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1시반쯤 라디오 국방fm을 켜니 <홍소연 사랑의 책방>*에서 누군가 불러놓고 홍소연과 이야기를 나눈다.
홍소연 진행자 목소리도 좋지만 인터뷰이 목소리는 더 진하고 부드러운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다. 누군지 뭔 말 하는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인터뷰이 "주위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거 참고 눌러온 게 퍽 후회돼요. 글 쓸 때 이따금 이건 사람들이 뭐라 하겠다 싶은 대목이 있거든요. 그럼 눈치보고 딴 주제를 쓰거나 약하게 순화해서 쓰거나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게 참 후회돼요. 실은 쎈 주제일수록 숨어서 말 못 하고 속으로만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있거든요. 태도를 또렷이 밝히면 몇몇 사람은 적이 돼도 벗도 그만큼 늘죠. 입쎈과 뭉크 관계가 그랬어요. 둘이 만났을 때 입쎈은 이미 자리잡은 예술가였고 뭉크는 새내기 화가인데 마음 속 그리고 싶은 걸 사람들 눈이 무서워 못 그린 뭉크에게 입쎈이 큰 힘이 돼 주죠. 입쎈에 격려에 힘입어 망설이기만 하던 뭉크는 삶의 추함과 공포를 드러내는 그림을 그립니다. 물론 일부에게는 흉한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받았지만 뭉크로서는 자기치유였죠. 삶의 괴로움과 추함을 다루는 그림도 필요해요. 공황장애 다룬 책 표지로 흔히 쓰이는 <비명>을 보면 나만 괴로운 건 아니다는 위로도 받거든요."
여기까지 듣고 내가 내린 탐정놀이 결론 두 가지.
1)인터뷰이는 그림과 문학을 포함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다.
2)아무래도 정여울 같다.
내가 정여울이라고 생각한 건 며칠 전 어딘가에서-잡지인지 신문인지 온라인뉴스인지는 잊었지만-'사람들 눈치 보느라 쓰고 싶은 거 다 못 쓰고 자기검열 많이 한 걸 후회한다. 이제 다 털어내 볼 생각이다'고 말한 걸 읽었기 때문이다.
계속 들으니 홍소연이 인터뷰이 이름과 오늘 주제가 된 인터뷰이 책 이름을 말해서 내 추리 2)가 틀린 걸 알게 됐다. 문소영의 <명화독서>. 문소영이면 <못난 조선>,<조선의 못난 개항> 쓴 그 기잔가 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동명이인이다.
그 뒤로도 디즈니 <인어공주>랑 달리 비극으로 끝나는 안데르쎈 <인어공주>와 안데르쎈이 왜 비극으로 끝내야 했는지 말한 대목과 입쎈의 <인형의 집>과 문소영이 <인형의 집>보다 더 좋아한다고 한 <유령>, 쎄르반떼쓰 <돈끼호떼> 얘기가 이어졌고 소개된 문학작품을 소재로 그린 화가들 얘기와 다시 그 그림이 문학에 영향을 주는 얘기가 이어졌다. 흠, 관심이 간다. 문소영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국방fm은 0시부터 6시까지 새벽시간엔 kbs1라디오를 빌려 방송한다. 게을러터져서 채널 고정해 놓고 주로 새벽에 라디오를 듣는 나는 국방fm채널로 kbs1라디오 들을 때가 많다.