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안 봤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듯한-왜냐하면 난 드라마를 거의 안 보므로-하얀 거탑의 원작자인 야마자키 도요코 책 한 권을 방에서 찾아 읽었다. 파파쿠라 도서관이 정기적으로 헌 책을 한 권 20쎈트, 여섯 권 1달러 팔 때 집어들고 온 책인데 야마자키 도요코의 본치다. 본치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오사까 사투리로 주인님, 도련님 뭐 그런 뜻인 거 같다. 쓰기는 60년대에 쓰여지고 80년대 초반에 영어로 번역된 소설이다. 작가의 초기 소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조사를 좀 해 보니 야마자키 도요코 여사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현실감 넘치는 대중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벌써 여든이 넘은 고령인데도 아직도 글을 쓴다고 하며 작품들이 일본에선 많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실력 있고 사물을 꿰뚫어 보는 솜씨가 좋은 작가라는 뜻이겠지. 대벌이라는 대하소설로 70년대말 80년대초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한다. 근데 대벌이 일본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한국에선 대망이란 이름으로 첨 알려졌으니까 일본 진짜 이름은 대벌이 아닐지도 모른다.
본치는 오사까에서 타비-일본 전통 버선-만드는 준재벌 집안 독자로 태어난 키쿠지를 중심으로 그의 어머니인 세이와 할머니인 키노, 그리고 다 성격이 다른 키쿠지의 다섯 정부情婦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다. 아내였던 히로코와 그 사이에서 얻은 아들 얘기랑 다섯 정부 가운데 이쿠코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쿠로, 폰타 사이에서 낳은 아들 타로 얘기도 나오고 사업 동료들 얘기도 나온다.
남자보다 여자가 드센 집안의 원치 않는 독자 아들로 태어나 할머니와 어머니의 등살에 시달리며 자란 마마보이 키쿠지가 오사까 상인 가문의 전통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반항 겸 타고난 바람기에 대한 굴복으로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며 삶의 단맛 쓴맛을 맛보다가 마지막엔 팔자를 받아들여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바라던 오사까 상인이 돼 간다는 줄거리다.
약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비슷한 거 같다. 특히 끝맺음 부분이. 애쉴리와 레트와 사랑열병을 앓는 단계를 지난 스칼렛이 타라로 돌아가듯 2차 대전 막 끝나고 나서 무너진 집안을 다시 새우려고 키쿠지가 애쓰며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는 결심 때문인지 네 여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대목에서 끝난다.
뭐 크게 감동적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1920년대 초에서 45년까지 오사까 지방 상인과 화류계 풍습과 일본 속담 같은 게 많이 소개돼서 그럭저럭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어떨까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입문서로서 괜찮았다. 별점은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