의 무한의 그 방향처럼… 두고두고 몇 번을 펼쳐볼까.

손에서 놓기가 아쉬운 책이다. 그러고 보니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 적갈색'이 유행하기 좋은 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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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2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피 빨아 먹은 적갈색이 립스틱 색깔로 유행하던 때도 있었죠^^

필터 2005-11-2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지요?...^^
사실 제가 참 좋아하는 색입니다.그래서 폰트로도 자주 고르지요.
이 책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중국사람 요리하기
정허하이 지음, 임희선 옮김 / 가야넷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체면이 밥 먹여 주냐?"

실속 없이 남에게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지나가는 말처럼 예사로 체면이 밥 먹여 주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중국인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말 한마디를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더욱이 중국으로 진출을 희망한다거나 중국 사람들과 끊임없는 거래를 해야 한다면,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랄 수 있는 '체면'을 낱낱이 해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중국사람 요리하기>는 중국인들의 심리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체면'을 낱낱이 해부한 책이다. 중국인은 체면 때문에 처자식을 버리기도 했으며, 목숨까지 걸기도 했다. 비단 고전 속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국제 교역이 늘면서 서서히 깨고 있다지만 저자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도 여전히 '체면'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강력한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체면이 무엇이기에 체면을 골자로 한 권의 책이 가능할까? 저자가 낱낱이 들려주는 중국인들의 체면을 대충 보면 이렇다.

체면은 중국인들에게 자존심이자 명예며 최고의 선물이랄 수 있다. 사형수도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체면이요. 운명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이 체면이다. 비록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마저도 체면이 깎인다 싶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기도 하여 그야말로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리는 게 체면이다. 체면은 중국인들의 삶의 원천이다. 그러기에 가난할지라도 이 체면만큼은 버리지 못한다. 그러기에 체면이라는 영역은 남이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운명 같은 것이다.(일부 요약 발췌)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절대적이다. 체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먹다가 버릴지라도 일단 음식을 맘껏,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시켜야 체면이 선다. 또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식당에서 남긴 음식을 싸서 집으로 가져갈 순 없다. 그야말로 체면이 깎이니까.

생활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 외교 협상에도 체면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지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일본이 자신들의 체면을 깎았다고 판단을 내려 버린 그들은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일본의 사과를 받아냈다. '체면'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체면'은 눈에 보이지도 않아 잡아 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유전자에 인식되어 무엇이든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으로 우리들의 체면에 대한 의식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에게는 허울 좋은 것에 불과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이 '체면'이란 것을 어떻게 살려주면서, 혹은 추켜세우면서 중국인들을 요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우리의 체면도 구기지 않으면서 그들을 쥐락펴락하며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 주고 내 체면까지 챙기면서 실속까지 챙길 수 있을까?

"중국인들과의 소통(유통)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밥그릇(실속)을 확실히 챙길 수 있을까?"

중국 고전을 인용해 '체면'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쉽게 들려줘

이 책은 중국인들의 오랜 정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4대 고전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중에서 동물을 의인화한 서유기를 제외한 3대고전의 주요장면을 인용하여 중국인들의 체면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중국 고전 작품을 읽다 보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며 이해되지 않던 장면들이 저자가 말하는 대로 '체면'하나 붙여 보니 '과연 그렇다' 싶다. '천의 얼굴 중국인의 체면'이다.

저자가 비록 중국인이지만 '체면의 허와 실'까지 냉철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들과 만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원활하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까지 이 책은 싣고 있다. 우리도 이미 많이 읽은 중국 고전의 명장면을 바탕으로 하여 체면을 해부하는 이 책은 중국을, 중국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었다. 저자는 중국인이다. 그것도 현재 중국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다. 혹시 선수치고 먼저 내미는 배짱인가 싶었다. 말하자면 "우리 중국인들에게 체면 빼면 시체다. 그러니까 이젠 경제적으로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우리들을 아쉬운 너희들이 잘 알아서 대접해다오" 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게 중국은, 중국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간폭탄'이란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중국인 스스로, 이제 살만큼 살고 있으니 두둑한 배짱인 셈인가, 아니면 뼈아픈 자각인가?

"이 책은 중국에서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먼저 출판되어 일본의 각 기업체에서 단체구입을 많이 하는 책이지요. 중국은, 중국 사람들은 이제 만만한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이 책은 중국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뿌리박혀 있는 '체면'이란 것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습니다. <추악한 중국인>의 보양 선생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중국인들의 의식의 밑바탕인 '체면'의 쓸데없음을 버리자는 자각이지요. 어쨌든 우리로서는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체면입니다. 이제 중국은 우리 소비물품마다 박혀 있다시피 합니다. '메이드인 차이나'. 그들 스스로의 자각이지만 우리들은 반대로 그들이 자각한 실체를 파악하여 유리한 협상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장과의 전화를 요약)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추악한 중국인>이라는 책이 중국인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보양은 중국문화에 깊이 고여 있는 장독을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젊은 세대가 그런 '문화의 장독'에서 빠져나오기를 희망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온 장허하이의 이 책은 무엇인가.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허영인 체면'을 꼬집는다. 보양이든, 장허하이든 중국인 스스로 자신들의 가장 아픈 곳이며, 그래서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치부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중국의 진정한 발전을 독려하는 것이다.

중국. 이젠 우리들의 생활에서 중국은 많은 부분을 차지해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 버려야만 한다고 뼈아픈 자각을 하지만 하루아침에 버려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 스스로 드러내는 자신들의 치부라지만, 반대로 우리 스스로 그들의 코드를 읽어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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